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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平澤市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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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평택시사(平澤市史) 기사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비전동’ 지명 유래
    조선 후기 큰길가에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 ‘비전’이라 부르면서 유래 ▲ 동삭동 아파트 밀집지역(2021.10.01.) ◆ 비전동(碑前洞) 비전1동·동삭동·죽백동·청룡동·월곡동·동삭동 일부 지역과 비전2동 소사동·용이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며, 비전1·2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다. 조선시대 진위현 병파면 지역이었고, 1914년 병남면으로 통합됐다. 조선후기 큰길가에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 또는 ‘비전(碑前)’이라고 부르면서 유래됐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때 어인남리·산직촌·양성군 구룡동면 창리·서재곡의 일부를 병합해 병남면 비전리라 했다. 1986년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동이 됐고, 도시 발전에 따라 비전1·2동으로 분할됐다. 1. 어인남리: 비전2동 관할의 자연마을. 덕동산 동쪽에 위치했으며 조선후기에는 ‘남리(南里)’라고 불렀고 지금은 ‘어인남리’ 또는 ‘어린내미’라고 부른다. 양성 이씨와 순흥 안씨가 많이 거주하며 일제강점기 계인조합이 조직돼 ‘계인’이라고도 부른다. 2. 자란(紫蘭): 비전1동 관할의 자연마을. 본래 원곡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어서 ‘재랭이’, ‘당재’라고 부르다가 2000년 경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자란’으로 고쳤다. 무속인들이 많이 거주해 ‘당골’이라고도 한다. 3. 은성(銀城): 자란마을 고갯마루의 이름. 평택천주교회 평택성당 뒤에 1,3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정’ 또는 ‘은성’이라고 했다. 4. 산직촌(山直村): 소사벌택지지구 안에 있었던 자연마을. 주변지역에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인 과수농장을 중심으로 배 과수농업이 발달해 ‘이곡(梨谷)’ 또는 ‘배나무골’이라고도 불렀다. 2008년 전후 소사벌택지지구 조성으로 폐동됐다. 5. 문화촌(文化村): 한국 전쟁 뒤 피난민들이 정착해 피난민촌이라고 부르다가 문화촌으로 바꿔 불렀다. 문화촌 남동쪽 지역은 1960년대 전후 전라도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전라도촌’이라고 구분해 불렀다. 6. 상신작로(上新作路): 평택여중사거리에서 한전 평택지사 사이 도로변에 형성된 마을. 옛국도 38호선 변 신작로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7. 하신작로: 옛 국도 38호선 평택여중 사거리에서 성동초등학교 사이의 신작로에 형성된 마을. 8. 낙촌: 삼각산 뒤쪽에 형성된 마을. ‘낭떠러지기’라고도 부른다. 본래 천주교인들이 운영하는 옹기점이 있었고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가 1990년 택지개발에 따라 단독주택단지가 조성됐다. 9. 삼각산: 자란마을 뒷산. ‘자란산’ 또는 ‘재랭이산’으로도 부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자란마을의 제당이 있었다. 10. 덕동산: 1978년 4월 충혼탑이 건립돼 ‘충혼산’ 또는 ‘탑산’이라고 부르다가 1986년 평택시 승격을 기념해 산 정상에 덕동루를 세우면서 ‘덕동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1. 매봉: 신한중고등학교 뒷산. ‘응봉산’이라고도 한다. 일제가 작성한 조선고적조사 자료에는 ‘용봉산’ 또는 ‘매봉산’이라고도 기록됐다. 기우단이 있어 신성하게 여겼다. 12. 배다리저수지: 소사벌택지지구 안에 있는 저수지. 13. 부처지골: 덕동산 동북쪽 골짜기. 전통사찰 명법사가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9호)에서는 ‘평택시 합정동(蛤井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7-01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평택동’ 지명 유래
    구 평택시 번화가로 평택역·상가·식당 밀집... 각종 관광 위락시설 집중돼 ▲ 평택역과 시가지 드론 촬영(2021.1.18) ◆ 평택동(平澤洞) 경부선 평택역 앞에 형성된 평택리가 시작이다. 평택리는 한국전쟁 이후 시가지 중심이 철로 동쪽으로 옮긴 뒤 중부출장소는 평택1·2·3리, 서부출장소는 4·5·6·7리를 관할하게 했다. 1986년 평택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1·2·3리는 평택동이 됐고, 4·5·6·7리는 서부동이 됐다. 평택동은 구 평택시의 번화가로 평택역과 공공기관, 상가와 식당들이 밀집했고, 각종 관광 위락시설이 집중돼 있었다. 1. 평택역: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설치된 기차역.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크게 파괴돼 종전 뒤 철로 동쪽(평택동)으로 옮겼다. 2009년 민자역사가 건축되고 역 구내에 AK플라자 평택점(애경백화점)이 입주했다. 2. 새시장: 평택읍 시절 평택1리 지역. 1963년 평택읍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통복시장 이전을 추진하기 위해 새시장 조성공사를 시작했다가 중단한 마을이다. 지금은 식당들이 밀집하고 평택지역 대표음식인 폐계닭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아서 먹자골목 또는 폐계닭골목으로 부른다. 3. 명동골목: 평택읍시절 평택2리 지역. 1953년경 시가지의 중심이 철도 동쪽으로 옮긴 뒤 식당과 술집·상가들이 밀집한 최고의 번화가다. 4. JC공원: 평택이 한국청년회의소(한국JC)의 발상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한국JC는 주한미제5공군 정훈장교 메닝스포츠우드 중위에게 소개받은 평택지역 12명의 젊은이들이 서정빈을 중심으로 1951년 12월 23일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1952년 2월 ‘평택청년애향사업회’가 조직됐고 점차 확산이 돼 ‘한국청년회의소’가 설립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8호)에서는 ‘평택시 비전동(碑前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6-24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통복동’ 지명 유래
