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지 않고서 과연 대한민국의 태동을 견인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 무자격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온갖 잡음을 접하며 들었던 생각이다. 이는 헌법 전문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즉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뉴라이트는 건국절 운운하며 떼를 지어 무리수를 두는 걸까? 그 이면에는 친일파 후손이라는 주홍글씨가 숨겨져 있다. 잘난 집안의 부끄러운 이력을 단지 국적 잃은 난민의 생계 활동쯤으로 둔갑하려는 술수임이 틀림없다. 만약 이 사람들 의도대로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 끔찍하게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이 당대 반국가세력으로 전락하는 꼴이 된다. 필시 토착 왜구가 아니라면 어찌 감히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 독립지사의 자손들이 겪는 어려운 처지를 헤아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조선총독부에 빌붙어 고자질을 일삼은 무리는 대를 이어 사회 기득권층이 돼 있으니 말이다.
이승만 님은 왜 임정에서 탄핵당했을까? 그의 미국 내 사생활을 들추면 그 사유가 차고 넘치지만, 핵심은 자리보전을 위해 내각책임제 개헌은 안 된다는 옹고집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조직의 분열을 획책하고 임정에서 발행한 국공채를 팔아 횡령하는 등 부패한 인물이었다. 이는 그가 집권한 12년의 행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운형과 김구 등의 암살 배후는 차치하고라도 초대정부 출범 직후부터 민족정기를 말살한 반민특위 해체를 비롯하여 친일파 중용, 사병화했던 서북청년회, 제주 4·3 및 여순 유혈진압에 이어 6·25가 발발하자 피신한 뒤 한강다리 폭파, 국민방위군 사건, 여러 지역의 양민학살 및 보도연맹과 같은 국가보안법 남용, 견통령(犬統領) 오탈자 폐간,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농간으로 국회를 무력화하는 등 무자비한 정적 제거를 통해 정권을 연장하다가 급기야 3·15부정선거로 인한 4·19혁명을 불러 스스로 말로를 재촉했다. 공적을 들어 균형추를 맞추면 시장경제체제 도입, 교육입국 토대, 농지개혁(이때 대지를 포함했다면 투기 봉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평화선 선포 정도를 들 수 있겠다.
▲ 주거환경이 열악한 골목길 계단 모습
박정희 님은 장면과 윤보선을 내세운 민주당을 뒤엎고 어찌 됐건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다만 그 이름을 들으면 맨 먼저 ‘세계사법사상 암흑의 날’(인혁당 사형자 8명 재심 끝에 최종 무죄 판결)을 사주한 반 인권적 철면피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자신의 남로당 전력을 감추기 위해 좌익은 곧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민주인사들을 무차별 탄압한 것도 모자라 기형적인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그로 인해 망가진 인생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를 사주해 수많은 사람의 간첩혐의를 조작하고, 사회 전반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그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반면에 철권통치 18년 동안에 괄목할 만한 업적도 있었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와 지하철 개통, 공공의료보험 실시, 새마을운동, 산림녹화, 국립공원 및 그린벨트 지정, 과학기술인 우대책으로 중화학공업 육성, 부가가치세 도입, 공무원 채용 학력 제한 철폐, 직업훈련 제도 마련 등은 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기억할 대목은 한강의 기적을 만든 이들은 무명의 기층 민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전두환 님은 이른바 ‘서울의 봄’에 등장한 3김을 따돌리고 정권을 꿰찬 사나이였다. 20년 전 무능했던 민주당이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긴 것처럼 엇비슷한 전철을 되밟은 터인데, 어떻게 어설픈 12·12 반란극이 가능했을까? 대다수는 벌써 망각했을지라도 그 뒤에는 정치적 감각이 뒤떨어진 김종필의 치명적 오판이 한몫했다. 혼란한 정국에서 호시탐탐 틈새를 엿보는 신군부의 생리상 모든 정보를 틀어쥔 마당에 무슨 선의를 기대했기에, 즉각적인 대통령 취임을 한사코 마다했는지 모를 일이다. 정권 탈취 과정에서 비극적 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한 책임 선상에 미 정보기관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만 8년을 재임하는 동안 비록 민주주의 체제를 짓밟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겼으나 몇 가지 정책은 주목할 만했다. 가령 도시와 농촌개발을 통한 교통인프라 구축으로 국민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 및 수출촉진, 집값 안정 등으로 꾸준히 경제발전을 이어왔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다. 다소 명암이 엇갈리긴 하되, 그래도 그는 전문가를 등용할 줄 아는 지도자였던 셈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5호)에는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아보니’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