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좌탑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오늘날 한국의 결혼식 풍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결혼식 하면 떠오르던 상징적 장면, 곧 주례자의 권위 있는 설교와 축사가 사라지고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는 새로운 추세가 이미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신랑과 신부가 직접 사회를 보고, 지인들이 짧은 축사를 대신하며, 때로는 전문 사회자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간소하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주례가 사라지는 현상을 단순히 시대의 변화로만 받아들여도 될까? 오히려 우리는 그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례 제도는 단순한 한국적 풍습이 아니다. 서구식 결혼식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결혼은 단순한 개인 간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서 맺는 언약이었다. 그렇기에 목사나 사제가 주례자로 서서, 신랑과 신부가 맺는 서약을 공적으로 증언하고 축복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주례는 단지 축사자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합을 공동체적으로 승인하는 ‘권위의 대리자’였다.


현대 미국 결혼식에서도 이 전통은 여전히 존속된다. 법적으로도 일정한 자격을 가진 주례자의 증인이 있어야 혼인이 효력을 갖는다. 목사, 사제, 혹은 법적으로 인정된 주례자가 서명한 증명서가 있어야만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이처럼 주례는 법적·종교적·사회적 의미를 아우르는 제도이다.


필자가 미국 교포 사회에서 들은 경험담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교포 부부가 한국에서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에는 주례가 불필요하다고 여겼지만, 나중에 미국에 이주하여 혼인 증빙 서류를 제출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법적으로 인정된 주례자의 서명이 없었기에, 다시 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편리해 보일 수 있으나, 국제적 맥락에서는 혼인의 공적 증명력에서 빈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필자는 수차례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아왔다. 단순히 형식적인 축사를 넘어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를 위한 사전 교육을 진행했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부부의 언약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 예식에서 맺는 서약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삶으로 지켜야 할 약속임을 강조했다. 예비부부와 함께 실습도 해보며, 결혼 예식의 맥락을 준비했다. 이는 결혼식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거룩한 언약임을 깊이 새겨주기 위함이었다. 주례란 바로 이 과정을 통해 결혼식에 영적 깊이와 사회적 무게를 더하는 자리다.


오늘날 결혼식은 종종 피로연과 뒤섞여 버린다. 실제로는 결혼 예식과 피로연은 엄연히 다르다. 결혼 예식은 신랑과 신부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맺는 언약의 시간이고, 피로연은 이를 축하하며 즐기는 자리다. 그러나 주례 없는 결혼식은 예식과 피로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예식은 점점 짧아지고, 피로연이 중심이 된다. 마치 결혼이라는 신성한 서약보다 잔치가 더 중요한 것처럼 흐르는 것이다.


조카 리사의 결혼식이 좋은 예다. 뮤지컬 가수 리사의 결혼식은 주례자의 인도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예식이 끝난 후 이어진 피로연은 화려하고 성대했지만, 두 자리가 명확히 구분되었기에 예식의 무게와 피로연의 즐거움이 균형을 이루었다. 결혼의 엄숙함과 공동체의 축제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권위를 거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권위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탓에, 권위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러나 모든 권위가 다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권위, 스승의 권위, 사회 제도의 권위는 여전히 필요하다. 결혼식에서 주례의 권위 또한 그러하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강조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닌 공동체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무게를 놓치게 만든다. 주례는 단순히 권위를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과 결합을 사회적으로 승인하고 축복하는 거룩한 자리다. 탈권위 시대일수록, 끝까지 남겨두어야 할 권위가 있다. 바로 주례가 서는 결혼식이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정재우 칼럼] 주례 없는 결혼식, 무엇을 잃는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