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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설전을 잠재운 엘리후’ (5회)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였다(욥 32:2). 그는 네 사람의 말잔치를 잠재우려고 나타난 지혜자였는데, 그가 분노를 표출(욥 32:2-3)한 것은, 욥은 시종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세 친구는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 욥을 정죄했기 때문이다(욥 32:2-3). 나이가 적은 엘리후의 일성은,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욥 32:6-9)라는 전제하에 당신들의 슬기와 말에 귀를 기울였으니 자신의 의견을 들으라는 훈시였다(욥 32:10-11). 설령 사태의 진상을 파악했다손 치더라도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라는 일갈이었다(욥 32:13). 게다가 상대가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 한 나 또한 당신들의 이론으로 욥에게 대답하지 않겠다는 단서까지 달으니 그들이 놀라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다(욥 32:13-15).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던 엘리후는,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욥 32:17-18)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만약 사람의 낯을 고려하고 아첨하듯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렸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서술로 마무리를 짓는다(욥 32:21-22). 엘리후의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므로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한다(욥 33:4; 6-7)는 말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욥 33:13)라는 질문과 함께,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욥 33:17-18)라는 계시를 통해 욥이 잃어버린 자녀들의 행방까지 알려주신다. 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제아무리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욥 34:4)라고 한들,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욥 34:5; 9)라고 질책하신다면,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 34:12)라는 말씀에 답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욥 34:19)라고 규정하셨고,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욥 34:23)라는 점을 분명히 하시면서 사람의 행위에 따라 공의롭게 심판하신다는 선언이었다(욥 34:11-12; 25). 그러니 나름 유식한 척 말솜씨를 뽐내던 세 친구는 물론 최대한 절제력을 발휘한 욥마저 무지의 소치를 노출한 참이다(욥 34:35). 결정적으로 엘리후는 욥을 향해,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라고 추궁하니,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 35:12-13)라는 말씀 가운데,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 35:15-16)라는 죄인의 속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엘리후의 사자후는,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욥 36:2)라는 말씀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는 이어,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욥 36:24)라는 말씀에 걸맞게,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욥 36:27; 30; 32-33)라는 창조주의 섭리로 매듭을 진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6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신묘막측한 창조 사역’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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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5-07-07
  • 평택시 5개 시립어린이집, ‘다섯 빛깔 꿈마루’ 수익금 전달
    평택시 시립어린이집 5개소는 지난 6월 14일 ‘다 같이 가치 있는 보육’을 실현하기 위한 ‘다섯 빛깔 꿈마루 바자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6월 25일 바자회 수익금(819만8천 원)을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에 전달했다. 이번 바자회는 시립복창어린이집(원장 안영림), 시립오성어린이집(원장 최정화), 시립청북어린이집(원장 김미란), 시립평택고덕어린이집(원장 차혜옥), 시립평택항어린이집(원장 김선미) 등 평택시 소재 어린이집 5개소가 공동 주최했으며, 약 50여 명의 교직원과 함께 학부모 및 영유야 600여 명이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다.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에 기부되어, 지역사회의 취약계층과 장애인 자립을 위한 뜻깊은 자원으로 쓰일 예정이다. 6월 25일 진행된 기부금 전달식에는 안영림 원장, 최정화 원장, 김미란 원장, 차혜옥 원장, 김선미 원장과 이은우 평택시민재단 이사장, 이종찬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장 등이 참석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의 희망을 나눴다. 바자회를 공동 주최한 김미란 시립청북어린이집 원장은 “이번 행사는 단순한 판매와 소비의 자리를 넘어서, 아이들이 함께 물건을 사고팔며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다 같이 함께하는 보육, 다가치 보육의 정신을 실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달식에서 김선미 시립평택항어린이집 원장은 “다섯 시립어린이집들과 함께 바자회를 진행하면서 소중한 나눔의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었다”며 “훈련 장애인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소중한 나눔이 이어져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지역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부금을 전달받은 평택시민재단 이은우 이사장은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에 따뜻한 마음을 보내 주신 다섯 시립어린이집 원장님, 선생님,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좋은 훈련시설을 만들어 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평택시민재단이 설립·운영하고 있는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는 평택에서는 유일한 발달장애인직업적응 전문훈련시설이며, 청룡마을의 쾌적한 공간에서 직업을 가질 확률이 낮고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20여 명에게 작업 활동, 일상생활 훈련, 사회적응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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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사람들
    2025-07-01
  • [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의롭지 아니한 말다툼’ (4회)
    이들의 세 치 혀는 이후에도 날카로운 공방을 벌인다. 욥이 소발에게,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욥 21:15; 31)라고 반격을 가하자, 엘리바스는 이를 받아,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욥 22:2; 5)라는 말로 결정타를 날린다. 이에 질세라 욥은,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욥 23:3; 6)라고 하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또다시,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욥 24:1)라는 읍소에 이어,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7-10)라고 담담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빌닷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욥 25:4; 6)라는 말에 대해 욥은 화제를 바꿔,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욥 26:7-10)라고 창조세계의 비밀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 뒤 욥의 현란한 입술은 풍자적으로,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 5-6)라는 최상의 비유를 든다.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욥 28:14)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그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3-28)라는 창조 사역의 섭리로 귀결된다. ▲ 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말씀의 진수를 깨닫고 난 뒤 욥의 직유는,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욥29:2; 5; 14)라는 축복의 회고담이었다. 그에 따라,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욥 30:9-10)라는 멸시를 감내하면서,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욥 30:21; 23)라는 깊이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욥에게 남은 소망은,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욥 31: 6; 33; 23)라는 간구로 옮겨간다. 급기야 욥의 포효는,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욥 31:38-40)라는 진술을 쏟아내고서야 그친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5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설전을 잠재운 엘리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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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5-06-30
  • 고덕동 시립어린이집 3개소 “행복을 나눕니다!”
    시립고덕르플로랑어린이집(원장 이시내), 시립고덕LH35단지어린이집(원장 고진순), 평택시다함께돌봄센터4호점(센터장 안혜경)에서는 ‘사랑 가득 행복마켓’ 바자회에서 얻은 수익금 2,595,000원을 평택시민재단 산하시설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에 기부했다. 원장님과 선생님, 아이와 부모들이 협력하여 아이들에게 협업의 소중함과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나눔의 가치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사랑 가득 행복마켓’ 바자회를 개최했다.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진행된 기부금 전달식에는 고진순 원장, 이시내 원장, 안혜경 센터장, 운영위원, 이은우 평택시민재단 이사장, 이종찬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장과 원아들이 함께 참석해 소중한 나눔의 기쁨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의 희망을 나눴다. 시립고덕르플로랑어린이집, 시립고덕LH35단지어린이집, 평택시다함께돌봄센터4호점은 고덕동에 소재해 있으며, 주민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보육환경, 안정적인 돌봄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립고덕LH35단지어린이집 고진순 원장은 “지역사회를 위한 행복 나눔을 위해 시립고덕르플로랑어린이집, 평택시다함께돌봄센터4호점이 함께 힘을 모았다”며 “발달장애인들의 교육 훈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부금을 전달받은 평택시민재단 이은우 이사장은 “훈련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따뜻한 마음을 보내 주신 원장님들, 선생님들,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 평택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평택시민재단이 설립·운영하고 있는 이음터장애인직업적응훈련센터(센터장 이종찬)는 청룡마을의 쾌적한 공간에서 직업을 가질 확률이 낮고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20여 명에게 작업 활동, 일상생활 훈련, 사회 적응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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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사람들
    2025-06-24
  • [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욥이 맞대응한 장면들’ (3회)
    세 친구의 전방위적인 공격 일변도에 욥은 일단,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욥 6:2-3),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라는 말로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욥 6:4),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욥 6:8)라고 하며 한결 다소곳해진다. 그러니 울부짖는 욥의,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욥 9:17)라는 말이나,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욥 9:23)라는 절규를 접해도,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욥 9:21)라는 원망으로 이어져,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욥 10:2-3)라는 항의성 반문이 이해가 간다. 따라서,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욥 10:8-9; 18)라는 항변이 가슴에 와 닿거니와,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욥 6:24-25)라는 말대꾸나,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넘기는구나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욥 6:27-28)라는 원망과 다짐을 한낱 일개인의 의(욥 6:29-30)에 불과하다며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 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하지만 욥은 곧바로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욥 6:10)라고 바짝 엎드리며,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욥 6:11)라는 말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욥 7:5),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욥 7:16)라는 절망과 절규를 접하며 다수는 욥이 짊어진 질고를 얼마큼 이해할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일 뿐이다. 그 와중에 그는,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욥 12:2)라고 반박하며,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없는 의원이니라”(욥 13: 2-4)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는 작정한 듯,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 13:23-24),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욥 14: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욥 14:15)라고 항거하기에 이른다. 욥은 비장한 어조로,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욥 16:3; 10)라는 대꾸에 이어,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욥 17:16)라는 말로 맞받지만,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욥 19:17),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욥 19:13)라고 되뇌며,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4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의롭지 아니한 말다툼’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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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5-06-23
