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겨냥해 융단 폭격을 가했다. 레바논 남부 도시 시민들은 피난 행렬을 이루며 정든 도시를 떠나고 있다. 예고 없는 미사일 폭격으로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서 피난길에 나섰다.
유엔과 여러 국가가 이스라엘의 행태에 제동을 걸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팔레스타인 하마스 척결을 위해 민간인 건물에도 가차 없는 폭격을 가했다. 마치 잠자는 사자를 깨운 듯 이스라엘은 보복성 공격을 그칠 줄 모른다. 호출기와 무전기를 원격 조종해 폭발시키는 새로운 전술로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마치 폭탄을 안고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시키려고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마스의 미사일 집중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무장한 하마스 대원들이 경계벽을 뚫고 들어와 무고한 자국민 200여 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이런 이유에서 그들에게 타협 없는 보복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이스라엘의 폭력은 정당성을 갖는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선제공격은 정당성이 있는가? 자국민을 보호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겠다는 논리는 전쟁을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가? 지금 전 세계의 여론은 러시아 편이 아니다. 그러면 이 기회에 러시아를 좀 더 고립시키거나 밀어내려는 서방의 행태는 정당한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대리전쟁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폭력의 기원을 성경은 인간의 타락에서 왔다고 한다. 실낙원의 저주를 받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시기해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자기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동생 아벨을 시기해 돌로 쳐 죽였다. 그 이후로 인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개인적인 폭력에서부터 집단적 폭력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보복형 폭력, 정당방위 폭력, 훈계형 폭력, 징벌적 폭력, 사랑의 매 폭력, 신의 이름을 건 심판형 폭력 등이 있다. 하지만 정당한 폭력은 있을 수 없다.
폭력은 인간의 본능에 자리를 잡았다. 본능을 자제하지 못하면 폭력은 언제든지 튀어나온다. 우리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한때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권력과 폭력이 손잡고 정권을 독차지해 행세하는 걸 보았다. 폭력은 권력을 손에 쥐게 하는 수단이었던 시대였다.
한국 문단의 거장인 이문열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설에서 그 시대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어떻게 폭력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지 보여 준다. 반장은 체벌과 폭력을 사용해 같은 반 아이들을 복종하게 만든다. 권력이 폭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의 타락과 폭력이 상호 작용하며 사회 구조를 일그러뜨린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최근 극장가를 달군 한국 영화가 있다. 추석 명절을 기해 개봉했는데 4주 만에 400만 명 돌파라는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베테랑 2>를 말한다. 이 영화는 9년 전에 <베테랑>으로 상영해 1,400만 명을 동원한 성공한 영화 속편이다.
이번에도 동일한 주제를 관객에게 충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사회 정의에 대한 고찰로 법과 정의의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특히 정의 구현을 위한 사적 복수와 법적 절차 사이의 갈등을 다루며, 사회 정의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고한다.
또한 부패한 권력층에 대한 비판으로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법망을 피하면서 벌어지는 부패한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 이는 현실 세계의 불평등과 연결되며, 이를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무엇보다도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폭력적 해결 방식이 과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폭력으로 행하는 사적 복수가 주는 쾌감 뒤에 숨어있는 위험성을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폭력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는 폭력의 역사를 지나왔으며 여전히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세계 각처에서 나름대로 정당성을 내걸고 폭력을 구사한다. 개인이나 조직사회나 국가 단위에서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인간의 죗값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코 어떠한 폭력이라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 폭력은 마치 사랑이 증발한 곳에 독버섯처럼 피어나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각박한 땅을 적시는 것이 폭력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