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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서양사 바로 톺아보기’ (8회)
    서양사를 바로 톺아보는 길은 있을까? 이혜령 교수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천 년간의 역사과정에 빚을 지고 있으므로 서양사 읽기를 통해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지나간 시공을 뒤돌아봄으로써 당면한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인목이야말로 미래를 설계할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전망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먼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와 더불어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제시된 입장을 살피며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서양사에서 주의할 요소는 서구중심주의와 부르주아 및 남성 중심의 편견들이다. 그것들이 불러올 사실관계 왜곡은 물론 시비와 공정을 흐리는 지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양자 비교와 종합분석의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기본소양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사유에서 오는 판단력을 기름으로써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데 긴요한 분야로 널리 인정받은 셈이다. 여기서는 좁아진 지구촌에서 이질적 문화를 공유하며 상생하는 방안을 여러모로 제시할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서양 역사는 팽창 지향적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 구도를 타파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부터, 알렉산더는 기원전 4세기부터, 로마인들은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중세 유럽인들은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영토전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은 중세사회가 붕괴된 15세기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자원을 약탈하고 자본주의를 수립함으로써 세계사를 주도하는 면모를 보여왔다. 급기야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양차 대전을 일으키며 세계를 초토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대가는 극한적 대결의 냉전체제였다. 그렇다면 나의 관심사와 연결된 주제의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영화감상 후 흥미로운 영역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고, 시사성 있는 사태를 보고 자료를 탐색해볼 수도 있다. 요체는 개인적, 사회적 전망이 어두울수록 유사한 역사를 돌아보며 사안별 대처능력을 키워야 하거니와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가운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과거사를 분석하는 일은 시간의 확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설악초 꽃무리 그러나 학자들과 독자들 사이에는 시각의 괴리가 존재한다. 일반인들의 성향은 통상 역사의 거시적 흐름을 생각하는 반면에 전문가들은 특정 사실에 대한 정립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이왕지사 양자의 거리를 단박에 좁히기 어렵다면 역사의 저변을 확충하기 위해 때로는 독자의 편에 서서 소구력을 높이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주제를 넓게 잡고 동서양사의 도도한 흐름을 크게 잡아주는 거시적 서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때 요긴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요약과 질문이므로 그 둘을 진지하게 접합한다면 독서의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극히 경계할 요소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견강부회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만 설령 역사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시대와 사회의 여건에 의해 좌우될 수는 있어 이마저 흔들리지 않는 푯대가 최선이겠으나 인간이 하는 일에서 절대선을 추구할 수 없다. 권력자와 지배자, 심지어는 약탈자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유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은폐와 폭력성을 수반하는 사례도 있어서다. 최근 들어 서구중심주의를 비롯해 가부장주의에 대한 반추, 모성신화에 대한 분석,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의 해체 등이 도마 위에 올라온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민족적 우월주의와 성인식만으로 학계를 급격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다양한 연구 방향성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공정하고 주도적인 자세를 견지하라는 권유다. 독서를 통해 쟁점을 놓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경험만으로도 이미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는 칭찬이다. 기억해둘 지적 활동의 중심은 성찰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마르크 블로그의 지적처럼 역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기에 그렇거니와 저자가 권하는 공동의 독서와 반성적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함께 독서노트를 만들고 요약집을 분담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물론 메모는 각자의 몫이다. 발제자의 내용을 비교하며 보완하는 일도 권장할 만하다. 그렇게 생긴 정교한 비판의식이야말로 인류의 정신사를 살찌워왔다. 깊은 문제의식은 숱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한 지름길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3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사회과학 똑바로 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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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6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한국사 제대로 꿰뚫기’ (7회)
    한국사를 제대로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이 필요할까? 송찬섭 교수에 의하면, 역사를 읽는 목적은 단순히 흥미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시대적 흐름과 구체적 현실을 알려고 하거나 역사 속에서 희망을 찾아 실천 의지를 다지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책의 종류를 보면 통사, 시대사, 왕조사 등과 같은 과거사의 기록물, 유적지를 통해 역사적 안목을 길러주는 답사기, 전기류와 유사한 인물평전이나 회고록, 생활문화를 탐구하는 일상사, 역사소설이나 사극 등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도 있다. 유의점은 각 책에 담긴 사관은 물론 저자가 지향한 가치요 사상이다. 다만 사실(史實)과 허구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제시한 도서류 가운데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향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핏하면 중국의 일을 인용하는 것을 두고 비루한 품격”이라고 꼬집은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심을 둔다며 나무랄 수는 없다. 각종 문제를 파헤치려는 노력 또한 다양한 시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과거와 기록에 대한 관심이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말 없는 다수의 실상이 전면에 나선 소수로 대치될 수는 없잖은가? 예컨대 서구 열강의 침략사에 얽힌 일제 강점기를 무심코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국운을 옥죄어오던 구한말로 되돌아가 근대화를 선제적으로 추동할 수는 없었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도 역사책에서 고리를 풀어야 한다. 다만 역사의 기술상에 남아있는 객관성의 확보 여부는 별개 사안이다. 이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그 한계치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과 합의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최근 사학계에서는 사가의 기호나 욕망, 편견과 이념, 지방이나 민족과 같은 집단의식, 현재라는 시점 등을 넘어서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정리는 필요하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초점이 더 절실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작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보다 주안점을 두고 선조의 기록을 대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천수국 꽃무리 역사 고전에 해당하는 사서의 대표적 예로는 시대별 정사(正史)를 들 수 있다. 이는 연대기 형태로 고정돼있어 매우 건조하긴 하지만 분야별로 정리한 지(誌) 또는 열전은 이야기 구조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의 『실록』과 『일성록』은 편년체로 정리했다는 특징이 있다. 실은 전근대에 들어와서도 사찬(私撰)에 의한 사서는 흔했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던 조선 후기만 해도 서술방식이 다른 역사책이 다수 만들어졌다. 눈여겨볼 책은 『동사강목』이나 『연려실기술』, 『해동역사』와 같은 역사 담당자 전체를 주체로 한 서술이나 인과관계에 의한 사회 발전을 규명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대동야승』처럼 민간설화, 사건일지, 기행문 등을 실은 야사류도 있다. 근대에 와서는 학교를 통해 역사교육이 이뤄진 만큼 접근성은 좋아졌으나 역사학의 독립성과 민족사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히 해묵은 숙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항한 신채호의 민족사관에도 불구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의 확산을 막아내려면, 1980년대 들어 부쩍 민주화의 열풍을 일으켰던 기층민의 항쟁사 및 변혁운동사에도 애정 어린 눈길을 줘야 한다. 역사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그려보는 재미를 무엇에 비할까? 반만년을 일궈온 이 땅에서 지나간 현재를 음미하며 미래를 설계해보는 사실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나는 역사적 인물은 한국 사회를 만든 지난한 족적이자 수많은 논쟁을 거쳐온 시대의 산물이었다. 각별히 주시하는 민중사를 놓고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안다는 즐거움만으로도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가령 민초들의 생존사를 비롯한 이순신의 『난중일기』, 이병기의 『가람일기』,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가 그 전형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생활문화, 곧 공동체적 일상사를 탐구하는 쪽이다. 기본적으로 의식주 외 부업이나 부식, 신앙생활, 여가문화 등속까지 낱낱이 기록해 두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본 근현대는 대내외적으로 성장과 수용을 용해한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역사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역사이해 부족과 과도한 상업성의 개입은 경계할 요소다. 상상력이라는 틀 안에서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려는 슬기로움은 필수라고 본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2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서양사 바로 톺아보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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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4-22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 (6회)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은 따로 있을까? 진보성 교수에 따르면, 철학책이 어려운 까닭은 철학을 위한 책으로만 읽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채 선인들의 사유와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자연스러운 지적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저자가 제시한 선행과제는 근현대사의 부침 속에서 생소해진 한국철학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한국철학서는 고유의 전통사상과 근대 이후 현대사상의 영역으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예컨대 비록 전래 경로를 밟았으나 토착화된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은 한국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만 원류와는 다른 우리만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시대와 인물별로 한국철학을 섭렵하는 길도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과 정신을 알아야 우리네 현주소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철학의 논쟁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철학이 어떻게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으며, 역사적 관점에서 시대 배경을 통해 당대 사건을 조명하면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한국철학의 주요저작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은이는 한사코 색다른 시각으로 한국철학을 보라고 하지만 실생활에 소용이 되는 시사상식조차 소홀한 마당에 이른바 문사철(文史哲)로 불리는 인문학, 그중에서도 철학의 지명도는 현저히 낮아 시중에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기치만 내걸려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데 따른 고언이다. 