  • [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욥이란 인간의 정체성’ (1회)
    구약 성경에 따르면, 욥이라는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서(욥 1:1),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였다(욥 1:3). 7남 3녀의 자녀를 둔 그는(욥 1:2) 자신의 생일잔치를 베풀 때면 혹시 자식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을까를 염려하여 아침에 일어나면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림으로써 늘 성결 의식을 거르는 법이 없을 정도였다(욥 1:4-5). 이러한 욥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 시험을 허락하신 것이다. 땅에 넘치도록 부어주신 모든 소유물을 쳐도 좋다는 승인이었다(욥 1:12). 상상하기 힘든 청천벽력 같은 사태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 첫째는 소가 밭을 갈고 나귀가 풀을 뜯을 때 스바 사람이 느닷없이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다는 알림이었다(욥 1:14-15). 더구나 홀로 피한 사환이 주인께 아뢰는 사이에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과 종들을 살라버린(욥 1:16) 사건에 이어,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를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다(욥 1:17)는 참극과 함께 거친 들에서 큰바람이 불어와 집 네 모퉁이가 무너져 그 청년들이 죽고 말았다(욥 1:19)는 비보의 연속이었다. 일련의 비극은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 일어났다(욥 1:13; 18). 그러나 진정한 신앙심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반응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에 범죄하지 않았다(욥 1:20-22). 이러한 사태 앞에서 곧바로 창조주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자각하는 성도가 오늘날 얼마나 있을지를 겸허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어 땅을 두루 돌아 다녀온 사탄에게 욥을 칭찬하시며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는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신다(욥 2:2-3). 하지만 사탄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탄은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틀림없이 주님을 욕할 거라고 장담한다(욥 2:5). 이에 여호와께서는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도록 해도 좋다고 허락하신다(욥 2:6-7). ▲ 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이것이 앞으로 욥이 당하게 되는 본격적인 고통의 서막이었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8-9)라는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들여다보게 된다. 하나는 욥의 아내가 그간 남편의 존재를 어떻게 여기며 살아왔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고작 저주의 대상쯤으로 믿어왔는가이다. 타락 이후에 사람이란 존재가 제아무리 연약할지라도 고초를 겪는 배우자는 물론 감히 하나님을 향해서까지 막말을 쏟아내는 행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대목은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욥의 신실함에는 하등 변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참을 수 없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도 욥은 한 어리석은 여인의 말로 치부하며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며 자칫 범하기 쉬운 말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욥 2:10). 사실 성경에서 사람을 칭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욥 이외의 사례를 톺아보면, 요셉을 가리켜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3)라고 하셨고, 노아를 일컬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라고 하셨으며, 모세를 두고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라고 하신 데 이어, 다윗을 보고는 신구약에 걸쳐 내 마음에 합한 자(삼상 13:14, 행 13:22)라고 하신 뒤로, 신약시대에 와서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이방 여인(막 7:26)을 향하여 단 한 번,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라고 하신 말씀밖에는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2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세 친구의 가증스러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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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18
  • [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세 친구의 가증스러움’ (2회)
    욥이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그때 그의 세 친구,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그를 위로하려고 날을 잡아 먼길을 달려 와보니(욥 2:11) 눈을 뜨고 쳐다볼 수 만큼 상황은 끔찍했다.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욥 2:12-13)라고 반응한 데까지는 인지상정이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말로는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괴로움에 지친 욥이 먼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며 태를 여신 하나님으로부터 어머니의 자궁을 들먹이고 빛을 주신 하나님까지 소환하면서(욥 3:1-24),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 3:25-26)라는 장탄식을 늘어놓는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욥이 다소 수세적인 자세를 취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세 친구들의 입에서는 그간 그의 위세에 밀려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놓는다. 이때를 놓칠세라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맨 먼저 포문을 연다. 네가 싫증을 내면 나 역시 참지 않겠다(욥 4:2)는 말을 시작으로 이전에 너는 여러 사람을 훈계하더니 이제는 어찌 스스로 유약한 모습을 보이느냐며 초장부터 질타를 가한다(욥 4:3-5). 가혹한 채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한 소망을 노래하더니 죄 없이 망한 자가 어디 있느냐고 추궁한다(욥 4:6-7). 심지어 악독을 뿌린 자는 창조주의 콧김에 사라질 것인즉 사람이 어찌 여호와 하나님보다 의롭고 깨끗할 수 있느냐고 닦아세운다(욥 4:8-9; 17). 엘리바스의 공격은 이미 친구로서의 금도를 넘고 있었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욥 5:8)라는 말에서는 충고를 넘어 비아냥마저 감지된다. 게다가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욥 5:12)라는 막말도 모자라,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 5:17)라는 훈계에 이어,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욥 5:27)라는 직격탄으로 첫 심문을 마친다. ▲ 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욥의 대꾸도 만만치 않았으나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어진 수아 사람 빌닷의 뼈아픈 충고를 들어보면,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욥 8:3-6)라고 염장을 지른 데 이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라는 주제 파악조차 안 된 언사로 덧난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나아마 사람 소발의 정죄도 앞의 두 친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는 점잖게,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욥 11:2)라는 입바른 말로 양비론을 들고나오며,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욥 11:4)라는 말이거늘,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욥 11:5-6)라고 정곡을 찌른다. 이후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이는 그의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였음이니라”(욥 15:13-14; 25)라고 했고, 빌닷 또한 이에 질세라,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욥 18:5; 21)라고 했으며, 소발은 한술 더 떠,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 그의 가산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가리라”(욥 20:15, 28)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붓는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3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욥이 맞대응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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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16
  • [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휴양도시 카사블랑카를 걷다’ (4회)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제1의 도시답게 인구 380만이 상주하는 상업의 중심지. 시청과 법원 등이 도열한 관공서 구역에 상업은행 본점이 있었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듯 상당히 정교한 가로에 야자수 행렬이 볼 만했다. 바다가 지척이어서 여전히 갯바람은 거칠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로 인해 한껏 유명세를 탄 이후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탈바꿈한 보도를 어딘가 이방인인 듯한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영화의 배경처럼 비록 어수선하지는 않았지만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하산 메스키타 모스크를 빼면 선뜻 구미를 당기는 건 없었다. 1956년에야 비로소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왕국으로 자리매김한 뒤부터 여러 차례 반전을 시도했으나 인구의 절반을 넘는 문맹률에 갇혀 여태껏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곳곳에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고, 매끄럽지 못한 노상에는 비둘기 똥이 지천이다. 그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상호는 사하라 투어(SAHARA TOUR). 그밖에 몇 군데 영문자가 눈에 띄었지만 보면 볼수록 아랍어 생김새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때였다. 반가운 문자가 코앞에 나타났다. 알파벳으로 적은 ‘HYUNDAI’, 새삼스레 강조하건대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이 애국자다. 식민지 시절 건설한 프랑스식 성당이 10개에 달한다는데 쉬이 발견할 수는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경, 출근행렬로 인해 병목현상이 빚어졌다. 재밌는 건 건물들이 죄다 네모난 모양새. 차 안에 흐르는 페리귄트의 조곡을 뒤로하고 부슬비를 맞으며 항구로 내닫는 가운데 사고현장을 보았다. 물길을 겸한 중간분리대에 대중버스가 뒤집혀 있었다. 이상한 광경은 그 주위를 빼곡히 에워싼 구경꾼들. 호기심에 흘끔흘끔 쳐다보는 거야 이해하겠으나 아예 차들을 세워놓고 일삼아 즐기는 문화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맙게도 개중에는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이들도 보였다. 응당 그들에 의해 체증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련만 그 북새통을 놓칠세라 호객꾼들이 판을 쳤다. 바람직한 건 이네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엔지니어, 특히 토목 분야가 으뜸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의식의 흐름은 훨씬 나은 터다. 우리처럼 마냥 화이트칼라를 지망하는 풍조만은 지양해야 마땅하리라. ▲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카사블랑카 거리 모습 그걸 뒷받침하듯 저만치 밭에서 진흙탕 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이 보였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으로 내몰리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광경. 저렇게 열심히 노는 게 아이들의 일이거늘 한국은 어쩌다가 선행학습의 장으로 전락했는지 모를 일이다.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은 교포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양배추김치에 오이장아찌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혀끝에 생생하다.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토록 많은 길손들에게 즐거움을 줄 줄을 미처 모르셨단다. 빵에 물린 위장이 어머니의 손맛을 보다니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모로코를 찾는 동포들에게 고향의 참맛을 선사하길 빌었다. 자동차는 어제 들렀던 라바트를 경유해 어느덧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내륙으로 뻗은 평원에 갈색과 회색의 풀들이 나풀거린다. 내친김에 두 시간을 채웠으니 어김없이 휴게소에 머물 시각. 저만치 유칼립투스가 자라는 곳은 과연 옥토일까, 박토일까? 나지막한 비닐하우스 사이에 간간이 뵈는 원두막은 비에 젖어 후줄근했고, 땅 기운은 습할 대로 습했다. 그렇게 얼마큼을 더 가니 이정표에 지브롤터(Gibraltar)라고 씌어있었다. 그때 가이드는 일행을 향해 기도를 부탁했다. 풍랑이 심할 경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진다는 전언. 안전상 문제로 인해 웬만한 파고에도 페리를 띄우지 않은 채 지체되었던 실례가 있었단다. 만일 큰 배를 이용해 멀리 돌아갈 경우 자그마치 네 시간씩이나 걸린다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별도의 추가 요금 부담은 물론 좌석이 찰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 다행히 약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출발. 잔잔한 풍랑이 일행을 도왔다. 게다가 떠날 때는 어린이 두 명이 엔진 부위 빈 공간에 숨어 있다가 발각된 것 말고는 별다른 제재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장난을 쳐도 그들이 받는 제재는 훈방조치가 고작. 아내는 애써 뱃멀미를 무찌를 셈인지 셋이서 짝을 이뤄 대화에 열중이었다. 문득 둘째 날에 나와 동갑내기가 자신의 아내를 향해 사용한 표현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좋은 친구’라는 멘트가 좌중의 심금을 울렸다. 아무렴, 왜 아니 그러하랴. 저마다 흐뭇한 표정을 짓는 사이 어느덧 다시금 찾은 타리파 항구가 지척이었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1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욥이란 인간의 정체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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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라바트의 하산탑을 올려보다’ (3회)