    조선시대 진위군 병파면... 통복천 갯가에 위치해 ‘통복개’라 불러 ▲ 통복동 시장 로터리(2013) <출처 = 평택시사> ◆ 통복동(通伏洞) 조선시대 진위군 병파면 지역이었다. 통복천 갯가에 위치해 ‘통복개’, 통복천에 보(洑)를 축조하고 주변에 마을이 형성돼 ‘통복보’라고도 불렀다. 한국전쟁 뒤 도시가 철도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현재 통복시장 일대까지 확대됐다. 1. 원통복(元通伏): 통복동의 본 마을이다. 진위군 병파면에 속해 ‘상통복’ 또는 ‘윗마을’이라고도 했다. 2. 하통복(下通伏): 원통복의 아래쪽에 형성된 마을. 진위군 성남면에 속해 ‘아래통복’이라고도 했다. 3. 신덕리(新德里): 조선시대 충청도 평택현 지역으로 신덕포가 있던 포구마을. 원평동 제방 너머에 마을이 형성돼 ‘뚝너머’라고도 불렀다. 4. 고평(高坪): 통복 육교 서쪽에 위치한 마을. 지대가 높은 곳에 마을이 형성돼 ‘높은들’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고평’이라고 했다. 5. 창월(倉越): 조선시대 순화군의 궁방전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너머에 있던 마을. 안성천 제방공사로 폐동됐다. 6. 화촌(華村): 안성천변의 포구마을. 아산만 일대의 상선과 고깃배들이 드나들고 상거래가 이뤄지던 포구로 홰나무가 무성해 유래됐다. 7. 낙촌(樂村): 옛 통복시장 우시장에서 통복동 북동쪽까지 형성된 마을. 1960년대만 해도 옹기점이 있어 ‘점촌’이라고도 했다. 8. 통복시장: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을 받아 원평동과 평택장이 파괴되면서 1953년 삼거리 동북쪽에 새로 조성된 시장. 1950~60년대에는 싸전(미곡시장)과 우시장이 유명했으며 지금은 채소전·생선전 등을 중심으로 명성을 잇고 있다. 9. 동삼거리(東三巨里): 통복시장 동북쪽 옛 우시장 근처. 평택시가지가 동쪽으로 넘어오기 전 평택-안성 간 국도 38호선과 평택-원곡 간 신작로가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통복시장 내 가축시장이 형성돼 속칭 ‘개전로터리’라고도 부른다. 10. 서삼거리(西三巨里): 일제강점기 경부선 평택역에 설치되고 국도1호선과 국도38호선이 건설되면서, 1호선과 38호선이 교차하는 삼거리가 형성돼 유래됐다. 일제강점기 삼거리 주막이 있었으며, 한국전쟁 뒤 평택장이 통복동으로 넘어온 뒤에는 시장로터리라고 부른다. 11. 통복지하도: 본래 철도건널목이 있던 자리라 ‘땡땡거리’라고 했지만 1980년대 초 지하차도가 건설됐다. 12. 통복천: 안성천의 지류. 천덕산에서 안성시 원곡면을 거쳐 통복동과 세교동 사이를 흐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7호)에서는 ‘평택시 평택동(平澤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6-17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원평동’ 지명 유래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으로 평택역 설치되면서 형성된 마을 ▲ 일제강점기 1등 도로(국도 1호선)와 원평동(2013) <출처 = 평택시사> ◆ 원평동(原平洞) 1905년 1월 1일 경부선철도 개통으로 평택역이 설치되면서 역 앞에 형성된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평택리라고 했다가 1986년 평택시 승격과 함께 서부동으로 편제됐다. 1992년 6월 원평동으로 고쳤다. 1. 본정통(本町通): 일제강점기 평택역 앞에 형성된 중심거리. 일본어로 ‘혼마찌’라고 하며 ‘한 도시의 중심이 되는 거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했으며 일본인 주택·상가·창고 등이 밀집했다. 2. 평택역광장: 원평동 옛 평택역 입구에 조성된 광장.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집회와 운동회가 열렸다. 3. 평택장: 일제강점기 원평동에 형성된 조선인 시장. 평화병원에서 옛 군청 사이에 있었고 싸전거리가 유명했다. 4. 1등도로: 평택역 앞 동쪽에서 서쪽으로 연결된 옛 국도1호선. 도로 좌우에 상업은행 평택지점·금융조합·정거장·읍사무소 등이 있었다. 5. 용잔: 일제가 경부선 철도건설을 하고 남은 철도부지. 철로 옆에 있고 면적이 넓어서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운동회가 열렸다. 6. 평택우시장: 일제강점기 평택초등학교 터에 있었던 소 매매시장. 한국전쟁 뒤 평택장이 통복동으로 옮겨가면서 우시장도 함께 이전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6호)에서는 ‘평택시 통복동(通伏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6-10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신장동’ 지명 유래
    조선후기 탄현면 지역... 1914년 신장리·제역동 통합돼 신장리로 불러 ▲ K-55 미공군기지 앞 신장쇼핑몰 ◆ 신장동(新場洞) 조선후기 탄현면 지역이었다. 1914년 신장리와 제역동이 통합돼 송탄면 신장리가 됐다. 조선후기 장시(場市)가 있어 ‘신장(新場)’ 또는 ‘새장터’라고 불렀다. 1. 구장터: 신장1동의 자연마을. 진위현의 읍치(邑治) 봉남리에서 진위현 해창이 있던 고덕면 해창리로 나아가는 육로교통과 진위천 수로교통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장시(場市)가 열렸던 마을이다. K-55 미공군기지 비행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으로 기지지역으로 수용돼 2010년 송북동 동안마을로 집단 이주했다. 2. 새장터 거리: 옛 신장리의 우리말 이름. 3. 제역동(除役洞): ‘제골’, ‘지골’이라고도 부른다. 신사무옥(新巳誣獄) 때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기묘명현 최수성(崔壽城)을 영의정으로 추증하면서 무덤 주변 10리 안의 주민들에게 묘역의 정화에 힘쓰라고 부역을 면제해주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면서 기지촌의 중심이 됐다. 현재 영천 관광호텔 일대다. 4. 남산터(南山)터: 신장1동의 자연마을. 남산 아래에 마을이 형성돼 남산터라 했다. 5. 목천(木川): 지산천에 떠내려 오는 나무를 건져 땔감으로 사용했다 하여 ‘나무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목천’이라 했다. 6. 밀월동(密月洞):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한 뒤 형성된 마을. 수풀이 우거진 곳에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됐다. 7. 송월동(松月洞):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한 뒤 형성된 마을. 소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달이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5호)에서는 ‘평택시 원평동(原平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6-03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송북동’ 지명 유래
