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2(목)
 


좌탑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최근 한 일간지에서 “대학에 미친 중국, 대학을 내친 한국”이라는 칼럼을 읽었다. 제목이 다소 과격해 보였지만, 글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파급력이 이토록 크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한 입시 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였다.


대학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와 연구자를 길러내는 상아탑이다. 대학이 튼튼해야 국가 경쟁력이 유지되고, 학문적 다양성이 확보돼야 사회의 균형 발전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대학은 특정 학과로 인재가 몰리며 균형을 잃고 있다. 그 대표적 현상이 바로 의대 쏠림이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식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대학에 대대적 투자를 이어왔다. 2015년 세계 대학 평가에서 100위권에 네 곳에 불과하던 중국 대학은 2024년에는 무려 14곳으로 늘었다. 200위권까지 합치면 30여 곳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서울대와 성균관대 두 곳뿐이다. 전문가들이 “한국 대학 경쟁력이 추락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대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가는 미래 산업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의대 쏠림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생명 치료라는 직업적 가치, 안정된 지위와 높은 소득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대기업조차 평생직장이 아닌 시대에 의사는 ‘정년 없는 안정된 직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KAIST(카이스트)와 포항공대 같은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에서도 우수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하거나 자퇴한다. 대학원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연구 현장은 활력을 잃는다. 반도체, 인공지능, 우주항공처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첨단산업은 정작 인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자연계열 일반 학과 지원자가 줄고, SKY 대학 무전공 전형에서 등록 포기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다양한 학문 분야가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를 대책으로 거론하지만, 이는 단기적 처방일 뿐이다. 오히려 쏠림을 부추길 수 있다. 본질은 의사의 경제적 가치가 다른 직종보다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의료 수요 조정, 지역별 인력 분산, 면허 제도의 개혁 등 구조적 개편 없이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의대 입시 학원에 내몰리는 아이들, 영어유치원 경쟁에 줄 서는 부모들의 모습은 비정상적이다. 이렇게 자란 학생이 과연 환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높은 소득과 안정이 행복의 전부라는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의대 쏠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전 김동길 교수는 명문대생들에게 배지를 떼라면서 위화감을 조장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오늘날 거리에는 대학 로고가 새겨진 점퍼가 흔하다. 머지않아 ‘의대생’ 점퍼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사회 불균형의 상징이 될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지금 정부와 사회가 할 일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대학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학문적 토대를 다져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가 골고루 성장할 때 국가의 미래도 보장된다.


의대 쏠림은 단순한 입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분명하다. 학문의 가치를 균형 있게 존중하는 교육 구조를 세우고, 직업의 가치를 소득이 아닌 사회적 기여와 인간적 성숙으로 평가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나라로 살아남는 길이며, 다음 세대에 진정한 희망을 남겨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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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의대 쏠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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