    상주인구가 200여만 명에 이르는 라바트(아랍어로 ‘교외’라는 뜻)로 접어드는 길은 때마침 귀경행렬로 가득했다. 몹시 막힐 걸 예측한 가이드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거라며 추억의 흑백영화 ‘카사블랑카’를 틀었다. 하지만 깨알 같은 자막을 읽어내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잠깐 선잠이 들었나 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화들짝 놀랄 만한 광경이 차창을 메웠다. 고속도로상에 쌩쌩 달리는 자전거 행렬이라니! 제아무리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독한 교통체증을 감안하면 너무 생소한 장면이랄까. 게다가 안전을 담보할 만큼 지키는 통행규칙은 고사하고 사고위험에 대한 기초적 개념조차 없는 것처럼 보여 더 의아했다. 하지만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 게다가 연휴를 즐기고 떠난 자리에는 어김없이 휴짓조각이 널브러져 지저분하단다. 그런 무질서에 신물이 났는지 넓은 가로에 가지런한 보도를 보는 순간 색다른 느낌.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조폐창을 지나니 드디어 라바트 시가지였다. 이어 이른바 대왕대비가 손자에게 선물했다는 왕실 전용 승마장과 함께 왕궁이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도심지를 둘러싼 기다란 담벼락 외에는 별반 볼거리는 없었다. 왕궁의 전체 둘레나 규모는 철저히 비밀인 만큼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마저 수풀에 가려져 아예 볼 수조차 없었으나 그 이상 호기심도 발동하진 않았다. 현지어로 오레그렉 강변을 따라 왕릉 쪽으로 조깅 코스를 조성한 풍경은 그런대로 수준급. 우리나라 대사관저를 지나쳐 돌아본 하산탑(Hassan Tower)은 44m의 높이에 기둥이 354개에 이를 만치 어마어마한 규모란다. 사원의 외부를 포함하면 총 10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규모라면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에 얼마큼 무리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들이 한껏 조아리며 알라신에게 무릎을 꿇는 그 시각에 맞춘 듯 일행을 맞이한 참이다. 바로 거기서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해변공원을 뒤로한 채 서둘러 카사블랑카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안내자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이슬람의 교리며 국기의 연원을 설명했으나 공허한 메아리처럼 귀에는 들어오질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들 역시 난폭운전에 길든 다혈질이라는 대목만은 예외. 제아무리 둘러봐도 알라신을 믿는다는 것이 이네들의 실생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좀체 알기 어려웠다. ▲ 어스름에 찾은 라바트의 하산탑 불빛 아래서 그나저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체로 뚱뚱한 체구를 가졌다. 다름 아닌 인스턴트 식품의 악영향이란다. 무슬림의 계율에 따라 허용된 게 새우버거라지만 밤늦게 먹는 식습관으로 인해 몸집이 거반 퍼졌다는 얘기인데 운동량이 부족하고 태생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담뱃불로 인해 산불이 난들 신고하는 자가 없다니 걱정을 넘어 놀라운 일이다. 그때 눈앞에 나타난 건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 12세기 성벽을 끼고 자리한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예상치보다는 가까웠다. 핸드폰을 잡고 사는 모습은 지구촌 어디나 매일반. 다만 현대-스즈키-기아로 이어지는 상호들을 빼고는 온통 불어권이어서 간판을 통해 본 도시 분위기는 프랑스풍 일색이었다. 유난히 하얀 집들이 많은 틈새를 비집고 투숙한 곳은 호텔 CASABLANCA. 다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시설은 그저 그랬고 저녁은 선뜻 손가는 게 없었다. 설상가상 층간 소음이 들리는 구조여서 머무는 내내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일찌감치 일어나 리무진 버스에 오른 시각은 06:30. 프랑스인 20만 명이 이주해 개발했다는 카사블랑카 거리는 어둑발이 채 가시지 않았다. 가이드는 갈 길이 멀다며 서둘렀다. 일행이 탄 리무진과는 대조적으로 시내를 누비는 버스들은 하나같이 낡았다. 그리그의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만난 앙파지구는 사우디와 쿠웨이트 왕실에서 소유한 별장들이 널린 곳. 정원이 보이지 않을 만치 대체로 담장들이 높다랗다. 그 담벼락을 끼고 세련되게 가꾼 해변도로를 따라 정갈하게 심어놓은 야자수와 종려나무들. 초장에 들른 곳은 하산 6세가 세운 모스크였다. 자그마치 5억 달러나 들였다는데 별반 감흥은 없었다.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계 세 번째. 200여 개에 이르는 미나렛에 칠한 청색은 신을 향한 충성심의 표시, 곧바로 만난 모하멧 5세 광장 역시 바로 그런 데였다. 참고로 유라시아에 분포한 이슬람국가의 복음화율을 살펴보니, 아프가니스탄 0.02%, 예멘 & 소말리아 0.05%, 모로코 0.01%, 튀니지 0.22%, 알제리 0.29%, 터키 0.32%, 이란 0.33%, 나이지리아 0.4%에 지나지 않았다. 열방과 더불어 가능한 한 화평을 유지하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구원의 비밀을 알려줄 민족들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0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휴양도시 카사블랑카를 걷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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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6
  • [스승의날 특집 인터뷰] 한광여자중학교 조항석 교장에게 듣는다! (최종)
    ▲ 한광여자중학교 조항석 교장 ■ “학생들을 섬기면서 전인적 성장과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교육 현장에서 경험했던 경기교육의 가장 중요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까지 살펴보면 우리나라 교육은 역량 함양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의 가장 최전선은 학교이므로 학교는 교육과정의 방향이 잘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요. 그중에서 저는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역량 함양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사회,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등으로 인해 미래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으로 정보·지식을 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탐구하는 역량이 매우 필요합니다. 이러한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앞장서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한광여중은 전문성을 갖춘 모든 선생님이 교과수업, 창의적 체험활동, 동아리, 진로·진학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여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을 기르고 있습니다. 2023 통계선도학교, 2024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등도 이러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교과수업과 학교의 모든 행사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고 반성하는 활동을 장려하여 자연스럽게 이러한 역량을 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 진학설명회를 통해 고입 및 대입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한광여중은 3학년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다양한 진학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진학 프로그램을 도입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진학은 대학 입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또한, 평택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원하는 고등학교를 한 곳만 선택해서 지원해야 하므로 학생과 학부모는 고교 선택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현명한 고등학교 선택을 위해서는 현재 대입 전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이에 한광여중에서는 고입 및 대입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의 성향에 맞는 최적의 고등학교를 선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 전에 3학년 학년 부장 선생님을 간략히 소개 드리면,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에서 수년간 입시지도를 하였고, 경기도교육청, 교육과정평가원, EBS 등에서 평가 및 입시, 문항 출제 등에 관한 다양한 경력을 쌓으셨으며, 노고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수학교육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광여중만의 특화된 진학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담임선생님들과 함께 수년간 학생들을 위한 진학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체 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현명한 고입을 위한 진학설명회’ 개최입니다. 고입 및 대입 관련 최신 정보를 학생 및 학부모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연 2회 경기도 진로 진학 리더 교사를 모시고 진행합니다. 올해로 5회에 접어들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비대면 줌 회의를 통해 설명회를 마련했을 만큼 학생과 학부모님의 참여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 설명회를 통해 고입 및 대입에 대해 이해하고 고등학교 선택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기본능력을 기르게 됩니다. 둘째, ‘교사 연수’ 실시입니다. 현명한 고입을 위해서는 담임교사-학생-학부모의 삼박자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한광여중 3학년부에서는 담임교사의 고입에 관한 전문적인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 다양한 교사 연수를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대입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따른 고입의 방향 설정을 위한 협의회가 수시로 이루어집니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선생님들과의 간담회, 현명한 고입을 위한 포럼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통일된 고입 방향성을 설정하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진학 데이’ 실시입니다. 이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자기 주도적 결정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운영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1학기 말에 이루어지며, 3학년 선생님들의 주도하에 올데이 교육으로 진행이 됩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학년 부장 선생님의 고입 및 대입 관련 설명회 후 설명회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담임 선생님과의 퀴즈 행사가 열립니다. 또한 직업인 인터뷰 영상을 제작 및 송출하고, 한광여중을 졸업하여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선배와 만나는 시간이 마련됩니다. 더불어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전공이 무엇이며, 해당 전공을 공부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전공 흥미검사가 실시됩니다. 이러한 진학 데이는 2025년에 개최 5회를 맞이할 정도로 한광여중을 대표하는 진학 프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의 만족도 조사 결과, 이를 반영하듯 97% 이상이 ‘만족함’에 응답하였습니다. 넷째, ‘응원의 날’입니다. 이는 고교 진학 후 후속 프로그램으로, 고등학교에 진학 후 힘들어하는 졸업생을 격려 및 독려하여 고등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교직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힘든 점이 있다면? 전 사실 평택에서 태어나서 오늘까지 군대와 대학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34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면서 보람은 우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저를 잘 따르며 스스로 노력하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끝내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직업이나 적성을 찾아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또 단순히 성적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인성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때, 학생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낄 때, 저의 가르침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만족과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 밖에서 제자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들이 먼저 다가와 밝게 인사하면 보람과 만족감이 가장 큽니다. 