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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平澤市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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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평택시사(平澤市史) 기사

  • 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옥길리·율북리’ 지명 유래
    옥길리, 조선시대 수원부 청룡면... 1914년 신기·가사·옥길 통합 율북리, 조선시대 양성현 율북면... 1914년 밤뒤·불정·상가천 통합 ▲ 청북신도시개발 전의 옥길1리 윗말(2007) ◆ 청북읍(靑北邑) 옥길리(玉吉里) 조선시대 수원부 청룡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신기·가사·옥길을 통합해 옥길리라 했다. 무성산에 군사가 주둔할 때 감옥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청북지구 택지개발로 원옥길과 신기마을 대부분이 폐동됐다. 1. 원옥길(元玉吉): 옥길1리의 자연지명이다. 2. 가사(佳士): 옥길2리의 자연지명. ‘개사리’라고도 한다. 바닷가에 모래가 아름다워 유래됐다. 3. 기산: 옥길3리의 자연지명. ‘퇴미’라고도 한다. 무성산 아래에 터를 잡아 유래됐다는 말이 전해온다. 4. 신기(新基): 옥길4리의 자연마을.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새터’라고 했던 것이 한자로 ‘신기’가 됐다. ◆ 청북읍 율북리(栗北里) 조선시대 양성현 율북면 지역이었다. 1914년 밤뒤·불정·상가천을 통합해 밤뒤의 한자지명인 율북리라 했다. 1. 원율북(元栗北): 율북1리의 자연지명. ‘밤뒤’라고 부른다. 2. 내촌(內村): 율북2리의 자연마을. 안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3. 상가천리(上佳川里): 옛날 하천 변에 있는 마을. 잦은 홍수로 폐동됐다. 4. 장계동(長桂洞): 율북3리의 자연지명. 5. 상현리(桑峴里): 율북4리의 자연지명. 마을 모퉁이에 고개가 있고 그 옆에는 밭이 있어 뽕나무고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상현’이라 했다. 6. 불정(佛井): 율북5리의 자연지명. 옛날 풍수쟁이가 이곳에 절을 짓고 정결한 우물을 파놓으면 마을에 복과 덕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실천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처말’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9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토진리(土津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1-21
  • 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백봉리·삼계리’ 지명 유래
    백봉리,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 1914년 백봉·조염동 통합 삼계리,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1914년 독개와 통합 ◆ 청북읍(靑北邑) 백봉리(栢峰里)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 지역이다. 1914년 백봉·조염동·벽동·평촌을 통합해 백봉리로 했다. 1. 백봉: 백봉1리의 자연지명. 본래 조선 태조 때 왕자의 난으로 피신한 여섯 왕자가 숨었던 곳이라고 해서 ‘육자지’라고 했는데, 형제들이 피신한 곳을 알게 된 이방원이 왕자들을 찾아내 죽이면서 오뉴월 삼복더위인데도 눈이 내려 산을 하얗게 덮었다고 해 그 뒤 ‘백봉(白峰)’으로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2. 벽동(璧洞): 백봉2리의 자연지명. 본래 ‘두팽이’ 또는 옛 마을이라는 뜻에서 ‘구실’이라고 했던 것이 ‘구슬’이 됐고 이것을 한자로 ‘벽동’이라고 했다. 3. 벌말: 구슬에서 안탑모퉁이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 순흥 안씨들이 많이 거주했다. 4. 도렴동·평촌: 백봉리의 자연마을. 진위천의 침식작용으로 폐동됐다. 5. 백봉산: 본래 육자지산으로도 부르다가 나중에 백봉산이 됐다. 