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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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페스는 모로코인들의 정신적 수도. 시가지에 수천 개의 모스크가 드물지 않게 마을마다 늘어서 있다. 하지만 덤처럼 10개가량의 교회당에 유대교 회당 5개가 더 있다는 설명이다. 단 선점한 타종교를 인정하되 그 이상 포교는 금지돼 있단다. 무슬림은 금요일, 유대인은 토요일, 기독교인은 일요일이 안식일. 뒤이어 정성껏 금박을 입힌 옛 왕궁 앞에서 멋쩍게 포즈를 취했는데 성문 밖 샛길은 미로에 가까웠다. 고분고분 가이드를 따라 재래식당에 간 건 그래서였다. 아라비안나이트 풍의 도심을 파고들어 꾸스꾸스를 맛보았다. 밀가루를 좁쌀처럼 빚어 과일, 배추, 닭고기를 집어넣고 쪄낸 전통식. 약간의 뜬 내 말고는 희한하리만치 내 입에 맞았다. 흐뭇이 지켜보던 아내가 맛깔스레 무친 채소요리를 권했다. 그러나 덥석 물었다간 자칫 큰일이 나겠다 싶어 호기심을 억누른 채 ‘막판에 속이 뒤집어지면 골치 아프다’고 사양했더니 뒤집어진다는 표현이 우스웠는지 다들 크게 웃었다. 배가 불러 푸짐하게 내놓은 오렌지 후식도 드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뿔뿔이 흩어져 빠져나오려니 아니나 다를까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상주인구 155만에 달하는 메디나(Medina)에서 가장 좁다란 골목길. 기실 모로코 여행의 백미는 길라잡이가 쥐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평화가 당신과 함께’라는 뜻의 인사를 건네는 키 작은 노인. 몇 마디 우리말을 익혀두었다.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왼쪽, 오른쪽, 계단, 똑바로!” 등 일행을 안내하는 데 익숙했다. 태네리 염색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미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밀집 구역을 잰걸음으로 지날 때는 바짝 정신을 차려야 했다. 통로가 14개라는 명문대학의 측문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목하 기둥이 241개나 늘어선 상가를 헤집고 지독한 비둘기 똥내를 맡으며 그 현장을 찾아가는데 아내 역시 코를 막고 괴로운 표정. 유독 나만은 유년시절 양계장집 아들의 내성(?)이 작동한 참인지 견딜 만했다. 다만 실온은 쾌적하여 발가락이 고슬고슬했다. 이윽고 당도한 가죽염색공장. 여기저기 가판을 벌려놓고 원색으로 물들인 가죽제품을 사가라고 판촉에 열을 냈으나 선뜻 살만한 물건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열악한 작업여건. 저러고도 과연 인체가 견뎌낼까 근심스러울 지경. 천년 공법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며 기존방식을 고수하는 이네들의 모습에서 이쯤에서 무엇을 얻고 버릴 것인가를 헤아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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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페스의 염색작업 현장

 

희귀한 구경을 마치고 왕궁을 둘러싼 돌담을 끼고 돌아나가는 길. 그런데 버스에 오르자마자 난처하게도 카메라에 이상 신호가 떴다. 당황한 나머지 옆 사람에게 문의하니 뾰족한 수가 없다는 표정.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매만지다가 흘끔 창밖을 보니 대단위 공동묘지. 준비를 철저히 했더라면 무탈할 일을 성급한 마음에 흔치 않은 장면을 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사진기를 붙들고 한참 씨름한 끝에 겨우 작동이 된 건 그나마 다행. 기분 좋게 고개를 드니 교각을 지탱하는 축대에 스페인풍의 정교한 공법이 묻어났다. 새파랗게 색칠한 페인트 행렬. 그래서인지 농축산 단지를 개발한 지혜는 괄목할 만했다. 공터가 있어 바깥바람을 쐴 겸 밖으로 나오니 지중해성 기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훈풍. 길가에 늘어선 식물의 이파리에도 윤기가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수도인 라바트(Rabat)는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란다. 단 나쁜 일은 왼손으로, 좋은 일은 오른손으로 처리하는 습속을 지켜온 것처럼 금기시하는 것이 많은데 특히 왼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엄금이라고 일렀다.


토지는 거의 왕실 소유. 새삼 빈부격차를 논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천양지차란다. 황무한 사하라사막과 해발 4,184m의 아플라스산맥을 빼고는 국토 전체가 곡창지대일 정도로 비옥한데도 종교 교리와 제도적 미비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 물론 한때 소수 지식인을 중심으로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등 개혁운동이 일어났으나 하산 2세가 틀어쥔 절대 왕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여태껏 제정일치 시대의 정치체제에 꽉 묶여 있단다. 하긴 독재자가 혜안을 갖추고 일사불란한 통치권을 행사할 때 오히려 비약적인 도약을 이룬 예들이 있긴 하다. 예컨대 무려 1,0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 건설에 우리 업체가 참여하는 등 양국 정상의 빅딜로 아프리카를 잠식하던 중국의 힘을 대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이전부터 비교적 관계가 원활한 스페인이 관개수로 완성 계획에 적극적이어서 이를 기반으로 터키에 이어 1987년부터 EU에 가입을 타진하고 있다고 하니 부디 개방의 호기를 잘 활용하길 바랄 뿐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9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라바트의 하산탑을 올려보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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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페스와 메디나를 돌아다니다’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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