물론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의미 있는 추억이었습니다. 고민이라고 한다면 고등학교에 재직할 때는 대입이었고, 지금은 중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줄까입니다. ▲ 조항석 교장이 급식실에서 학생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 한광여중 교장으로서 학생들과의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30년 동안 남학교에 근무하다 한광여중 교장으로 발령받아 어떻게 학생들과 생활하고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줄일까 고민하다가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학생 등·하교 맞이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식당에서 850명의 학생에게 “식사 맛있게 드세요”하며 인사하고 있습니다. 또 점심 후 학교 교정을 한 바퀴 돌고 도서관 가서 공부와 독서를 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출장 및 연수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한광여중 교장으로 부임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급식실에서 인사를 하면서 저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선 학생들을 섬기는 마음과 학생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문화 학생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 학생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 너무 많아 어떤 날에는 밥만 받아오는 것을 보고 너무 속이 상해 이 학생들이 어느 정도의 식사는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영양 교사와 상의한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처럼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혹여나 소외되는 아이들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한광여중은 어떠한 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나요? 한광여중의 민주적인 교육공동체 활동은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과 교육의 질 향상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학생자치회’와 ‘대의원회 활동’입니다. 이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로 교육을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공동의 노력과 책임이 수반된 과정으로 만듭니다. 학생들이 직접 의견을 제안하고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경험을 제공하여 자율성과 참여의식, 리더십을 기를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갖춘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둘째, ‘학생자치회와 학부모폴리스와의 연합 캠페인 및 학교폭력 예방 활동’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학부모가 교육 파트너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돕고, 학생에게는 가정과 학교가 연결된 안정적인 성장 환경을 만들어 나갑니다. 셋째, ‘나눔바자회’와 ‘학교축제’입니다. 이는 학생이 기획과 실행을 통해 협업 능력과 책임감, 공동체 의식을 배우는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또한 학교의 행사가 교육공동체 모두의 행사가 되어 함께 참여함으로써 학교의 발전에 관심과 기여의 의미를 만들어 갑니다. 더불어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봉사의 가치를 내면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적 가치인 사랑과 봉사와도 맞닿아 있으며, 단순한 체험이 아닌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학교 교육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됩니다. 이러한 교육 공동체 활동은 결국, 지식 중심의 교육을 넘어 학생들을 성숙하고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드림마켓 수익금을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 지역사회 기여 활동 또한 활발하신데요, 연탄은행 기부, 국제 봉사단체 기부, 여성 청소년 쉼터 기부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의 의미와 학생들에게 주는 교육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건학 이념인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사랑과 봉사입니다. 우리 학교는 교육 공동체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며, 학생들이 나눔의 기쁨과 보람을 체감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연탄은행 기부, 여성 청소년 쉼터 기부, 국제 봉사 활동 지원, 학생 장학금 전달 등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학생들이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참 얼마 전 국제 봉사단체(고문 이병배, 회장 정학호)에서 기부받은 여성용품은 어려운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런 활동이 학생들의 서로 돕는 공동체 정신을 함양시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광여중을 비롯해 평택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평택의 미래를 짊어질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그리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는 존경하는 학부모님들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2025년 현재,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미래는 더욱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열정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하고 꿈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학부모님들께서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심신을 갖고,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형성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사랑과 믿음으로 아이들을 응원해 주시고, 학교와 함께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동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광여중은 앞으로도 미래 교육을 선도하며,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따뜻한 인성을 함양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평택의 모든 학생이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응원하며, 가정에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학교 스포츠 클럽 축제에 참여한 한광여중 학생들 - 본보 독자와 시민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평택자치신문 독자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평택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평택 교육 발전을 위해 늘 따뜻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 우리 한광여자중학교의 교육 철학과 노력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택의 모든 학교와 교육 관계자, 그리고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협력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의 공동 노력이 절실합니다. 학생들에게는 끊임없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시고, 학부모님들께서는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평택시민 여러분께서도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광여중은 앞으로도 평택 교육의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학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환경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미래 사회의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평택 교육 공동체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평택의 밝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함께 키워나가는 여정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 시민광장
    • 인터뷰
    2025-05-20
  • [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페스와 메디나를 돌아다니다’ (2회)
    페스는 모로코인들의 정신적 수도. 시가지에 수천 개의 모스크가 드물지 않게 마을마다 늘어서 있다. 하지만 덤처럼 10개가량의 교회당에 유대교 회당 5개가 더 있다는 설명이다. 단 선점한 타종교를 인정하되 그 이상 포교는 금지돼 있단다. 무슬림은 금요일, 유대인은 토요일, 기독교인은 일요일이 안식일. 뒤이어 정성껏 금박을 입힌 옛 왕궁 앞에서 멋쩍게 포즈를 취했는데 성문 밖 샛길은 미로에 가까웠다. 고분고분 가이드를 따라 재래식당에 간 건 그래서였다. 아라비안나이트 풍의 도심을 파고들어 꾸스꾸스를 맛보았다. 밀가루를 좁쌀처럼 빚어 과일, 배추, 닭고기를 집어넣고 쪄낸 전통식. 약간의 뜬 내 말고는 희한하리만치 내 입에 맞았다. 흐뭇이 지켜보던 아내가 맛깔스레 무친 채소요리를 권했다. 그러나 덥석 물었다간 자칫 큰일이 나겠다 싶어 호기심을 억누른 채 ‘막판에 속이 뒤집어지면 골치 아프다’고 사양했더니 뒤집어진다는 표현이 우스웠는지 다들 크게 웃었다. 배가 불러 푸짐하게 내놓은 오렌지 후식도 드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뿔뿔이 흩어져 빠져나오려니 아니나 다를까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상주인구 155만에 달하는 메디나(Medina)에서 가장 좁다란 골목길. 기실 모로코 여행의 백미는 길라잡이가 쥐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평화가 당신과 함께’라는 뜻의 인사를 건네는 키 작은 노인. 몇 마디 우리말을 익혀두었다.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왼쪽, 오른쪽, 계단, 똑바로!” 등 일행을 안내하는 데 익숙했다. 태네리 염색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미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밀집 구역을 잰걸음으로 지날 때는 바짝 정신을 차려야 했다. 통로가 14개라는 명문대학의 측문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목하 기둥이 241개나 늘어선 상가를 헤집고 지독한 비둘기 똥내를 맡으며 그 현장을 찾아가는데 아내 역시 코를 막고 괴로운 표정. 유독 나만은 유년시절 양계장집 아들의 내성(?)이 작동한 참인지 견딜 만했다. 다만 실온은 쾌적하여 발가락이 고슬고슬했다. 이윽고 당도한 가죽염색공장. 여기저기 가판을 벌려놓고 원색으로 물들인 가죽제품을 사가라고 판촉에 열을 냈으나 선뜻 살만한 물건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열악한 작업여건. 저러고도 과연 인체가 견뎌낼까 근심스러울 지경. 천년 공법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며 기존방식을 고수하는 이네들의 모습에서 이쯤에서 무엇을 얻고 버릴 것인가를 헤아려보았다. ▲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페스의 염색작업 현장 희귀한 구경을 마치고 왕궁을 둘러싼 돌담을 끼고 돌아나가는 길. 그런데 버스에 오르자마자 난처하게도 카메라에 이상 신호가 떴다. 당황한 나머지 옆 사람에게 문의하니 뾰족한 수가 없다는 표정.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매만지다가 흘끔 창밖을 보니 대단위 공동묘지. 준비를 철저히 했더라면 무탈할 일을 성급한 마음에 흔치 않은 장면을 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사진기를 붙들고 한참 씨름한 끝에 겨우 작동이 된 건 그나마 다행. 기분 좋게 고개를 드니 교각을 지탱하는 축대에 스페인풍의 정교한 공법이 묻어났다. 새파랗게 색칠한 페인트 행렬. 그래서인지 농축산 단지를 개발한 지혜는 괄목할 만했다. 공터가 있어 바깥바람을 쐴 겸 밖으로 나오니 지중해성 기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훈풍. 길가에 늘어선 식물의 이파리에도 윤기가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수도인 라바트(Rabat)는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란다. 단 나쁜 일은 왼손으로, 좋은 일은 오른손으로 처리하는 습속을 지켜온 것처럼 금기시하는 것이 많은데 특히 왼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엄금이라고 일렀다. 토지는 거의 왕실 소유. 새삼 빈부격차를 논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천양지차란다. 황무한 사하라사막과 해발 4,184m의 아플라스산맥을 빼고는 국토 전체가 곡창지대일 정도로 비옥한데도 종교 교리와 제도적 미비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 물론 한때 소수 지식인을 중심으로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등 개혁운동이 일어났으나 하산 2세가 틀어쥔 절대 왕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여태껏 제정일치 시대의 정치체제에 꽉 묶여 있단다. 하긴 독재자가 혜안을 갖추고 일사불란한 통치권을 행사할 때 오히려 비약적인 도약을 이룬 예들이 있긴 하다. 예컨대 무려 1,0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 건설에 우리 업체가 참여하는 등 양국 정상의 빅딜로 아프리카를 잠식하던 중국의 힘을 대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이전부터 비교적 관계가 원활한 스페인이 관개수로 완성 계획에 적극적이어서 이를 기반으로 터키에 이어 1987년부터 EU에 가입을 타진하고 있다고 하니 부디 개방의 호기를 잘 활용하길 바랄 뿐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9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라바트의 하산탑을 올려보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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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0
  • [스승의날 특집 인터뷰] 한광여자중학교 조항석 교장에게 듣는다!