    1981년 송탄시로 승격되면서 형성된 행정동... 송탄지역 가장 북쪽에 위치 ▲ 송북동의 중심마을 우곡 ◆ 송북동(松北洞) 1981년 송탄시로 승격되면서 형성된 행정동이다. 송탄지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유래됐고 송천·건지미·신흥·우곡·오좌동·오리골·동막을 관할하고 있다. 1. 송천(松泉): 1970년경 탄현(炭峴)에서 분리되면서 정해진 명칭. 지산천 옆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2. 건지미(乾芝): 조선후기 건지산리로 통상 윗건지미만을 의미. 잔디의 떼가 마를 정도로 건조한 지역이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3. 양달말: 건지미의 동북쪽 마을. 햇볕이 잘 드는 곳 마을이 형성돼 유래했다. 4. 응달말: 건지미 서남쪽 지명. 응달진 곳이어서 유래했다. 5. 북어울: 양달말의 뒷산의 마을. 큰북어울과 작은북어울이 있다. 명태를 말려 북어를 만든 일이 있다하여 유래했다. 6. 신흥(新興): 아래건지미라고도 한다. 7. 우곡(牛谷): 고려 말부터 진주 소씨가 집성촌을 이뤄 ‘소골’이라 부르다 한자로 ‘우곡牛谷’으로 쓰게 됐다. 8. 양지편: 우곡마을 농협창고 뒤쪽의 마을.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있다. 9. 가운데말: 우곡의 중심마을. 마을회관 일대의 마을이다. 10. 시루터: 우곡마을 서쪽 등성이 너머 마을. 11. 풀무골: 우곡마을 뒤쪽 골짜기. 진주 소씨의 멸문지화에 관련된 풀무골 전설이 전해진다. 12. 동막(東幕): 마을이 태봉산에 막혀 있어 유래됐다. 13. 아랫뜸·동뜸·서뜸: 동막의 자연마을. 14. 염봉재: 동막에서 진위면 마산리 수촌으로 넘어 가는 고개. 작은흰치고개라고도 한다. 15. 백현원: 조선시대 염봉재 중턱에 있었던 국영주막. 맹사성의 공당문답 고사가 전해진다. 16. 오좌동(梧佐洞): 법정동으로 독곡동에 속한 마을로 ‘오좌월’, ‘오좌울’이라고도 한다. 오동나무에 봉황이 앉는 형국에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17. 동실봉: 오좌동 뒷산 이름. 18. 모산: 오좌동 서쪽 입구에 있는 봉우리. 조선 전기 용성군 최자반이 모정을 짓고 남산터 원정의 최수성 등 사림들과 교유했던 곳이다. 19. 오리곡(五里谷): 오릿골이라고도 한다. 독곡동의 자연마을로 단양 우씨들이 많이 거주한다. 마을 앞에 큰 개천이 흐르고 오리가 많이 날아들어 유래됐다는 설과, 버드나무가 많아서 오류곡이라고 했던 것이 음이 변했다는 설, 진위현 관아로부터 5리 거리에 위치했다는 설이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4호)에서는 ‘평택시 신장동(新場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5-23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서정동·지산동’ 지명 유래
    서정동, 1981년 복창동·점촌·사거리·원적봉·지장동 관할로 두면서 유래 지산동, 조선후기 진위현... 1914년 동막리·일탄면 우곡리·좌동 일부 통합 ▲ 서정동을 관할로 둔 송탄시가지 전경(2003년) ◆ 서정동(西井洞) 행정동으로 서정동을 말한다. 조선시대 진위현 탄현면이었고, 남쪽 일부는 양성현 소고니면이었다. 1981년 송탄시가 승격되는 과정에서 복창동·점촌·사거리·원적봉·지장동을 서정동 관할로 두면서 유래됐다. 서정동의 유래는 서두물이다. 서두물(서정동)은 중앙동의 자연마을이다. 1. 점촌(店村): 우리말로 ‘점말’이다. 1920년대 초 황금석이라는 사람이 옹기점을 운영하면서 유래됐다. 1980년대 초까지도 옹기가마가 남아있었다. 2. 지장동(地莊洞): 지장사(地藏寺)라는 절 아래에 형성된 사하촌에서 유래됐다. 3. 복창동(福昌洞):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면서 청소용역을 맡은 복창공사(福昌公社)에 다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해서 유래됐다. 4. 신창동: 1950년대 중반 사거리 아래에 형성된 마을. 황해도 피난민들이 집단 이주해 정착했다고 해서 ‘황해도촌’이라고도 한다. 5. 절골: 신창동 앞의 마을로 약수암(藥水庵)이라는 절이 있어 유래됐다. 6. 사거리(四巨里): 신장동·적봉리·장등리·서정리로 통하는 네거리가 있어 유래했다. 7. 원적봉(原赤峰):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고 마을이 폐동되면서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형성한 마을. 초기에는 기지 정문이 있어 외지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 지산동(芝山洞) 조선후기 진위현 일탄면과 마산면 지역이었다. 1914년 동막리·일탄면 우곡리(牛谷里)·좌동·지산리 일부를 통합해 송탄면 지산리라고 했다. 지산(芝山)이라는 지명은 땅이 메말라서 ‘건지뫼’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 좌동(佐洞): 지산동의 자연마을. ‘좌월’, ‘좌울’이라고도 하며 숯고개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2. 탄현(炭峴): 점촌에서 송북시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 신장동·적봉리 일대의 숯이 유통되는 통로여서 ‘숯고개’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탄현(炭峴)’이라고 했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 지현(芝峴, 쑥고개) 주막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00년 전후에는 ‘쑥고개’로도 불렸던 것 같다. 쑥고개는 숯고개의 변음으로 1970년 이전까지 송탄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다가 ‘지명 바로 부르기 운동(1972년 송탄JC 주관으로 ’쑥고개가 아닙니다. 송탄이라 부르세요‘라는 구호를 앞세워 ‘지명 바로 부르기 운동’을 했다)’으로 소멸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3호)에서는 ‘평택시 신장동(新場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5-13
