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간절히 비만 오기를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산불이 급속히 확산되어 갈수록 애타는 마음으로 비만 기다렸다.
금번에 동시다발로 일어난 산불이 열흘 만에 비로소 진화되었다. 그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울창한 산림이 불바다로 타들어 갔다. 강 속의 바람이 부채질을 해서 불길은 더없이 커져만 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 산맥을 가로질러 가면서 모조리 태워버린 것 같았다. 산불이 마을 전체를 뒤덮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모습은 황량했다. 무엇 하나 건질만한 것이 남아있질 않았다.
경북 의성에서부터 일어난 산불은 미친 바람을 타고 도깨비불이 되어 동해바다에 접한 영덕까지 날아갔다. 그 피해는 역대 최대이자 최악의 수준이었다. 사망자 30명을 비롯해 부상자들과 수천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4만8천 헥타르(ha)로, 여의도 크기 166배 정도였다.
피해 주민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이 동네에 다시 발 딛고 살겠나?”, “다 타버린 집을 보니 눈물만 자꾸 나”,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빈도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번 산불의 요인을 여러 각도로 진단하고 있다. 초기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 진화 장비 노후화와 진화 인력의 노령화를 들었다. 또 임도(산불 진화 시 소방도로로 사용하는 숲속의 길)가 충분히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산불 예방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가 너무 낮았다. 결국은 인재라는 결론이었다.
열흘 동안 속보로 전해주는 뉴스를 들으며 생소한 언어를 만났다. 주불을 잡아라, 잔불을 찾아라, 뒷불을 끝까지 방심하지 말라. 무슨 말인가? 주불은 산불을 확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위세를 가진 큰불이다. 주불이 약세로 돌아서기까지 혈투를 벌여야 한다. 주불이 약해지면 나머지 불을 잡는데 효과적이다. 잔불은 남아있는 불씨들이다. 주로 쌓여있는 낙엽 아래나 진화된 줄로 알고 지나친 폐허 아래 숨어 있는 불이다. 바람이 불면 언제든지 다시 불길을 일으켜 세운다.
뒷불은 진화가 완료된 뒤에 어딘가에서 다시 일어나는 불이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완벽하게 진화를 완료하기까지. 뒷불은 새로운 발화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산불 상황은 주불이 능선을 타고 띠를 이어갔다. 도깨비불처럼 바람을 타고 불티가 멀리까지 날아가 세력을 확대했다. 공중에서 헬기로 소방수를 쏟아부었지만 잔불이 남아 바람을 타고 다시 살아났다. 99% 진화율을 발표하면서도 남은 1%가 재발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뒷불을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역대급 대형 산불은 많은 깨달음을 주고 사라졌다. 산림녹화를 위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지만 방심한 사이에 한순간 산림은 잿빛으로 변했다. 녹화의 수고만큼 보존의 수고가 부족했다. 산불 화재에 대한 위험성과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무엇보다 낙후된 소방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하고, 소방 장비 중 더 많은 소방용 전문 헬기 도입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겠다. 더 나아가 진화 인력의 전문성과 평균 연령층을 낮추어야 한다.
산불이 우리 마음까지 타들어가게 했다. 이제 그 마음을 이재민들에게 돌려보자.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 보자. 그동안 시국으로 인해 격해진 마음에 차분히 비가 내리면 좋겠다. 불길을 잡는 가장 큰 수단은 충분한 양의 강수이다. 흩어진 마음조차 하나가 되어 모두가 소원한 비. 그 비만 오기를, 그 비만 기다림 같이, 이제 하나의 마음이 되자.
아직도 소방 장비나 진화 인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한마음이 되어보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인력을 갖추더라도 결국은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차분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를 기다려 보자.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하늘도 감동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