산성이 축성됐으며 3·1운동 당시 안화리의 안육만 등이 만세를 불렀다. ◆ 청북읍 삼계리(三溪里)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지역이다. 1914년 독개를 통합할 때 마을 앞 하천이 삼합류하는 곳이라고 해서 삼계리라 했다. 1. 원삼계(元三溪): 삼계1리의 자연마을. 윗말과 아랫말로 구분된다. 2. 옹포(瓮浦): 삼계2리의 자연지명. 조선시대 양성현의 해창이며 조선후기에는 포구상업이 크게 발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동척농장의 곡식들과 공출미가 반출됐던 곳이다. 3. 신촌(新村): 삼계3리의 자연지명. 1882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분말’로 부르다가 1939년 원삼계 마을과 나뉘면서 ‘신촌(새말)’이라고 했다. 4. 월곡(月谷): 삼계4리의 자연지명. 달처럼 타원형의 계곡이라고 해서 ‘달마골’ 또는 ‘월곡’이라고 했다. 5. 신영촌: 삼계 5리의 자연지명. 한국전쟁 뒤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해 형성됐다. 6. 성곡(城谷): 마을이 산성山城의 골짜기에 위치해 유래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7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어소리(魚沼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1-07
  • 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고렴리·고잔리’ 지명 유래
    고렴리, 1914년 감미동·고란평·발오곡 병합해 화성군 양감면에 편제 고잔리, 고잔 지명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곶(串) 안쪽에 위치해 유래 ◆ 청북읍(靑北邑) 고렴리(古念里) 양성현 감미면의 중심지다. 1914년 감미동·고란평·발오곡을 병합해 고렴리라고 해 화성군 양감면에 편제됐다.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당시 평택시 청북면(현재 청북읍)으로 편입됐다. 1. 감미동: 고렴1리의 자연마을. 감미부곡의 중심이어서 ‘감미동’, 주민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하다고 해서 ‘개미굴’로도 부른다. 아랫말·중간말·웃말로 나뉜다. 2. 늘언: 고렴2리의 자연마을.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에 제언을 쌓아 간척해 유래됐다. ‘발오곡’, ‘발오동’이라고도 부르며 ‘점촌’, ‘뱃터’와 같은 지명이 있다. 3. 고란평(古蘭坪): 고렴3리의 자연마을. 고란(皐蘭)이 많이 나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 청북읍 고잔리(高棧里) 양성현 감미면 지역이다. 1914년 후수리·전평·중평·후평·고잔리·대곡·목진면 후평리를 통합해 고잔리라 했다. 고잔이라는 지명은 지형이 바닷물이 들어오는 곶(串)의 안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1. 후평(後坪): 고잔1리의 자연마을. ‘뒤들’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래됐다. 2. 전평(前坪): 고잔2리의 자연마을. ‘앞뜰’에서 유래했다. 3. 도마지: 고잔과 고염리를 합쳐 도마지라 한다. 조선시대 핍박을 받던 고령 신씨가 도망쳐 피신한 곳이라고 해 유래됐다. 보한재 신숙주의 사당 고잔묘가 있다. 4. 원목(原木): 고잔4리의 자연마을. 제언(원둑)을 쌓은 간척지의 입구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5. 대곡(大谷): 고잔5리의 자연지명. 본래 ‘큰골’이라고 했는데 한자화 됐다. 6. 서대곡(西大谷): 고잔8리의 자연마을. 본래 ‘서대울’이라고 했다. 7. 중평(中坪): 전평(前坪)과 후평(後坪)의 가운데 있어 유래됐다. 8. 농곡(農谷): 경작지가 많은 지역이라는 뜻. ‘논골’이라고 한 것이 한자화 됐다. 9. 혁명촌(革命村): 고잔6리의 자연마을.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연백사업장을 간척하면서 형성된 마을. 5·16 군사정변 뒤 분동되면서 ‘혁명촌’이라 했다. 10. 청룡(靑龍): 고잔7리의 자연마을. 1970년대 말 대청댐 수몰민들이 이주한 마을로 충청도의 ‘청’과 용의 기운으로 마을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용’을 넣어 이름을 지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6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백봉리(栢峰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31