거두절미하고 일단 철학책은 쉽게 써야 읽힌다.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사람다움의 가치를 찾고 공동체적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연유이거니와 힘들어도 기어코 넘어야 할 지점이 곧바로 철학이 가진 심오한 지적 활동의 영역이어서다. 즉, 오랜 세월 사유하며 축적한 학문의 지속성을 바탕으로 흘러온 지성사의 물길이 지표나 지하를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한국철학사의 지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학책을 대할 때는 사상의 연결점을 퍼즐에 맞추듯이 읽으라는 지침이다. 보편적인 사실이 지엽적인 것의 총체이듯이 철학 일반의 대전제에서 한국철학의 실체를 거론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검토와 심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는 주문이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천일홍 꽃무리 한국철학이라는 명칭은 근대 이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나누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지혜(sophia)를 사랑(philos)한다’는 합성어의 원의(原義)를 보면 애초에 일본이 애(愛)철학이나 희(希)철학으로 번역한 사유를 알 듯하다. 우리 역시 예전에는 도학(道學)이나 이학(理學)이라는 이름을 썼다. 성리학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로써, 인간이 심성을 철저히 수양하여 도덕규범과 자연법칙에 맞는 사람의 도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곧 직관과 체득을 중시한 동양철학은 실험과 실증을 내세운 서양철학과는 구별된다. 다만 근대와 전근대의 틀에서 동양철학을 뒤떨어진 대상으로 인식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한국철학은 격변기의 시대적 조류를 거슬러 올랐으나 창조적 수용을 통한 재창출의 가치를 지켜왔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크게는 한국전통철학과 한국현대철학으로 나눌 수 있고, 유가철학, 도가철학, 노장철학, 불교철학이라는 면에서 한중일이 공유하는 측면도 강하다. 조선 후기에 대두한 실학에 대해서는 지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국철학을 사상별로 살펴보면 유교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정교일치 사회에서 통치 이데올로기 성격을 지녔기에 학문적으로는 유학이라고 불렀다. 2,500년의 유학사(儒學史)를 집대성한 사서삼경을 비롯해 불교 경전을 권하는 것은 거기에 한반도의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도교의 경우는 역사상 교단을 두지 않아 수련과 의술로 여기는 풍조가 있으나 중국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음양오행설에 의거해 점성술로 발전한 문화적 복합체로 볼 수 있다. 한국철학을 시대별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그보다는 인물별로 들여다보는 것이 외려 구체적일 것이다. 유불도의 균형감을 이뤘던 삼국의 상황에는 원효가 지향한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의 공이 컸다. 고려시대에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을 불교적 요소로 채웠고,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유학이 흥왕했다. 이황과 이이가 주도한 주자학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북학파가 학맥을 이루면서 개화사상으로 이어지다가 구한말 동학사상, 시천주사상, 양명학까지 나서서 개혁을 주도했으나 동력이 떨어져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1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한국사 제대로 꿰뚫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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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4-12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무슨 철학책이 좋을까’ (5회)
    얘기만 꺼내도 골치 아픈 철학서는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까? 이준석 교수에 의하면, 철학은 나를 지탱해주는 튼튼한 밧줄이자 삶의 부조리와 허무에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는 일이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꽤나 무겁게도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몇 가지 책들을 시대별 난이도별로 소개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철학은 홀로 수련하기는 어려우므로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며, 우리말로 된 철학서 중에서 좋은 책을 찾는 데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초장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만나도록 구성한 바는 색다르다. “이 초월적 이념들에 관해서는 본래, 우리가 범주들에 관해서 제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객관적 연역이 가능하지 않다.”라는 말에 이어서 헤겔의 『대 논리학 2권』을 통해, “삶에서 우리는 삶이 이념이지만 동시에 삶은 아직 이념의 현존재의 진정한 서술이나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진술하고 있으나 무슨 뜻인지는 아리송하다. 생략해버린 들레즈/기다리의 천 개의 고원을 보면 정신적 혼란이 일어날 지경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독서백편의자현”이란 옛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난 셈이다. 거듭해 읽어봐야 철학에서 멀어질 따름이다. 바로 그것이 좌절할 수 있는 이유로되 다만 쉬이 포기하지는 말고 긴 호흡을 갖고 시나브로 철학의 맛에 길들이기를 소망한다는 발언에 고무된 건 적실하다. 응당 철학 공부를 위한 주춧돌을 놓으라는 말이다. 그래야 철학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단다. 대상을 모른 채 호불호를 가릴 수는 없잖은가? 철학 서적을 펼치자마자 난해하다 못해 난삽하기조차 하다면 초심자들은 이내 책장을 덮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이다. 스티븐 로의 『철학학교 1,2』를 권한 건 그래서다. 문제 상황을 벌여놓고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철학하기를 보여주며, 나이절 워버튼의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역시 비슷한 취지의 입문서이긴 해도, 그보다 가벼운 책은 오가와 히토시의 『철학의 교실』이란다. 그러나 주요 개념과 친해지지 않고서는 철학의 빗장을 풀기 어렵다. 다른 맥락에서 말하는 존재, 실체, 무한 인식, 진리, 필연과 같은 전문용어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면 서서히 철학의 집에 입주할 날이 다가올 테니까.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만수국 꽃무리 예컨대 고대철학에서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를 빼놓고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 그는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으나 제자인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로 일상어로 대화를 이어간 플라톤을 읽고 난 뒤 여력이 있으면 다음 행위를 전개하라는 주문인데, 『소크라테스의 변명』, 『에우튀프론』, 『크리톤』이 그것이다. 이상 세 권의 저서를 소화했다면 『향연』, 『파이돈』, 『메논』을 읽은 다음 『국가』까지는 독파하기를 권한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 주제에 걸쳐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나 번역서가 많지 않은 게 걸림돌이다. 고대와 중세를 잇는 철학자로는 플로티노스와 보에티우스를 들 수 있다. 중세의 경우, 교부철학의 후기를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자유의지론』, 『신국론』, 『영혼의 위대함』, 『삼위일체론』, 『그리스도교 교양』, 『참된 종교』, 『선의 본성』, 『영혼 불멸』, 『독백』 등을 남겼다. 스콜라 철학의 중심에 서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지성단일성』, 『신앙의 근거들』, 『진리론』 등을 남겼고, 아베로에스의 『결정론 논고』는 중세철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이성은 신으로부터 독립했다. 중세철학은 신학을 위한 도구로써 학문적 근간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유럽 대륙은 수학적 합리주의를, 영국 철학은 관찰에 의한 경험주의를 따라갔다. 근대철학의 시조로 간주되는 데카르트 이후로는 스피노자를 꼽는데 스토아철학을 익힌 독자라면 무난하게 읽어낼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철학의 흐름이 임마누엘 칸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이후의 거목으로는 관념론에 천착한 헤겔이 있으며, 19세기 후반에 태동한 사회주의는 철학적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현대철학 세계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틀에서 벗어났다. 20세기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철학과는 단절하고 논리실증주의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결국 20세기에 들어 영미권에서 분석철학으로 이어지며, 유럽에서는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철학 사조의 변질을 우려하며 철학의 본령을 지키려던 학구파도 생겨났다. 현대철학의 진보 내지는 논란의 여지를 남긴 인물로는 삶의 철학(생철학)을 우주로 확장한 앙리 베르그송이 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0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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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9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읽어본 서책 활용하기’ (4회)
    읽은 책을 어떻게 활용할 참인가? 이권우 평론가에 따르면, 첫째는 에세이 쓰기로 책 내용을 요약하며 인상적인 구절이나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남기는 것이다. 둘째는 독후감 쓰기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단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셋째는 서평 쓰기로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비판하는 작업이다. 이처럼 독서 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지행합일의 길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런데 왜 여태껏 실행하지 못했나? 우선은 다매체에 시달리는 환경적 요인을 들 수 있다. 그중에 핸드폰이나 인터넷은 생각의 기반을 좀먹는 주범이다. 기껏 공들여 읽은 내용이 단 며칠 만에 백지장이 된 원인을 이제야 찾아낸 셈이다. 집안 살림에 양육을 담당하는 주부라면 더 집중하기 힘들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저자는 사전에 사유의 공간을 비워놓고 정성껏 읽으라고 권한다. 곧 읽는 행위는 수동적이므로 능동적으로 창조적 글쓰기를 가미하라는 주문이다. 이랬을 때라야 우리네 독서문화의 맹점을 스스로 고쳐 단지 이해하기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옮아간다는 역제안이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면 신문에 나는 칼럼을 꼼꼼히 읽으란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과거 프랑스처럼 전교생을 알짜, 예비, 잉여로 나누는 반인간적 횡포에도 분노할 줄 모르는 의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지는 않은지 살펴보라는 경고다. 기실 교실이 붕괴된 이면에는 학교 현장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인격체를 두고 점수로 줄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교육방식을 빙자해 아이들을 성적으로 차별한다는 것은 지독한 지적 인종주의라는 질타로도 모자라 저자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지를 소환했고,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특집을 소개하며 프리모 레비에게 “이게 인간인가?”라고 캐묻게 한 나치즘까지 전선을 넓히고 있다. 경쟁 만능주의를 고수하려는 교육정책이 가져온 폐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지 못하는 세태를 향하여 제발 공분이라도 일으켜야 하지 않느냐는 울분이요 포효에 가깝다. 급기야 홍세화의 편집을 내세워 스테판 에셀이 제기한 『분노하라!』를 일컬어, “창조하는 것, 그것은 곧 저항이며, 저항하는 것, 그것이 곧 창조다.”라는 인용으로 끝을 맺는 이유였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벌개미취 꽃무리 우리는 방금 깨어있는 시민들의 각성을 실제 참여로 이끌려는 일련의 시도를 접했다. 아무리 글쓴이의 통렬한 비판이 진정성 있게 전달되어도 설득력이 증명되는 길은 실천하는 양심뿐이라는 일갈이다. 그런 면에서 지행합일은 언행일치와 상통하는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오에 겐자부로가 겪은 아픈 가족사의 독후감을 일례로 든다. 지적장애아인 자식으로 인해 우러나온 『개인적인 체험』이 흡인력 있게 다가온 연유를 담담히 밝힌 참이다. 원문에서 보여준 파격적 속도감마저 번역문의 장광설로 인해 손상을 입긴 했으나 그 일부분을 소개하면, 자식의 심각한 장애 앞에서 멈춘 부모의 일상을 문득 몽환적이라 쓰고 끔찍한 비상이라고 읽는다는 고백이다. 일테면 코앞에 놓인 현실이 무섭도록 싫은 나머지 진저리 나는 비현실로 느껴지더라는 토로다. 그러니 광적 유희로 돌파구를 삼은들 살기만 감돌 뿐이다. 다행히 사지를 넘나든 안달이 혈육을 향한 온기로 바뀌긴 했으되 인간의 속성적 이중성이 줄곧 개관천선으로 굳어진 양상은 아니다. 결국 상징적 역설은 형벌의 고통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교훈일 따름이다. 