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남한 면적의 4.5배, 인구 3,700만, 1인당 GDP 3,600달러) 타슈켄트까지 항공기로 이동한 뒤 또다시 기차를 타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부하라로 향했다. 얼마 전 열차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후로 탑승 전 검색은 까다로웠으나 실명제 예약에 따라 착석한 의자는 넓고 편했다. 얼룩진 차창에 비친 보잘것없는 풍경. 시든 풀밭에서 노니는 양 떼는 드물고 재배하는 작물 또한 생기가 부족했다. 간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상 가운데 실크로드를 떠올릴 만한 풍치를 찾을 수 없는 건 적잖이 아쉬운 대목. 이를테면 누군가의 지적처럼 대규모 뽕나무밭이라든지 비단을 생산하는 농공단지 같은 곳을 기대한 참일까. 겉으로 드러난 대지의 쓰임새는 앞서 방문한 두 나라와 대동소이. 국토가 넓은 만큼 놀리는 땅이 흔할뿐더러 농사법이 그리 체계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한가운데 마주한 좌석을 차지한 유럽 노인들은 다른 길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내 판매원을 대하니 그 옛날 우리네 풍속화를 보는 거 같아 퍽 정겹게 다가왔다.
부하라(Bukhara, 인구 30만)는 고풍스런 옛 도시를 보는 듯했다. 현존 이슬람 건축물 중 최고라는데 높이 46m의 칼란 미나렛은 칭기즈칸의 명으로 건재하다는 사실(史實)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시멘트를 버무려 관광용으로 각색한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곧이어 들른 차슈마 아유프 묘만 해도 구약성경을 들먹이며 욥의 샘물을 제공했는데 신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사실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그나마 18세기 아크르 왕이 살았던 커다란 성채를 둘러보며 전망대에서 고성의 정취를 느낀 게 작은 보상이랄까. 그걸 야경을 통해 되풀이한들 새로운 바는 없었으되 여러 차례 외침을 겪으며 붕괴와 복구를 거듭한 흔적에도 고고학적 가치를 보존한 성과는 치하할 만하다. 도시 속의 도시인 달과 별의 궁전이었다는 20세기 전후 여름별장 모히호사를 돌아볼 때는 1622년 나지르 지반베기에 의해 설립된 이슬람신학교 메드레세에 눈길이 갔고, 자랑 일색인 타일 문양이나 고대도시 중심에 자리 잡은 라비하우스 호수는 뇌리에 남은 바 없다. 그보다는 반구형 지붕 아래 북적이는 굼바스 노천시장이 현지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 있는 레기스탄 야경
사마르칸트(Samarkand, 인구 60만)로 넘어가는 길. 오색 조명으로 치장한 레기스탄 광장은 무척 화려했다. 첫눈에 16세기 티무르제국의 도읍지를 정복했다는 우즈벡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질 만큼 갈색 톤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알현할 때나 공공집회가 열렸던 장소로 동양의 건축미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눈앞 비비하눔이야말로 중앙아시아 모스크의 진수로 손꼽는다는 설명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 그 배경에 15세기 티무르왕이 전사한 손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구르에미르 영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다음 찾은 곳은 울르그벡 천문대. 저명한 학자의 반열에 올랐던 임금이 15세기 초에 이미 1년 365일의 비밀을 풀어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에 딸린 아프로시압 박물관의 전시물 역시 한때 동방의 로마로 불리던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하라에는 실크로드를 가로지르는 지역답게 군데군데 뽕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낙타 등에 물건을 가득 실은 대상들로 붐볐을 테지만 가이드 말대로 아직도 시어머니가 며느리 운명을 옥죄고 흔든다면 이는 가정파괴를 일삼은 터여서 뒷맛이 씁쓸했다.
타슈켄트(Tashkent, 인구 290만)로 향하는 열차 안, 그런데 이번에는 이탈리아 여행객들로 인해 객실이 소란스러웠다. 여기서 잠시 오래전 기억을 소환하면 우리 부부는 그리스 탐방 경유지로 이곳을 오간 적이 있었다. 입국시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청사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으되 이내 시내로 접어들어서는 역사성을 갖춘 우즈벡인의 수도다운 면모를 읽기에 충분했다.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만 해도 전시물은 미약하나 노점상들을 브로드웨이 젊은이 거리로 옮겨서 좋았고, 한자리에 가톨릭과 러시아정교회가 공존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무엇보다 필자의 취향을 저격한 건 도심을 산책하듯 주요 지점을 두루 구경한 것. 대지진 극복의 상징 기념물을 보고 맑은 하천 옆 소로를 거쳐 우거진 숲속을 거닐며 대통령궁 앞 보도를 걸은 경로 또한 맘에 들었다. 최대 재래시장(초르수 바자르)에 들렀다가 한껏 치장한 지하철에서 한글을 아는 소녀를 만나 얘기를 나눈 일이 가장 기뻤거니와 교민들이 발행하는 <한인일보>의 충실한 내용은 엄지척. 게다가 출국 수속 전 맛본 맛깔스런 깍두기는 좀체 잊지 못할 것 같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81호)에는 ‘기독교의 본질과 비본질 - 종교에 대한 일반적 개념화’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