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시사 칼럼에서, 청소년들이 현실을 블랙 유머로 비틀며 ‘드립’이라는 10대 특유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드립’은 원래 인터넷에서 비롯된 신조어로, 말을 드리블(dribble)하듯 흘려보낸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이는 온라인이나 일상 대화에서 농담, 재치 있는 말장난, 유머 등을 뜻한다. 지금은 유튜브, 틱톡, 인터넷 밈을 타고 한국 청소년 문화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언어적 코드가 되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어른들에겐 다소 생경할 정도로, B급 감성과 비문학적 표현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전쟁과 같은 인류 보편의 비극마저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예컨대 친구의 무리한 행동에 “와, 그건 전설의 드립이다ㅋㅋ”라거나, 시험을 망친 후 “이건 거의 전교 1등급 드립이지…”라며 자조적인 표현을 쏟아낸다. 드립은 이제 밈과 결합되어 “이건 무조건 ○○ 밈 드립ㅋㅋ” 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이스라엘과 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조차도 ‘드립의 소재’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장의 고통과 피해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 채, 그것을 유머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청소년들의 무감각한 현실 인식은 우려를 자아낸다.
“유머를 다큐처럼 받아들이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유머로만 소화하는 현세대의 감성은 무책임하다. 전쟁을 둘러싼 인간적 비극과 역사적 교훈을 비틀고 소모하는 이 같은 ‘드립 문화’는, 더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사회적 징후다.
게다가 이 같은 문화는 정치적 사건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해 계엄령 논란, 탄핵 국면 등을 거치며 정치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밈 콘텐츠는 청소년들의 단골 소비재가 되었다. 이는 그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현실을 관조의 대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졌음을 반증한다.
영국의 청소년 전문가 테리 파커만 박사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두고 “그들은 탈가치 세대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세대”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추구해야 할 방향을 잃은 채 폭력과 혐오, 전쟁과 환경 파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매일 노출되어 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파커만 박사의 말에는 중요한 반전이 있다. 그는 청소년들이 방향을 ‘갖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세대이기에, 본능적으로 초월적인 가치, 진짜 목적,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갈망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드립 속 자조는 곧 갈피를 못 잡는 절규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비단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연일 이어지는 전쟁과 재해, 정치적 혼란 속에서 우리 모두가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방향을 잃은 개인이나 공동체는 희망이 없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타개할 의지도, 능력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지금,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단지 무관심하게 관조하는 자로만 남을 수는 없다. 이 나라가 어떤 역사와 피 흘림 위에 세워졌는지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푯대를 세워야 한다. 혼돈의 파도를 넘어가기 위해,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를 다시 물어야 할 시점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시사적인 도전을 던진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
바울은 푯대를 세운 자였다. 완성된 인생이 아니었지만, 그는 명확한 방향을 따라 살아갔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푯대’다. 세상의 격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좌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