  •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칠괴동·칠원동’ 지명 유래
    칠괴동, 1914년 송탄면 칠괴정리를 나중에 칠괴동으로 불러 칠원동, 조선후기 진위군 여방면... 1914년 칠원·수촌·신리 통합 ▲ 칠구쟁이 마을로 친숙한 칠괴동(2011) ◆ 칠괴동(七槐洞) 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이었다. 1914년 송탄면 칠괴정리라고 했던 것을 나중에 칠괴동이라고 했다. 마을 앞 우물가에 고목 일곱 그루가 있어 ‘칠괴정’ 또는 ‘칠구쟁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 용산절: 서북쪽에 있는 지명으로 옛 절터. 2. 장구탱이: 원칠원으로 넘어 가는 옛길.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건설로 없어졌다. 3. 장자골: 칠괴동에서 원칠원으로 올라가는 계곡으로 진주 소씨의 묘가 있다. 4. 원고개: 모산골을 거쳐 안성방면으로 넘어 가던 고개. 5. 상나무배미·노랑개들·돌밋들·시밋들: 마을 앞 들판. 6.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1979년 동아자동차가 설립됐다가 1986년 쌍용자동차에 매각됐다. ▲ 방아거리로 불렸던 칠원3동 수촌(2009) ◆ 칠원동(七院洞) 조선시대 제6대로(삼남대로)의 갈원(葛院)이 있던 마을이다. 조선후기 진위군 여방면 칠원(七院)으로 바뀌었다. 1914년 칠원·수촌·신리를 통합해 칠원리라고 했으며 ‘갈왕골’이라고도 한다. 1. 원칠원: 칠원1동의 마을 이름. 2. 윗거리·아랫거리: 칠원1동의 자연마을. 3. 신촌: 칠원2동의 자연지명으로 ‘새말’이라고 한다. 4. 수촌(水村): 칠원3동으로 통복천의 지류에 물레방아를 설치해 ‘물방아거리마을’이라고도 부른다. 5. 쇠물뿌리: 칠원3동의 자연마을. 마을의 지세가 와우형(臥牛形)인데 소의 뿔에 해당되는 곳에 마을이 형성됐다. 6. 옥관자정: 칠원1동 갈원에 있는 우물. 본래 ‘옥수정’이었는데 조선시대 임금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물맛을 보고 감탄해 옥관자를 내리면서 유래됐다. 7. 소유우물: 쇠물뿌리 마을의 공동우물. 소의 젖에 해당되는 곳에 우물이 있다. 8. 이산매산: 칠원2동의 뒷산. 새말에 거주하던 명창 이동백이 산을 오르며 노래를 짓고 산위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9. 산지봉: 칠원1동 뒷산. 산신당이 있어 음력 10월에 산신제를 지냈다. 10. 옥녀봉: 옛 도원동사무소 뒷산. 이괄의 절터가 있다. 11. 쇠마름방죽: 칠원2동 서쪽 입구 주말촌 식당 옆 방죽. 옛날 마을에 사는 큰 부자가 쇠말뚝을 박아 만들었다고 한다. 12. 장자울: 칠원2동 서쪽 구릉지대. 옛날 큰 부자가 기와집을 짓고 살던 곳이다. 13. 고분야: 칠원2동 새말 앞의 들판. 14. 개구리봉: 칠원2동 앞의 작은 봉우리. 개구리봉 꼭대기는 장사추와형의 명당이라고 알려졌다. 15. 건넌들·보아지들·가내들: 칠원3동 주변 들판. 16. 수촌마을 용신제: 칠원 3동 수촌마을에서 정월에 통복천에 지내는 용신제.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2호)에서는 ‘평택시 서정동(西井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5-06
  • 평택시史로 보는 ‘도일동’ 지명 유래
    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 1914년 원당면 의곡·여동·신촌·심곡 통합 ▲ 도일동 하리 여의실 마을(2012) ◆ 도일동(道日洞) 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이었다. 1914년 여방면의 도일리·내리·상리·양성현 원당면 의곡·여동·신촌·심곡을 통합해 도일리(동)라 했다. 도일이라는 지명은 ‘원도일’에서 왔다. 1. 원도일: 양성현의 경계여서 도일, 되일이라고 하던 것을 도일(道日)로 표기했다. 2. 상리(上里): 진위현 여방면 지역으로 가장 위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3. 내리(內里): 진위현 여방면으로 안쪽에 형성돼 유래됐다. 4. 하리(下里): 양성현 원당면 지역으로 아래쪽의 마을이라고 해서 유래됐다. 5. 여좌울: 조선후기 상리 도일천을 경계로 좌측(덕암산 쪽)의 마을에 대한 통칭. 6. 여우동: 조선후기 상리 도일천을 경계로 우측(팔룡산 쪽)에 대한 통칭. 7. 사창이: 도일동 상리의 자연마을. 조선시대 진위현의 사창이 있었다. 8. 뱃터: 조선시대 사창이 있을 때 도일천에 있었던 나루터. 뱃줄을 매어 두었다는 느티나무와 향나무 비보림이 있다. 9. 산막골: 상리의 자연지명으로 산막이 있었다. 10. 요골: 상리의 자연지명으로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 11. 배낭골: 상리의 자연마을. 배나무골이 변해 유래됐으며 이성부 충절정문이 있다. 12. 황성말: 황새울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큰길가에 위치했다. 13. 샛골: 상리에 자연마을로 원주 원씨가 처음 자리 잡은 마을. 14. 안골: 상리 가운데서도 덕암산의 안쪽에 형성돼 유래. 양세충효정문이 있다. 15. 정골: 안골 위쪽의 골짜기며 1728년 이인좌의 난에 호응했던 원만주가 용광로를 설치하고 농기구와 병장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16. 빈터: 안골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 때 상리의 부인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17.빈터고개: 빈터를 지나 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부에 서낭당이 있다. 18. 가농골: 황성말 서쪽의 자연마을. 19. 응골: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 20. 갈월: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로 약천사가 있다. 21. 양성말: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로 조선후기 양성현 지역이었다. 22. 여의실: 하리의 자연마을로 양성현 원당면 여동과 의곡리가 통합하면서 유래됐고, 큰여의실과 작은여의실로 구분된다. 23. 대마거리: 내리의 자연마을. 말을 기다리던 곳에서 유래됐다. 24. 운터말: 내리의 자연마을. 25. 울음밭: 원균 장군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장군의 유품을 물고 천리를 달려온 애마가 유품을 내려놓고 울음을 운 뒤 죽었다는 곳. 26. 갓골: 원릉군 원균의 묘가 있는 마을. 27. 능골: 원릉군 원균의 묘 뒤쪽 마을. 조선 전기의 화가 최경의 묘가 있다. 28. 암말: 내리에서 덕암산 안쪽에 형성된 마을.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됐다. 29. 왕뒤: 암말 서쪽의 자연지명. 원릉군 원균의 선무1등교서를 가지고 왕의 사신이 넘어온 길에서 유래됐다. 30. 덕암산: 도일동과 진위면 은산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예로부터 ‘석씨 천 년, 소씨 천년, 원씨 천년’이라는 말이 전해오며 ‘아흔 아홉 골짜기가 있고 아흔 아홉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31. 흰치고개: 삼남대로 평택 구간의 가장 험한 구간. 산봉우리가 희게 보여 대백치라고도 불렀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0호)에서는 ‘평택시 모곡동(茅谷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4-22