    ▲ 한광여자중학교 조항석 교장 2024학년도 교육부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로 지정된 한광여자중학교는 전교생 1:1 맞춤형 AI 학습, AI 코딩 실습, 에듀테크 융합 수업, 교사 역량 강화, New Wave 수업 등을 통해 단순한 기술 활용을 넘어 AI와 함께하는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일 조항석 교장을 만나 ▶교육 목표 ▶학생들을 위한 AI 수업 ▶경기교육의 방향 ▶진학지도 프로그램 도입 ▶교육 공동체 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2회에 걸쳐 인터뷰를 보도한다. <편집자 말> ■ 1968년, 평택 지역 여성 교육의 뜻을 품고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 - 한광여자중학교(이하 한광여중) 연혁 및 교육 목표와 학교를 소개해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저희 한광여중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광여중은 1955년 학교법인 설립을 모태로, 한광중학교(1955), 한광고등학교(1963), 한광여자고등학교(1968)의 역사 위에 1968년 평택 지역 여성 교육의 뜻을 품고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이며, 4개교에서 8만4천 명이 넘는 빛나는 졸업생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독교 정신을 건학 이념으로 삼아, 학생 개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사랑으로 가르치고,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함양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학교의 교육 목표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큰 뜻을 품고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교훈과 함께 다섯 가지 교육 목표를 제시하고 계신데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 한광여중은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교육 내용을 지향합니다. 학교 교훈인 ‘큰 뜻을 품고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학생들이 원대한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일부터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첫 번째 교육 목표인 ‘실력 있는 자주인’은 스스로 배우고 탐구하며,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학생을 의미합니다. 둘째, ‘융합적인 창의인’입니다. 이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융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학생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셋째, ‘섬기는 신앙인’입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학생을 의미합니다. 넷째, ‘행복한 건강인’으로 심신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학교생활에 즐겁게 참여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을 지향합니다. 다섯째, ‘봉사하는 세계인’은 지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학생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한광여자중학교 외경 - 한광여중은 2024학년도에 교육부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로 지정됐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AI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저희 한광여중은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로서, AI, 하이러닝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교육 전반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개인별 맞춤형 학습을 진행하고 학생들의 미래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더불어, 본교의 교사들은 도 단위 디지털 선도 교사로 활동하며, 디지털 교육 모델 개발 및 확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광여중은 평택 지역은 물론 경기교육의 디지털 혁신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AI와 에듀테크 기반의 학습 혁신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디지털 탐험’이라는 주제로 중학교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지난해 소프트웨어 AI 디지털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 ◆ 전교생 1:1 맞춤형 AI 학습… 성취도 향상 효과 ‘뚜렷’ 우리 학교는 AI 코스웨어를 수학, 정보, 영어 교과에 도입하여 전 학년을 대상으로 맞춤형 학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학 교과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 풀이 결과를 입력하고 AI가 오답을 분석하여 유사 문제를 제공함으로써 학습 취약점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2학년 수업에서는 ‘매쓰홀릭’과 ‘마타수학’ 플랫폼을 활용해 개별 맞춤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필평가에서 학생 성적의 약 56%가 향상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고득점자뿐 아니라 기초학력군 학생들까지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풀려는 태도의 변화’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 정보 수업은 AI 코딩 실습 중심으로… 디지털 사고력 강화 정보 과목에서는 AI 코스웨어 ‘엘리스 스쿨’과 ‘코드모스’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직접 게임을 설계하거나 알고리즘 문제에 도전하며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통해 조건문, 반복문, 함수 등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초 개념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학생 개인별 학습 피드백도 제공합니다. 한편 1학년이 참여하는 ‘비버챌린지’와 ‘SW·AI 디지털 캠프’는 이러한 AI 교육의 연장선으로, 학생들이 생활 속 문제를 컴퓨터 과학의 언어로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에듀테크 융합 수업으로 영어 단어도 게임처럼 영어 과목에서는 ‘클래스카드’를 활용하여 단어 암기부터 리콜, 스펠링 학습까지 AI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객관식 퀴즈부터 주관식 게임, 팀 대항전까지 다양한 방식의 어휘 학습을 통해 학습 몰입도와 동기부여가 향상되었습니다. 교사는 실시간으로 결과를 파악하여 개별 학습 과제를 부여해 피드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 교사 역량 강화로 수업의 질 높여… 1:1 맞춤 연수 학교의 변화는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총 57명의 교사가 AI 및 에듀테크 연수를 받았고, 교내 전문적학습공동체를 중심으로 교과별 수업 사례 공유, 동료 피드백, 디지털 수업 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북크리에이터, 니어팟, 캔바, 패들렛 등 다양한 툴을 적용한 수업 연수와 도내 컨퍼런스 참여로 교사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은 한층 향상되었으며, 연수 참여 후 수업 혁신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 디지털 AI 스쿨에 참여한 학생들 ◆ 학습 참여도 94% 만족… 미래 교육을 향한 확신 2024년 한 해 동안 진행된 AI 활용 수업 운영에 대해 교사 47명, 학생 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4.3%가 ‘학습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은 “수업이 재미있어졌다”,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 답하며 자기주도 학습 태도의 향상을 나타냈습니다. 한광여중은 2025년에도 디지털기반 학생 맞춤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되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도입을 하였고, 전 교과에서 AI 코스웨어를 활용한 수업 설계 및 연수 확대를 통해 AI 기반 교육을 한 단계 더 내실 있게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 AI 디지털교과서로 수업의 ‘개인화’ 실현 2025년 한광여중은 1학년 영어, 수학, 정보 교과에 AI 디지털교과서를 본격 도입하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교과서들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성취도에 맞는 콘텐츠를 자동으로 추천합니다. 예컨대 영어 교과에서는 음성 인식을 통한 발음 분석, 상황별 회화 연습, 게임형 문법 학습 등이 가능하여 학생은 재미있게 언어를 익힐 수 있습니다.수학 수업에서는 AI 튜터 기능을 활용해 기초학력 학생들에게는 반복 학습과 피드백을, 성취도가 높은 학생에게는 도전 과제를 제공하여 맞춤형 학습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정보 교과에서는 학생들이 단계별 코딩 실습과 AI 모델링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직접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수행하고, 프로그래밍 결과를 가상 환경에서 즉시 시뮬레이션하는 활동도 가능합니다. ◆ AI 코스웨어 + 하이러닝 = ‘New Wave’ 수업 AI 디지털교과서가 적용되지 않은 학년과 과목에서는 ‘하이러닝’ 플랫폼과 다양한 AI 코스웨어를 활용합니다. 수학 및 영어 교과에서는 하이러닝의 진단 기능과 AI 분석 기능을 활용해 학생의 이해도를 확인하고, AI가 제시한 과제를 통해 수업 전후 학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술, 역사, 사회, 국어, 과학 등 비주요 교과에서도 AI 및 에듀테크 도구를 융합한 수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 시간에는 AI 디자인 툴을 이용한 웹툰 창작, 역사 시간에는 AI 기반 위인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습니다. ◆ 수업은 교사도 함께 배우는 여정 AI 기반 교육 혁신의 중심에는 교사들의 끊임없는 학습이 있습니다. 한광여중은 교내외 연수를 통해 생성형 AI, 캔바, 노션, 패들렛, 하이러닝, AI 디지털교과서 등 다양한 도구를 배우고 이를 수업에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운영 중입니다. 3학년 수학 담당 김창년 교사는 “AI가 분석한 학습 데이터를 참고하면 학생의 약점을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수업 설계가 정밀해진다”며 “AI는 교육의 주도권을 교사가 아닌 학생에게 돌려주는 도구”라고 강조했습니다. ◆ AI와 함께 성장하는 교실… 미래 교육의 현장 실험 단순한 기술 활용을 넘어 AI와 함께하는 학생 맞춤형 교육의 모델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마다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진정한 교육혁신”이자 새로운 교실의 방향이라 봅니다. ▲ 왼쪽부터 김달희·이승은 교장, 홍원기 이사장, 고석윤·조항석 교장 - 한광여중이 미래 교육을 선도하는 AI 선도학교로서 운영되고 있는 만큼, 현재 학교의 시급한 현안 사업이나 필요한 사업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운영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은 없는지? 저희 한광여중은 AI 선도학교로서 미래 교육의 기반을 다지고 학생의 혁신적인 학습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AI 기반 학습 플랫폼 구축 및 운영, 스마트 교실 환경 조성, VR/AR 등 첨단 교육 기자재 확충이 시급한 현안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 교육은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절실합니다. AI 선도학교 운영에 따른 애로사항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에 발맞춰 교사의 전문성을 꾸준히 신장시켜야 한다는 점과 첨단 기자재의 도입 및 유지보수에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님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와 더불어 저희 학교는 평택 구도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원거리 통학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덕면, 고덕지구, 용이동, 칠원동, 동삭동 등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감이 학습 효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이에 학생의 안전하고 편안한 통학 환경 조성을 위해 교육청 및 시청과 긴밀히 협력하여 통학버스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관계 기관의 긍정적인 검토와 지원으로 현재 해당 지역 학생을 위한 통학버스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장거리 통학으로 인한 학생들의 피로감과 학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학생들이 학습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통학버스 운행 지역 확대를 통해 더 많은 학생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저희 학교는 미래 교육 환경 구축과 학생들의 학습 편의 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며, 교육청 및 시청을 비롯한 관계 기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다음호(5월 21일자)에 인터뷰 이어집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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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4
  • [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다’ (1회)