저자가 일러준 서평은 요령껏 내용을 정리하면서 책의 장단점과 그 위상까지 짚어주라는 주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와 뇌과학자인 정재승의 『쿨하게 사과하라』의 경우, 제 때 사과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자초한 사례도 시각을 달리하면 재판에 유리한 국면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안면을 몰수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그러고 보니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지 못한 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탓인 게다. 다만 사과할 때는 단번에 구체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며 개선 의지와 보상까지 묶어 용서를 구하라고 권한다. 한국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잘잘못을 주고받기는 쉽지 않되 일단 실행하면 리더십이 강화되는 등 서로에게 유익이 된다는 취지다. 곧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진실을 호도해서는 사태 악화를 불러온다는 지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충고다. 고로 추상적이고 고답적인 주제의 접근도 주저하지 말며, 까다로운 논제일수록 더 분석적이어야 한다. 뒤에서 언급한 서평의 요지는 조선조에서 출사한 뒤 퇴로를 막은 정치적 구조가 사화를 발화시킨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9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무슨 철학책이 좋을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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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0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평자가 말하는 독서법’ (3회)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에 대한 비법만큼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슈가 있을까? 이권우 평론가는 독서는 기본적인 문해력을 바탕으로 단계별 독서법을 권면한다. 통상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은 실용문을 이해하는 수준을 가리키므로 그 이상의 내용을 해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심심풀이라면 모를까 굳이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서까지 책을 손에 잡을 이유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기에 저자의 눈은 시종 청소년들을 주시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들의 관심이 유난히 독서의 기술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자칫 젊은이 특유의 도전정신마저 퇴색하는 게 아닌지 내심 근심스럽다는 말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경우도 보았다. 제출한 독후감에다가 지은이더러 잘난 척하더라는 표현이었다. 좀 쉽게 쓰지 뭐가 이토록 현학적이냐는 어투는 그나마 정화된 표출에 속한다. 급기야 저자를 겨냥한 원망은 자신을 향한 책망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는 응당 공들일 사안을 외면하는 풍조와 관련되어 있다. 상책은 내게 너무 난해한 책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다. 물러섬이 때로는 다가섬이다. 또래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민의 공감대를 서로 나누라는 조언이다. 예로부터 공부란 늘 새롭고 약간은 버거운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어서 그렇다. 앎의 영역을 늘려가기 위해서는 개척자적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무슨 일이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동티가 나지 않는 법이다. 알고 보면 전문서적의 세계도 수능시험의 영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차를 보고 전체주제를 알아차리듯이 지문을 읽고 소주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가 개념어 사전을 준비하라는 권고와 맥이 닿아있는 대목이다. 복잡한 글월을 읽어내려면 취지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문제는 행간의 뜻을 놓치다 보면 자꾸만 포기하고픈 유혹이 생긴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이를 두고 악마의 소리라고 단정한다. 퍽 버겁더라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읽어내는 뚝심이 성취감의 요체라는 격려다. 고로 바람직한 독서는 속독이 아니라고 나무란다. 5분 안에 승부를 보는 영화와는 다르다는 타이름이다. 책이란 집을 짓는 일과 쏙 빼닮았으므로.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마가렛 꽃무리 그렇다면 대중이 선호하는 실용서와 인문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다소 불친절한 서두보다는 중간쯤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권유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간간이 목차를 확인하는 요령도 일러둔다. 논의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그 위상을 확인하는 일이 뜻밖의 도움이 되어서다. 아예 결론 쪽으로 눈을 돌려도 괜찮다. 역으로 추적하다가 의외라 싶게 의문점이 풀리는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이른바 책벌레표 ‘독서법 십계명’은 참고할 만하다. 첫째, 책을 무턱대고 읽지 말고 천천히 살펴보라. 둘째, 연필을 들고 읽으라. 셋째, 접속어에 주의하라. 넷째, 같은 주제의 책을 동시에 읽어보라. 다섯째, 그 주제와는 다르게 주장하는 책도 함께 읽어보라. 여섯째, 골라 읽는 재미를 들여놓으라. 일곱째, 어쨌든 천천히 읽으라. 여덟째, 자투리 시간을 십분 활용하라. 아홉째, 100권 읽기에 도전해보라. 열째, 독서토론을 기록하라. 구태여 주제를 삶과 사회에 발맞춰 재검토하라는 건 그동안 실천하지 못했을 뿐 몰라서가 아니어서다. 아시다시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퇴행하는 주범은 늘 게으름이었다. 요컨대, 지은이의 학력이 아닌 실질적인 이력, 추천서나 요약문, 고갱이를 모은 머리말, 설계도인 목차, 독서 중 가치평가를 남기는 습관은 부연과 예시의 주목도를 높이고, 요약과 각주는 주춧돌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내용에 몰입은 하되 비판 정신을 놓치지는 말란다. 저자가 명명한 ‘이크의 책읽기’야말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미덕이기에 발췌독의 효능감, 즉 음미-회상-성찰-전망 순으로 소화하라는 주문이다. 눈길을 돌려 이이(李珥)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되새겨보는 일은 선인들이 필사를 겸한 독서법의 달인들이어서다. 고인들 가운데 유독 공부를 위한 독서론에 중점을 둔 이유일 텐데, 몽매한 이들을 가르치는 비결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자녀교육의 초점을 정독에 두었다는 점은 과거시험, 곧 입신양명이라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의미한 채근이다. 선조들은 인간의 도리를 깨우쳐주려는 방편으로 교학상장의 장을 마련했고, 거기서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경지를 섭렵하도록 종용한 참이다. 지적 포만감은 무게를 안고 전열을 가다듬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8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읽어본 서책 활용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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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어떠한 책을 선택할까’ (2회)
    어떤 책을 읽을 것이냐에 대한 화두는 선뜻 해묵은 숙제 보따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권우 평론가에 의하면, 인문학이야말로 지금 당장의 효용성을 떠나 삶의 원리를 알려줌으로써 생활의 동력을 길러주는 길이라고 일러준다. 각계에서 선별한 고전들은 인류의 지성사를 지탱해온 정신적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관련 서적에 대해 어느 정도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전제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 열풍이라는 시류에 영합하거나 일시적으로 편승하는 건 곤란하다. 입문자일수록 다소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전진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므로 무한경쟁을 부추겨 승자독식을 옹호하는 의식구조는 타파해야 한다. 인문학에서는 돈을 매개로 각 분야의 인사들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줄을 세우는 방식의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미래공동체의 가치는 늘 신명에 성실성을 동반하는 곳에서 싹을 틔워 왔다. 다들 까다롭다고 여기는 동서양 철학의 기본 성격을 파악한 다음 유사성과 차이점을 간추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요체는 수단이 목적을 앞지를 수 없고, 진정한 목표가 없이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 혁신을 주제로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도 있었다. 이는 한때나마 독서경영이라는 과제를 떠안겼으나 사회 전반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각자에게 필요한 지적 포만감을 제공하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해서였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건 그래서다. 군자는 변형 가능한 그릇이어야지 잠재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학벌을 중시하고 성과지상주의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를 낳게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찌할 참인가? 공자는 모름지기 전문가들이 그 분야의 기술만을 익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아울러 그는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정자의 행동거지부터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나 돌아보라고 일침을 놓는다. 하지만 그릇이란 이미 그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 만큼 요지부동이어서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것이라는 주장에 일리는 있으나, 속담을 풀어 그릇(뒤웅박)마다 무엇을 담느냐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꽃무리 논지는 코앞의 영리를 위해 필요한 책만 골라 읽는 행위는 곤란하다는 일갈이다. 요동을 치는 국제시장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책에서 획기적 아이디어를 찾겠다는 발상이야 가상하되, 과연 대증요법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바뀔지는 미지수이므로 동양고전을 읽어보라는 권유다. 기업경영은 전쟁이나 다름없기에 인문학에서 시사하는 관계설정이 가족경영에서 출발하여 기업으로 옮겨가고 국가경영이 세계로 뻗어간다는 논리 전개다. 이른바 상동성(相同性)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상동성이란 같은 종이나 다른 종 개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전자 및 단백질의 유사한 성질을 말한다. 즉 공통의 형태를 계승한 종들은 대응하는 부분에서 형태학적으로 같다는 뜻의 전문용어다. 논지는 아픈 속살을 들춰 세상을 바로 알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려거든 고전을 펼치라는 게 저자의 처방이다. 이를테면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그때마다 주유소에 가지 말고 대륙붕을 찾으라는 충고다. 곧 독서의 본령은 궁극적으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있으니 책 읽는 자에게는 덤처럼 지식과 교양의 축복이 임한다는 덕담 수준이다. 따라서 저자는 필독도서목록에 의한 독후감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경계한다. 개개인의 형편을 도외시한 일방적 강요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진단이다. 예상한 바와 같이 출발점은 흥미를 느낄 만큼의 관심사에 달려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내 수준에 맞는 상황별 도서를 추천한다는 취지다. 무릇 본인에게 좋은 영향이 있다 싶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각개격파하라는 조언이다. 소위 사회적 양서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명작이라도 본인이 싫어하면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든 걸음마 시절은 있는 법이다. 다만 거의 모든 입문서는 만만히 볼 수 없다고 진단한다. 일정 부분 통과의례를 치를 각오를 다지라는 통보다. 실은 실속도 없이 젠체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걸 보기 어렵다는 경험칙인 동시에 그만치 재밌는 입문서 자체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이기도 하다. 즉 서양철학의 경우는 역사성에 주목하고 동양철학은 동시성을 강조한다. 전자의 통시적 철학사와 후자의 공시적 핵심사상이 중요하다. 내친김에 저자는 적합한 책들을 나열해놓았다. 자세한 목록은 용어사전과 교재를 참조하기 바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7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평자가 말하는 독서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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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3-20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유용한 독서의 중요성’ (1회)