  • 평택시史로 보는 ‘장당동·가재동’ 지명 유래
    장당동, 조선시대 양성현 지역... 1914년 광천리와 장당리 통합 가재동, 조선후기 진위군... 1914년 가재동·시동·방혜동·중리 통합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폐동된 장당동 광천마을(2011) ◆ 장당동(獐堂洞) 조선시대 양성현 소고니면 지역이었다. 1914년 광천리와 장당리를 통합해 장당리(동)라 했다. 장당이라는 지명은 ‘노루댕이’에서 왔다.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곳을 ‘노루목’ 또는 ‘노루댕이’라 하는데 이것을 노루 장(獐)을 써서 ‘장당(獐堂)’이라 했다. 고덕국제신도시 및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자연마을은 폐동됐다. 1. 원장당(元獐堂): ‘노루댕이’, ‘노루쟁이’라고도 부른다. 2. 방아다리: 원장당과 효명고등학교 사이 마을로 물레방아가 있어 유래한다. 3. 광천(廣川): ‘너부내’라고도 부른다. 마을 앞으로 서정천이 흐르고 있어 넓은 내라고 했던 것을 음이 변하면서 너부내라 부르게 됐다. 2013년 고덕국제신도시 개발로 폐동됐다. 4. 두집매: 노루댕이의 다른 이름. 광주 김씨 두 집이 처음 이사 와서 정착해 유래했다. 5. 광귀: ‘도툼안골’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외집매였는데 1960년대 서울지역 이주민들의 귀농정착사업이 시작되면서 ‘광귀’라고 부르게 됐다. 귀농민들은 정착에 실패해 대부분 떠났다. 6. 장좌울: 광천 옆에 형성된 마을. 중국 화교출신의 도씨네 한 집뿐이다가 1960년대 전라도 이주민들이 옮겨오면서 마을이 커졌다. 7. 감나무골: 감나무가 많이 자라는 데서 유래했다. 8. 한뉴목장: 1967년 한국과 뉴질랜드가 합작하며 만든 목장으로 나중에 매일유업시범목장이 됐다가 2013년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지역에 포함됐다. ◆ 가재동(佳材洞) 행정동인 송탄동의 법정동 명칭이다. 조선후기 진위군 송장면·여방면·양성현 소고미면에 속했다가 1914년 가재동·시동·방혜동·중리·사당재리·막곡리를 통합해 가재리(동)라 했다. 1. 가재울: 가재리의 자연지명. ‘가좌울’이라고도 한다. 산의 모양이 가재와 같다는 설과, 냇가에 가재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2. 상가재: 가재리의 윗마을. 재개발사업으로 2013년 현재 폐동을 앞두고 있다. 3. 하가재: 가재리의 아랫마을. 재개발사업으로 2013년 현재 폐동을 앞두고 있다. 4. 막곡(幕谷): 가재동의 자연마을. 군막(軍幕)이 있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송탄초등학교와 송탄동사무소가 있다. 5. 중리(中里): 막곡과 방혜동 사이에 있어 ‘가운데말’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중리’라 했다. 6. 방혜동(芳惠洞): 본래 방효리(芳孝里)·뱅여울·방혜울이었는데 옛날에 마을을 지나가던 스님이 천마산의 산세가 꽃과 같아 복을 받을 것이라 해 꽃방(芳) 자를 써서 방혜동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7. 시동(枾洞): ‘감나무골’이라고도 한다. 송탄공단 뒤쪽에 있다가 폐동된 마을로 감나무가 많았다. 8. 사당리(祠堂里): 사당재리라고도 한다. 가재감리교회 아래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뒤 폐동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9호)에서는 ‘평택시 도일동(道日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4-15
  • 평택시史로 보는 ‘중앙동·이충동’ 지명 유래
    중앙동, 1914년 지장리·서정리·갈평리·대속동 통합해 서정리라 불러 이충동, 조선시대 진위현 송장면... 1914년 이충동·신리·석정동 통합 ▲ 옛 송탄시청이 위치했던 중앙동행정복지센터(2010) ◆ 중앙동(中央洞) 조선시대 진위현 송장면과 양성현 소고니면 지역이었다. 1914년 지장리·서정리·갈평리·대속동(대추동)을 통합해 서정리라 했다. 1. 서두물: 서정리초등학교 후문 일대의 자연마을. 동령마을 서쪽에 좋은 우물이 있어 ‘서우물’, ‘섯우물’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됐다. 2. 대속동: 서정리역과 서정시장 일대의 자연마을로 ‘대추동’이라고도 했다. 3. 신선: 1914년 이전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신리’ 또는 ‘신설’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신선’이라 표기했다. 4. 신서(新西): 서정리역 주변이 도시화되면서 형성된 마을. 신선마을 서쪽에 해당돼 유래됐다. 5. 갈평(葛坪): 옛날에는 서정천을 따라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올라오고 간석지에 갈대가 많이 자라서 유래됐다. 6. 번성(蕃城): 서정동의 자연마을. 서정천 일대 하천부지를 간척하며 형성된 마을로 번성하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7. 서정리역: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설치된 기차역. 8. 서정시장: 서정리역이 설치되면서 역 주변에 형성된 전통시장. 처음에는 5일장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상설시장이 됐다. ▲ 이충동의 옛 중심 동령마을(2008) ◆ 이충동(二忠洞) 조선시대 진위현 송장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이충동·신리·대동령리·석정동을 통합해 송탄면 이충리라 했다. 이충이라는 지명은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선산과 장토가 있었고 어릴 적 살았던 유허가 있고, 병자호란 삼학사 가운데 한 명인 추담 오달제의 옛집이 있어 두 명의 충신을 기리는 뜻에서 유래됐다. 1. 동령(東嶺): 고려시대 송장부곡, 조선시대 송장면의 중심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성재, 성물백이와 같은 지명이 있고 400여 년 전통의 정제와 줄다리기가 남아있다. 2. 