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인구가 200여만 명에 이르는 라바트(아랍어로 ‘교외’라는 뜻)로 접어드는 길은 때마침 귀경행렬로 가득했다. 몹시 막힐 걸 예측한 가이드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거라며 추억의 흑백영화 ‘카사블랑카’를 틀었다. 하지만 깨알 같은 자막을 읽어내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잠깐 선잠이 들었나 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화들짝 놀랄 만한 광경이 차창을 메웠다. 고속도로상에 쌩쌩 달리는 자전거 행렬이라니! 제아무리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독한 교통체증을 감안하면 너무 생소한 장면이랄까. 게다가 안전을 담보할 만큼 지키는 통행규칙은 고사하고 사고위험에 대한 기초적 개념조차 없는 것처럼 보여 더 의아했다. 하지만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 게다가 연휴를 즐기고 떠난 자리에는 어김없이 휴짓조각이 널브러져 지저분하단다. 그런 무질서에 신물이 났는지 넓은 가로에 가지런한 보도를 보는 순간 색다른 느낌.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조폐창을 지나니 드디어 라바트 시가지였다. 이어 이른바 대왕대비가 손자에게 선물했다는 왕실 전용 승마장과 함께 왕궁이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도심지를 둘러싼 기다란 담벼락 외에는 별반 볼거리는 없었다. 왕궁의 전체 둘레나 규모는 철저히 비밀인 만큼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마저 수풀에 가려져 아예 볼 수조차 없었으나 그 이상 호기심도 발동하진 않았다. 현지어로 오레그렉 강변을 따라 왕릉 쪽으로 조깅 코스를 조성한 풍경은 그런대로 수준급. 우리나라 대사관저를 지나쳐 돌아본 하산탑(Hassan Tower)은 44m의 높이에 기둥이 354개에 이를 만치 어마어마한 규모란다. 사원의 외부를 포함하면 총 10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규모라면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에 얼마큼 무리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들이 한껏 조아리며 알라신에게 무릎을 꿇는 그 시각에 맞춘 듯 일행을 맞이한 참이다. 바로 거기서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해변공원을 뒤로한 채 서둘러 카사블랑카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안내자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이슬람의 교리며 국기의 연원을 설명했으나 공허한 메아리처럼 귀에는 들어오질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들 역시 난폭운전에 길든 다혈질이라는 대목만은 예외. 제아무리 둘러봐도 알라신을 믿는다는 것이 이네들의 실생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좀체 알기 어려웠다.
▲ 어스름에 찾은 라바트의 하산탑 불빛 아래서
그나저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체로 뚱뚱한 체구를 가졌다. 다름 아닌 인스턴트 식품의 악영향이란다. 무슬림의 계율에 따라 허용된 게 새우버거라지만 밤늦게 먹는 식습관으로 인해 몸집이 거반 퍼졌다는 얘기인데 운동량이 부족하고 태생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담뱃불로 인해 산불이 난들 신고하는 자가 없다니 걱정을 넘어 놀라운 일이다. 그때 눈앞에 나타난 건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 12세기 성벽을 끼고 자리한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예상치보다는 가까웠다. 핸드폰을 잡고 사는 모습은 지구촌 어디나 매일반. 다만 현대-스즈키-기아로 이어지는 상호들을 빼고는 온통 불어권이어서 간판을 통해 본 도시 분위기는 프랑스풍 일색이었다. 유난히 하얀 집들이 많은 틈새를 비집고 투숙한 곳은 호텔 CASABLANCA. 다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시설은 그저 그랬고 저녁은 선뜻 손가는 게 없었다. 설상가상 층간 소음이 들리는 구조여서 머무는 내내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일찌감치 일어나 리무진 버스에 오른 시각은 06:30. 프랑스인 20만 명이 이주해 개발했다는 카사블랑카 거리는 어둑발이 채 가시지 않았다. 가이드는 갈 길이 멀다며 서둘렀다. 일행이 탄 리무진과는 대조적으로 시내를 누비는 버스들은 하나같이 낡았다. 그리그의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만난 앙파지구는 사우디와 쿠웨이트 왕실에서 소유한 별장들이 널린 곳. 정원이 보이지 않을 만치 대체로 담장들이 높다랗다. 그 담벼락을 끼고 세련되게 가꾼 해변도로를 따라 정갈하게 심어놓은 야자수와 종려나무들. 초장에 들른 곳은 하산 6세가 세운 모스크였다. 자그마치 5억 달러나 들였다는데 별반 감흥은 없었다.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계 세 번째. 200여 개에 이르는 미나렛에 칠한 청색은 신을 향한 충성심의 표시, 곧바로 만난 모하멧 5세 광장 역시 바로 그런 데였다. 참고로 유라시아에 분포한 이슬람국가의 복음화율을 살펴보니, 아프가니스탄 0.02%, 예멘 & 소말리아 0.05%, 모로코 0.01%, 튀니지 0.22%, 알제리 0.29%, 터키 0.32%, 이란 0.33%, 나이지리아 0.4%에 지나지 않았다. 열방과 더불어 가능한 한 화평을 유지하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구원의 비밀을 알려줄 민족들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0호)에는 ‘모로코를 만나다 - 휴양도시 카사블랑카를 걷다’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