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정부의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한 의료대란이 임계치에 와 있는 형국이다. 뉴스 제목들만 봐도 이제 ‘응급실 뺑뺑이’가 위험 수준을 넘었다. 8월 29일 기자브리핑에서 아무 문제 없다는 대통령의 진단은 국민을 안심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많은 공분을 사고 있다.
의료대란에서 정작 우리가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의료시스템의 붕괴이다.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을 요구한다. 지난 40년간 의료보험으로 전 국민이 누리던 혜택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공공의료보험의 주요 자리를 민간보험이 대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될 것이다. 정부의 의료시장화 정책의 그늘이 눈에 선하다.
때마침 지난달에 윤석열 정부는 영리병원 찬성론자이자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주장하는 인사를 건강보험연구원장에 임명하였다. 일련의 이런 의료 정책을 통해 정부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 환자나 중병을 앓는 가족이 있으면 그 집은 망할 걸 각오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위암 수술하는데 환자가 대략 3백만 원 내외를 부담하는데, 미국처럼 천문학적인 병원비를 부담하는 ‘의료민영화’ 시대가 10년 안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독일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한국의료의 우수성과 한국의료보험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독일은 의료비는 낮으나(물론 엄청난 세금을 내는 고비용 고복지) 의사의 실력과 며칠씩 대기해야 하는 병원 접근성 등, 한국의 의료복지가 훨씬 우수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서민에게 의료비는 엄청난 부담이다. 감기로 병원에 간다면 한국은 5천 원, 미국은 16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CT 촬영에 한국은 13만 원, 미국은 200만 원이 나오는 실정이다. 미국에서 서민들은 웬만하면 아예 병원에 못간다고 보면 된다. 2007년 하버드대 연구에 의하면 미국 파산자 60%가 병원비 빚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그간 우수한 한국의료 시스템은 전공의들(인턴, 레지던트)의 값싼 월급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붕괴하게 생겼다. 정부의 설익은 2천 명 의대 증원의 반발로 전공의 92%, 1만2천 명이 사직하였다. 당장 내년부터 3천 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벌써 적자를 호소하는 상급종합병원들의 재정지원에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전공의 대량 사직과 의대생 휴업, 응급실 의료 공백 등 ‘의료대란’이 이대로라면 ‘의료 붕괴’를 넘어 ‘의료시스템 붕괴’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비민주적 추진, 독재적 대처가 사태를 불가역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악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의료개혁은 오로지 국민의 건강권 증진,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 의료서비스 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추진되어야 한다. 국민 누구나 아프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백년을 내다봐야 한다. 의사의 점진적 증원, 필수·지방의료 등 의사 인력의 공공성 강화, 공공의대 신설 및 공공병원 확대, 예산 및 분배에 대한 숙고, 민주적 절차 등을 고려한 세심한 의료개혁이 필요하다. 졸속 추진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고 나만 옳다는 고집불통과 고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추석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추석 연휴엔 응급환자가 두 배 더 늘어난다고 한다. 먹고 사는 민생 중 최고 중요한 게 죽고 사는 의료 문제 아니겠는가. 심각한 의료 붕괴에 직면해서 여야가 부랴부랴 ‘여야의정협의체’를 구성하는 모양새이다. 자랑스런 K-의료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선무당이 사람 잡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