이충(二忠): 이충동 부영아파트 일대에 있었던 자연마을. 조광조의 유허가 있었다. 3. 석정(石井): 이충동의 자연마을로 ‘돌우물’이라고 부른다. 돌 틈에서 물이 나오는 석간수가 있었다. 4. 신리(新里): ‘새터말’이라고도 한다. 5. 광말: 반지산 남쪽에 있는 마을. 택지 및 상가부지 개발로 폐동됐다. 6. 부락산: 송탄지역의 주산. 근대 전후 부락산(負樂山)·불악산(佛樂山)·조락산(鳥落山)·요악산·불학산 등으로 부르다가 1994년 부락산으로 명칭을 정리했다. 남쪽에 국제대학교·은혜중고등학교·이충레포츠센터·부락사회복지관·평택시북부복지타운·부락산 둘레길 등이 조성됐다. 7. 흔치고개: 삼남대로 대백치(큰 흰치고개)에서 이충동 동령마을로 내려오는 고개로 ‘작은 흰치고개’라 하다가 음이 변해 ‘흔치’라 부른다. 8. 서낭당(고개): 흔치휴게소를 지나 소골로 내려가는 고갯마루 서낭당.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8호)에서는 ‘평택시 장당동(獐堂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4-08
  • 평택시史로 보는 ‘현덕면 화양리·황산리’ 지명 유래
    화양리, 조선시대 현암면 지역... 1914년 한촌·용동·당현 통합 황산리, 조선후기 직산현... 1914년 안외면 창촌·광덕면 통합 ▲ 현화리에서 바라본 화양리 일대(2007) ◆ 현덕면 화양리(華陽里) 조선시대 수원군 현암면 지역이었다. 1914년 화양동·한촌·용동·당현·언성리·문곡리 일부를 통합해 화양리라 했다. 화양이라는 지명은 ‘행궁이’에서 왔다. 행궁이를 ‘화양’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이다. 1. 화양(華陽): 햇볕이 잘 드는 마을이어서 유래됐다. 2. 당현(堂峴): 화양1리의 마을. ‘당고개’, ‘당재’에서 유래됐다. 3. 용동(龍洞): 화양2리의 마을. ‘용골’이라고도 부르며 마을 우물에서 용이 솟아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 4. 행궁이: 화양1리의 자연지명. 옛날 임금이 머물렀던 행궁이 있었다 한다. ▲ 조선시대 안중창이 있었던 황산2리 하안중(2005) ◆ 현덕면 황산리(黃山里) 조선후기 충청도 직산현 안중면 지역이었다. ‘느늘미’ 또는 ‘황산당’이라 했다. 1914년 황산당·안외면 창촌·광덕면 소외리 일부·가사면 안중리를 통합해 황산리라 했다. 1. 상안중(上安仲): 황산1리의 마을. 조선시대 직산현 안중창이 있어 유래됐다. 2. 직산장터: 황산1리 상안중 동쪽 직산장이 섰던 장터가 있어 유래됐다. 3. 직산촌(稷山村): 황산2리 하안중의 다른 지명. 옛 직산현 안중면에 속한 마을에서 유래됐다. 4. 원황산(元黃山): 황산3리의 마을. 물굽이가 형성된 바닷가 마을에서 ‘느늘미’ 또는 ‘황산당’이라 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7호)에서는 ‘평택시 중앙동(中央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4-01
  • 평택시史로 보는 ‘현덕면 인광리·장수리’ 지명 유래
    인광리, 수원군 현암면 지역... 1914년 보개동·안외면 송담리 통합 장수리, 조선시대 양성군 승량동면... 갑오개혁 후 수원군 가사면 ▲ 본래는 두매라고 불렀던 장수리(2012) ◆ 현덕면 인광리(仁光里) 조선시대 수원군 현암면 지역이었다. 1914년 양산·인광리·송담 일부·보개동·안외면 송담리·창촌을 통합해 인광리라고 했다. 1930년대 중반, 천곡에서 면사무소가 옮겨오면서 현덕면 소재지가 됐다. 1. 원인광(元仁光): 인광리의 중심마을에서 인광·인괭이·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양짓말로 부른다. 2. 점촌(店村): 인광2리의 마을 지명.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이 옹기가마를 운영하며 그릇을 굽던 마을이다. 3. 하양산(下楊山): 인광3리의 마을. 버드나무가 우거져서 ‘버들미’라고 했으며 버들미의 아랫마을이어서 ‘아랫버들미’ 또는 ‘하양산’이라 불렀다. 4. 상양산(上楊山): 인광 4리의 마을. 버들미의 윗말에서 유래됐다. 5. 문화동(文化洞): 인광5리의 마을. 피난민촌으로, 뗏장으로 집을 짓고 살아서 ‘뗏장거리’, ‘난민촌’이라고 부르다가 ‘문화동’으로 고쳤다. 6. 보시동(寶蓍洞): 바닷물이 들어올 때 ‘보시곶’ 또는 ‘보시꼬지’였다가 나중에 ‘보시동’으로 고쳤다. ◆ 현덕면 장수리(長水里) 조선시대 양성군 승량동면 지역이었다. 갑오개혁 뒤에는 수원군 가사면 지역이었다. 1914년 ‘두메리라고 했다. 1938년 주민들의 요구로 장수리로 바뀌었다. 1. 두메: 장수리의 옛 지명. 산너머 후미진 곳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2. 석화진: 장수리에 있었던 옛 나루.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6호)에서는 ‘평택시 현덕면 화양리(華陽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3-25
  • 평택시史로 보는 ‘현덕면 신왕리·운정리’ 지명 유래
    신왕리, 수원부 광덕면 지역... 안성천 하류의 대표적인 어항 운정리, 수원부 포내면... 1914년 한리·벽우리·구억촌과 통합 ▲ 신흥포가 있었던 포구마을 신왕1리 마두(2013) ◆ 현덕면(玄德面) 신왕리(新旺里) 조선후기 수원부 광덕면 지역. 1914년 신왕골·마두리·와촌을 통합해 신왕리라고 했다. 안성천 하류의 대표적인 나루이며 어항이었다. 1. 마두(馬頭): 신왕1리의 지명. 지형이 말머리를 닮아 ‘말머리’라고 하다가 한자로 ‘마두’로 표기했다. 2. 마산·새터말, 기왓말(와촌)·속말: 신왕1리의 자연마을. 3. 원신왕(元新旺): 신왕2리의 마을 지명. 4. 고등산: 본래 고려시대 광덕현의 주산이라 광덕산이라고 했던 것을 근대 이후에 고등산으로 바뀌었다. 5. 마안산: 일제강점기 때에도 산 정상부에서 정월 대보름에 망월을 해 ‘망운대산’이라고 했던 것을, 해방 전후 산의 형세가 말의 안장과 같다고 해 ‘마안산’이라고 했다. ◆ 현덕면 운정리(雲井里) 조선시대 수원부 포내면 지역. 1914년 한리·벽우리·구억촌·운정리를 통합해 운정리라 했다. 운정은 ‘구루물’의 한자 지명이다. 1. 피우치(避憂峙): 운정1리. 옛날 유명한 승려가 우강산(부엿산)을 넘으면 모든 근심을 덜고 살 수 있다고 해 유래됐다. 2. 원운정(元雲井): 운정2리 마을. 1만 명이 마실 수 있는 좋은 우물이 있었는데 항상 구름이 서려 있어 유래됐다. 3. 검덩굴: 운정2리의 자연마을. 4. 구억촌(九億村): 운정3리의 자연마을. 구석 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옛날 장구억(張九億)이란 부자가 일꾼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노루를 잡은 이후 가세가 기울어 모두 이사해버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장구억이 살았던 곳이라 해 ‘구억촌’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5. 외집매: 운정3리의 자연마을.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5호)에서는 ‘평택시 현덕면 인광리(仁光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3-21