    스페인의 ‘타리파(Tarifa)’ 항구를 통해 들어간 아프리카대륙. 지브롤터해협이라야 불과 14km 바닷길이어서 40여 분 만에 육지가 나타났다. 수월하게 당도한 ‘탕헤르(Tanger)’ 항구는 한눈에 허름했다. 차일피일 미룬 끝에 밟아보는 미지의 땅. 그때 누군가 상주인구 4천만에 가까운 모로코(Morocco)를 채 4만에도 못 미치는 모나코인 줄 알았다며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특이한 건 입국 절차. 그냥 타고 온 버스에 앉은 그대로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건 편리함을 넘어선 큰 행운이란다. 만약 현지 차량을 빌릴 경우에는 코를 찌르는 냄새로 인해 내내 시달려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30분이 다 지나도록 버스는 좀체 움직일 줄 몰랐다. 가까스로 현지 가이드를 내세워 급행료(?)를 얹어주고서야 어렵사리 출입국 관리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탕헤르는 인구 130여만 명이 상주하는 자유무역항. 한때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분할 점령했던 땅이다. 그곳을 떠나자마자 금세 어둠이 밀려왔다. 흡사 밀물에 떠밀린 갯벌 체험객처럼 찾아든 CHELLAH 호텔은 예고와는 달리 전화기도 없고, 화장실 변기 덮개마저 온전하지 않았다. 다만 부실하다던 저녁 식탁은 의외라 싶게 풍성해 수프, 빵, 고기, 사과, 바나나에 식수까지 제공했고, 침실에 놓인 침대 또한 누울 만했다. 눈을 뜨니 주일 아침, 가이드의 호들갑스런 예고편에 지레 겁부터 먹었으나 아내가 잠들기 전 바퀴벌레를 퇴치한 일 말고는 그런대로 기분이 괜찮았다. 조촐한 조반 역시 그만하면 합격점, 뜨뜻미지근하다는 요구르트는 신선했고, 영상으로만 보았던 전병은 고소했다. 해외여행 중에는 늘 그래왔듯이 둘이서 예배를 드린 뒤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이른 6시 반 페스(Fes)로 향하는 길. 희뿌연 안개를 제치고 달려가는 도중에 유목민들의 주거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베르베르족의 움막들. 뒤이어 모로코 최초의 알카라위인대학교가 나왔다. 마치 샌드아트처럼 옥토와 박토가 번갈아 스쳐 지나가는 차창 풍경. 간간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조야말로 여기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해박한 가이드의 해설이 이어졌다. 이곳의 기업들은 죄다 국영이지만 시장경제체제는 분명히 작동하고 있어, 비록 과학기술은 보잘것없어도 철광석 등 지하자원 매장량이 풍부하여 각국이 앞다퉈 자원외교를 벌이는 중이란다. 특히 무기화합물인 인산염(燐酸鹽)은 부럽게도 지표면에 그대로 노출돼 있단다. ▲ 아침나절에 만난 모로코 탕헤르 항구의 후경 저만치 솔숲 위를 날아가는 외기러기. 바로 옆 늪지에는 오리 떼가 헤엄을 치고 있다. 이따금 풀을 뜯는 소와 양들도 보였다. 야산에는 선인장들이 자라나고 길가에 유칼립투스가 줄지어 서 있는 건 지중해가 가깝다는 것. 다만 유칼립투스는 독성을 풍겨 주위에 다른 수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데, 바로 그때였다. 아뿔싸, 달리는 버스를 향해 달려들 듯 나란히 달리는 애들이 보였다. 위험천만해 뵈기에 대뜸 물으니 엔진의 한쪽 구석에 찰싹 달라붙어 바다를 건너보려는 시도라고 했다. 저토록 생명을 걸고 사력을 다한들 뜻하는 바를 유럽에서 이룰 수는 없겠지만 희망 없는 현실을 탈출하려는 몸부림까지야 어쩌랴. 한결같이 안쓰러운 얼굴들. 그 틈에 세계적으로 드문 육지염전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는 노아 홍수의 결정적인 증거물. 즉 사십 주야를 퍼붓는 빗줄기에 바닷물이 뒤섞여 여기저기 고인 염분이 말라붙은 터였다. 그렇게 생겨난 데가 사해 같은 염호를 비롯해 소금산, 암염 등인 줄을 왜들 모르는지 안타깝다. 비록 가공을 거친다지만 이들에게는 절실한 생필품이다. 어쨌거나 무자비한 십자군 원정 이후 이웃의 돌팔매질을 견디다 못해 새로이 개척한 땅이었으나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아닌 헛된 잡신을 섬기는 종교문화가 똬리를 튼 게 원인이었다. 나면서부터 숙명처럼 택한 외길이었기에 던지는 피드백이다. 포장은 했으되 비포장에 가까운 길. 그렇게 얼마를 내달린 끝에 제법 헌칠한 휴게소에 들렀다. 30분간의 휴식시간에 바지런히 주변을 둘러보니 둔덕에 펼쳐진 드넓은 초지가 궁금했다. 정답은 건초를 수출하는 나라. 그 모퉁이 깡마른 당나귀 두 마리를 끌고 거친 밭을 갈며 살아가는 촌부들의 삶은 적잖이 고달파 보였다. 양분이 모자라 까칠하게 자라나는 올리브나무 중 잘생긴 한 그루를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열매를 털어 일일이 자루에 담는 모습이 끄히 원초적인 데다가 대지 또한 미개발 상태여서 대기는 맑을 듯싶은데 자꾸만 콧물이 흘러내려 호흡기를 괴롭혔다. 까닭인즉 체감온도는 우리네 환절기여서 고질병인 비염이 도진 터. 아, 이 고통은 언제쯤 멈추려나?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8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페스와 메디나를 돌아다니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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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5-05-13
  • [세상사는 이야기]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민주주의의 위험도를 높이다’ (하)
    이명박 님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고용 사장의 인상이 짙었다. 청와대 입성을 위해 결정적으로 가동한 기획은 청계천 복원사업이었다. 물론 거대 도심에 정교한 산책로를 조성한 공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기실 그의 입지를 구축한 서사에는 현대건설 회장이라는 직함보다 월급을 반납하며 서울시장직을 수행한 치밀함에 주차 관리를 맡은 기독교 장로의 얼굴을 덧씌웠다. 가장 황당한 발상은 4대강 운하인데, 이는 간선 도로망이 촘촘한 마당에 무슨 해괴한 공약이냐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강바닥 준설로 바꿨으나 자연 유속을 무시한 채 보를 설치하고 기존 물길에 손을 댄 결과는 수질오염이었다. 차제에 천변에서 채소를 공급하던 농사꾼들의 삶은 청계고가도 밑 공구상들과 함께 온전한지 캐묻고 싶다. 무리한 북한 적대시 정책으로 인한 천안함 폭침과 금강산관광 중단 및 언론장악, 부자 감세, 부동산 투기 조장에 이어 다스 소유주 사기로 구속된 뒤 해외자원 유실까지 실정투성이나, 청계재단은 그렇다 쳐도 무역 규모 1조 달러 달성, 한미중일 통화스와프 계약, 교련 폐지, 한국장학재단설립 등에는 눈길이 머문다. 박근혜 님은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할 정치판의 위험 인자였다. 판에 박힌 형상은 전형적인 공주상이거니와 보기에 따라서는 백치미를 지닌 여인상일 수 있다. 일부러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전연 없으나 최 씨 부녀에 정 씨를 겹치면 비밀에 싸인 사생활의 의문이 얼마큼은 풀릴 수도 있는데, 그녀가 노인들의 지지를 받은 건 순전히 부친의 향수로되 상당 부분은 모친을 빼닮아서다. 적잖은 기간 청와대에서 이것저것 보고 자랐거늘 도대체 무얼 배우고 익혔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공과를 살펴보면 좀 어설프긴 하지만 공무원 연금개혁에 손을 댔고, 기초연금을 인상했으며, 법을 위반한 과거사위 변호사들을 처벌하고, 전두환의 추징금 환수에 박차를 가하는가 하면 이어도에 방공식별 구역을 설정하고, 방산 비리를 잡는 성과가 있었던 반면, 외국인 근로자들을 홀대하고 귀화 조건을 까다롭게 고치더니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합진보당 해산, 우편향 국사교과서 편찬, 개성공단 폐쇄 등의 과실을 범했다. 탄핵을 당한 뒤에도 박근령이나 박지만의 소식은 세간의 신경계를 건드리고, 롯데호텔의 퀴퀴한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 고층 빌딩처럼 올라가는 신축 아파트 문재인 님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퍽 부담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하긴 정치가 싫다고 피해 다닐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나 권력의지가 약해서 벌어진 후과는 만만치 않다. 물론 요즘 허다한 국민이 연일 겪고 있는 일들을 지적한 것인데,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곧바로 잘한 일부터 살펴보면 그는 남북관계 개선에 진정성을 보였다. 다만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제동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아쉬움은 크다. 복지예산을 늘리는 일에도 주력했으나 문제는 늘 한정된 재원이다. 탈원전이란 용어는 ‘향후 50년간 원전 축소’로 바꿔야 했고, 유례없는 기후위기를 맞아 그 방향은 옳았다. 아울러 기간제 교사의 순직 처리, 국사 국정교과서 폐지는 잘했고, 공무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서두르는 바람에 비판을 받았는데 채용 요건의 미비를 챙기지 못해서였다. 검찰개혁의 로드맵이 결여된 행보는 한 가족의 멸문지화를 낳았다. 여성 장관이 투기심리를 제어하지 못해 초래한 부동산 정책 실패는 정권을 잃는 재앙으로 나타났다. 개인적 견해로는 최고 책임자의 경우, 심성이 착한 편보다 강한 쪽이 훨씬 나으리라고 사려한다. 윤석열 님은 국군 통수권을 악용해 나라를 망가뜨린 모리배였다. 오죽하면 어느 고교생이 그의 업적으로, 첫째는 최고 명문대 출신이 가진 학력주의의 민낯이요, 둘째는 기소권을 사유화한 반공익적 검사의 행태요, 셋째는 홍범도 장군 격하로 본 공산주의에 대한 정확한(?) 개념(역사 왜곡)이요, 넷째는 이상한 사람이 당선될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을 알았다고 조롱했으랴. 돌아보면 연일 거짓이 판을 치고 불공정과 몰상식이 난무한 채 일주일이 멀다고 탄핵거리가 쏟아져 나온 느낌이다. 고작 0.73%를 앞서고 고려 무신정권인 양 상생은커녕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독점하여 정적 죽이기에 몰두하다가 결국, 본인이 내란 수괴가 되어 쇠고랑을 차는 신세로 전락했을뿐더러 인류사에서도 보기 드문 국정 관여 영부인(사실상 V1)의 발호 역시 도를 넘다가 끝내 파국을 맞고 말았다. 거기에 무속까지 끼어들었다면 망연자실할 수밖에는 없지만, 이 시점에서 각자 속내를 냉철히 들여다봐야 함은 일찍이 플라톤이 남긴 명언이 떠올라서다. “나랏일에 무관심한 대가는 악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라는 일갈 말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7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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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5-04-29
  • [세상사는 이야기]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아보니’ (중)
    노태우 님은 직접 6·10항쟁을 목격하고 6·29선언을 통해 대권을 거머쥔 전직 군인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곳에는 늘 버젓이 군복이 걸려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YS와 DJ로 대표되는 민주진영의 분열을 틈타 어부지리를 얻은 선거 결과는 이후 여촌야도라는 의회 구도를 깨뜨려버렸다. 3당 야합을 통해 대구 경북은 물론 부산과 경남이 뭉쳐 전라도와 척지는 기점이었는데, 필자는 이를 한국 정치사를 병들게 한 대사건으로 규정한다. 만약 ‘우리가 남이가’라는 이상기류만 아니었던들 영호남이 이처럼 극심하게 대립하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통합을 주도하며 지역인재를 채용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어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실현했다. 질서 있게 범죄와의 전쟁을 통한 치안 확립, 민주 노조 대거 설립, 중산층 형성, 1기 신도시 사업, 인천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세우는 한편 중국, 러시아 등과 수교하는 등 북방외교 업적도 있었다. 다만 대선이 있기 얼마 전 일어난 칼기폭파사건은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이다. 김영삼 님은 오랜 야당 경험을 바탕으로 뚝심 있게 개혁정책을 펼쳐나갔다. 전격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지하경제를 대폭 축소하였고, 다시는 군사반란이 불가능하도록 하나회를 숙청해버리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상징성 있는 문민정부답게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광주의 뼈아픔을 치유하는 등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며 전교조 해직교사를 복직시켰다.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채택하여 선제적으로 고급인력을 양성한 시책은(인구감소에 따른 20년 후를 내다보지 못했다고 이제 와 나무라는 건 좀 가혹한 일일 터이고) 국민 1인당 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며 OECD에 가입하는 등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동했다. 다만 너무 급속 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국제경제에 대한 안목이 태부족하여 IMF 사태를 초래한 실책을 범했으나 전체 업적까지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재임 기간 육해공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YS에게 느끼는 정서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신념과 용기였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던 시절 국내에 남아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주거지 김대중 님은 무려 반세기 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냄으로써 마침내 한국의 민주화를 완성한 장본인이 되었다. 그의 업적 가운데 으뜸은 IMF 최단기간 극복이다. 지구촌을 놀라게 한 금 모으기 운동은 현대판 국채보상운동으로, 차이가 있다면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뀐 상황에서 일제가 강요한 한일의정서가 그들이 주도한 시장 교란에 걸려들어 외환위기를 자초한 모양새였다. 버금은 인터넷망 구축을 들 수 있다. 이 기술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적 IT 강국이 됨으로써 오늘날 선진국 진입을 위한 초석을 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나아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데까지 이른다. 국민의 정부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폭넓은 인재 등용이었다. 야권 정객을 민감한 안기부장에 앉히는가 하면 보수 인물을 통일부 장관에 보임하여 반대를 일삼던 햇볕정책을 강성언론에 홍보하는 연속극이 생중계되었다. 심지어 행동하는 양심을 향하여 위해를 가한 모리배들을 용서한 결과는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었다. 세계적 인권운동가다운 품격을 갖춘 처신이었다. 노무현 님의 극적인 당선은 한국 민주주의를 만천하에 한 단계 끌어올린 일대 쾌거였다. 그의 정치적 발걸음은 초장부터 지극히 서민적이었다. 상고 졸업생이 토굴을 파고 고난도의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 자체가 뉴스거리였는데, 잠시 판사를 거쳐 세무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를 접한 뒤 무료변론을 마다치 않았고,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5공 청문회를 통해 일약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더니 낙선이 빤한 곳에 들어가 바보를 자처한 끝에 그의 가치를 알아본 팬들이 ‘노사모’를 결성해 기어코 제16대 대통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는 진영논리에 매몰된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했다. 사회 구조 혁신을 위한 거대담론을 놓고 여야가 대타협을 이룬다면 권력의 절반이라도 양도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터였다. 대북 포용과 시민의 자유 신장은 참여정부의 화두였으며, 기초연금제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 보전책, 검찰·교육·의료 개혁은 양성평등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그의 파격적 행보는 거지반은 신선했으나 정작 퇴임한 그를 나락으로 내몬 건 뜻밖에 검은돈과 결부된 음모였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6호)에는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 민주주의의 위험도를 높이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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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1
