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곤충을 부르는 참나무 수액
최근 도시화 및 산림 훼손에 따라 숲의 건강 지표로 여겨지는 참나무 수액 찾기 어려워
마을숲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의 수피에는 흰색 수액이 맺힌다. 이맘때가 되면 크기와 모양, 벌과 파리, 딱정벌레와 같은 종류에 관계없이 주변의 대다수 곤충들이 한마음으로 막걸리 쉰 듯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모여들어 그들만의 짧은 축제를 갖는다.
참나무 수액은 나무의 상처에서 배어 나오는 영양 덩어리다. 당분과 아미노산, 무기질이 풍부하고, 더운 여름 미생물에 의해 발효돼 특유의 막걸리 같은 향을 띤다. 이 향에 이끌려 사슴벌레, 꽃무지, 나비, 말벌 등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모여들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다.
이곳은 곤충들이 에너지를 보충하고, 짝짓기를 하며, 때로는 싸움을 벌이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생명 활동은 숲의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먹이사슬을 지탱하지만, 최근 도시화와 산림 훼손으로 숲의 건강 지표로 여겨지는 참나무 수액을 찾기 어려워졌다. 여름밤, 참나무 아래서 펼쳐지는 수액 곤충들의 향연을 지켜보며 숲의 의미와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1. 참나무의 수액
참나무 수액을 즐겨 찾는 밤나방과의 흰눈까마귀밤나방(2015.7.10. 원곡 고성산)
수액은 나무의 내부(주로 물관과 체관)를 흐르는 액체가 외부로 흘러나온 것이다. 참나무 수액은 나무의 상처에서 배어 나오는 일종의 ‘자양분’으로, 당분과 아미노산, 무기질이 풍부하다. 이 영양 가득한 수액은 더운 여름철, 에너지를 보충하려는 곤충들에게 귀중한 먹이가 된다. 나비와 나방, 벌과 딱정벌레류 등이 수액을 찾아 모여들며, 서로의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2. 수액의 생태적 의미
나무의 내부를 흐르는 액체가 외부로 흘러나온 갈참나무의 수액(2017.7.5 고성산)
수액은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거나 상처가 나서 관다발이 노출되면, 내부 압력 때문에 흘러나오거나, 혹은 매미 유충이나 딱정벌레 등이 나무에 구멍을 내고 흡즙할 때 주변으로도 새어 나온다. 이때 나오는 수액은 상처 부위를 막아 주고, 병원균이나 해충의 침입을 방어한다. 또한 이 물질은 곤충들이 모이는 작은 먹이터가 되어, 포식자까지 함께 모여드는 ‘미니 생태계’를 형성한다.
3. 나무껍질에 생기는 거품
거품벌레 유충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찔레 줄기에 만든 거품(2004.6.4 덕동산마을숲)
여름철이면 나무에서 관찰되는 수액과 거품은 발생 원인과 성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수액과 거품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나무와 곤충, 생태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거품의 경우, 거품벌레 유충과 같이 나무 진액을 빠는 곤충이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수액에 자신의 분비물을 섞어 공기를 불어 넣어 만든 것으로, 흔히 ‘뱀허물거품’이라고도 부른다.
4. 곤충과 무관한 경우의 거품
곤충과 무관하게 참나무 아래쪽에 생긴 거품(2015.4.19. 고성산)
여름철에 나무껍질 위에 국소적으로 생겨 며칠간 유지되는 거품은 대부분 곤충(거품벌레 유충)의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무조건 곤충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무 수액에 물방울이 섞여 거품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무 진액 자체가 발효하면서 거품이나 거품막이 생기기도 한다.
5. 나무껍질에 생기는 거품의 생태적 의미
자외선이나 포식자로부터 거품벌레 유충을 보호하는 거품(2004.4.20 덕동산마을숲)
거품벌레 유충의 입장에서 보면, 거품은 습도를 유지해 주고 자외선으로부터 유충을 보호하며, 냄새와 맛으로 포식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거품을 만들며 즙을 빠는 유충은 나무의 수분과 영양을 일부 빼앗기도 하지만, 거품 속 유충은 말벌이나 야생 조류 등의 포식자에게 중요한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6. 수액에 모이는 곤충들
숲에서 참나무 수액을 즐겨 찾는 수노랑나비(2014.6.29 진위 만기사)
여름철 참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은 수많은 곤충들에게 훌륭한 먹이가 된다. 평택 주변에서 참나무 수액을 즐겨 찾는 대표적인 곤충으로는 장수말벌과 사슴벌레가 있으며, 이 외에도 풍이, 하늘소, 수노랑나비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들이 모여든다. 수액을 먹을 때는 순서가 있고, 낮과 밤에 모이는 곤충의 종류도 다르다.
7. 참나무수액을 찾는 장수말벌
어둡기 전, 항상 수액을 독차지하는 장수말벌(2014.7.19 진위 만기사)
곤충들이 참나무 수액을 선호하는 이유는 풍부한 당분 함량과 특유의 발효 향 때문이다. 여름철 고온과 미생물 작용으로 인해 참나무 수액은 막걸리처럼 은근한 알코올 향을 띤다. 이러한 향은 곤충들의 후각을 자극해 멀리서도 찾아오게 만들며, 낮에는 나비와 파리류가 수액을 즐겨 찾지만, 항상 수액을 독차지하는 1인자는 바로 장수말벌이다.
8. 참나무 수액을 찾는 넓적사슴벌레
어두워지면 참나무 수액을 독차지하는 사슴벌레(2014.7.19. 진위 만기사)
밤이 되면 참나무 수액 주변의 풍경은 어둠과 함께 새롭게 재편된다. 낮에는 등에와 나비, 말벌류가 주를 이루었다면, 밤에는 대형 딱정벌레와 나방들이 번갈아 가며 수액의 주인이 된다. 이렇게 숲속 참나무 주변에서는 밤낮으로 생명력이 끓어오르는 무대가 펼쳐지지만, 밤무대의 주연은 언제나 힘과 크기를 겸비한 사슴벌레가 맡고 있다.
9. 덕동산마을숲을 찾은 풍이
상수리나무 수액을 찾은 풍이와 재등에(2015.7.4 덕동산마을숲)
우리가 몰랐던 딱정벌레 중 생태적 가치를 지닌 곤충이 있다면, 꽃무지과에 속한 ‘풍이’이다. 꽃무지는 보통 꽃의 꿀과 꽃가루를 먹이로 삼으며 활동하지만, 풍이는 밤에 참나무 수액을 즐겨 찾는다. 곤충 생태계에서는 약자에 속하지만, 수액을 놓고 경쟁할 때는 밀어내기에 능하며, 특히 날아다닐 때 ‘부웅’하는 소리를 내어 쉽게 접근을 알 수 있다.
10. 배다리마을숲을 찾은 톱사슴벌레
벚나무 껍질의 진액(수지)에 모인 톱사슴벌레(2022.6.11 배다리마을숲)
2022년 6월 11일, 배다리마을숲 벚나무 수피에서 톱사슴벌레 2마리가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참나무에 상처가 나 달콤한 즙이 배어 나와 딱정벌레나 나방이 모여드는 것은 주로 수액 때문이지만, 밤나무와 벚나무 등의 상처 난 부분에서 진득한 수액이 나온 것은 주로 진액(수지)이다. 이곳에서 아주 드물게 대형 딱정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