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김만제 증명사진.png
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벌’하면 대개 꿀을 만드는 꿀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벌은 단순히 꿀을 생산하는 곤충이 아니라 생태계의 핵심적인 연결자이다. 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 자연 곳곳에는 꿀벌 외에도 수많은 벌 무리가 존재하며, 이들 각각은 저마다의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꿀벌과에 속한 벌만 하더라도 양봉꿀벌, 재래꿀벌, 뒤영벌, 호박벌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가위벌류, 대모벌류, 말벌류, 맵시벌류, 호리병벌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벌 무리가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꿀벌을 포함한 벌의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농약 사용 등 인간 활동이 주된 원인이며, 꿀벌의 감소뿐 아니라 야생벌들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우리가 벌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것은 단지 꿀을 얻기 위한 일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선택이다. 벌은 생태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1. 익숙한 벌, 낯선 벌

 

평택의 자연1.jpg

▲ 꽃꿀을 얻고자 왕고들빼기를 찾은 양봉꿀벌(2024.10.10 배다리마을)

 

가장 잘 알려진 벌은 양봉꿀벌(서양꿀벌)이다.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이 벌은 꿀과 밀랍을 생산하고, 작물의 수분(受粉)을 돕는 중요한 매개자이다. 비슷한 무리인 호박벌은 크고 복슬복슬한 몸을 지녔으며, 낮은 온도에서도 활동할 수 있어 고지대나 초봄 작물의 수분에 유리하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노란줄가위벌, 등빨간갈고리벌 등 생태계에는 다양한 낯선 벌들이 존재한다.


2. 야생벌들의 숨겨진 역할

 

평택의 자연2.jpg

▲ 식물의 잎이나 꽃잎을 잘라 둥지를 짓는 왕가위벌(2021.9.23 웃다리문화촌)

 

가위벌은 잎이나 꽃잎을 잘라 둥지를 짓는 독립적인 벌로, 과수나 자생식물의 수분을 돕고 도심 속 정원이나 공원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땅속이나 나무 구멍에 둥지를 만들어 산란하는 대모벌은 특정 식물군의 번식에 필수적이며, 말벌류 또한 생태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해충을 사냥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맡고 있다.


3. 생태계를 잇는 작은 연결자들

 

평택의 자연3.jpg

▲ 꽃가루를 옮기며 식물의 번식을 돕는 꽃부니호박벌(2021.7.1 웃다리문화촌)

 

벌들은 꽃가루를 옮기며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이는 우리가 먹는 과일, 채소, 견과류의 생산과 직결되며, 다양한 식물이 유지되어야 생태계의 구성원들과 인간 모두의 삶이 지속될 수 있다. 또한, 벌들은 식물과의 공진화 속에서 독특한 생태적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이러한 정밀한 자연의 네트워크야말로 생물다양성의 본질이기도 하다.


4. 최상위 포식자, 장수말벌

 

평택의 자연4.jpg

▲ 자연 생태계에서 중요한 포식자 역할을 하는 장수말벌(2002.8.24)

 

말벌, 털보말벌, 꼬마장수말벌과 함께 말벌 속에 속한 장수말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로, 외형적으로 위협적이고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지만, 자연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포식자 역할을 하며 곤충 개체 수 조절에 기여하는 존재이다. 인간과의 충돌을 줄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이들의 생태적 역할에 대한 이해와 관리가 필요하다.


5. 거미 사냥꾼, 대모벌

 

평택의 자연5.jpg

▲ 둥지로 가져갈 애벌레용 거미를 찾고 있는 대모벌(2015.9.5)

 

대모벌은 벌목 대모벌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말벌에 비해 크기가 작고 허리가 약간 긴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살아 있는 거미를 침으로 마취시킨 후 굴로 끌고 가 애벌레의 먹이로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애벌레를 위한 거미 사냥이 끝나면, 거미를 물고 미리 파 놓은 장소로 이동한 뒤 거미를 묻고 알을 낳는다.


6.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쌍살벌, 왕바다리

 

평택의 자연6.jpg

▲ 우리나라 고유종이며 가장 큰 쌍살벌인 왕바다리(2014.5.5)

 

날아갈 때 뒷다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모습이 마치 살 두 개를 들고 나는 것처럼 보여 ‘쌍살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말벌의 일종인 쌍살벌은 나방 유충을 비롯한 애벌레들을 주로 사냥하는데, 나방이나 나비 애벌레 대부분이 농작물을 갉아먹는 해충이므로 쌍살벌은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은 ‘왕바다리’, 작은 것은 ‘어리별쌍살벌’이다.


7. 호리병 모양의 집을 짓는 호리병벌

 

평택의 자연7.jpg

▲ 몸통이 가늘고 머리, 가슴, 배 부분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호리병벌(2009.9.17)

 

호리병벌은 벌목 말벌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진흙으로 호리병 모양의 집을 짓고 그 안에 나방 애벌레 등을 잡아넣어 알을 낳고 사육하는 습성이 있다. 벌의 이름은 몸매가 호리병처럼 생겼거나, 호리병 모양의 집을 짓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호리병벌은 일반적으로 몸통이 가늘고 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머리, 가슴, 배 부분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8. 뱀 허물 같은 둥지를 짓는 뱀허물쌍살벌

 

평택의 자연8.jpg

▲ 뱀 허물처럼 아래로 늘어진 벌집을 짓는 뱀허물쌍살벌(2014.5.6. 원곡 고성산)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뱀의 허물을 닮았고, 마치 뱀 허물처럼 아래로 축 늘어진 벌집을 짓고, 가는 나무 막대기 같은 뒷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뱀허물쌍살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수말벌이나 털보말벌 등에 비해 상당히 온순한 습성을 지니고 있으나, 숲속에서 뱀 허물처럼 생긴 벌집을 발견했다면 민첩한 몸놀림을 지녔기에 주의해야 한다.


9. ‘목수벌’로 알려진 어리호박벌

 

평택의 자연9.jpg

▲ 산지 풀밭의 조개나물에서 꽃꿀을 따는 어리호박벌(2017.4.22. 원곡 고성산)

 

동식물 이름 앞에 붙는 ‘어리’는 어떤 개체보다 어리거나 작다는 뜻, 혹은 그와 비슷하거나 가까움을 나타낸다. 그러나 어리호박벌은 호박벌보다 몸집이 크고 배에 털이 없으며, 가슴에 노란색 털이 풍성해 구별된다. 또한, 호박벌은 여왕벌, 일벌, 수벌로 구성된 군집 생활을 하는 사회성 곤충이지만, 어리호박벌은 썩어가는 나무에 구멍을 파 단독으로 생활한다.


10.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평택의 자연10.jpg

▲ 물가에서 꿀벌을 즐겁게 하는 아이리스(노랑꽃창포)(2025.5.27 배다리실개천)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계절에 맞는 밀원식물을 심어 벌에게 지속적인 먹이원을 제공해야 하며, 동시에 살충제 사용을 줄이고 저독성 농약을 꽃이 피지 않은 시기에 사용하는 등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벌의 역할과 생태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아이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교육하는 것이 장기적인 보전에 큰 힘이 된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야생벌들의 숨겨진 생태적 가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