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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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 연구위원/평택대학교 특임교수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을 자아냈다. 회담 당일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글을 올리자 일각에서는 회담이 취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서의 군사 쿠데타 관련 특검과 조사 진행 상황, 미군부대 압수수색 논란의 실제 성격을 명확히 설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불식시켰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Peace Maker이고 나는 Pace Maker”라는 발언으로 회담장을 웃음으로 이끌며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돌출 발언과 압박 전술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이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협상 구도를 흔드는 것이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한국 측은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대응을 통해 이러한 함정에 말려들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 즉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전략적 분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며 한·미관계를 미국 중심으로 재정립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문제도 핵심 쟁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규모를 의도적으로 혼동하며 한국 측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는 한편, 현재 GDP의 2.3% 수준인 국방비를 단계적으로 5%까지 상향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또한 미국의 첨단무기 구매 의지를 밝힘으로써 불필요한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를 차단하였다. 아울러 평택 험프리스 기지가 한국 국민의 혈세 17조 원으로 건설된 사실을 환기하며, 이를 마치 미국의 자산인 양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정면 대응하였다.


이번 회담에서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도 병행되었다. 한국은 일본 수준의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 향후 에너지 자립 및 기술적 자율성을 도모하려 하였다. 산업 협력 측면에서도 조선·원자력·LNG 등 5개 분야에서 11건의 계약과 MOU가 체결되었다. 특히 미국 해군의 함정 보유 규모(279척)가 중국(370척)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이는 미국이 자국 조선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에 협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 협력 논의에서는 ‘마가 정책’과 관련된 3,500억 달러 투자 방식에 대한 해석 차이가 드러났다. 한국은 이를 펀드 개념의 재투자로 이해한 반면, 미국은 이익의 90%를 확보하는 구조로 인식하고 있어 향후 조율이 필요하다. 다만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요구가 배제되면서 국내 농민들에게는 일정한 안도감을 줄 수 있었다. 특히 쌀과 쇠고기 시장 개방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었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을 다른 지역으로 전환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안보 공백을 우려하며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양안(중국-대만) 충돌 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일부가 차출된다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숫자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한국은 억지력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축소가 불가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방한 직전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으로 양국 갈등이 일정 부분 해소되자, 미국은 한미일 삼각 공조를 추진하는 데 부담을 덜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향후 미국의 요구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한국은 돌발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주한미군은 순환 배치를 통해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을 실행하고 있으며, 이를 공식화하기 위한 미국의 압박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은 재래식 전력 기준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이 인계철선이 되지 않더라도 북한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는 미국의 평가도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정치적 욕구를 활용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전략적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 비핵화가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미국 및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단계적이고 실질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변화된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한국의 국방력 향상과 대외정책 전환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한국은 미국의 압박과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주도적 외교와 안보 전략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견인하는 ‘Pace Maker’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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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미 정상회담, “Peace Maker, Pace 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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