  • 평택시史로 보는 ‘현덕면 도대리·방축리’ 지명 유래
    도대리, 조선시대 현암면... 1914년 천곡리·문곡리 일부 통합 방축리, 조선시대 현암면... 1914년 신기동·승량동면 국리 통합 ▲ 평택시 현덕면 노을 ◆ 현덕면(玄德面) 도대리(道垈里) 조선시대 수원군 현암면 지역. 1914년 천곡리·문곡리 일부를 통합해 진위군 현덕면 도대리라 했다. 1. 도대: 지형이 돛대와 같다고 해 ‘돛대’, ‘되떼’라고 불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2. 천곡(泉谷): 도대1리의 자연지명. 좋은 우물이 있어 ‘샘골’이라 했고, 도대리에 위치해 ‘도천곡’이라고 했다. 3. 원도대(元道垈): 도대2리의 자연마을. 도대리에서 제일 먼저 생긴 마을이다. 4. 문곡(文谷): 도대3리의 자연지명. 권관리 문곡마을과 구별해 ‘도문곡’ 또는 글 읽는 사람이 많다고 해 ‘글갱이’라고도 한다. ◆ 현덕면 방축리(防築里) 조선시대 수원군 현암면 지역. 1914년 방축동·신기동·승량동면의 국리를 통합해 방축리라 했다. 방축은 방죽말에서 유래됐다. 자연마을은 ‘방죽말(1리)’과 ‘국말(2리)’로 나뉜다. 방죽말은 다시 ‘새터’, ‘수사리’, ‘방죽말’로 구분되고 국말은 ‘윗말’, ‘아랫말’, ‘갈마지’로 나뉜다. 1. 원방축(元防築): 방축1리의 지명. 마을 입구에 논방죽이 있어 ‘방죽말’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방축’이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새터’, ‘수사리’, ‘방죽말’이 있다. 2. 국리(菊里): 방축2리의 마을지명. 본래 궁리라 했지만 ‘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반란군의 기세에 깜짝 놀란 인조임금은 서둘러 공주로 피난을 나섰다. 그때 임금이 마을을 지나다가 하룻밤을 유숙하게 됐는데 그 뒤로 행궁(별궁)이 있었다’고 해 궁리(宮里)라고 했던 것을 나중에 음이 변해 국리가 됐다. 국리는 윗말·아랫말·갈마지로 나뉜다. 3. 신기(新基):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4. 와촌(瓦村): 기와집이 있는 마을에서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4호)에서는 ‘평택시 현덕면 신왕리(新旺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3-04
  • 평택시史로 보는 ‘현덕면 덕목리’ 지명 유래
    조선후기 수원부 지역... 1914년 연화리·소외리 일부 통합 ▲ 곡부공씨의 마을 덕목3리 냉정(2013) ◆ 현덕면(玄德面) 덕목리(德睦里) 고려시대 광덕현의 중심이었고 조선후기에는 수원부 안외면과 광덕면이었다. 1914년 백석동·소당리·광덕면 덕목리·연화리·소외리 일부를 통합해 덕목리라 했다. 1. 덕목 : 고려 말 두문동에 은거했던 어촌공(漁村公) 공부(孔俯)가 조선왕조의 출사를 거부하고 숨어살면서 덕행과 화목을 강조해 유래됐다. 2. 소당(蘇堂): 덕목 1리의 자연지명. ‘소댕이’라고도 한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의 글을 현판에 걸어놓은 집이 있어 유래했다. 3. 백석(白石): 덕목2리의 자연지명. 옛날 날개 달린 장수가 마안산 봉우리에서 북쪽을 향해 200여 근이 넘는 차돌을 던진 것이 마을 입구에 떨어져 차돌백이라고 했는데 차돌이 박힌 곳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현재 차돌은 마을 서남쪽 공터로 옮겨졌다. 4. 냉정(冷井): 덕목 3리의 자연지명. 맑고 찬 우물이 있어 ‘찬우물’이라고 했던 데서 유래됐다. 5. 원덕목(元德睦): 덕목4리의 자연지명으로 광덕현(廣德縣)의 읍치(邑治)였던 곳이다. 6. 은곡(隱谷): 덕목5리의 자연지명. 어촌공 공부가 은거했던 마을에서 유래됐다. 영양 진씨의 열녀 정려가 있어 ‘정문골’이라고도 한다. 7. 연화동: 덕목6리. 바닷가 마을이어서 물위에 뜬 연꽃과 같아서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3호)에서는 ‘평택시 현덕면 도대리(道垈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2-25
  • 평택시史로 보는 ‘현덕면 권관리·기산리’ 지명 유래
    권관리, 조선후기 가사면 가사곶... 1914년 권관리·고잔리 통합 기산리, 조선후기 수원부 가사면... 1914년 기산·수산·천곡 통합 ▲ 평택호관광단지가 있는 권관리(2020년 10월) ◆ 현덕면(玄德面) 권관리(權菅里) 조선후기 수원부 가사면 가사곶 지역이다. 1914년 권관리·고잔리를 통합해 권관리라고 했다. 1. 권관(權管): 지형이 닭의 머리를 닮아서 ‘닭이머리’ 또는 ‘계두(鷄頭)’라고 하던 것을 벼슬 관(官)을 써서 권관(權官)이라고 했으며, 나중에 한자가 바뀌었다. 2. 상하동(上下洞): 권관1리의 자연마을이다. 상부동(上部洞)과 하부동(下部洞)으로 나뉘어졌다가 합쳐지면서 형성된 지명이다. 3. 가삿골: 권관리의 옛 지명. 마을의 지형이 곶(串)이어서 ‘가사곶’ 또는 ‘가사고지’라고 했던 데서 유래됐다. 4. 고잔(高棧): 권관2리의 자연마을이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곶串이 발달해 유래됐다. 5. 문곡: 권관3리의 자연지명이다. ‘황새울’이라고도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갯벌이 발달했을 때 황새들이 날아들어 유래됐다. 6. 가사(佳士): 권관4리의 자연마을이다. 갑오개혁 뒤 수원군 가사면의 소재지에서 유래됐다. 7. 모산(牟山): 밀보리(牟)가 잘돼서 유래됐다. ▲ 기산2리 물미 옥녀봉(2012) ◆ 현덕면 기산리(岐山里) 조선후기 수원부 가사면 지역. 1914년 기산·수산·천곡을 통합해 기산리라 했다. 1. 천곡(泉谷): 기산1리의 자연지명. 좋은 우물이 있어 ‘샘골’이라고 했다. 현덕면의 면소재지였으며, 기산리에 위치해 기천곡(아랫샘골)이라고도 한다. 2. 수산(水山): 가산2리의 마을이다. 물가에 위치해 ‘물미’, ‘물뫼’라고도 부른다. 3. 원기산: 기산3리의 마을이다. 옥녀봉이 깃대처럼 높게 솟아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2호)에서는 ‘평택시 현덕면 대안리(大安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2-18
  • 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토진리·한산리’ 지명 유래
