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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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였다(욥 32:2). 그는 네 사람의 말잔치를 잠재우려고 나타난 지혜자였는데, 그가 분노를 표출(욥 32:2-3)한 것은, 욥은 시종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세 친구는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 욥을 정죄했기 때문이다(욥 32:2-3). 나이가 적은 엘리후의 일성은,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욥 32:6-9)라는 전제하에 당신들의 슬기와 말에 귀를 기울였으니 자신의 의견을 들으라는 훈시였다(욥 32:10-11).


설령 사태의 진상을 파악했다손 치더라도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라는 일갈이었다(욥 32:13). 게다가 상대가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 한 나 또한 당신들의 이론으로 욥에게 대답하지 않겠다는 단서까지 달으니 그들이 놀라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다(욥 32:13-15).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던 엘리후는,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욥 32:17-18)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만약 사람의 낯을 고려하고 아첨하듯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렸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서술로 마무리를 짓는다(욥 32:21-22).


엘리후의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므로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한다(욥 33:4; 6-7)는 말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욥 33:13)라는 질문과 함께,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욥 33:17-18)라는 계시를 통해 욥이 잃어버린 자녀들의 행방까지 알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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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제아무리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욥 34:4)라고 한들,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욥 34:5; 9)라고 질책하신다면,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 34:12)라는 말씀에 답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욥 34:19)라고 규정하셨고,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욥 34:23)라는 점을 분명히 하시면서 사람의 행위에 따라 공의롭게 심판하신다는 선언이었다(욥 34:11-12; 25).


그러니 나름 유식한 척 말솜씨를 뽐내던 세 친구는 물론 최대한 절제력을 발휘한 욥마저 무지의 소치를 노출한 참이다(욥 34:35). 결정적으로 엘리후는 욥을 향해,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라고 추궁하니,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 35:12-13)라는 말씀 가운데,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 35:15-16)라는 죄인의 속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엘리후의 사자후는,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욥 36:2)라는 말씀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는 이어,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욥 36:24)라는 말씀에 걸맞게,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욥 36:27; 30; 32-33)라는 창조주의 섭리로 매듭을 진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6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신묘막측한 창조 사역’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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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설전을 잠재운 엘리후’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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