  • [세상사는 이야기]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임정에서 독재 군사정권까지’ (상)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지 않고서 과연 대한민국의 태동을 견인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 무자격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온갖 잡음을 접하며 들었던 생각이다. 이는 헌법 전문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즉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뉴라이트는 건국절 운운하며 떼를 지어 무리수를 두는 걸까? 그 이면에는 친일파 후손이라는 주홍글씨가 숨겨져 있다. 잘난 집안의 부끄러운 이력을 단지 국적 잃은 난민의 생계 활동쯤으로 둔갑하려는 술수임이 틀림없다. 만약 이 사람들 의도대로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 끔찍하게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이 당대 반국가세력으로 전락하는 꼴이 된다. 필시 토착 왜구가 아니라면 어찌 감히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 독립지사의 자손들이 겪는 어려운 처지를 헤아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조선총독부에 빌붙어 고자질을 일삼은 무리는 대를 이어 사회 기득권층이 돼 있으니 말이다. 이승만 님은 왜 임정에서 탄핵당했을까? 그의 미국 내 사생활을 들추면 그 사유가 차고 넘치지만, 핵심은 자리보전을 위해 내각책임제 개헌은 안 된다는 옹고집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조직의 분열을 획책하고 임정에서 발행한 국공채를 팔아 횡령하는 등 부패한 인물이었다. 이는 그가 집권한 12년의 행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운형과 김구 등의 암살 배후는 차치하고라도 초대정부 출범 직후부터 민족정기를 말살한 반민특위 해체를 비롯하여 친일파 중용, 사병화했던 서북청년회, 제주 4·3 및 여순 유혈진압에 이어 6·25가 발발하자 피신한 뒤 한강다리 폭파, 국민방위군 사건, 여러 지역의 양민학살 및 보도연맹과 같은 국가보안법 남용, 견통령(犬統領) 오탈자 폐간,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농간으로 국회를 무력화하는 등 무자비한 정적 제거를 통해 정권을 연장하다가 급기야 3·15부정선거로 인한 4·19혁명을 불러 스스로 말로를 재촉했다. 공적을 들어 균형추를 맞추면 시장경제체제 도입, 교육입국 토대, 농지개혁(이때 대지를 포함했다면 투기 봉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평화선 선포 정도를 들 수 있겠다. ▲ 주거환경이 열악한 골목길 계단 모습 박정희 님은 장면과 윤보선을 내세운 민주당을 뒤엎고 어찌 됐건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다만 그 이름을 들으면 맨 먼저 ‘세계사법사상 암흑의 날’(인혁당 사형자 8명 재심 끝에 최종 무죄 판결)을 사주한 반 인권적 철면피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자신의 남로당 전력을 감추기 위해 좌익은 곧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민주인사들을 무차별 탄압한 것도 모자라 기형적인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그로 인해 망가진 인생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를 사주해 수많은 사람의 간첩혐의를 조작하고, 사회 전반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그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반면에 철권통치 18년 동안에 괄목할 만한 업적도 있었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와 지하철 개통, 공공의료보험 실시, 새마을운동, 산림녹화, 국립공원 및 그린벨트 지정, 과학기술인 우대책으로 중화학공업 육성, 부가가치세 도입, 공무원 채용 학력 제한 철폐, 직업훈련 제도 마련 등은 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기억할 대목은 한강의 기적을 만든 이들은 무명의 기층 민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전두환 님은 이른바 ‘서울의 봄’에 등장한 3김을 따돌리고 정권을 꿰찬 사나이였다. 20년 전 무능했던 민주당이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긴 것처럼 엇비슷한 전철을 되밟은 터인데, 어떻게 어설픈 12·12 반란극이 가능했을까? 대다수는 벌써 망각했을지라도 그 뒤에는 정치적 감각이 뒤떨어진 김종필의 치명적 오판이 한몫했다. 혼란한 정국에서 호시탐탐 틈새를 엿보는 신군부의 생리상 모든 정보를 틀어쥔 마당에 무슨 선의를 기대했기에, 즉각적인 대통령 취임을 한사코 마다했는지 모를 일이다. 정권 탈취 과정에서 비극적 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한 책임 선상에 미 정보기관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만 8년을 재임하는 동안 비록 민주주의 체제를 짓밟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겼으나 몇 가지 정책은 주목할 만했다. 가령 도시와 농촌개발을 통한 교통인프라 구축으로 국민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 및 수출촉진, 집값 안정 등으로 꾸준히 경제발전을 이어왔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다. 다소 명암이 엇갈리긴 하되, 그래도 그는 전문가를 등용할 줄 아는 지도자였던 셈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5호)에는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아보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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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 [인터뷰] 정선호 ‘평택대학교 부트캠프사업단’ 단장에게 듣는다!
    “부트캠프 비롯한 다양한 교육 혁신 통해 지역 청년들의 미래 기반 마련하겠습니다” 평택대학교는 2024년 교육부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 사업에 선정되어 오는 2029년까지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즉시 투입이 가능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신병훈련소’라는 뜻에서 온 부트캠프는 단기간의 집중 훈련을 통해 각종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며, 평택대는 반도체 기업들과 공동 운영하는 집중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반도체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4월 7일 평택대학교 부트캠프사업단 정선호 단장을 만나 ▶부트캠프 사업 설명 ▶1차년도 부트캠프 사업의 핵심 성과 ▶2차년도 부트캠프 운영 계획 및 교육과정 ▶대학과 기업 간의 공동 교육 훈련 과정 ▶반도체 명문 사학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말> ■ 정선호 단장 “대학·산업계·지자체가 협력하여 첨단산업 인력난 해소하겠습니다” - 평택대학교는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반도체 분야)’에 선정되었습니다. 부트캠프 사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십시오. 평택대학교는 2024년 교육부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반도체 분야)’ 사업에 선정되어, 2029년까지 총 5년간 75억을 지원받아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공동 주관하며, 단기 집중형 교육 모델을 통해 대학, 산업계, 지자체가 협력하여 첨단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평택대 부트캠프는 반도체 분야 경력이 풍부한 실무진 및 현업 전문가를 강사진으로 초빙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평택대학교는 ‘반도체 특화도시’를 표방하는 평택시에 위치한 지리적 강점을 적극 활용하여, 지역 내 유수의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 실습 장비 지원, 현장 견학 및 실습 연계 등 실무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였습니다. 부트캠프 사업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대학과 기업, 지역이 함께 미래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갈 핵심 인재를 기르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평택대학교는 이를 통해 지역 산업 생태계와 동반 성장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1차년도 성과교류회 기념사진 - 1차년도 부트캠프 사업의 핵심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부트캠프 1차년도 운영 결과, 총 149명의 교육생이 양성되었으며, 이 중 50.3%에 해당하는 75명이 중급 수준의 반도체 기술을 습득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반도체 산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설계, 반도체 회로설계, 반도체 장비엔지니어링의 3개의 교육과정을 개설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반도체 관련 전문 산업체 교원 확보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포항공과대학교 반도체기술융합센터 견학, 반도체 취업캠프, 세미콘 코리아 참가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최신 반도체 기술과 산업 동향을 직접 경험하고 취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 성과교류회에서 부트캠프 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정선호 단장 - 2차년도 부트캠프 운영 계획 및 교육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평택대학교는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2차년도 사업에서는 보다 심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반도체 전문가 특강 및 컨퍼런스 참여를 확대하여 교육생들이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한, 참여 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여, 교육과정 개선, 현장 실습 기회 확대 등 실질적인 산학 연계를 더욱 촉진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평택대학교는 산업 맞춤형 반도체 인재 양성을 목표로 지속적인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역할을 수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 성과교류회에서 부트캠프 중요성을 설명하는 이동현 총장 - 그동안 평택대는 많은 기업과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지역기반 우수인력 양성 및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업무협약을 체결한 기업과 협약 내용을 소개해 주시고, 대학과 기업 간의 공동 교육 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지? 부트캠프 사업의 핵심 성과 중 하나는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실무 중심의 교육을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평택대학교 1차년도 부트캠프 기간 동안 하나마이크론㈜, 에이피엘, 셈테크를 포함한 총 14개 기업이 부트캠프 사업에 참여하였습니다. 2차년도에는 반도체 관련 협약기업을 최대 30개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각 기업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기획·개발하였으며, 실제 현장 실습 중심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였습니다. 교육과정 설계에 실무 피드백을 제공하고, 강사 파견 및 장비 지원은 물론, 수료생들에게 현장 실습과 인턴십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교육-현장-취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도왔습니다. ▲ 반도체 취업캠프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학생들 - 세계 최대 반도체 수도를 지향하고 있는 평택시에 위치한 평택대는 최근 ‘반도체 명문 사학’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명문 사학이 되기 위한 중장기적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평택대학교는 ‘반도체 특화대학’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25학년도 지능형반도체 학과를 신설하여 운영 중에 있으며, 부트캠프 사업과 연계하여 반도체 실습실 구축 및 반도체 장비를 순차적으로 도입할 계획입니다. 또한, 반도체 관련 기업과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현장 견학 및 실습 기회를 확대,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반도체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 본보 독자와 평택시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평택대학교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미래 산업을 선도할 인재를 길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부트캠프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 혁신을 통해, 지역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 산업과 소통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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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9
  • [세상사는 이야기] 역사의 현장이 지닌 함의
    역사의 현장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는 나의 평소 지대한 관심사여서 털어놓을 만한 생각이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지상에 알리려니 그리 간단한 주제는 아니다. <역사>를 가리켜 개념적으로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이라고 정의한 다음, <현장> 곧 “어떤 일이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난 곳”이라는 뜻으로 접목해보아도 일부는 여전히 관념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시공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라는 사고(思考)뭉치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그만큼 수많은 사건의 주인공이며 허다한 조역을 눈여겨보는 일은 요긴하거니와 그래서 더욱 인간사를 예의주시할 수밖에는 없다. 나는 이에 관한 문제를 아래와 같이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역사의 현장에는 ‘사실’이 녹아있다. 이는 오랜 기간 첨예하게 대립하던 이해관계를 일거에 잠재우고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주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권위자의 고증을 거치고 실무자들의 실사를 마친다고 해도 옛 현장에 침잠한 전후좌우의 사실관계만큼 사실 그 자체를 증명해주지는 못하기에 그렇다. 겉으로 보면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모든 물증이 사라지는 듯이 보일지라도 역사의 현장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파헤칠 수 있는 사실들이 마치 파편처럼 흐트러져있을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언행에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어디엔가 묻어있기 마련이다. 둘째, 역사의 현장에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때때로 파묻힌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한다. 온갖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사에서도 오묘하리만치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기치 않은 물건이나 기록물이 나오는 경우를 지상을 통해 이따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예컨대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나 여러 유(류)품을 보관하고 있다가 어느 기회에 뜻하지 않게 빛을 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아끼던 소장품을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하나하나 점검하는 과정에서 희귀한 단서를 발견하는 사례들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곳이 공적 기관이라면 기록이란 더더욱 감추기 어려운 법이다. ▲ 올림픽공원 내 몽촌토성에 있는 목책 셋째, 역사의 현장에는 ‘교훈’이 살아있다. 