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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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드디어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욥 40:8-10)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욥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욥 40:4-5)라고 토설하며,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욥 40:11-12)라는 말씀 앞에 자복하며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도 여호와의 다짐은 집요했다. 잇달은 문답에도 불구하고,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그것이 어찌 네게 계속하여 간청하겠느냐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어찌 그것이 너와 계약을 맺고 너는 그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느냐 어찌 장사꾼들이 그것을 놓고 거래하겠으며 상인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지겠느냐 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욥 41:1-4; 6-7)라는 속사포에 가까운 질문을 쏟아내시며, 그것과 싸우겠다는 생각 자체가 헛된 희망이라고 기를 꺾어버린 터였다(욥 41:8-9). 여기서 우리는 익히 시가서로 분류하는 욥기의 갈래가 극문학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답은 자명하다. 신정론(神正論)에 입각하여,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욥 41:11)라는 대전제에 이미 정답은 정해졌다. 다소 장황하게 기록된 사탄의 정체는 명확하다. 해당 구절을 차례로 살펴보니, “네 손을 그것에게 얹어 보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못하리라 참으로 잡으려는 그의 희망은 헛된 것이니라 그것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기가 꺾이리라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내가 그것의 지체와 그것의 큰 용맹과 늠름한 체구에 대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리라”(욥 41:8-12)라는 말씀에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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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락산과 덕암산 아랫마을에 피어난 꽃무리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욥 41:18-22)라는 말씀에 더해,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같이 여기니 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욥 41:26-28)라는 경각심도 모자라,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도다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욥 41:31-32)라고 알려주시면서,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욥 41:33-34)라는 선언이 그것이다.


욥기의 주제의식을 파고든 결론은 성경에서 언급한 의인은 상대적일 뿐이어서(롬 3:10),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는 고백을 통해 누구든지 통회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최후통첩이다. 창조주의 절대 주권 앞에서,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2-3; 5)라는 깨달음을 얻었기에 욥이 옳았음을 인정받았고(욥 42:7-8), 세 친구는 욥에게 행한 범죄로 인해 번제를 드림으로써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으며(욥 42:9), 그들을 위해 욥이 기도할 때 그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갑절이나 축복하신(욥 42:10) 현장을 생생히 확인한 바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8호)에는 ‘중앙아시아 기행 - 카자흐스탄에서 받은 인상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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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욥기」의 주제의식 ‘욥의 회개와 전화위복’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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