    이 글은 기본적으로 방송대 교재인 『독서의 즐거움』의 요약이로되, 필자의 의견도 얼마큼은 첨가할 것이다. 제1강을 집필한 정준영 교수에 따르면, 여기서는 초보자들의 독서에 유용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기존의 관련서와는 달리 지나친 체계화를 지양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접근했거니와 전공 분야에 들어가서도 관심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선택한 책을 펴는 순간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일이야말로 희열에 속하겠지만, 까다로운 글자들의 조합이 단지 기호의 나열로 다가온다면 또 하나의 짐을 얹은 격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효과적 독서를 위한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나날이 다양화, 전문화, 세분화하는 학문을 죄다 따라잡는 데는 한도가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은 저마다의 노력을 경주해 도서관에서 해결하기를 바란다. 부디 이 연재물을 통해 평소 독서행위에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일종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처음 학습안내에 나온 말처럼 흐트러진 머릿속을 정리해주고 행복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부인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요즘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은 책 대신 핸드폰이 대세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각 분야의 저술가는 물론 출판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허덕인다는 하소연은 차치하고라도 논리력에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창의력이 함양된다는 설득력이 무색할 지경이니 말이다. 차라리 취미가 독서였다는 시절이 그립고 옆구리에 책 한 권쯤은 끼고 다녀야 교양인 축에 낄 때가 나았다는 푸념이 흘러나올 정도라면 현대인들은 몰입의 기쁨을 어디서 얻을까? 그나마 전자책이었으면 다행일 테지만 거리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즐기는 창구는 게임인 경우가 많다. 우스개로 독서나 오락이 선을 따라가는 행동이긴 마찬가지나 닐 포스트먼의 주장처럼 인쇄술 보급 이후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구분이 생겨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단적인 예로써 선거철만 되면 집단 지성보다는 군중심리가 기승을 부리는 양상도 이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마셜 맥루언의 말마따나 서책을 통해 내면적인 개인주의를 함양하는 기회마저 놓쳐버린 결과는 아닌가 한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꽃무리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꼬집은 내용 중에는 책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재자들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통치권을 공고히 했다는 이야기다. 분서갱유의 폭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버젓이 금서목록을 강요한 한국의 과거사도 씁쓸하다. 기실 종이책의 역사는 105년경 후한의 채윤에 의해서인데, 종이는 습기에 취약한 파피루스나 생산이 힘든 죽간, 양피지, 비단 등의 약점을 극복한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그로부터 751년 무렵 중앙아시아로, 793년 무렵에는 바그다드로 전파되었으나, 유럽인들이 제한적으로 종이를 사용한 때는 12~13세기였다. 이윽고 17세기에 들어서야 독서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도서 양산이 가능해진 건 19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놀랍게도 11세기만 하더라도 책 한 권 만드는 비용이 무려 1만 달러(한화 1,300만 원 상당)에 달했다니 믿거나 말거나 아니랴. 그 밖에 필사자나 구연자의 위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하여간 일반인들이 책자를 접하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목할 대목은 낭독과 음독에서 점진적이나마 묵독으로 전환했다는 지점이다. 저자는 소수의 양서보다는 다독을 강조하고 있다. 글 쓰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도 도리어 광범위한 독서가 도움이 되거니와 비판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책을 접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전공에 관련된 내용을 본격적으로 섭렵하는 곳을 대학이라고 볼 때,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기록물이 없이는 심층적인 연구가 어려울뿐더러 전문가들이 집대성해놓은 포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증력을 키우는 길이 학문을 닦는 기본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표준어의 제정은 근대시민국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영어의 경우 1755년 존슨 박사(명예)가 주도하여 사전이 편찬되고 문법서들을 출간하면서부터 세계 공용어의 기틀을 다졌다고 하면 무리수일까? 물론 독서라는 행위가 반드시 학자적 자질을 담보하기 위한 지름길은 아니겠지만, 비록 실용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단편적 즐거움이나 교양을 쌓으려는 독서 또한 몰입을 위한 전 단계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어서다. 명백한 바는 독서를 통해 느끼는 뿌듯함이야말로 즐거운 인생의 동반자라는 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6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어떠한 책을 선택할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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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3-08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리투아니아의 독자적 행보’ (7회)
    이윽고 북유럽 7개국을 돌아보는 마지막 나라에 접어들었다. 한때는 한 나라처럼 지내기도 했을 텐데 국가명이 바뀌었다고 풍광마저 이토록 차이가 나는 데는 차분히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아야 하리라. 농사만 해도 아까까지는 귀리 재배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보리, 유채, 밀밭이 골고루 지나간다. 심심찮게 보았던 나무 전봇대는 바로 곁에서 베어낸 반듯한 소나무인 듯. 게다가 놀리는 땅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국가운영은 일단 합격점을 주어도 될 참이다. 그럴 만한 것이 리투아니아(Republic of Lithuania, 면적: 한국의 65%)는 상주인구 약 270여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겨 먹고사는 데는 지장은 없는 상태. 다만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대놓고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민감한 대만 문제에서도 중국과 척지는 등 눈치 없이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정책을 밀어붙여 걱정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겁이 없는 건 아니라는 부연에 헛웃음보다는 향후 어떤 허허실실의 처세를 취해나갈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포문을 갈음하고자 한다. 인구 56만의 빌뉴스는 이 나라의 수도. 붉은 벽돌로 지은 트라카이성으로 가는 데는 약 40분이 걸린단다. 일식 셰프가 직업이라는 가이드는 말재주는 없어도 우직한 사람이었다. 마디가 끊어지는 걸 보니 투박한 대구 사나이. 일행이 요트를 타는 동안 나는 몸이 아픈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성으로 향했다. 갈베호수 위에 비친 성곽은 한 폭의 그림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다. 다만 유람선에 올라 사방에서 감상할 만한 경치인지는 각자가 분별할 몫이로되 미리 돌아본 바로는 오히려 성내 입장료에 선택지를 부여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듯싶었다. 체력에 한계를 느낀 아내가 앉아 쉬는 동안 그리 멀지 않은 성 둘레를 돌아보니 적의 공격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탄탄히 지은 도피성인 건 맞다.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호령하던 비타우타스 공작이 거주하다가 사망한 곳이라는데, 14~16세기에는 동유럽 전역을 지배하던 제국이었으나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일부가 되고, 1944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가 1990년 3월에야 국제 정세에 따라 독립할 수 있었다. 일부 정보에서는 독립과 동시에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게 아니라 조만간 대사급 수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를 지탱한 대성당의 위용 중세사의 한쪽 이면일지언정 아예 접하지 못한 채 돌아선 건 못내 아쉬운 대목. 일세를 풍미하던 비타우타스 목상을 뒤로하고 일행과 함께 향한 곳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빌뉴스의 구시가지다. 타타르인들이 남긴 나무집들이 하나둘씩 멀어지는 가운데 가이드는 때마침 막혔던 말문이 터진 듯 코로나 기간의 곤고함을 주저 없이 털어놓았다. 사업 진단차 잠시 들른 이국땅에서 반려자를 만나고 애써 이룬 가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새벽의 문을 지나 바실리우스 수도원 구역에 들어서니 카시미르 교회를 비롯해 나폴레옹이 탐냈다는 테레사 성당과 경건한 러시아정교회가 나왔다. 구시가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디미나스성에도 의미는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국회의사당 건물이나 리투아니아 속의 작은 국가라고 지칭하는 우주피스공화국에 더 무게의 중심이 실린다. 그에 앞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원형을 보존한 성문이요, 아르누보의 건축양식을 지닌 콘서트홀이 더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밖에도 미카엘성당이나 안나성당에 대해서는 하도 많은 곳을 소개하는 바람에 순서마저 헷갈리기 일쑤여서 하나하나 거론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나 인문학도의 두 눈을 사로잡은 곳은 문학의 거리. 일련번호를 따라 일일이 설명을 곁들이는 깊이를 대하자니 생각보다 가이드의 내공이 쌓인 듯하다. 지형지물을 찾아 해설하는 틈틈이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아내가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만 자리를 피해 쉼터를 찾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에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버스에 놔둔 짐들이 있거니와 내일 아침 공항으로 가는 공지사항을 따로 전달받기도 싫어 그대로 두어 시간을 버티기로 했다. 아내와 더불어 시간을 보낸 곳은 광장과 공원을 끼고 있는 빌뉴스 대성당의 뒤꼍. 기둥의 크기에 기대어도 그 옛날 영화를 재현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릴 것 같았으나 현지 가이드의 입을 빌리면 리투아니아 정치인들은 아마도 강심장을 달고 사는 거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다는 말에도 이해가 간다. 어쨌거나 인천공항에서 지레 체험한 이상 조짐에도 불구하고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은 온전히 주님의 은혜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5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유용한 독서의 중요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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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라트비아에서 감지한 활기’ (6회)
    일행이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 곳은 라트비아(Republic of Latvia, 면적: 한국의 약 64%). 갈수록 굵고 얇은 소나무 군락이며 자작나무 숲이 속속 나타나는 등 수종의 다변화를 시시각각 실감할 수 있었다. 드넓은 경작지에서 보듯이 산자락은 거의 없고 평평한 들판이 펼쳐진 가운데 당도한 수도 리가는 총인구 180여만 중 약 60여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 예술미는 현저히 떨어졌으나 거리에서 활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코로나 기간 이곳에서도 Bolt를 이용한 배달문화가 상당 부분 자리를 잡았다는 후문. 이른바 발트 3국의 한가운데 위치했다는 연유로 한국과는 1991년 독립과 동시에 수교를 맺었으며, 곧이어 투자보장 및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후 이중과세방지협정에 가서명한 데 힘입어 삼성과 엘지 등의 대기업 상사원이 상당수 주재하고 있단다. 1인당 GDP는 아직 2만 불에도 못 미치나 수심이 깊은 연안을 끼고 있어 크루즈가 드나드는 등 관광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있는데 다행히 구시가지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니 앞날을 기대할 만하다. 차창 밖에 비친 거리의 색상은 좀 우중충한 편. 수더분하게 꾸민 화단에서 수줍게 웃는 꽃들처럼 사람들의 표정도 무덤덤하다. 획일적인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의 면모도 어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세기별 건축양식을 대비해준다는 삼형제 건물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큰 돔성당이나 감동이 없는 건 매한가지. 그나마 리가성에 자리한 대통령 관저의 앞뜰을 거거는 게 피터성당이나 검은 머리 전당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옛날 군대막사였다는 화약탑을 뒤로하고 접한 정보는 채 50명이 안 되는 교민의 1/3은 교환학생이라는 전언. 에라스무스 장학제도가 있다기에 해설자에게 구체안을 물어도 시원한 대답은 없다. 나중에 알아보니 1987년부터 EU에서 채택한 교환학생 프로그램. 교차로에서 물끄러미 오가는 사람을 응시하는 데이지꽃 장식품처럼 전할 말을 잊은 듯 일행을 태운 리무진은 룬달레궁을 향해 치달았다. 장황한 설명을 집약하면 18세기 봉건 영주의 자기과시용 호화주택. 하지만 제아무리 고상하게 치장하고 유식한 척 떠벌여도 냄새나는 페인트칠을 해대는 바람에 전시공간을 둘러보는 내내 역겨운 느낌이었다. 