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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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역사의 현장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는 나의 평소 지대한 관심사여서 털어놓을 만한 생각이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지상에 알리려니 그리 간단한 주제는 아니다. <역사>를 가리켜 개념적으로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이라고 정의한 다음, <현장> 곧 “어떤 일이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난 곳”이라는 뜻으로 접목해보아도 일부는 여전히 관념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시공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라는 사고(思考)뭉치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그만큼 수많은 사건의 주인공이며 허다한 조역을 눈여겨보는 일은 요긴하거니와 그래서 더욱 인간사를 예의주시할 수밖에는 없다. 나는 이에 관한 문제를 아래와 같이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역사의 현장에는 ‘사실’이 녹아있다. 이는 오랜 기간 첨예하게 대립하던 이해관계를 일거에 잠재우고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주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권위자의 고증을 거치고 실무자들의 실사를 마친다고 해도 옛 현장에 침잠한 전후좌우의 사실관계만큼 사실 그 자체를 증명해주지는 못하기에 그렇다. 겉으로 보면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모든 물증이 사라지는 듯이 보일지라도 역사의 현장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파헤칠 수 있는 사실들이 마치 파편처럼 흐트러져있을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언행에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어디엔가 묻어있기 마련이다.


둘째, 역사의 현장에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때때로 파묻힌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한다. 온갖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사에서도 오묘하리만치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기치 않은 물건이나 기록물이 나오는 경우를 지상을 통해 이따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예컨대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나 여러 유(류)품을 보관하고 있다가 어느 기회에 뜻하지 않게 빛을 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아끼던 소장품을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하나하나 점검하는 과정에서 희귀한 단서를 발견하는 사례들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곳이 공적 기관이라면 기록이란 더더욱 감추기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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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공원 내 몽촌토성에 있는 목책

 

셋째, 역사의 현장에는 ‘교훈’이 살아있다. 이는 굳이 눈높이의 범주를 개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으로 격상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역사 현장을 직접 찾는 가족 구성원의 역사의식이 어느 모로 보나 투철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어서다.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이나 사적지로 발걸음을 옮겨 실질적인 교육행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이유다. 모름지기 역사교육의 현장학습이야말로 지나간 시간으로 되돌아가 공간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정신적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비록 상투적인 일상사일지라도 현상이나 사물이 진행되고 존재해 온 일련의 과정상에는 얼마든지 교훈적인 요소를 캐낼 수 있다.


넷째, 역사의 현장에는 ‘상징’이 숨어있다. 이는 앞의 세 가지 요소를 포괄하는 문화적 함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시대적 질곡에는 그때마다 민중의 요동치는 맥박 속에 한숨과 신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그래서 어쩌면 상징은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마무리 결정판일지도 모른다. 좁게는 나의 실례를 들추어보아도 내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일정한 상징성을 확보하게 된 경험칙은 드물게나마 있었다. 설령 특정 사건이 사회적 트라우마일망정 그것이 확연히 형성된 심상(이미지)이라면 각자의 심연에 각인할 만한 개인사적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지난한 과거를 딛고 힘겨운 현재를 살아내면서 다가올 미래를 효능감 있게 대비하기 위해서는, 저마다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되 가능한 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작업에도 초점을 모아야 한다. 실시간 벌어지는 궤적들이 사안에 따라서는 충분히 역사서 또는 개인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응당 거기에는 개별 여건에 따른 고충이나 제한점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바람직한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시민이라면 공동체적 지향점에서 점점 멀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것이 어언 고희를 바라보는 이 나잇살에 새삼스럽게 터득한 세상의 이치요 깨달음의 시야로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4호)에는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 임정에서 독재 군사정권까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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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역사의 현장이 지닌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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