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기야 대한민국의 출생률이 0.72명(2023년 기준)까지 내려앉았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Korea is so screwed. Wow!. That is, I've never heard of that low a fertility rate.). 이는 줄곧 여성과 노동, 계급 문제를 연구한 조앤 윌리엄스(72,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무례를 무릅쓰고 내뱉은 말이다. EBS ‘다큐멘터리 K-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제작진으로부터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이 0.78명이란 사실을 전해 듣고 머리를 움켜쥔 참이다. 게다가 2024년 1/4분기 통계지표를 보면 이미 0.68명으로 떨어져 이제는 ‘극초저출생률’이란 신조어를 써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고로 그 숫자를 두고 국가비상사태나 다름없다며 큰 전염병이나 전란도 없이 이만큼 낮은 출산율은 처음 본다는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닌 건 홍콩이나 싱가포르와도 경우가 다르다. 왜 유독 한국만 그럴까? 매사 돈의 가치를 앞세우는 한국의 물신주의 문화에 초점을 맞춘 석학 윌리엄스의 지적이 더욱 뼈아픈 이유다.
이러한 국가적 재앙을 불러오기 전의 근대화과정을 소환하면 굳이 그녀의 원인분석이 아니더라도 최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부작용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단적인 예로 특히 여성들은 사랑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부득불 경력 단절을 겪게 되고, 설령 이를 악물고 버틴다 한들 근무 평점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떠안고 있으니 말이다. 역지사지해보시라, 어느 누가 전방위적 불이익을 감수한 채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싶겠냐는 반문이다. 윌리엄스의 일침 그대로 한국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한국 정부에서는 가정과 일을 병행하면서 이세를 책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다. 눈앞의 현안을 푸는 열쇠는 그대로 놔둔 채 OECD 가입국의 평균 합계출산율(1.59명, 2020년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사안을 해결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지적이다. 그녀는 여태껏 저출생 유발의 주요인을 방치하는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어긋난 가족 시스템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만난 초등생들
무엇보다 경영자나 운영자의 현실 인식에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기껏 젊은 여성들을 공들여 훈련한 뒤 막상 엄마가 되면 노동 시장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려지는 국내총생산(GDP)을 역산해보면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당장 필요한 조치는 일하는 방식의 혁명적 혁신으로써 해마다 간헐적으로 발표하는 금전적 지원책만으로는 해묵은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연례행사처럼 천문학적 예산 가운데 극히 일부를 선심 쓰듯 쥐여주며 출산을 강요하는 듯한 정부 시책은 이미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지 않은가? 실제 2021년 미국에서 17개 선진국 성인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가족’이라고 답했으나, 한국인들만은 ‘물질적 풍요’를 골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정복지 차원에서 ‘보육’에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도 필요하지만, 자녀의 취학 전 6년 만이라도 생애주기에 맞게 경직된 직장문화부터 쇄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필자의 견해는 출산 여성들을 근무 평점에서부터 우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끝으로 윌리엄스 교수는 언제든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요구하는 한국의 ‘이상적인 근로자상’에 대해서는 “남성이 가장이고 여성은 주부인 1950년대에 맞게 설계된 모델”이라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나쁜 시스템”이라고 일갈한다. 심지어 “한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집안일은 8배, 자녀 돌봄은 6배 더 많이 하고 있으며, 남성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대가로 자녀를 돌보며 느낄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한 사회가 됐다”라고 잘라 말한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역설적으로 “That is amazing(엄청나네요)”라는 말에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적기라는 의도적 인식을 벗어나 골든 타임이라는 긍정적 의식마저 쉬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라는 다소 냉소적일 수 있는 언사마저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나서서 인구소멸이라는 중차대한 국면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다음, 그간 변죽만 울리던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여 국무총리에게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을 맡김으로써 주택 우선 분양 정도의 미시적 처방이 아닌 거시적 대책을 내놓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2호)에는 ‘사라진 산성을 찾아서’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