  • 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죽리·창내리’ 지명 유래
    죽리,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1914년 대죽동·소죽동 통합 창내리, 조선후기 직산군 언북면... 조선후기 5군영 가운데 하나 ◆ 오성면(梧城面) 죽리(竹里)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지역이다. 본래 ‘죽동’, ‘댓골’로 불렀던 것을 1914년 대죽동·소죽동·소겸당리를 통합해 죽리라 했다. 1. 방울: 죽1리의 자연마을. 1914년 이전에는 ‘소겸당리’라 했다. 마을 뒷산이 매의 형국인데 방울이 달린 자리에 마을이 자리를 잡아 유래됐다. 2. 소죽동: 죽4리의 자연마을. ‘작은댓골’ ‘고군뱅이’라고도 한다. 3. 대죽: 죽3리의 자연지명. ‘대죽골’이라고도 한다. 4. 신죽: 죽2리의 자연마을. 한국전쟁 뒤 댓골 옆에 새로 형성돼 ‘새댓골’ 또는 ‘진흥굴(기능골)’이라고 했던 것을 1970년경 분동되면서 ‘신죽’이라 했다. 5. 즘말: 죽리의 자연마을. 옹기를 굽던 ‘점말(촌)’의 변음이다. 6. 대소골: 종자공급소가 들어서고 마을이 커져 분동되는 과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 오성면 창내리(倉內里) 조선후기 직산군 언북면 지역이었고 1914년 창내리가 됐다. 조선후기 5군영 가운데 하나였던 수어청 둔전(屯田)의 곡식을 저장했던 창고가 있어 유래됐다. 1. 원창내: 창내1리의 자연마을. 가장 먼저 생긴 마을로 본래는 ‘창안말’이라고 했다. 2. 구창내: 창내2리의 자연지명. 분동되면서 원창내 주민들이 옮겨와 살았다고 해 유래된 지명이다. 3. 신창내: 창내3리의 자연지명. 가장 늦게 만들어진 마을에서 유래됐다. 4. 동창(東倉): 창내4리의 자연지명. 창내리의 동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5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고렴리(古念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24
  • 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양교리’ 지명 유래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지역... 1914년 양교동과 대겸당리 통합 ◆ 오성면(梧城面) 양교리(梁橋里)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지역이다. 양교3리 대겸당리에 숙성면사무소가 있었다. 1914년 양교동과 대겸당리를 통합해 양교리라 했다. 1. 원양교(元梁橋): 양교1리의 자연마을. 개울을 건너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고 해 양다리라 했다. 2. 고렴(高念): 양교2리의 자연마을. ‘삼태평’, ‘태끌이’, ‘개각뿌리’, ‘구래미’와 같은 자연지명이 있었는데 고렴은 구래미에서 음을 빌려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3. 신흥동(新興洞): 양교3리의 자연마을. 본래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분가촌’으로 부르다가 ‘신흥’으로 고쳤다. 4. 대겸당(大兼堂): 양교4리의 자연지명. 옛 숙성면의 면소재지였다. 집안의 노복까지도 큰 집에서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한다. 5. 여수(麗水): 양교5리의 자연마을. 샘물이 맑고 풍광이 수려해 유래됐다. ‘여술’이라고도 부른다. 6. 문장자고개 : 여술에서 새터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 문장자고개 전설이 전해온다. 7. 신기(新基): 양교6리의 자연마을. 8. 오봉산: 양교리 북쪽을 비보(裨補, 도와서 보충함)하는 산. 봉우리가 다섯 개였지만 흑연광산 개발로 현재는 두 개만 남아있다. 9. 형제산: 양교6리 새터 서쪽의 산. 봉우리가 3개여서 ‘삼정승산’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4호)에서는 ‘평택시 오성면 죽리(竹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17