나오며 보니 흙먼지 날리는 뒤편보다는 그래도 정성껏 꾸민 앞뜰을 기대했는데 웬일인지 그냥 지나쳐버리는 처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 라트비아의 샤울레이 언덕에 세운 십자가 무덤 몇 차례 TV를 통해 십자가 언덕으로 알려진 곳은 필자가 영상에서 확인한 것보다 훨씬 대규모에 기하학적이었다. 그 숫자만 해도 수만 개를 헤아린다더니 정녕 그럴 법하다고 시인할 정도. 한마디로 온갖 형상의 십자가 모형이 죄다 꽂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 높지 않은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동산을 순례지로 택한 듯하다. 좀 떨어진 북쪽에서 학생들이 나오기에 내친김에 그곳까지 가봤더니 미사를 드리는 공간을 마련한 외에는 박물관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거기에 왜 천하대장군을 빼닮은 말뚝을 세워 놓았을까? 영어가 유창한 관리인은 내게 출신지를 물으며 북한의 실상을 풍자했고 남한의 기독교인 숫자까지 관심을 보였다. 대략 20%가 신자라는 답변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데 대해서는 두고두고 부담감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구원의 방주와 십자가의 길이 어디쯤 있는지조차 모를 만치 영적 무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 현장. 저마다 갖가지 모습으로 십자가 우상을 만들어 품속에 안고 돌아간들 참 평안이 깃들 리 만무다. 실로 놀라운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구소련 시절 민족 저항의 상징이었던 샤울레이의 묘지산을 뒤로하고 얼마 가지 않아 마주한 광경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교통사고 현장. 영리한 기사는 잠시 기다리다가 차를 뒤로 돌려 흙먼지 날리는 농로로 차를 몰았다. 금세 본 도로에 진입하는 소로가 나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지만 만약을 위해 안전한 길을 택한 그의 판단력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 문제의 근원은 눈에 뵈는 현상에서 멈출 수 없다는 지점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 부부의 영적 감지는 하나님은 이 사건을 왜 주셨을까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지상인지라 그 이상의 서술은 끝내 자제하겠으나 훗날 복음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벌인 그곳에서 무슨 변고가 발생할지는 미리 발설하지 않기로 다짐하련다. 예수께서 공관복음서를 통해 이르시기를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막 13:2, 눅 21:6)라고 일갈하셨으므로…….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4호)에는 ‘북유럽 기행 - 리투아니아의 독자적 행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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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2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에스토니아 건축의 재발견’ (5회)
    이번 여행에서 필자가 거둔 괄목할 만한 성과라면 에스토니아(Republic of Estonia, 면적: 한국의 43%)에서 발견한 건축미를 들 수 있다. 언뜻 가지런한 시가지는 이미 영상을 통해 주황색 지붕의 아름다움에 익숙한 바로되 이처럼 예술미를 더한 건조물들을 연달아 만나볼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예상치 못했다. 그 중심에 한자동맹의 한 축인 수도 탈린(약 45만 명) 구시가지가 있었다. 인구라야 고작 130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상회하는 까닭 중 으뜸은 일단 IT분야의 초강국.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과 수위 다툼을 벌일 정도다. 다소 길게 이어진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정리해보니 워낙 여러 나라의 침략을 거치는 동안 각국의 건축양식이 바람직하게 가미된 결과일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곳엘 가든지 자연스러운 동선과 함께 매끄러운 노면 상태를 부드러운 보행로의 편리함으로 연결시켜 보는 필자로서는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목한 지점이 창문의 크기와 모양새. 에스토니아 건축물에서는 단순한 획일성을 지양하며 최대한 옆 건물들과의 어울림을 지향한다. 이는 건물의 전체적 조화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자 색다른 안목이다. 대략 현재 라트비아를 포함한 남부지역(당대 명칭은 리보니아)에 영향을 미친 나라들만 꼽아보아도 9세기부터 바이킹의 침범을 당한 이후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의 괴롭힘을 받다가 14세기 덴마크 왕실에 의해 게르만족의 소유로 넘어간다. 16세기 중엽에는 남북이 양분되어 스웨덴과 폴란드에 장악되고 18세기 초 스웨덴에 승리한 러시아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구소련의 연방으로 전락해 2차대전 중 잠시 독일로 이양됐다가 1991년 8월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추구한 건축술의 지혜가 숨어있다.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을 통해 별미를 느끼는 건 그래서다.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오로라 현상까지 관측되는 바람에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니 다수가 꼭 재방문을 고려할 만하다고 여길 정도란다. 아직 한국 교민이라야 25명에 불과하지만 K-Pop의 열기는 이곳에도 전해져 현지인들과 교분은 정교히 다듬은 골목길처럼 계속 순탄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전언이다. ▲ 에스토니아의 탈린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 저녁 식사를 겸한 자유시간에 아내와 발품을 판 곳은 현지 가이드에게 설명을 들은 유적지를 피해 다니는 행보였다. 한껏 반경을 넓혀 주로 신시가지를 돌아보니 조금은 밋밋하지만 걷기 여행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걸린 삼색기의 의미는 파란색은 하늘, 검은색은 나무, 하얀색은 땅을 상징한다는데 한글 모음의 제자원리인 천지인과 닮아있었다. 그중에 나무는 자신들의 근원을 나타낸다는 말에 우리 둘은 대뜸 선악과를 소환했다. 국립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 그리 높지 않은 중앙공원에 앉아 쉬면서 전방을 바라보니 비록 구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는 없었으나 600년의 역사를 지닌 톰페아성을 비롯해 큰 덩치의 넵스키 대성당, 적군을 퇴치하려고 만들었다는 두툼한 마가렛 성탑, 표트르 대제가 바로크식으로 지었다는 카드리오궁, 뱃사람의 수호신을 숭배하는 니굴리스테 교회를 보고 14세기 건립한 비루게이트를 빠져나오던 동선이 어렴풋이나마 떠올랐다. 하지만 제아무리 경건의 모양을 고수한 채 서서 경배의 형식을 취한들 토속신들과 결합한 잡신을 믿는 행위는 한낱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여름 휴양지인 파르뉴. 탁 트인 녹지를 가로질러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말을 듣고 필자는 푸르른 발트해변보다는 고풍스러운 구시가지에 더 관심이 쏠렸다.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차에서 내리니 멋진 리조트와 함께 기다란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래도 양질이지만 유난히 길에서 바닷물까지 길게 뻗은 해안선. 우리 같은 관람객을 맞기 위해 나무데크를 설치할 정도로 일삼아 걸어야 했다. 한두 장 사진을 남기고 아름드리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의 맞은편으로 건너가니 코끼리 상들이 예쁘게 서 있는 놀이터. 나중에 옆자리를 지킨 부부에게 앨범을 보여주니 그냥 지나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 역시 다른 데보다는 다양한 건축미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창문의 크기에 따라 좌우를 달리하고 아래위 층을 번갈아 가며 배치를 달리하는 비결을 터득한 듯하다. 그러니 요모조모 가옥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참고할 부분이 많을 수밖에. 자, 주택의 디자인을 연구하는 자들이여, 부디 에스토니아의 건축미를 눈여겨보시라!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3호)에는 ‘북유럽 기행 - 라트비아에서 감지한 활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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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2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핀란드라는 나라의 확대경’ (4회)
    VIKING LINE은 여태껏 필자가 승선한 배 가운데 최고의 크루즈. 하지만 우리 한국 조선기술의 금자탑을 만끽하며 도착한 핀란드(Republic of Finland, 면적: 한국의 3.3배)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도로에서 조심스럽게 자른 바윗돌의 절단면을 볼 때까지만 해도 배경 지식(1인당 소득 약 4만 달러, 인구 550만가량)에 준한 예상치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걸 송두리째 깨뜨린 곳은 시벨리우스공원. 국민 작곡가를 기리는 흉상이나 파이프오르간의 조형물이야 평균작이라 치더라도 거기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산책로에 짜증스러울 만큼 개똥이 널려있다니 이 나라의 주민의식은 반려견의 배설물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수준이란 말인가? 게다가 벤치 주위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나 전동 킥보드가 여기저기 방치된 한국을 연상케 했다.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벗어나자마자 마주친 노점상은 도리어 인간적이었다. 조잡하게 꾸민 카페도 그렇거니와 카누를 띄운 물이 오염되었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연못에 고인 물마저 바싹 말라비틀어진 채 방치돼있었다. 이런 곳을 두고 수도 헬싱키(약 130만 명)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이라는 해설도 우스운 마당에 공원 가득 웬 꽃가루는 그리도 흩날리는지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지경. 알레르기에 취약한 아내는 결국 자유시간 40분을 그 잘난 공원 구석에서 버티고 견디다가 급기야 몸에 이상증세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이런 경우는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하는 거 아닌감? 엎친 데 덮친다더니 우스꽝스러운 일은 곧바로 이어졌다. 일정에 따라 이른바 템플리아우키오 암석교회라는 데를 데리고 가기에 따라갔더니 첫눈에 천연암석의 기운은커녕 위쪽은 바위를 깨뜨리고 남은 돌덩이들로 벽돌을 삼아 철제 지붕을 덮은 건조물에 불과했다. 암석교회라는 이름으로 입장료를 받으려면 지하로 얼마큼은 내려가 폴란드 소금광산에 조성한 성당이나 요르단 페트라에서 본 무덤처럼 상하좌우 사방이 온전히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하거늘 어찌 이런 장소를 두고 감히 암석교회라고 선전하며 장사를 감행하는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토록 청십자기에 나타난 청정 이미지는 물론 최소한의 신뢰마저 깨진 마당에 어디를 간들 그 가치를 느끼겠는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핀란드 하면 숲과 호수의 나라였는데 그 심상이 이렇게 일순간에 무너져버리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발견한 철제 지붕의 건축미 우스펜스키 대성당에서 내려다본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는 허술할 만큼 평범했다. 다만 그 뒤편 건물의 벽에 붙은 휘장이 남다르기에 인솔자에게 물으니 대뜸 정부청사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원로원 광장에서 만난 건축물 중에 정부청사가 있어 명백한 거짓말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그러잖아도 결정적인 대목(가령 양쪽 귀가 멍멍한 상태에서 물어본 해발 고지를 대충 800m라고 얼버무린다든지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고을에서 제법 밀집한 동네 이름을 물으니 마지못해 툭 반말투의 외마디 소리로 대응한다든지)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는데 차 안에서 설명한 각종 내용이 대체적으로는 해박하다고 수긍한 부분까지 흔들리고 말았다. 내부를 공개하지 않은 헬싱키 대성당의 대안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도 문제점. 차라리 실속 없는 사우나 시설을 대충 훑어볼 게 아니라 런던아이를 닮은 원형 관람차를 타보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는 것이 중론. 걸어서 한 뼘 거리인 마켓광장을 무슨 과일(대부분이 수입품) 시장의 명소인 양 시간을 끌면서 빙빙 돌아가는 행태 또한 지양되어야 하리라. 그나마 건진 것은 국립도서관 겉핥기. 그 서가까지 깊숙이 들여볼 수는 없었으되 석고조형물이 놓인 복도를 빠짐없이 돌아본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넘는 자유시간을 채웠다는 포만감이 있었다. 또 하나 주행 중에 들른 휴게소를 빼놓을 순 없다. 유럽이 아닌 한국식에 가깝다더니 가게가 드문 현지 실정상 아울렛을 겸했으나 적어도 화장실 문화만큼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최악의 사례는 현지 가이드의 무성의한 관광지 해설을 꼽을 수 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건 시종 자일리톨을 개량한 상품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행태. 마치 가이드 둘이서 공조라도 한 듯이 보여 불합리한 일정 진행에 관해서는 귀국 후 본사에 강력히 항의하며 개선책을 제시한 바 있다. 해외여행객에게는 최적화한 세 가지의 주요소가 맞아떨어져야 나들이에 나설 수 있다. 첫째 건강을 담보로, 둘째 시간을 내서, 셋째 비용을 마련할 때라야 가능한 것이 장기나들이이기 때문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2호)에는 ‘북유럽 기행 - 에스토니아 건축의 재발견’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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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스웨덴이 구축한 시공문화’ (3회)
