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세상사는 이야기 증명사진.jpg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스페인의 ‘타리파(Tarifa)’ 항구를 통해 들어간 아프리카대륙. 지브롤터해협이라야 불과 14km 바닷길이어서 40여 분 만에 육지가 나타났다. 수월하게 당도한 ‘탕헤르(Tanger)’ 항구는 한눈에 허름했다. 차일피일 미룬 끝에 밟아보는 미지의 땅. 그때 누군가 상주인구 4천만에 가까운 모로코(Morocco)를 채 4만에도 못 미치는 모나코인 줄 알았다며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특이한 건 입국 절차. 그냥 타고 온 버스에 앉은 그대로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건 편리함을 넘어선 큰 행운이란다. 만약 현지 차량을 빌릴 경우에는 코를 찌르는 냄새로 인해 내내 시달려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30분이 다 지나도록 버스는 좀체 움직일 줄 몰랐다. 가까스로 현지 가이드를 내세워 급행료(?)를 얹어주고서야 어렵사리 출입국 관리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탕헤르는 인구 130여만 명이 상주하는 자유무역항. 한때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분할 점령했던 땅이다. 그곳을 떠나자마자 금세 어둠이 밀려왔다. 흡사 밀물에 떠밀린 갯벌 체험객처럼 찾아든 CHELLAH 호텔은 예고와는 달리 전화기도 없고, 화장실 변기 덮개마저 온전하지 않았다. 다만 부실하다던 저녁 식탁은 의외라 싶게 풍성해 수프, 빵, 고기, 사과, 바나나에 식수까지 제공했고, 침실에 놓인 침대 또한 누울 만했다.


눈을 뜨니 주일 아침, 가이드의 호들갑스런 예고편에 지레 겁부터 먹었으나 아내가 잠들기 전 바퀴벌레를 퇴치한 일 말고는 그런대로 기분이 괜찮았다. 조촐한 조반 역시 그만하면 합격점, 뜨뜻미지근하다는 요구르트는 신선했고, 영상으로만 보았던 전병은 고소했다. 해외여행 중에는 늘 그래왔듯이 둘이서 예배를 드린 뒤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이른 6시 반 페스(Fes)로 향하는 길. 희뿌연 안개를 제치고 달려가는 도중에 유목민들의 주거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베르베르족의 움막들. 뒤이어 모로코 최초의 알카라위인대학교가 나왔다. 마치 샌드아트처럼 옥토와 박토가 번갈아 스쳐 지나가는 차창 풍경. 간간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조야말로 여기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해박한 가이드의 해설이 이어졌다. 이곳의 기업들은 죄다 국영이지만 시장경제체제는 분명히 작동하고 있어, 비록 과학기술은 보잘것없어도 철광석 등 지하자원 매장량이 풍부하여 각국이 앞다퉈 자원외교를 벌이는 중이란다. 특히 무기화합물인 인산염(燐酸鹽)은 부럽게도 지표면에 그대로 노출돼 있단다.


세상사는 이야기.JPG

▲ 아침나절에 만난 모로코 탕헤르 항구의 후경

 

저만치 솔숲 위를 날아가는 외기러기. 바로 옆 늪지에는 오리 떼가 헤엄을 치고 있다. 이따금 풀을 뜯는 소와 양들도 보였다. 야산에는 선인장들이 자라나고 길가에 유칼립투스가 줄지어 서 있는 건 지중해가 가깝다는 것. 다만 유칼립투스는 독성을 풍겨 주위에 다른 수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데, 바로 그때였다. 아뿔싸, 달리는 버스를 향해 달려들 듯 나란히 달리는 애들이 보였다. 위험천만해 뵈기에 대뜸 물으니 엔진의 한쪽 구석에 찰싹 달라붙어 바다를 건너보려는 시도라고 했다. 저토록 생명을 걸고 사력을 다한들 뜻하는 바를 유럽에서 이룰 수는 없겠지만 희망 없는 현실을 탈출하려는 몸부림까지야 어쩌랴. 한결같이 안쓰러운 얼굴들. 그 틈에 세계적으로 드문 육지염전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는 노아 홍수의 결정적인 증거물. 즉 사십 주야를 퍼붓는 빗줄기에 바닷물이 뒤섞여 여기저기 고인 염분이 말라붙은 터였다. 그렇게 생겨난 데가 사해 같은 염호를 비롯해 소금산, 암염 등인 줄을 왜들 모르는지 안타깝다. 비록 가공을 거친다지만 이들에게는 절실한 생필품이다.


어쨌거나 무자비한 십자군 원정 이후 이웃의 돌팔매질을 견디다 못해 새로이 개척한 땅이었으나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아닌 헛된 잡신을 섬기는 종교문화가 똬리를 튼 게 원인이었다. 나면서부터 숙명처럼 택한 외길이었기에 던지는 피드백이다. 포장은 했으되 비포장에 가까운 길. 그렇게 얼마를 내달린 끝에 제법 헌칠한 휴게소에 들렀다. 30분간의 휴식시간에 바지런히 주변을 둘러보니 둔덕에 펼쳐진 드넓은 초지가 궁금했다. 정답은 건초를 수출하는 나라. 그 모퉁이 깡마른 당나귀 두 마리를 끌고 거친 밭을 갈며 살아가는 촌부들의 삶은 적잖이 고달파 보였다. 양분이 모자라 까칠하게 자라나는 올리브나무 중 잘생긴 한 그루를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열매를 털어 일일이 자루에 담는 모습이 끄히 원초적인 데다가 대지 또한 미개발 상태여서 대기는 맑을 듯싶은데 자꾸만 콧물이 흘러내려 호흡기를 괴롭혔다. 까닭인즉 체감온도는 우리네 환절기여서 고질병인 비염이 도진 터. 아, 이 고통은 언제쯤 멈추려나?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8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페스와 메디나를 돌아다니다’가 이어집니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다’ (1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