  • 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신리·안화리’ 지명 유래
    신리, 1914년 수원군 언북면 중대와 고두면 신리 통합 안화리, 조선후기 진위현... 1914년 주교동 일부 통합 ◆ 오성면(梧城面) 신리(新里) 고려 때 오타장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수원부 오타면과 진위군 고두면 지역이었다. 1914년 수원군 언북면의 중대와 고두면 신리(새터)를 통합해 신리(新里)라 했다. 1. 삼궁원(三宮院): 신1리의 자연지명. 조선후기 궁방전이 있었다. 배다리가 있어 주교포라고도 한다. 2. 신대(新垈): 신2리의 자연지명. ‘새터’의 한자지명이다. 3. 삼동촌: 신3리의 자연지명. 궁리의 다라고비진과 연결된 뱃터가 있었다. 4. 중대(中垈): 신4리의 자연마을. ‘중새터’라고도 부른다. ◆ 오성면 안화리(安化里) 조선후기 진위현 오정면. 1914년 주교동의 일부·안화·송대를 합해 오성면 안화리라 했다. 안화라는 지명은 최초 입향 세력인 순흥 안씨들이 마을이 번창하라는 뜻에서 지었다 한다. 1. 원안화(元安化): 안화1리의 자연지명. 본래는 진위천 옆에 마을이 형성돼 홍수가 잦았기 때문에 ‘우다내’라고 했던 것을 순흥 안씨가 거주한다고 해서 안화라고 했다. 2. 송대(松垈): 안화2리의 자연마을. 본래 마을 공동우물 옆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솔터’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송대’라고 했다. 3. 소금배·바다내·태편: 안화1리의 자연지명. 바닷물이 드나들던 시기에 소금배가 닿았다고 해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3호)에서는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梁橋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15
  • 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당거리·숙성리’ 지명 유래
    당거리, 조선후기 충청도 직산현... 1914년 안두리·동원리와 통합 숙성리,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현재 오성면의 면 소재지 ◆ 오성면(梧城面) 당거리(堂巨里) 조선후기 충청도 직산현 언북면 지역. 1914년 당거리·안두리·탑현(塔峴)·안원리·동원리를 합쳐서 당거리가 됐다. 1. 탑현(塔峴): 당거1리의 자연마을. 길음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탑이 있어 ‘탑고개’라 했다. 탑을 섬기는 탑신령이라는 무당이 살았다. 2. 원당거(元堂巨): 당거2리의 지명. 길옆에 엄나무 당목으로 형성된 마을제당이 있고 아홉 무당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3. 길마원(吉馬院): 당거3리의 마을지명. 오성들을 간척하며 길마로 제언을 쌓아 마을과 경작지를 만들었다고 해서 유래됐다. ‘길마지’라고도 부른다. ◆ 오성면 숙성리(宿城里)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1914년 숙성리·대조두리·소조두리·월량촌을 통합해 숙성리라고 했다. 오성면의 면 소재지로 오성면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해 각종 관공서와 공공시설이 밀집됐다. 1. 원숙성(元宿城): 숙성1리의 자연마을. ‘잔재’, ‘시장’, ‘주막거리’와 같은 자연마을로 형성됐다. 2. 대조두(大潮頭): 숙성2리의 자연마을. ‘큰조머리’라고 한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에서 유래됐다. 3. 소조두(小潮頭): 숙성3리의 자연마을. ‘작은조머리’라고 한다. 조금 때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에서 유래됐다. 4. 숙신대(宿新垈): 숙성4리의 자연마을. 근대 전후에는 ‘수원새터’라고 불렀다가 1914년 이후 숙성리가 속하면서 ‘숙신대’라고 했다. 5. 시장: 숙성5리의 자연마을. 숙성리장이 열렸던 곳이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2호)에서는 ‘평택시 오성면 신리(新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03
  • 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교포리·길음리’ 지명 유래