    차창에 비친 풍경이 확 바뀌었다. 막 국경을 통과했다고는 하나 지형을 금세 갈아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더욱 신기한 장면의 연속극. 산악지대에서 갑자기 평원지대로 변신한 까닭은 조물주만이 그 비밀을 아실 터이로되 여행객으로서는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좀 더 거들자면 뚜렷한 차선에 도로의 경계선마다 설치한 차단봉마저 예사롭지 않다. 스웨덴(Kingdom of Sweden, 면적: 한국의 4.5배)이란 나라는 한눈에 세기(detail)에 강할뿐더러 상주인구 천만이 넘는 면모(1인당 국민소득 약 5만 달러)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참이다. 바로 옆 나라처럼 야트막한 관목에 이끼류가 기생하는 바위지대와는 판이한 풍경화. 냉큼 차에서 내려 잘 가꾼 숲속을 실컷 거닐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를테면 그 옛날 스웨덴 왕국의 일면식을 두고 지레 유럽 일대의 도시들 사이에 맺었던 무역공동체, 즉 ‘한자동맹(the Hansa)’의 한 축에 들어선 기분을 애써 소환하는 중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나타난 간판이 ‘IKEA’에 이어 ‘VOLVO’까지 선뵈고 있다면 수도 스톡홀름(약 165만 명)의 첫인상은 일자리 산업이 꿈틀거리는 현대도시의 현주소를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도심에 자리한 호텔에 봇짐을 풀자마자 폭주족이 내는 굉음을 접한 건 꽤나 뜻밖의 일. 하지만 이마저 스웨덴이 허용한 자유의 발산이라고 이해한 건 이튿날 아침이었다. 아내와 나선 산책길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거리와 더불어 대자연을 학습하기에 알맞은 어린이놀이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시설들을 돌아보며 흙모래를 매만지며 맘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어른들의 양육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부럽고 흐뭇했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안전한 그네의 생김새. 자동차 시트처럼 폭 들어가 앉도록 만들어 위험도를 낮추었으니 당장 수입목록에 올릴 만하다. 유사시에 대비한다고 마냥 모험 자체를 차단한 품도 아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는 구부러진 사다리는 훈련용 계단을 연상케 했다. 주위는 흡사 해자처럼 형성된 강줄기. 잔잔히 흐르는 강변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으나 정돈된 상가, 가지런한 주택가, 정갈한 교회당,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서둘러 살펴본 다음 정해진 식사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 내부 중 계단의 예술미 스웨덴이 한때 자긍하던 조선업의 모태는 바사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확인해보니 그 위용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현지 가이드의 목소리에 담긴 줄거리를 요약하면 바사호는 현존하는 17세기 유일한 목재 전함. 바사왕국 구스타프 2세의 지시로 1625년에 건조를 시작하여 1628년 8월 항해에 나서자마자 침몰한 범선이었다. 450명이나 태운 돛단배를 단 2년여 만에 건조한 치열함도 놀랍거니와 과다적체로 인해 가라앉은 배를 급기야 333년 만에 발견하여 1961년 인양해낸 집요함은 더 경이로웠다. 줄줄이 쏟아놓는 해설을 듣자니 생생한 녹화화면이 아니더라도 당대 만천하에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롭게 장식한 사자 왕의 허영심은 사전에 대전함의 종말을 배태하고 있었다. 총길이 69m, 최대폭 약 11.7m, 높이 52.2m의 선박에 실었던 대포나 각종 기구류를 보아하니 아닌 게 아니라 타이태닉 거대유람선의 예고편을 접한 듯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은 매번 그 지혜의 원천이 신의 섭리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영어 낱말인 present가 지닌 뜻처럼 내게 주어진 현재야말로 감사할 선물임을 망각한 채 잘난 척 날뛰다가는 치르는 대가가 혹독하다는 기시감(deja-vu)을 말함이다. 스토크라는 통나무와 홀름이라는 섬을 합쳐 스톡홀름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해설. 그중 시청은 당시 건축술의 모든 요소를 가미한 역작이었다. 비잔틴 양식을 비롯해 바로크, 로코코, 고딕, 르네상스 등 받아적기에도 벅찰 만치 혼합미의 총망라. 다만 그 목적이 국민의 파티장으로 사용할 의도였다면 서사는 달라진다. 멀리 갈 거 없이 눈앞의 호수(식수)에 띄운 민심의 배는 왕가를 태우고 순항할 수도 있으나 정반대로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뗏목섬에 구축한 스웨덴왕궁은 어떨까? 보존된 가구들의 평균치는 기본이 300년. 높낮이를 안정감 있게 설계한 계단은 우리 부부가 가장 높게 평가한 지점이다. 최상층부에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지 않고는 그 영화를 누릴 자격에 미달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긴 시공이랄까. 세심하게 꾸민 곳마다 고품격을 갖춘 시민공원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1호)에는 ‘북유럽 기행 - 핀란드라는 나라의 확대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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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6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노르웨이 자산은 평등사상’ (2회)
    밤새 크루즈를 타고 입성한 인구 550만가량(면적: 한국의 3.2배)의 노르웨이(Kingdom of Norway). 수도 오슬로(약 70만 명)에서의 일정은 문 닫힌 시청 뜰을 잠시 들렀다 왕궁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나라가 12년째 민주주의 지수 1위를 고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해설자는 이곳 초등학교는 주로 노는 법을 가르친다고 귀띔한다. 설령 눈비가 내린다 해도 굳이 맞아가면서 자연스레 참을성을 기른다는 것. 경작 가능한 지역이 3%에 지나지 않아도 어업이나 해운업으로 상쇄한다는 말속에는 1975년부터 영국과 공동 개발한 북해유전에서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힘이 작동하고 있단다. 문제는 1인당 8만 달러가 넘는 소득의 45%가 세금이라는 점. 여기 역시 불투명한 미래보장책으로 인해 고민이 크다는 전언이다. 다소 길게 진술한 역사의 물줄기는 왠지 들을 때뿐이고 기억에 남은 건 왕실의 대가 끊어져 영국도 아닌 덴마크에서 방계 왕자를 빌려왔다는 얘기였다. 그거야 당사자들이 결정할 사안이로되 고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소견대로 행하였다는 구약 사사기(21:25)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과연 사사(士師)를 따랐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가 순탄한 적은 길지 않았다. 시청이나 왕궁에서 눈에 띈 지점은 국가권력이 시민들 가까이서 소통을 꾀한다는 것. 실용적으로 꾸민 화단을 보며 들어선 입구에서 시를 상징하는 백조상을 떠받친 분수대가 눈길을 끈다. 행사 진행으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중앙홀이나 내부에 전시한 유명 예술가들의 헌정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건 부득이한 상황이로되 사전에 좀 더 치밀하게 동선을 짤 수는 없었는지 캐묻고 싶다. 도심을 감싸고 도는 공원 안에 자리한 왕궁의 겉모양은 매우 소박했다. 아내와 뒤뜰을 거닐며 얻은 덤은 진정한 권위는 형식적 의전이나 화려한 치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교훈. 에덴동산을 패러디한 나무 신화는 선악과에서 파생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임을 인정하는 설화로 이해한다. 길거리에 위치한 건조물이 곧 대학 강의실인 유럽의 풍경은 오슬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 노르웨이의 오슬로 비겔란공원에 있는 모노리탄 처음 본 노란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가운데 아이들의 버스킹을 들으며 향한 곳은 비겔란 조각공원. 널따란 부지에 안치한 그의 조각품들은 거의 인간군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전시품 200여 개 중 압권은 단연 17m 높이의 모노리텐. 이는 121명이 뒤엉킨 채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는 기둥으로 숙련공 세 명이 14년간을 매달린 결과란다. 올려다보노라니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레.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죄다 나체이거늘 작가 자신의 형상에만 옷을 입힌 의도는 무얼까?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씨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뒤꼍까지 살펴본 뒤 돌아서려는데 새삼 뭇 인생의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만한 전시공간을 반영구적으로 확보한 데는 비겔란의 수완이 한몫했다는 후문. 말하자면 기증을 조건으로 당국과의 줄다리기에서 많은 걸 얻어낸 셈이다. 하지만 멀리서 공원의 정면을 가린다는 구실로 교회당을 옮기라는 요구는 지나쳤다. 그에 비해 노르웨이가 낳은 불세출의 화가인 뭉크는 미적거리다가 사후 한 세대가 지난 1970년대에 와서야 작품을 박물관에 보관할 수 있었다니 튀는 걸 꺼리는 게 고유한 민족성이라고는 해도 실속을 챙길 기회는 스스로 잡아야 하는 법이렷다. 1년에 한 번씩 전 국민 댄스 타임이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소개에 귀가 솔깃했다. 그 또한 평등사상의 발로요 민주시민의식의 표출이리라. 태생과 직업에 따라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이네들의 최대 자산. 실시간 행복지수는 높을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잔뜩 허세를 부린 플롬열차만 아니었다면 수목의 한계선을 말해주는 장엄한 산세는 더욱 빛날 뻔했다. 푸르른 대지야말로 설산에서 하얀 시냇물이 흘러내리기에 가능한 풍광. 온난화로 인해 지레 녹아내린 듯 산정호수의 물빛에는 에메랄드 색감이 감돈다. 유람선에 올라 빙하가 깎아내린 게이랑에르-헬레슐트 구간 피요르드를 따라 쏟아지는 일곱 자매 폭포수는 구혼자 폭포와 더불어 그야말로 장관. 게다가 피얼란드 영상관에서 본 설경처럼 겨울스포츠의 강국답게 평소 즐기는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강세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1994)을 치르고 향후 유휴시설을 남기지 않은 슬기는 두고두고 화젯거리.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정책의 본질이라면 노르웨이는 분명 성공한 사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0호)에는 ‘북유럽 기행 - 스웨덴이 구축한 시공문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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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9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덴마크는 미래지향적 국가’ (1회)
    무려 열다섯 시간에 이르는 비행에는 감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시공을 어떻게 메우느냐도 각양각색일 터, 필자의 경우는 일단 핸드폰과 절연한 채 방문지의 자료를 뒤적이는 일 외에는 심신을 푹 쉬게 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어렵사리 당도한 덴마크(Kingdom of Denmark)의 수도 코펜하겐(인구: 약 140만 명). 첫눈에 초지가 대부분인 국토는 유순했다. 거꾸로 돌린 7시간의 시차로 인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곧바로 나선 뉘하운 운하(17세기경 개통) 투어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의 일성은 585만 정도 인구(면적: 한국의 43%)의 나라에서 이룩한 자랑거리 일색이다. 그럴 만한 것이 그녀의 말마따나 1인당 63,000달러에 이르는 국민소득이야 고물가를 연동한 구매력 지수를 따져봐야 하겠으나 거리 질서가 확 잡힌 사회상. 무엇보다 자전거도로의 원활한 흐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보행자가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면 배상책임을 지운단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무단횡단하는 가운데 벌어진 교통사고에도 운전자의 과실 여부부터 따지고 드니 거드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놓치지 않는 해외여행 포인트는 아침 식사 전 둘러보는 산책로. 정갈한 골목과 보행로를 걸어보니 역시나 강소국답게 발바닥이 부드럽다. 노면 상태는 장인정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누차 강조하는 이유다. 응당 이들에게서 발견하는 한결같은 가치는 투철한 직업의식. 쾌활한 안내자나 듬직한 선장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러고 보니 유람선을 이끄는 이들은 여인 천하. 수로를 따라 펼쳐지는 시가지 풍경도 동화에 곁들인 그림처럼 싱그럽지만 맛깔스럽게 이어지는 현지 가이드의 입담 또한 쏠쏠하다.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건축양식은 덴마크인들이 창출한 지혜로움. 수로에서 스치는 안데르센의 거주 지역이 세 군데라더니 정수리에 닿을 듯 아슬아슬 빠져나오는 낮은 다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 렌즈들은 연신 명장면을 놓칠세라 주위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눈앞에 즐비한 자전거 행렬을 뒤로하고 왼쪽으로 블랙다이아몬드라고 즐겨 부르는 왕립도서관에 이어 오른편으로는 독특한 디자인의 박물관이 지나간다. 원형과 사각형을 조합한 해군병영은 흡사 바다를 제압하려는 듯한 기세. 코펜하겐이 상업 운하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하고 결코 무관해 뵈지 않는다. ▲ 덴마크의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에서 본 시가지 이른바 비만세(Fat Tax)를 처음 도입한 나라도 덴마크. 2011년 10월 지방이나 설탕, 소금 함유량이 높은 식품에 부과하는 소비세를 전격 시행한 과단성이야말로 돋보이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덴마크는 이듬해 비만세 항목을 폐지했으나 이후 헝가리를 비롯해 프랑스, 핀란드, 멕시코 등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조세를 징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생활 의학 분야가 발달했다는 설명을 듣자니 유난히 유제품의 품질이 뛰어난 건 당연지사. 서해대교를 설계한 이가 덴마크인이라는 점도 놀랍거니와 물밑 주차장, 정교한 잠수함, 다들 꺼리는 소각장 등과 여왕의 거처가 멀지 않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고급아파트의 일정 지분(8%)을 빈자에게 할애하는 사회적 합의라면 수상가옥이면 어떻고 바다 버스 옆에 자리한 포장마차인들 어찌 정겹지 않으랴. 한국인 시민권자가 300여 명인 데 비해 입양아 숫자가 9,000명에 달하는 현실을 보면 이네들의 수준 높은 의식구조를 95%나 차지하는 복음루터교 교인들이 묵묵히 대변하는 참이다. 상생에 기반한 자발적 출산율이 부러운 건 이 나라가 국가 경쟁력 1위에다 일개인을 영웅시하지 않는 풍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리라. 수많은 계단을 딛고 ‘우리 구세주 교회’의 첨탑에 올라간다고 해도 구원은 이신칭의에 근거한 신행일치를 이루지 않는 한 절대 임하지 않는 법. 평범한 목수가 창안한 레고 장난감이 지구촌 시장을 휩쓸고, 지은 지 수백 년이 지나도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안목이 없다면 어릴 적부터 쓰레기를 줍도록 가르치겠는가? 다만 세계 최초로 타투를 고안해 유행시킨 공치사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이는 신체를 훼손하는 일이 불효라는 유교적 이념 이전의 성경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내 차가 떠날 시각을 예고하는 ‘주차시계’야말로 당장 도입할 만한 혜안. 새로 선출된 수상의 얼굴을 보는 절차로 취임식을 대신하는 여왕마저 필요할 때마다 박물관에서 보석을 빌려 쓸 만치 모든 사물의 박물화를 꾀하는 나라. 투명하게 상시 개방하는 시청사에서 풍기는 고품격을 감안하면 게피온 분수 아래 인어공주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덴마크에서는 만날 때 ‘하이’, 헤어질 땐 ‘하이하이’를 거듭하는 인사말도 실용적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9호)에는 ‘북유럽 기행 - 노르웨이 자산은 평등사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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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6
