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님은 직접 6·10항쟁을 목격하고 6·29선언을 통해 대권을 거머쥔 전직 군인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곳에는 늘 버젓이 군복이 걸려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YS와 DJ로 대표되는 민주진영의 분열을 틈타 어부지리를 얻은 선거 결과는 이후 여촌야도라는 의회 구도를 깨뜨려버렸다. 3당 야합을 통해 대구 경북은 물론 부산과 경남이 뭉쳐 전라도와 척지는 기점이었는데, 필자는 이를 한국 정치사를 병들게 한 대사건으로 규정한다. 만약 ‘우리가 남이가’라는 이상기류만 아니었던들 영호남이 이처럼 극심하게 대립하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통합을 주도하며 지역인재를 채용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어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실현했다. 질서 있게 범죄와의 전쟁을 통한 치안 확립, 민주 노조 대거 설립, 중산층 형성, 1기 신도시 사업, 인천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세우는 한편 중국, 러시아 등과 수교하는 등 북방외교 업적도 있었다. 다만 대선이 있기 얼마 전 일어난 칼기폭파사건은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이다.
김영삼 님은 오랜 야당 경험을 바탕으로 뚝심 있게 개혁정책을 펼쳐나갔다. 전격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지하경제를 대폭 축소하였고, 다시는 군사반란이 불가능하도록 하나회를 숙청해버리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상징성 있는 문민정부답게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광주의 뼈아픔을 치유하는 등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며 전교조 해직교사를 복직시켰다.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채택하여 선제적으로 고급인력을 양성한 시책은(인구감소에 따른 20년 후를 내다보지 못했다고 이제 와 나무라는 건 좀 가혹한 일일 터이고) 국민 1인당 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며 OECD에 가입하는 등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동했다. 다만 너무 급속 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국제경제에 대한 안목이 태부족하여 IMF 사태를 초래한 실책을 범했으나 전체 업적까지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재임 기간 육해공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YS에게 느끼는 정서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신념과 용기였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던 시절 국내에 남아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주거지
김대중 님은 무려 반세기 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냄으로써 마침내 한국의 민주화를 완성한 장본인이 되었다. 그의 업적 가운데 으뜸은 IMF 최단기간 극복이다. 지구촌을 놀라게 한 금 모으기 운동은 현대판 국채보상운동으로, 차이가 있다면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뀐 상황에서 일제가 강요한 한일의정서가 그들이 주도한 시장 교란에 걸려들어 외환위기를 자초한 모양새였다. 버금은 인터넷망 구축을 들 수 있다. 이 기술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적 IT 강국이 됨으로써 오늘날 선진국 진입을 위한 초석을 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나아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데까지 이른다. 국민의 정부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폭넓은 인재 등용이었다. 야권 정객을 민감한 안기부장에 앉히는가 하면 보수 인물을 통일부 장관에 보임하여 반대를 일삼던 햇볕정책을 강성언론에 홍보하는 연속극이 생중계되었다. 심지어 행동하는 양심을 향하여 위해를 가한 모리배들을 용서한 결과는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었다. 세계적 인권운동가다운 품격을 갖춘 처신이었다.
노무현 님의 극적인 당선은 한국 민주주의를 만천하에 한 단계 끌어올린 일대 쾌거였다. 그의 정치적 발걸음은 초장부터 지극히 서민적이었다. 상고 졸업생이 토굴을 파고 고난도의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 자체가 뉴스거리였는데, 잠시 판사를 거쳐 세무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를 접한 뒤 무료변론을 마다치 않았고,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5공 청문회를 통해 일약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더니 낙선이 빤한 곳에 들어가 바보를 자처한 끝에 그의 가치를 알아본 팬들이 ‘노사모’를 결성해 기어코 제16대 대통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는 진영논리에 매몰된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했다. 사회 구조 혁신을 위한 거대담론을 놓고 여야가 대타협을 이룬다면 권력의 절반이라도 양도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터였다. 대북 포용과 시민의 자유 신장은 참여정부의 화두였으며, 기초연금제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 보전책, 검찰·교육·의료 개혁은 양성평등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그의 파격적 행보는 거지반은 신선했으나 정작 퇴임한 그를 나락으로 내몬 건 뜻밖에 검은돈과 결부된 음모였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66호)에는 ‘역대 정부에 대한 촌평 - 민주주의의 위험도를 높이다’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