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 북한의 화성-17형 미사일 발사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국내외 언론과 정보기관은 일제히 ‘후계자 등장’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이후 김주애는 주요 군사·정치 행사, 특히 최현함 해군 군함 진수식이나 중국 항일전쟁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 등 국제 인사가 대거 참여한 자리에도 동행하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김정은 급변 사태에 대비한 조기 후계자 교육의 일환이라는 관측을 제기한다.
과거 김정일은 가족을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했으며, 연설 역시 직접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반면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 경험의 영향인지 부인 이설주를 공개석상에 대동하거나 대중 연설을 통해 ‘김일성식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등 차별화된 이미지를 연출해 왔다.
2014년 장기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이 동시에 퍼졌던 사례는 지도자의 건강 문제가 체제 불안으로 직결됨을 보여준다. 김정은은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심근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형적으로도 이상 징후가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부인과 딸을 동행하는 장면은 체제 안정과 후계 구도의 이상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안심 효과’를 노린 연출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내부 상황 역시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북한 파견 군인 1만4천 명 중 절반이 부상당하고 2,000명이 사망한 사실은 북한 주민들에게 큰 불만과 동요를 안겨주고 있다. 이에 김정은은 전사자 가족을 위로하고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을 적극 노출하며 ‘인민과 고통을 함께하는 지도자상’을 부각시켰지만, 이러한 정치적 퍼포먼스만으로는 체제 불안 요인을 완전히 상쇄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김주애의 공식 석상 등장은 후계자 수업의 가능성뿐 아니라, 체제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선전 효과의 측면으로 이해된다.
다만 정보기관들은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으며, 자녀는 3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아들이 실제 후계자로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으며, 김주애의 잦은 등장 자체가 오히려 후계자의 존재를 가리는 ‘연막 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딸을 전면에 내세워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동시에 백두혈통 4세대 세습에 대한 대중적 수용성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 유교적인 사상이 강하여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를 갖고 있으며, 여성 지도자가 최고 권력에 오르기에는 제도적·문화적 한계가 크다. 김정은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김주애의 노출은 상징적 성격이 강하며, 실제 권력 승계는 아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해외 조기 유학을 통한 국제 감각 습득, 귀국 후 당 직책 수행, 비공식 활동을 통한 권력 수업이라는 ‘김정은식 경로’가 다시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강대국 외교를 수행하고 북한 체제를 유지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 조건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김정은에게 급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군부의 동요 차단과 권력 공백 최소화다. 아직 어린 딸을 내세우고, 이설주나 김여정이 섭정 형태로 권력을 유지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 따라서 백두혈통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되, 딸 김주애를 전면에 노출하여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중 전략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국제정세의 격화는 북한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제2의 신냉전을 연상케 하며, 북한은 반미·안러경중 구도의 일원으로, 안보는 러시아와 경제는 중국과 각각 밀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결집하고 있다. 김정은은 “강력한 힘의 구축만이 진정한 평화”라고 강조하며 핵전력 증강을 공언하고 있으며, 이미 50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2030년까지 200~300개 수준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북한의 후계 구도 문제는 단순한 권력 승계 문제가 아니라, 국제 안보와 동북아 정세 전반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섣불리 김주애를 ‘차기 후계자’로 단정하는 것은 북한식 연출에 휘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북한의 의도적 이미지 정치와 선전 전략을 간파하면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계자 논쟁을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 아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대한민국의 미래 통일 전략 구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