  • [세상사는 이야기] 공원은 도시의 품격
    얼마 전 평택시에는 꽤 널따란 공원이 생겼다(2023.10.31. 개장). 그러나 막상 시간을 내서 ‘함박산중앙공원’을 둘러본 느낌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원래 있는 야산을 최대한 이용한 것까지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로되 총면적 67만1498㎡(22만 평 이상)의 부지를 채운 시설 대부분이 극히 상투적이어서 첫눈에 구태의연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맨 앞에 내세운 ‘숲과 정원의 도시’라는 합목적적 조건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산책로에 어울리는 수종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어야 하는데 짤막한 메타세쿼이아 행렬과 소나무 말고는 휑한 기류가 감돌 만치 나무 그늘이 귀한 데다가 설치한 조형물 가운데 철제품이 많아 늦가을이라는 계절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삭막한 분위기를 상쇄하기에는 미흡했기 때문이다. 대지가 넓어 ‘글로벌존, 오감힐링존, 에코체험존, 예술테마존, 수변여가’의 공간에 ‘오차드가든, 음악분수, 실개천, 에코스쿨, 야외무대, 스포츠필드, 식생체류지’를 애써 조성했으나 평택의 비전을 선포하면서 삼림과 수자원체계의 생태계를 연계할 만한 친환경적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안목이다. ▲ 아내와 함께 둘러본 ‘수원 광교중앙공원’ 앞으로 산림녹지과에서 추진할 과제는 ‘자연, 물결, 거점, 일상’을 하나로 엮는 4대 전략에 맞춘 구체안을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이어나가는 일이다. 도농복합 중대형도시를 이끄는 정장선 시장이 밝힌 내용을 들여다보면, 첫째 ‘자연(ECO)’은 마안산, 백운산, 부락산, 부용산 등에 주제가 있는 숲길의 체계적 정비를 위해 대규모 수목원과 공원들을 만들어 미세먼지를 저감하는 데 중점을 둘 참이며, 둘째 ‘물결(WATER)’은 평택강과 진위천의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해 물결이 빛나는 생태정원도시를 완성하고, 셋째 ‘거점(CENTRAL)’은 함박산중앙공원, 모산공원, 은실공원, 지제역세권공원, 청북레포츠공원, 평택역복합문화광장을 조성해 상주인구 급증에 따른 도시화를 포용할 수 있는 도심지역의 거점 정원을 만드는 한편, 넷째 ‘일상(LIFE)’은 마을 안 자투리땅, 빈터, 골목길 등 일상생활과 가까운 곳에 시민의 손으로 공동체 정원을 꾸려감으로써 행복정원 1천 개소를 가꾸는 시민정원사 교육, 경기정원문화 박람회, 도시숲 더하기 생활밀착형 정원, 마을정원, 숲정원 등 향후 ‘시민참여형 정원도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차제에 여태껏 산책을 겸해 쉬어본 다른 도시의 공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어제 아내와 함께 수원의 ‘다산공원’과 ‘광교중앙공원’을 돌아보고 나서는 솔직히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세련미 넘치는 시설물을 구경하며 세 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녔어도 전연 피곤하지 않았거니와 아기자기한 유아숲체험원에다 흙바닥을 벗 삼아 건강을 지키는 모습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왜 공원마다 시멘트를 덧입혀야 하는지 퍽 의문이다. 안양의 ‘평촌중앙공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발상을 추동하는 공간에 기울어진 집만큼 이색적인 게 있을까? 걷기 편한 보행로의 정체는 빤하다. 두셋이 무리를 지어 지나쳐도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은 만큼 넓고, 무엇보다 발바닥이 닿는 땅의 기울기가 평평해서다. 빗물이 흘러야 한다는 이유로 경사가 지나치면 몸의 균형이 무너져 조금만 걸어도 체형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잖은가? 마땅히 건물 출입구에 계단을 설치해야 한다. 왜 건물주의 실수를 보행자들이 감수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울퉁불퉁, 움푹 파인 보도블록을 어쩌랴. 이는 일본의 범례를 벤치마킹하시라. ▲ 최근 개장한 평택시 ‘함박산중앙공원’ 모름지기 세금으로 조성하는 공원은 시민들의 공공재요 쉼터다. 그렇다면 시정 책임자는 공원이 단지 홍보물이나 전시물처럼 보이는 데 그치지 않도록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시간 전화를 받기는 힘들 테니 현장에다 중지를 모으는 건의함을 운영하라고 권유한다. 제아무리 개인적인 경험칙이라도 바람직한 사례라면 공유하는 것이 지름길로 가는 지혜가 아니겠는가? ‘함박산중앙공원’을 찾아가는 길목에 안내표지판이 아직 없다는 점도 지적사항이다. 언필칭 ‘고덕국제신도시’라는 명칭에 걸맞게 천변 보행로를 보강하는 일도 시급하다. 부득불 땜질할 데가 생기면 짜깁기하듯 정교하게 마무리할 일이며, 옆 녹지공간에 어울리는 상·하위 수종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꽃나무 식재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수변공원의 무성의한 설계는 단순히 재고하라는 말로 갈음할 게 아니라 시가지에 접어들면서 눈에 확 띄는 랜드마크를 공모하는 쪽으로 고민할 사안이다. 모쪼록 무슨 일이든지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대충 때워서는 절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걸 차세대에 일러주라는 노파심이면 좋겠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8호)에는 ‘북유럽 기행 - 덴마크는 미래지향적 국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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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세상사는 이야기] 배추를 위한 송가
    해마다 김장철이면 특별히 밀려드는 생각이 있다. 다름 아닌 배추의 짧은 일생에 관한 얘깃거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김장재료를 보러 가게에 들렀다가 때마침 괜찮은 물건이 보여 조금은 이른 시기에 일괄 구입에 나섰다. 주섬주섬 고른 재료만 해도 배추 다섯 망(총 15포기), 통무 다섯 묶음, 쪽파, 양파, 갓, 마늘, 생강, 새우젓, 멸치액젓 등을 사는 일은 도왔으나, 배달된 물건들과 다 담근 김치통을 나르는 일 외에는 별로 거들 일이 없었다. 옆에서 가끔 흘끔거리며 살펴본 바로는 이른바 채수를 만드는 과정부터가 수월치 않았다. 그나마 돋보인 건 모은 양념을 섞는 과정에 무채의 양을 대폭 줄이고 무를 갈아 쓴 슬기였다. 다만 거실과 발코니에 한판 벌여놓은 걸 앉아서 지켜보는 마음이 그리 편할 리 없었다는 것. 일정 부분이라도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건 그래서다. 그런데도 한사코 자신이 홀로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말릴 방법 역시 여의치 않았거니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일에 나섰다가 본의와는 달리 걸리적거릴 수 있겠다고 여겨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김장 대열에서 빠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본시 내가 붙인 이 글의 제목은 ‘일곱 번의 죽음’이었다. 짐작한 대로 통배추가 맛있는 김치가 되기까지 무려 일곱 단계를 거친다는 공정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그것도 농부가 씨앗을 심어 김을 매고 양분을 공급한 다음 하늘의 섭리에 힘입어 다 자랄 때를 기준으로 따져본 전제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억센 손길에 의해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서슬 퍼런 칼날이 허연 배를 가를 때 두 번 죽고, 수줍은 속살을 천일염 소금으로 절일 때 세 번 죽고, 매운 고추와 짜디짠 젓갈로 버무릴 때 네 번 죽고, 흠뻑 신맛을 내느라 발효를 기다리며 다섯 번 죽고, 독에서 꺼내 도마에 놓고 토막을 칠 때 여섯 번 죽고, 이윽고 입속에서 잘리고 씹히면서 일곱 번 죽는 일생인 참이다. 뒤돌아보아도 어느 거 하나 거저 이루어지는 과정은 없다. 각 단계마다 정성 어린 손길이 아니고서는 끼니에 없어서는 안 될 메뉴요 밑반찬이 될 리 없다. 흥미로운 지점은 밑반찬이란 용어가 1960년대 이후부터 문헌상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구태여 김치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겠으나 발효식품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진 셈이다. ▲ 이충동에서 산책하다 만난 채소밭 그러고 보니 포기김치 매니아이던 나는 어림잡아 십수 년간을 매일같이 김치볶음밥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갔다(야간자율학습 당번일 때는 두 개씩).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내가 싸준 사랑으로 꼬박 정년을 채운 뚝심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매년 삼십 포기를 웃돌게 담그던 김장이었건만 요 몇 년 사이 내 입맛에 이변이 생겨 벌써 이태째 반절로 줄이는 일이 일어났다. 그만큼 아내의 입술이 터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에서는 일견 바람직한 현상이기는 해도 분명히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터임에는 틀림이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중에서 김치를 사서 먹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갸우뚱하는 눈초리를 은연중 드러내 보이곤 했는데, 어느덧 나이가 법적 노인의 반열에 들면서 눈에 띄게 근육이 줄더니 일주일에 한 번가량 찾던 육류를 이제는 두세 번 먹게 되어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여담이로되 여고에 재직할 때 제자들은 내가 던진 아재 개그에 사춘기 웃음보를 터트렸는데, 대학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추는 즉시 동시에 포기김치도 덩달아 포기해야 한다는 농담이었다. 어느 누군들 단 한 번 사는 생애에 일곱 번의 죽음을 불사한 적이 있는가? 아니 단 한 번만이라도 남을 위해 희생이나 헌신까지는 아니라도 양보나 손해를 감수한 일이 있었는지 캐묻고 싶다. 모르긴 해도 연약한 육신과 영악한 정신을 가진 인간은 통 큰 이해는커녕 작은 배려조차 인색한 게 엄연한 현실이 아니던가? 가늘게나마 고운 마음이라도 먹어보았는지 조심스럽게 진단하는 참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이를테면 미련할 만큼 땅만 파고 살았던 빈농에서 자라났다. 다행히 나어린 나의 주위에 갑질하는 마름은 없었으나 수시로 노동 현장에 나가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고달픈 기억이 남아있다. 남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고역을 치렀기에 겨우내 허기를 때웠고, 들기름을 부어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기만 해도 마치 돼지고기로 배를 두둑이 채운 포만감을 추억할 수 있으리라. 배추들은 오늘 참을성 없는 우리를 보고 무어라 말할까? “그것이 저의 길이라면 기꺼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죽고 또 죽겠습니다.”라고 되뇔지도 모른다. 삭혀서 없어질망정 썩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7호)에는 ‘공원은 도시의 품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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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8
  • [세상사는 이야기] 시코쿠 가가와 기행 ‘인공을 방비한 자연미’ (후)
