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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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 연구위원·정책학 박사, 평택대학교 특임교수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던 주한미군 병력 4,500명 감축 검토설은 국내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국방부가 이를 즉각 부인했음에도,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오래된 협상 레퍼토리다. 특히 한국의 대선 국면에 맞물린 시점에서,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정책 검토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래, 동맹국으로서 미국에 전례 없는 수준의 협조를 해왔다. 미국이 요구할 때마다 신속히 손을 내밀었고, 때로는 국내 이해 집단의 반발이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뒷받침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다. 국내 축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2024년 기준 22만 톤이 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며 8년 연속 수입국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무기 구매에서도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45조 원 넘는 해외 무기 구매 중 78%가 미국산으로 편중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동맹의 가치를 지킨다’는 이유로 문제 제기 자체를 자제해 왔다.


평택 험프리스 기지(K-6)는 이러한 한국의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이 미군 기지 건설에 15조 원 이상을 투입했으며, 현재 험프리스는 전 세계 미군 기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제 이곳은 한반도 방어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핵심 전초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카드로 꺼내 들며 방위비 협상이나 무역 분쟁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이 전략을 활용했으며,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미군 철수 위협은 협상에서 강력한 위치를 제공한다”고 판단했다.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압박은 단순한 외교적 스트레스가 아니라, 실존적 위기로 받아들여진다. 1949년 주한미군 대부분이 철수한 이후 곧바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이렇듯 주한미군의 존재는 단순한 안보 자산을 넘어 심리적 안정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주한미군은 더 이상 한반도만을 방어하는 전력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에 이르는 동북아 전체의 전략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의 축이 되었다. 그 기능과 역할이 확대된 상황에서, 감축 또는 철수 논의는 그 자체로 동북아 질서 전체를 흔드는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2기가 재출범하면서, 다시금 관세 전쟁과 방위비 압박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은 미군 최초로 한국 조선소에서 미 해군 전투함 수리를 진행했으며, 이 조선소의 미국 내 이전 혹은 투자를 은근히 압박하며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전방위 협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동맹국에 대한 존중이 아닌 일방적 요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새로운 한·미동맹의 패러다임 방향이 필요하다. 동맹이란 이름 아래 계속해서 압박과 협박이 반복되는 관계는 결국 신뢰를 약화시킨다. 병력 감축이나 철수와 같은 민감한 사안은 동맹국 간 충분한 협의와 전략적 조율을 거쳐야 하며, 공론화 시점 또한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단어 자체가 협상의 레퍼토리로 반복되는 현실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실현되기 전까지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안정을 위한 핵심 기둥이다. 이 문제를 협상의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는 한·미 양국 모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 시에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Area Denial)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과 동맹국들 전투함이 제1도련선(일본 큐슈~오끼나와~대만)을 넘지 못하게 파괴 및 방어하는 전략을 구사하려면 한국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의 킬체인(Kill Chain)은 한국이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해 KAMD를 구축하는 전략으로, 한·미연합이 북한을 선제타격 체제로 30분 안에 목표물을 타격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위해서는 한·미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이렇듯이 한·미동맹은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상호연관성이 있는 관계이므로 더 이상 한국을 상대로 단순 이익을 착취하는 국가로 여기는 미국의 국가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동맹이란 상호 이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결코 일방적 청구서가 아니다. 이제는 말뿐인 ‘가치동맹’이 아니라, 실질적 신뢰와 존중에 기초한 새로운 한·미동맹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 역시 동맹의 무게를 인식하고, 정책 기조에 있어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해야 할 때다. 그럴 때 비로소 한·미는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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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한미군 감축 논의, ‘위협 동맹’이 아닌 ‘상호 협력’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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