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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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구약 성경에 따르면, 욥이라는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서(욥 1:1),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였다(욥 1:3). 7남 3녀의 자녀를 둔 그는(욥 1:2) 자신의 생일잔치를 베풀 때면 혹시 자식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을까를 염려하여 아침에 일어나면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림으로써 늘 성결 의식을 거르는 법이 없을 정도였다(욥 1:4-5).


 이러한 욥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 시험을 허락하신 것이다. 땅에 넘치도록 부어주신 모든 소유물을 쳐도 좋다는 승인이었다(욥 1:12). 상상하기 힘든 청천벽력 같은 사태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 첫째는 소가 밭을 갈고 나귀가 풀을 뜯을 때 스바 사람이 느닷없이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다는 알림이었다(욥 1:14-15). 더구나 홀로 피한 사환이 주인께 아뢰는 사이에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과 종들을 살라버린(욥 1:16) 사건에 이어,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를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다(욥 1:17)는 참극과 함께 거친 들에서 큰바람이 불어와 집 네 모퉁이가 무너져 그 청년들이 죽고 말았다(욥 1:19)는 비보의 연속이었다.


일련의 비극은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 일어났다(욥 1:13; 18). 그러나 진정한 신앙심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반응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에 범죄하지 않았다(욥 1:20-22). 이러한 사태 앞에서 곧바로 창조주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자각하는 성도가 오늘날 얼마나 있을지를 겸허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어 땅을 두루 돌아 다녀온 사탄에게 욥을 칭찬하시며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는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신다(욥 2:2-3). 하지만 사탄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탄은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틀림없이 주님을 욕할 거라고 장담한다(욥 2:5). 이에 여호와께서는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도록 해도 좋다고 허락하신다(욥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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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이것이 앞으로 욥이 당하게 되는 본격적인 고통의 서막이었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8-9)라는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들여다보게 된다. 하나는 욥의 아내가 그간 남편의 존재를 어떻게 여기며 살아왔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고작 저주의 대상쯤으로 믿어왔는가이다.


타락 이후에 사람이란 존재가 제아무리 연약할지라도 고초를 겪는 배우자는 물론 감히 하나님을 향해서까지 막말을 쏟아내는 행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대목은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욥의 신실함에는 하등 변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참을 수 없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도 욥은 한 어리석은 여인의 말로 치부하며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며 자칫 범하기 쉬운 말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욥 2:10).


사실 성경에서 사람을 칭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욥 이외의 사례를 톺아보면, 요셉을 가리켜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3)라고 하셨고, 노아를 일컬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라고 하셨으며, 모세를 두고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라고 하신 데 이어, 다윗을 보고는 신구약에 걸쳐 내 마음에 합한 자(삼상 13:14, 행 13:22)라고 하신 뒤로, 신약시대에 와서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이방 여인(막 7:26)을 향하여 단 한 번,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라고 하신 말씀밖에는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2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세 친구의 가증스러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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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욥이란 인간의 정체성’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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