이는 굳이 눈높이의 범주를 개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으로 격상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역사 현장을 직접 찾는 가족 구성원의 역사의식이 어느 모로 보나 투철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어서다.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이나 사적지로 발걸음을 옮겨 실질적인 교육행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이유다. 모름지기 역사교육의 현장학습이야말로 지나간 시간으로 되돌아가 공간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정신적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비록 상투적인 일상사일지라도 현상이나 사물이 진행되고 존재해 온 일련의 과정상에는 얼마든지 교훈적인 요소를 캐낼 수 있다. 넷째, 역사의 현장에는 ‘상징’이 숨어있다. 이는 앞의 세 가지 요소를 포괄하는 문화적 함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시대적 질곡에는 그때마다 민중의 요동치는 맥박 속에 한숨과 신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그래서 어쩌면 상징은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마무리 결정판일지도 모른다. 좁게는 나의 실례를 들추어보아도 내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일정한 상징성을 확보하게 된 경험칙은 드물게나마 있었다. 설령 특정 사건이 사회적 트라우마일망정 그것이 확연히 형성된 심상(이미지)이라면 각자의 심연에 각인할 만한 개인사적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지난한 과거를 딛고 힘겨운 현재를 살아내면서 다가올 미래를 효능감 있게 대비하기 위해서는, 저마다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되 가능한 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작업에도 초점을 모아야 한다. 실시간 벌어지는 궤적들이 사안에 따라서는 충분히 역사서 또는 개인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응당 거기에는 개별 여건에 따른 고충이나 제한점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바람직한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시민이라면 공동체적 지향점에서 점점 멀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것이 어언 고희를 바라보는 이 나잇살에 새삼스럽게 터득한 세상의 이치요 깨달음의 시야로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4호)에는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 임정에서 독재 군사정권까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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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7
  • [세상사는 이야기] 사라진 산성을 찾아서
    사라진 산성을 찾아 떠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이는 평소 나의 인문학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여서 지면상에 선보일 만한 화젯거리를 털어놓으련다. ‘역사’라는 낱말의 사전적 개념을 들여다보더라도,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유의미한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이 남아있는 ‘현장’, 즉 “어떤 일이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곳”을 보전하는 일은 당위에 속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각에서는 몰상식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왜일까? 이는 그 시공의 중심에 늘 사람이라는 사고(思考) 뭉치(?)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그만큼 수많은 사건의 주인공이며 허다한 조역을 눈여겨보는 일은 요긴하거니와, 그래서 더욱 생로병사로 점철된 인간사의 이면을 예의주시할 수밖에는 없다. 그곳에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녹아있고,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남아있으며, 기록 자체에 대한 교훈이 살아있고, 교훈이 될 만한 상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내가 주시한 곳은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평택의 ‘비파산성(琵琶山城)과 ‘자미산성(玆美山城)’이었다. 인적이 뜸한 시골길은 짐작한 대로 성곽을 품을 만한 산자락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한 시간 전쯤 좀 헤매기는 했으나 인근 주민인 듯한 행인에게 길목을 물을 때만 해도 이토록 한 치 앞조차 안 보일 줄을 어찌 알았으랴. 실컷 자란 햇마늘 꽃 무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던 눈길도 잠시, 이리저리 오가며 ‘평택섶길’을 캐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몸도 맘도 지쳐갈 무렵, 한 분의 귀띔에 따라 가까스로 성글게 모여 사는 외딴 촌락으로 접어들었다. 반갑게도 동네 한가운데서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는 회화나무 세 그루, 그 밑 평상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해는 중천이다. 답답한 노릇은 휴식을 취하고 일어난 뒤에도 두 산성에 대한 아무런 꼬투리조차 찾아내지 못한 상태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기서 다시 반경을 넓히고 좁히기를 되풀이하다가 겨우 찾아낸 비파산(琵琶山) 초입. 자그마한 절터를 뒤로하고 바삐 오르다 보니 비파산은 자미산(玆美山)으로 이어지는 무성산(武城山)의 한 줄기였다. 간간이 박힌 자갈길에 따가운 볕을 가려주는 솔숲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함께한 아내도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걸으며 평택에 이만한 덩치의 산맥이 있다는 데 새삼 놀라는 눈치. 흔적을 감춘 비파산성에서 여우고개로 넘어가는 자미산(玆美山)에는 임경업 장군의 설화만 남아있는데, 그의 오줌 줄기에 갈라졌다는 산등성이 바위를 흘끔 훔쳐봤을 뿐 아무리 둘러봐도 둘레가 십여 리나 된다는 자미산성은 희미한 형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원인인즉 이미 알려진 대로 아산만 방조제 공사 때 석재로 사용했다니, 아뿔싸 이거야말로 집단 몰지각에 기인한 게 아니면 무엇이랴. 우리나라에 가시지 않은 야만의 그늘이 한두 군데는 아니로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은 자못 심각하다. ▲ 산성길에서 사라진 자미산성을 찾아 단지 퍽 흥미로운 건 자미는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지역민들은 아직도 이 산을 ‘재미산’으로 부른다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한자어의 뜻으로 풀어본들 ‘이렇게 검고 흐린 산[玆]’을 두고 ‘아름답다[美]’고 했을 리는 만무하거늘, 혹여 국자 모양의 별자리 아래 드러난 능선을 보고서 ‘재미 삼아’ 소원을 빈 데서 유래하지는 않았을지 내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경기도 도보(제3257호, 2005.10.17.)에 따르면 산세를 따라 둥글게 둘러친 성지(城址)에 흙으로 만든 내성과 돌로 만든 외성에, 동쪽 110m 부근의 흙으로 만든 부성으로 이뤄진 복합식 삼중 구조였으며, 석축은 평균 10~20m 정도 높이여서 해양으로 침투하는 적군이 쉽사리 접근하기 힘든 요새였다고 전해진다. 추후 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내에서 문지(門地) 등 각종 시설물이 확인되었고,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는데 어느 부서에서 관리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로부터 남쪽에다 평지와 산지를 이어서 만든 비파산성 역시 여느 때 없이 배고픈 시절인지라 당장 농경지를 늘리는 일도 중요하였겠으나, 최소한의 보존 절차는커녕 전문가의 자문도 구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돌들을 유출하는 바람에 성벽 하부마저 일반인들의 육안으로는 도무지 식별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를테면 선인들이 이룩해 놓은 삼국시대의 테뫼식 석성을 후대인들이 새까맣게 지워버린 참이다. 다행히도 비파산과 자미산성을 이어주는 서낭고개는 여전히 자연생태계가 살아있었다. 이는 당대 힘겹게 고갯마루를 넘나드는 나그네들을 상호연결하는 통로였는데, 애석하게도 정부에서 주도한 대공사를 서두르면서 토루(土壘)를 떠받친 돌들까지 죄다 파다가 써버려 원형을 잃고 말았다니 떠올릴수록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3호)에는 ‘역사의 현장이 지닌 함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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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5-04-01
  • [세상사는 이야기] 왜들 아이를 낳지 않을까?
    급기야 대한민국의 출생률이 0.72명(2023년 기준)까지 내려앉았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Korea is so screwed. Wow!. That is, I've never heard of that low a fertility rate.). 이는 줄곧 여성과 노동, 계급 문제를 연구한 조앤 윌리엄스(72,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무례를 무릅쓰고 내뱉은 말이다. EBS ‘다큐멘터리 K-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제작진으로부터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이 0.78명이란 사실을 전해 듣고 머리를 움켜쥔 참이다. 게다가 2024년 1/4분기 통계지표를 보면 이미 0.68명으로 떨어져 이제는 ‘극초저출생률’이란 신조어를 써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고로 그 숫자를 두고 국가비상사태나 다름없다며 큰 전염병이나 전란도 없이 이만큼 낮은 출산율은 처음 본다는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닌 건 홍콩이나 싱가포르와도 경우가 다르다. 왜 유독 한국만 그럴까? 매사 돈의 가치를 앞세우는 한국의 물신주의 문화에 초점을 맞춘 석학 윌리엄스의 지적이 더욱 뼈아픈 이유다. 이러한 국가적 재앙을 불러오기 전의 근대화과정을 소환하면 굳이 그녀의 원인분석이 아니더라도 최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부작용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단적인 예로 특히 여성들은 사랑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부득불 경력 단절을 겪게 되고, 설령 이를 악물고 버틴다 한들 근무 평점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떠안고 있으니 말이다. 역지사지해보시라, 어느 누가 전방위적 불이익을 감수한 채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싶겠냐는 반문이다. 윌리엄스의 일침 그대로 한국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한국 정부에서는 가정과 일을 병행하면서 이세를 책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다. 눈앞의 현안을 푸는 열쇠는 그대로 놔둔 채 OECD 가입국의 평균 합계출산율(1.59명, 2020년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사안을 해결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지적이다. 그녀는 여태껏 저출생 유발의 주요인을 방치하는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어긋난 가족 시스템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만난 초등생들 무엇보다 경영자나 운영자의 현실 인식에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기껏 젊은 여성들을 공들여 훈련한 뒤 막상 엄마가 되면 노동 시장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려지는 국내총생산(GDP)을 역산해보면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당장 필요한 조치는 일하는 방식의 혁명적 혁신으로써 해마다 간헐적으로 발표하는 금전적 지원책만으로는 해묵은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연례행사처럼 천문학적 예산 가운데 극히 일부를 선심 쓰듯 쥐여주며 출산을 강요하는 듯한 정부 시책은 이미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지 않은가? 실제 2021년 미국에서 17개 선진국 성인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가족’이라고 답했으나, 한국인들만은 ‘물질적 풍요’를 골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정복지 차원에서 ‘보육’에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도 필요하지만, 자녀의 취학 전 6년 만이라도 생애주기에 맞게 경직된 직장문화부터 쇄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필자의 견해는 출산 여성들을 근무 평점에서부터 우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끝으로 윌리엄스 교수는 언제든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요구하는 한국의 ‘이상적인 근로자상’에 대해서는 “남성이 가장이고 여성은 주부인 1950년대에 맞게 설계된 모델”이라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나쁜 시스템”이라고 일갈한다. 심지어 “한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집안일은 8배, 자녀 돌봄은 6배 더 많이 하고 있으며, 남성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대가로 자녀를 돌보며 느낄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한 사회가 됐다”라고 잘라 말한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역설적으로 “That is amazing(엄청나네요)”라는 말에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적기라는 의도적 인식을 벗어나 골든 타임이라는 긍정적 의식마저 쉬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라는 다소 냉소적일 수 있는 언사마저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나서서 인구소멸이라는 중차대한 국면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다음, 그간 변죽만 울리던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여 국무총리에게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을 맡김으로써 주택 우선 분양 정도의 미시적 처방이 아닌 거시적 대책을 내놓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2호)에는 ‘사라진 산성을 찾아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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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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