    토진리, 조선시대 수원군 토진면... 1914년 고좌리 통합 한산리, 1914년 판교동·강포리·수북면 한산리·서신리 통합 ▲ 근대전후 토진나루였던 토진1리 톷나루(2008) ◆ 청북읍(靑北邑) 토진리(土津里) 조선시대 수원군 토진면 지역이다. 1914년 토진리·고좌리 일부지역을 통합해 토진리라 했다. 토진은 나루의 한자지명이다. 1. 원토진(元土津): 토진1리의 자연지명. 본래는 ‘돛나루’였다. 2. 고좌(高座): 토진2리의 마을. 침식작용으로 마을에 피해가 많아 높은 지대로 옮겨 살면서 유래됐다. ‘고재’, ‘고자’, ‘높은자리’라고도 한다. 3. 국길(國吉): 토진3리의 자연마을. 본래 ‘귀락’, ‘국길실말’을 줄여서 ‘국길’이라고 했다. 4. 가재울: 국길 동북쪽의 마을. ▲ 너더리장이 섰던 한산3리 너더리(2006) ◆ 청북읍 한산리(閑山里) 조선시대 양성현에 속했다가 갑오개혁 뒤 수원군 토진면과 수북면으로 편제됐다. 1914년 판교동·강포리·한산리·수북면 한산리·서신리를 통합해 한산리라 했다. 1. 원한산(元閑山): 한산1리의 자연마을이다. 2. 수부(壽富): 한산2리의 자연마을. ‘숫뿌리’의 한자지명이다. 3. 망포(網浦): 한산3리의 자연지명. 바닷물이 들어오던 포구였다. ‘망개울’이라고도 한다. 4. 방죽거리: 한산3리의 자연마을. 방죽이 있었다. 5. 판교(板橋): 수원으로 가는 큰길에 하천을 건너는 널다리가 있어 ‘널다리’, ‘너더리’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판교’가 됐다. 너더리에는 주막과 장시가 열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0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현곡리(玄谷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2-04
  • 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옥길리·율북리’ 지명 유래
    옥길리, 조선시대 수원부 청룡면... 1914년 신기·가사·옥길 통합 율북리, 조선시대 양성현 율북면... 1914년 밤뒤·불정·상가천 통합 ▲ 청북신도시개발 전의 옥길1리 윗말(2007) ◆ 청북읍(靑北邑) 옥길리(玉吉里) 조선시대 수원부 청룡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신기·가사·옥길을 통합해 옥길리라 했다. 무성산에 군사가 주둔할 때 감옥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청북지구 택지개발로 원옥길과 신기마을 대부분이 폐동됐다. 1. 원옥길(元玉吉): 옥길1리의 자연지명이다. 2. 가사(佳士): 옥길2리의 자연지명. ‘개사리’라고도 한다. 바닷가에 모래가 아름다워 유래됐다. 3. 기산: 옥길3리의 자연지명. ‘퇴미’라고도 한다. 무성산 아래에 터를 잡아 유래됐다는 말이 전해온다. 4. 신기(新基): 옥길4리의 자연마을.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새터’라고 했던 것이 한자로 ‘신기’가 됐다. ◆ 청북읍 율북리(栗北里) 조선시대 양성현 율북면 지역이었다. 1914년 밤뒤·불정·상가천을 통합해 밤뒤의 한자지명인 율북리라 했다. 1. 원율북(元栗北): 율북1리의 자연지명. ‘밤뒤’라고 부른다. 2. 내촌(內村): 율북2리의 자연마을. 안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3. 상가천리(上佳川里): 옛날 하천 변에 있는 마을. 잦은 홍수로 폐동됐다. 4. 장계동(長桂洞): 율북3리의 자연지명. 5. 상현리(桑峴里): 율북4리의 자연지명. 마을 모퉁이에 고개가 있고 그 옆에는 밭이 있어 뽕나무고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상현’이라 했다. 6. 불정(佛井): 율북5리의 자연지명. 옛날 풍수쟁이가 이곳에 절을 짓고 정결한 우물을 파놓으면 마을에 복과 덕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실천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처말’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9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토진리(土津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1-21
  • 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백봉리·삼계리’ 지명 유래
    백봉리,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 1914년 백봉·조염동 통합 삼계리,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1914년 독개와 통합 ◆ 청북읍(靑北邑) 백봉리(栢峰里)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 지역이다. 1914년 백봉·조염동·벽동·평촌을 통합해 백봉리로 했다. 1. 백봉: 백봉1리의 자연지명. 본래 조선 태조 때 왕자의 난으로 피신한 여섯 왕자가 숨었던 곳이라고 해서 ‘육자지’라고 했는데, 형제들이 피신한 곳을 알게 된 이방원이 왕자들을 찾아내 죽이면서 오뉴월 삼복더위인데도 눈이 내려 산을 하얗게 덮었다고 해 그 뒤 ‘백봉(白峰)’으로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2. 벽동(璧洞): 백봉2리의 자연지명. 본래 ‘두팽이’ 또는 옛 마을이라는 뜻에서 ‘구실’이라고 했던 것이 ‘구슬’이 됐고 이것을 한자로 ‘벽동’이라고 했다. 3. 벌말: 구슬에서 안탑모퉁이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 순흥 안씨들이 많이 거주했다. 4. 도렴동·평촌: 백봉리의 자연마을. 진위천의 침식작용으로 폐동됐다. 5. 백봉산: 본래 육자지산으로도 부르다가 나중에 백봉산이 됐다. 산성이 축성됐으며 3·1운동 당시 안화리의 안육만 등이 만세를 불렀다. ◆ 청북읍 삼계리(三溪里)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지역이다. 1914년 독개를 통합할 때 마을 앞 하천이 삼합류하는 곳이라고 해서 삼계리라 했다. 1. 원삼계(元三溪): 삼계1리의 자연마을. 윗말과 아랫말로 구분된다. 2. 옹포(瓮浦): 삼계2리의 자연지명. 조선시대 양성현의 해창이며 조선후기에는 포구상업이 크게 발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동척농장의 곡식들과 공출미가 반출됐던 곳이다. 3. 신촌(新村): 삼계3리의 자연지명. 1882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분말’로 부르다가 1939년 원삼계 마을과 나뉘면서 ‘신촌(새말)’이라고 했다. 4. 월곡(月谷): 삼계4리의 자연지명. 달처럼 타원형의 계곡이라고 해서 ‘달마골’ 또는 ‘월곡’이라고 했다. 5. 신영촌: 삼계 5리의 자연지명. 한국전쟁 뒤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해 형성됐다. 6. 성곡(城谷): 마을이 산성山城의 골짜기에 위치해 유래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7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어소리(魚沼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평택시사(平澤市史)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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