    그렇다면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올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대자연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데 다수는 이의를 달지 않을 터. 왜일까? 인공을 방비하는 주체가 자연미 자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굳이 성경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로마서 1:20)라는 구절을 보면 왜 창조세계에 흩어진 온갖 사물이 그토록 숭배대상이 되는지를 알아차릴 만한 지점이렷다. 일본 전역에 퍼진 신사만 해도 10만여 곳을 헤아리고 모시는 잡신만도 8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생명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데서 오는 두려움이 그 원인이다. 다시 말해 연약한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죽음이기에 피조물을 코앞에 놓고 끊임없이 빌고 엎드리는 기복신앙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무속(shamanism)이란 허상인 게다. 가령 길가에서 객사한 영혼을 위해 정성껏 위로비를 세워주는 수고를 보면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나오시마 둘레길 18.4km를 일주하며 느낀 바는 섬을 가득 채운 무성한 수풀 말고는 별반 볼품이 없더라는 점이다. 그다지 볼거리가 없었기에 산업폐기물 처리장으로 낙점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한 대목. 이를 일거에 살린 이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1941년생)였다. 그는 동양의 자연 관조 사상을 현대적으로 추상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며 유명세를 치른 인물로, 역설적으로 그만의 아트 프로젝트를 거쳐 섬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대반전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솔직히 예술의 섬이라는 별칭은 그저 관능적 수사일 뿐 문외한의 눈에는 자연보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어떤 감흥보다는 일부 관객의 적극적 호응을 끌어냈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하다. 미야노우라항을 기점으로 해안선을 걷다가 이우환 야외작품을 만난들 작가정신에 깃든 전문지식으로 소상히 풀어내지 않는 한 무슨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라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위치감각에 의지해 길을 찾아 걷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어디서나 골목길에 눈길이 가는 필자의 취향에 따라 여기저기 둘러보며 궁금증을 풀고 요모조모 물어가며 목적지에 다다른 게 소득이었다. ▲ 나오시마 야외 전시장에서 본 이우환 작품 시코쿠무라(四国村)를 찾아나선 길. 가이드가 가리킨 대로 가와라마치(瓦町) 역까지는 순탄했다. 그러나 기차 시간표는 무용지물. 일본어 방송으로 뭐라고 알려준 거 같으나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고, 몇 사람에게 물어도 토막 영어조차 모르니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꼬박 한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무사히 내린 S06번째 역명은 고토덴야시마(琴電屋島). 눈치껏 도착한 곳은 에도시대 가옥 23채를 재현한 민속촌이었는데 입장요금은 따끔했고 일일이 살펴보기는 따분했다. 기껏 칭찬한 일본의 특장점이 하나둘 사라지는 현장. 울퉁불퉁 깔아놓은 돌판이 돌아다니기 불편한 데다 순차적으로 돌아보도록 설계한 구성은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화장실은커녕 잠시 쉴 만한 의자조차 없었고 자판기는 딱 한 곳뿐이어서, 거지반 언덕배기를 차고앉은 옛집들이나 시설물들을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과연 끝까지 구경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다가 겨우 찾아낸 핑곗거리인즉, 그 옛날엔 다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을 거라는 추정치랄까? 그나마 가부키라도 공연했다면 좋았으련만 그마저 공친 채 돌아서는 걸음이 무거웠다. 돌아가는 길도 어떻게 될지 몰라 서둘렀다. 고샅길을 기웃거리며 역사로 가 차표를 끊으려니 500엔짜리를 자꾸만 토해냈다. 현지 젊은이한테 도움을 청하니 새 동전이 먹히지 않는 걸 알고는 선뜻 바꿔줘 해결했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 흘리는 푸념처럼 정말 첨단과 구태가 뒤섞여 종잡기 어렵다고 하니 옆에서 선명한 우리말이 들렸다. “일본은 그런 게 잘 안 바껴요!” 그렇다면 다카마쓰 시내에 방치된 중앙공원의 현재는 인공미도 자연미도 아닌 셈이다. 모기에 물릴 만치 방역에 소홀한 채 물을 아끼려고 논두렁을 시멘트 공법으로 정밀히 다진다 한들 그 또한 인공물이긴 마찬가지. 비록 히라가나 철자는 서툴렀으되 사흘 밤을 묵은 호텔 미화원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지난 사흘간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 그간 길을 친절히 가르쳐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인 한은숙+조하식 드림”. 탁자에 남긴 천 엔은 헌금을 드리는 마음으로 전한 성의 표시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6호)에는 ‘배추를 위한 송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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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3-12-20
  • [세상사는 이야기] 시코쿠 가가와 기행 ‘자연을 방불한 인공미’ (전)
    규슈(九州, 쓰시마 별도),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에 이은 시코쿠(四国, 370여만 명 거주) 단기방문은 남달리 감회가 새로운 여정. 무려 8년 반 전 무렵 주말에 출발했다가 갑자기 현지 일대에 불어닥친 극심한 폭풍우로 인해 아쉽게도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불시에 나타난 곳은 다카마쓰(高松) 공항 검색대. 탐지견이 우리 부부의 가방에서 구수한 누룽지 냄새를 맡았는지 내용물을 샅샅이 뒤지는 동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인적 물적으로 느끼는 정서는 매사 예의 바른 몸가짐과 동선이 편리한 정교함.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낸 아름다움이 기실 자연을 방불한 인공미를 자아낼 수 있다는 걸 실체적으로 감지하는 건조물에서 늘 감탄하는 바가 있거니와 열 길 속마음이야 어찌 됐건 매번 남을 배려하는 관습에서 배우는 바가 적잖아서다. 왜들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의 바람직한 사례를 받아들이는 데 퍽 인색하다 못해 불필요한 관행이나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앞세우는 걸까? 첫 탐방지는 고토히라(琴平). 유독 계단(785개)에 약한 무릎을 감안해 조즈산(해발 538m) 중턱쯤에 자리한 신사 대신 상점가 입구에 있는 킨료노사토 주조기념관부터 들러보았다. 한눈에 방문객들이 돌아보기 편안한 건물구조. 매년 지역 궁에서 바다의 수호신(곤피라상이라는 애칭으로 불림)을 향해 제를 올리던 청주 ‘킨료’를 만들던 회사의 양조장을 개축한 공장 터답게 커다란 고목 한 그루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고, 마치 제주(製酒) 당시 여건을 그대로 재현한 듯 공정을 빠짐없이 살펴볼 수 있도록 이동로를 구석구석까지 잘 짜놓았다. 밖으로 나오니 나그네의 손길을 유혹하는 가지런한 몬젠마치(상점가). 하지만 우리 부부의 눈길은 이곳 공익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海の科学館’을 지나 오래된 마을 공회당(琴平町公会堂)으로 향하고 있었다. 1932년에 지은 일본식 전통 목조건축물이었는데 웅장한 팔작지붕에 나름 고풍스러운 자태를 지녔고 운치 있는 정원을 갖췄으나 막상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에 걸맞은 관리상태는 미흡해 보여 아쉬웠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우동 맛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서는 발걸음. ▲ 야시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카마쓰 시가지 야시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카마쓰 시가지는 때마침 붉은 노을이 물들어 눈이 부신 역광이었지만 얼핏 보아도 도시 규모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했다. 해안선을 따라 상주인구 41만여 명이 모여 사는 고을은 이곳을 관할하는 가가와현(香川県) 외에 에히메(愛媛), 도쿠시마(德島), 고치(高知)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명에 더해, 관련 자료에는 기와지붕 모양의 산맥을 배경으로 이어진 쇼도섬의 도후치 해협(土渕海峡)은 폭이 9.93m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좁은 바닷길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아리송했다. 저 멀리 뵈는 세토대교는 혼슈의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와 가가와현 사카이데를 잇는 현수교. 철도와 도로가 있는 병용교로서는 세계 최장이란다. 다시 눈길을 여기로 돌리면 겐지와 헤이케 일족의 전투가 벌어진 장소. 안타깝게도 작년 축제의 산물로 지은 용트림 형상의 곡선 관망로를 직접 걸어보지는 못했으나 절간 경내에 들어오며 훑어본 진언종 옥도사(屋島寺) 본방의 쌍방향 대결형 수직 옥개와 두루 복을 가져다준다는 너구리의 상징물로도 그 의미를 충분히 가늠하리라. 린츠린(栗林) 공원의 자연스러운 인공미는 가히 일본 정원의 백미로 부를 만했다. 16세기 후반 사토 씨를 시발점으로 사누키 지방의 영주인 다카토시가 내리 5대 백 년간에 걸쳐 조성했다는 별장 지대. 시운산 자락이 열두 폭 병풍처럼 둘러싸인 천혜의 지세도 그렇거니와 산기슭을 벗 삼아 흐르는 시냇물이 6개의 연못이며 13개의 동산을 만드는 데 결정적 조건이었음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안내서를 보니 에도시대 초기의 다이묘 정원으로써 적절한 토지분할과 자연석 배치가 뛰어나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들과 어우러진 천여 그루의 싱싱한 소나무들을 매일 분재처럼 감상할 수 있다는 찬사가 결코 과언이 아니다. 모름지기 심미에 바탕을 둔 인공과 자연의 조화로운 정취라고 못박아도 무방한 수준의 역작. 평소 조경에 조예가 깊기를 갈망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게 정녕 진경산수화가 아니면 뭐냐고 되묻고 싶다. 그야말로 일보일경(一步一景), 즉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른 경치가 보이는 가운데 압권은 ‘쓰루카메마쓰’, 곧 학과 거북소나무가 짝을 이룬 모습. 1875년 현립공원으로 일반에 공개했으며, 1953년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었단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5호)에는 ‘시코쿠 가가와 기행 - 인공을 방비한 자연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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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3-12-14
  • [세상사는 이야기] 청와대 탐방 뒷얘기
    일찌감치 시외버스에 올라 강남 한복판에 내릴 때만 해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은 들었다. 대체로 걸리적거리는 게 많지 않은 보행로도 그렇거니와 줄지어 늘어선 건조물들이 나름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으니까. 곧바로 올라탄 광화문 방향의 시내버스 또한 승차감은 합격점. 그런데 남산을 넘어가는 차창 밖 풍경은 오래된 병풍에 가까웠다. 이곳을 떠난 지 어언 한 세대가 흘렀건만 그동안 바뀐 게 없는 건지, 아니면 내 눈에 비친 오늘이 어제를 그리워하는지 아리송한 일이로다. 우리 부부는 하차 지점을 앞당겨 남대문을 갓 지난 지점에서 내렸다. 이를테면 실시간 화폭의 보폭을 대폭 넓힌 터인데, 고맙게도 중간에 들른 은행지점 화장실은 여태껏 이용한 편의시설 가운데 단연 으뜸이로되, 굳이 대로변 광장을 파헤쳐 전면 재시공했다는 광화문공원은 거의 낙제점이다. 눈에 익은 교보문고를 그냥 지나치고 정부서울청사를 애써 외면한 채 주위를 흘끔거린 거 말고는 딱히 소환할 게 마뜩잖았다는 말도 빠뜨릴 수 없다. 식상한 나그네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 두 분은 작금의 이 나라를 어떤 심경으로 바라보실까? 청와대를 향해 걷는 도중에 잠시 경복궁 내 옛 정원을 둘러보았다. 그래서일까? 궁궐 동편을 휘감고 걸어가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담장을 수리하는 인부들의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질뿐더러 게을러 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도대체 떨어뜨리는 횟가루에 묻혀 죽어가는 맥문동 군락은 어찌할 셈이람? 기실 이번 정부를 맡은 이들이 청와대를 내치며 내뱉은 언사는 퍽 무모했다. 주권을 가진 국민은 단 한 번도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지 않은가. 애당초 인수위라는 데서 국방부는 물론 합참본부 예하 기관들을 점령군처럼 줄줄이 내쫓아버린 갑질도 모자라 취임 첫날부터 마치 북한을 따라 하듯 꽃을 들고 달려가도록 종용한 연출부터 연일 밀려드는 빤한 민원 처리까지 부실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총 1조 원에 달하는 연쇄 이사비용(추정치)을 전 부처에서 막 끌어다 쓰면서도 국민의 기본적인 알 권리는커녕 외교부 공관을 내친 뒤 대통령 관저를 옮기는 과정에서 누출한 온갖 불법적 사례는 추후 감사와 수사를 통해 철저히 밝혀내야 할 지점이렷다. ▲ 청와대 본관 앞에 선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여유가 있어 청와대 사랑채를 돌아보고 경내로 들어갔으나 아직도 입장시각은 한참 전. 내친김에 동선을 바꿔 청와대 외곽 담장을 끼고 오르는 산행길에 나섰다. 촘촘히 박힌 경비초소들이 눈에 좀 거슬리긴 해도 눈 아래 경관이 빼어나니 고점을 매길 만했다. 이윽고 춘추관을 지나 뉴스 영상을 통해 보던 대정원이 관람객을 맞았다. 차례로 청와대 본관으로 들어가니 누구의 발상인지 중앙계단에 어두운 카펫을 까는 바람에 칙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말았다. 휑한 집무실보다는 영부인의 응접실에 더 정감이 가는 거야 어쩔 수 없더라도 나중에 지은 상춘재에마저 선뜻 눈길이 가지 않는다면 이는 외양을 떠나 건축미가 뒤떨어진다고밖에 다른 해명이 필요할까? 문외한의 눈동자에 들어온 상춘재 역시 고아한 한옥의 자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실망감은 관저에 가서는 숫제 절망감으로 나락(얽거나 감아서 뭉뚱그림)했다. 한눈에 여름나기는 무덥고 겨울나기는 매서운 구조였기 때문에. 게다가 요즘 자주 써먹는다는 영빈관도 건축학적으로는 내어놓을 만한 게 없으니 잔뜩 기대감을 안고 찾아온 외빈들에게 면이 설지 의문스럽다. 아닌 게 아니라 대충 한 바퀴 훑어보니 별 볼 일이 없더라는 전언이 허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대통령 관저를 세종시에 서둘러 마련해야 마땅하다. 우리나라만이 지닌 고전미에 정치한 섬세미를 얹어 새로운 한옥의 진면목을 선보이라는 주문이다. 천하제일복지는 원래부터 정해진 텃세가 아니라 애써 가꿔가는 터전임을 알려야 한다. 덤처럼 청와대를 찾아가다 만난 명소들이 정작 청와대를 돌아보고 남은 기억보다 뇌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닌가. 기껏 청와대를 거닐며 스멀거리는 일들로 인해 그 잡념이 내내 사그라지지 않더라는 쓴소리다. 만에 하나 여기저기 심어 놓은 기념 식수들이 없었다면 그 역사적 의미마저 한껏 퇴색되었겠다는 노파심인 게다. 바로 옆 유서 깊은 왕궁처럼 한 나라의 상징적 장소로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과학적 보존과 체계적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리라. 비록 미확인 정보이긴 하지만 유사시를 대비한 지하 벙커나 비상 탈출로 같은 비밀장소가 있다면 부디 노출하지 않기를 권한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어쩌다 서울에 행차하는 날이면 나른함이 진한 건 왜일까?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4호)에는 ‘시코쿠 가가와 기행 - 자연을 방불한 인공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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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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