    교포리, 조선 후기 직산현... 갑오개혁 뒤 수원군에 편입돼 길음리, 조선 후기 직산현... 1914년 미촌·승량면과 통합해 ◆ 오성면(梧城面) 교포리(穚浦里) 조선후기 직산현 언북면과 숙성면 지역이었다가 갑오개혁 뒤 수원군에 편입됐다. 1914년 언북면 교포·숙성면 주교동 일부·진위군 고두면 교포리·송호리를 통합해 교포리라 했다. 1. 원교포(元橋浦): 교포1리 다리근처의 한자지명이다. 2. 송호(松湖): 교포2리의 마을지명으로 궁방전이 많아서 ‘궁말’이라고도 부른다. 3. 월량촌(越梁村): 교포3리의 마을지명으로 ‘똘건너’가 한자화된 것이다. ◆ 오성면 길음리(吉音里) 조선후기 수원부와 직산현 지역이다. 1914년 길음리·미촌·승량면, 미촌·언북면 홍원(弘院)을 통합해 길음리라 했다. 1. 원길음(元吉音): 길음1리의 자연지명. 안성천 갯가여서 땅이 질어 ‘질음’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길음으로 표기했다. 마을 형국이 닭을 닮아서 ‘계음’이라고 했던 것이 길음이 됐다는 설도 있다. 2. 내탑(內塔): 길음2리의 자연지명. 당거리 탑현의 안쪽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안탑골’이라고도 부른다. 3. 미촌(美村): 길음3리의 마을지명. 안성천 갯가의 끝에 위치해 ‘미삐’라고도 부른다. 4. 양성말: 조선후기 양성현 땅. 해방 후 안성천의 침식작용으로 폐동됐다. 5. 홍원: 양성말과 안중읍 대반리 사이의 마을. 간척으로 형성됐지만 안성천 침식작용으로 폐동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1호)에서는 ‘평택시 오성면 당거리’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01
  • 평택시史로 보는 ‘고덕면 여염리·율포리’ 지명 유래
    여염리, 조선시대 진위현 지역... 삼성전자 건설 2013년 폐동 율포리, 조선시대에는 양성현·진위현 지역... 1914년 통합해 ◆ 고덕면(古德面) 여염리(余染里) 조선시대에는 진위현 고두면 지역. 1914년 성두(성머리)를 병합해 진위군 고덕면 여염리로 편제됐다. 여염이라는 지명은 ‘여(余)씨가 이룬 마을’이라는 설과 ‘일반인(평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으며,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2013년 폐동됐다. 1. 성두(城頭): 여염1리의 자연마을. 마을 주위로 방축리 성터가 둘러싸여 있는데 성(城)의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 유래됐다. ‘성머리’라고도 부른다. 2. 임주(任珠): 여염2리의 마을. 마을 뒷산의 형세가 용이 여의주(珠)를 희롱하는 형상이라고 해 유래됐다는 설과, 옛날에 임금님이 지나다가 하루 묵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3. 아사리벌: 여염3리의 마을.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조건이 나빠 유래됐는데 한국전쟁 뒤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마을규모가 커졌다. 4. 용우물: 여염2리 임주 마을에 있는 공동우물. 이괄의 난 때 발이 다 자라지 않은 용이 나와 하늘로 승천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 고덕면 율포리(栗浦里) 조선시대에는 양성현 소고니면과 진위현 고두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소고니면 율포리를 통합해 율포리라 했다. 1. 방죽말: 율포1리의 마을. 예부터 마을에 방죽이 있어 유래됐다. ‘동촌’이라고도 한다. 2. 율포(栗浦): 근대 이전만 해도 밤나무가 무성한데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포구浦가 발달해 유래됐다. ‘중촌’, ‘방개울’이라고도 한다. 3. 이화동(梨花洞): 율포3리의 마을. 마을 주변에 배 과수원이 많아 배꽃이 만발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이월동’이라고도 한다. 4. 구방죽: 방죽말에서 가장 먼저 쌓은 저수지. 5. 양성말: 밤개울의 자연마을. 조선시대에 양성현 소고니면에 속했다. 6. 아홉거리: 밤개울 뒤 산등성이의 거리. ‘아옥거리’라고도 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0호)에서는 ‘평택시 오성면 교포리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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