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5월, 흰 꽃으로 물드는 숲의 향연
“각기 다른 이름과 생김새를 가진 나무들이 흰 꽃을 피우며 산과 들을 수수하게 수놓아”

5월, 봄이 절정을 지나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면 숲은 흰색으로 새로운 변신에 들어선다. 찔레꽃, 산딸기, 칠엽수, 팥배나무, 때죽나무, 쥐똥나무, 산딸나무, 층층나무, 노린재나무, 아까시나무 등, 각기 다른 이름과 생김새를 가진 나무들이 흰 꽃을 피우며 산과 들을 수수하게 수놓는다. 이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은은한 아름다움과 생태적 역할로 우리 곁에 특별한 존재감을 더한다.
산수유, 개나리, 철쭉, 진달래 등 봄꽃의 화려한 색상이 지나가고 짙은 녹음이 오기 전의 짧은 시기에 흰 꽃이 집중적으로 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생태학자들은 “흰색은 시각적으로 멀리서도 잘 보이고, 다양한 곤충에게 널리 어필하는 전략적인 색”이며, 특히 “자연 생태계에는 항상 보상 작용이 있듯이 식물 입장에서 흰 꽃은 다른 색의 꽃보다 색소에는 적은 자원을 투입하면서, 상대적으로 꿀이나 꽃가루, 향기와 같은 다른 보상(reward)에 더 투자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1. 초여름 숲을 물들이는 흰 꽃
▲ 이른 봄 화려한 진분홍 꽃 색으로 경쟁하는 진달래(2014.3.29 고성산마을숲)
5월에서 6월 사이, 초여름 숲은 어느새 하얀 꽃들로 덮인다. 산딸기, 찔레꽃, 칠엽수, 쥐똥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노린재나무 등 주변 나무들이 일제히 흰 꽃을 피운다. 눈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이 꽃들은 초여름을 ‘흰 꽃의 계절’로 바꾸고 있다. 노랗고 붉은 색으로 경쟁하기보다, 수분 매개자를 공유함으로써 경쟁보다 공존을 선택하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2. 꽃가루받이 전략의 진화
▲ 무리를 지어 피는 흰 꽃으로 곤충을 부르는 팥배나무(2019.5.3 배다리마을숲)
하얗게 피는 꽃은 강렬한 색보다는 달콤한 향기와 군집 형태로 곤충을 유혹한다. 주변 산야에서 5월을 대표하는 찔레꽃, 쥐똥나무, 아까시나무는 화려한 색은 아니지만 짙은 향기를 뿜어 벌과 나비, 꽃등에 등 다양한 곤충들을 불러들인다. 꽃은 작고 수수하지만 많은 수가 모여 있어 먼 거리에서도 눈에 띈다. 이러한 특징은 수분 성공률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3. 경쟁보다 공존을 선택한 나무들
▲ 초록색 잎과 뚜렷한 색상 대비를 이루는 때죽나무의 흰 꽃(2020.5.18 배다리마을숲)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면, 나무들은 꽃 색깔로 경쟁하기보다는 같은 전략으로 꽃가루 매개자를 공유한다. 서로 다른 높이와 구조에서 꽃을 피우고, 초록 잎과 뚜렷한 색상 대비를 이루는 흰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나 생태계 내 다양한 곤충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에너지 효율성과 함께 오히려 생태계의 다양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4. 흰 꽃이 주는 생태적 의미
▲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흰 꽃을 피운 이팝나무(2024.5.8 배다리실개천)
초여름 흰 꽃들의 향연은 단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생존 전략이자 생태계 내 상호작용의 결과다. 특히 기후 변화로 개화 시기나 수분 곤충의 종류가 달라지는 요즘, 흰 꽃들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곤충을 유인해 번식을 위한 생태적 이점을 확보한다. 이는 다양한 생태적 요인들이 조화롭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5. 자연의 설계에 담긴 메시지
▲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아까시나무의 흰 꽃(2024.5.8 배다리마을숲)
꽃은 언제나 순수함과 깨끗함의 상징이다. 아까시나무를 시작으로 찔레꽃, 산딸나무, 쥐똥나무 등 초여름에 만개한 흰 꽃나무들은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계절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일깨워 준다. 연초록 잎들과 어우러진 흰 꽃은 부드러운 존재감으로 주변과 편안한 조화를 이루며, 인간에게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6. 생물의 보상작용
▲ 강한 향기로 수분 매개자에게 보상하는 쥐똥나무의 흰 꽃(2013.6.12 진위 마산리)
흰 꽃이 여전히 꽃가루받이 곤충 매개자들로부터 선택받는 이유는, 곤충의 입장에서 충분한 보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물의 보상작용은 생물이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과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아까시나무의 풍부한 꿀, 찔레꽃의 풍부한 꽃가루, 쥐똥나무의 강한 향기와 같은 매개자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이에 해당한다.
7. 초여름 개화 수목의 절반 이상을 넘는 흰꽃
▲ 분홍색을 띤 흰 꽃이 원추꽃차례를 이루면서 달린 칠엽수(2024.5.4 배다리마을숲)
국립수목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자생 수목 중 꽃의 색이 유의미한 의미를 지닌 충매화 또는 조매화는 464종이며, 이들 중 초여름(5월과 6월)에 개화하는 수목은 전체의 약 49.6%가 5월에, 46.1%가 6월에 개화한다”고 한다. 이는 초여름에 개화하는 수목 중 흰 꽃을 피우는 수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8. 흰색의 덮개잎이 돋보이는 산딸나무
▲ 덮개잎을 이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산딸나무(2025.5.22 배다리마을숲)
나무껍질은 흑갈색이며, 오래되면 불규칙하게 벗겨진다. 가지는 사촌뻘인 층층나무를 닮아 층을 이루며 옆으로 휘는 산딸나무가 있다. 산딸나무는 층층나무와 마찬가지로 꽃잎 자체는 작지만, 눈에 띄는 덮개잎(포엽)을 이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수분 매개자를 유인한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덮개잎은 큰 도움이 되었다.
9. 숲 곤충다양성을 끌어가는 찔레꽃
▲ 짙은 꽃향기와 넉넉한 꽃밥으로 곤충을 부르는 찔레꽃(2025.5.12 배다리산책로)
찔레꽃은 소박한 아름다움 속에 자연의 조화로움을 품고 있다. 짙은 향기와 넉넉한 꽃가루는 꿀벌과 꽃등에, 나비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은 물론 긴알락꽃하늘소 같은 딱정벌레들까지 끌어들인다. 찔레꽃은 단순한 식물을 넘어 생태계의 작은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소담한 자태는 수많은 생명에게 쉼터이자 만남의 장이 되어 초여름의 숲과 들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10. 숲 그늘의 숨은 생명, 산딸기나무
▲ 숲속 그늘에서 생명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산딸기나무(2015.5.16 덕동산마을숲)
청설모와 고라니만이 오갈 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속 그늘에 산딸기나무는 조용히 흰 꽃을 피운다. 이 꽃은 숲 생태계의 숨은 보석으로, 다양한 곤충과 작은 동물들을 불러 모아 생명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산딸기나무 덕분에 숲은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생명으로 가득 차며, 생태계의 균형과 다양성이 유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