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
[정재우 칼럼] 사랑을 배운 재판
-
-
법정은 언제나 차갑고 냉정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판사는 법을 들고 서 있고, 변호사는 조문을 근거로 논리를 쌓는다. 그러나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에스콰이어>의 최종회는 달랐다. 제목조차 낯설고 시적인 ‘사랑의 서약, 저 너머’였듯, 마지막 재판정은 법률 논리보다 더 깊은, 인간의 심장을 두드리는 물음을 던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였다.
재판의 배경은 이러했다. 남편은 이혼을 청구했고, 아내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우리는 흔히 이혼을 말할 때 ‘사랑이 식어서’라는 이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달랐다. 남편은 재판정에서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 사랑이 아내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 역설적인 고백은 재판정을 술렁이게 했다. 사랑 때문에 이혼을 원한다니, 이보다 더 모순적인 진술이 있을까.
아내의 변호를 맡은 효민 변호사는 단호했다. “사랑은 계약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혼은 분명히 계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약 조항이 아니라, 그 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진심입니다. 남편이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것을 끝내는 것이 과연 배려일까요? 아니면 끝까지 함께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아닐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날 선 논리라기보다 울림 있는 기도로 들렸다.
이에 맞서 상대 변호인은 조문을 내세웠다. “혼인은 법적 계약입니다. 계약의 목적이 이미 상실되었을 때 그 존속을 강제하는 것은 법의 본뜻에 맞지 않습니다. 사랑이든 배려든, 그것은 감정일 뿐입니다.” 그 말은 철저히 법의 언어였지만, 어쩐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재판장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조용히 판결을 내렸다. “법은 사랑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법은 혼인의 존속 여부만을 다룰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인이 단순한 계약을 넘어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고 지켜주겠다는 서약이라는 점입니다. 법은 서약이 깨졌는지를 묻지만, 사랑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당신들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 말은 판결이라기보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본 한 사람의 인생담처럼 들렸다.
방청석은 숨을 죽였고, 부부는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법정은 싸움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배운 교실이 되어 있었다.
재판 후, 법정을 나선 효민은 석훈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는 사랑이 증거가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사랑은 증명하는 게 아니라, 지켜내는 거더군요.” 석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결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 번의 서약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롭게 맺는 약속이죠. 매일 다시 쓰는 서약, 그게 결혼 아닐까요.” 두 사람의 대화는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였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상처 주며, 때로는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다시 시작하는 의지, 그것이 결혼의 진짜 얼굴일 것이다. 사랑을 서약한다고 해서 내일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서약은 매일 다시 확인하고 지켜야 하는 불안정한 약속이다. 마치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어제의 태양과 같으면서도 다르듯, 사랑의 서약도 하루하루 다시 빛을 받아야 한다.
재판장의 마지막 조언은 오래 남는다. “사랑의 서약은 법정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상의 작은 희생과 배려 속에서 이어집니다.” 이 한마디는 차갑던 법정을 따뜻하게 덮었다. 그것은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라, 현실의 결혼 생활을 살아가는 모든 부부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에스콰이어>의 마지막 회는 화려한 법정 공방보다 그 여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이고, 결혼은 제도가 아니라 매일 새롭게 선택하는 의지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서약,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드라마는 질문으로 끝났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오늘도 사랑을 붙잡고 살아가는 이들,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이들, 사랑을 믿고 결혼의 길을 걷는 이들 모두에게, 이 재판은 하나의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그 살아냄을 매일 새롭게 다짐하는 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사랑의 서약 너머,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
2025-09-30
-
-
[시민 기고] 2025년 평택호 물빛축제, 흥행은 성공 운영은 미숙
-
-
9월 13일 평택호 관광단지 일대에서 평택시 통합 30주년에 ‘2025 평택호 물빛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행사 내용은 공연, 체험/전시, 부대행사, 푸드트럭 등 4가지 파트로 나뉘어 진행됐고, 공연에서는 주민자치 프로그램과 지역예술인 공연, 물빛콘서트가 진행됐으며, 체험/전시에서는 지역 작가 기획 프로그램(물빛 테마 쉼터, 물빛 터널, 파도 그늘 쉼터, ‘물몽 포토존’)이 진행됐다.
부대행사에서는 종합 안내소, 응급 의료지원, 직거래 장터, 문화마을, 잼단지,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며, 야외공연장에서는 특별공연인 “토리를 찾아서”, “얼씨구!”가 진행됐다.
여러 가지 파트로 나누고 알차게 준비한 축제 기획과 공연·연출 완성도가 높았고, 만족도가 높았다. 축제를 찾은 주최 측 추산 1.5만 명의 시민과 관광객의 숫자와 반응이 그걸 증명했다. 특히 저녁에 진행된 물빛축제는 아직은 덥지만,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와 날씨와 분위기와 어울렸다. 선선해진 날씨에 돗자리와 텐트를 가지고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행사장을 찾아 평택호의 멋진 뷰와 바람을 맞으며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탄성과 만족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와 드론은 평택항의 선박과 서해대교와 어울리면서 화합과 사랑을 표현했으며, ‘평택물빛축제’라는 글씨를 아로새기면서 장관을 이루었다.
반면 축제의 그림자와 아쉬움도 행사장 곳곳에서 나타났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주차장에 차량 진입이 통제되었고, 그 대안으로 주차장에서 행사장으로 셔틀버스가 운행되었는데 1.5만 명이라는 시민과 관광객이 붐비다 보니 30분마다 운영되는 버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대부분 시민은 셔틀버스 탑승을 포기하고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문제는 행사가 끝난 후 행사장에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셔틀버스는 더욱 부족했고, 또다시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 주차장으로 향해야 했다. 이런 이유에서 귀가하는 시민들의 볼멘소리와 불만이 많았다.
또한 많은 관광객이 몰리자, 데이터통신이 마비되고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푸드코트에서 결제에 어려움을 겪었고, 같이 온 지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만날 수 없어 관광객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충분히 사전에 주최 측이 상황을 예측하여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외에도 화장실도 관광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불편을 겪었고, 행사장 대부분의 장소와 관광객이 많이 머무르는 공간에 조명 시설이 부족해 서로 발이 밟히고 안전한 통행권이 보장되지 않아 자칫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다. 총 3억 원에 가까운 2억9,300만 원 예산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행사 구성과 기획은 매우 좋았고, 완성도와 퀄리티는 높았지만, 안전관리와 편의시설 및 교통 편의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은 “대대적으로 홍보된 평택 물빛축제를 기대하고 왔는데 주차도 힘들고 행사장까지 너무 먼 거리를 도보로 이동해야 했고, 편의시설과 안전도 부족하다는 아쉬움에 다시는 평택호를 찾고 싶지 않았다. 괜히 왔다고 생각하며 토요일 하루를 망쳤다”고 필자에게 축제 방문 소감을 전했다.
-
2025-09-23
-
-
[정재우 칼럼] 가족의 상봉, 평범한 소원
-
-
가족의 상봉(相逢)은 말 그대로 ‘서로 마주함’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얼굴을 마주함만이 아니기에, 상봉의 순간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특히 오랜 시간, 혹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서로를 그리며 기다린 뒤에 이루어지는 상봉이라면, 그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미군 해외파병을 마치고 가족과 상봉하는 병사의 모습, 오랫동안 떨어졌던 아이를 안고 우는 부모의 모습 등 영상이 올라올 때면 울컥하는 건 많은 이들의 경험일 것이다. 필자도 나의 기억 속 극적 상봉의 장면들이 있다.
군 입대 후 첫 휴가 때, 지금의 아내가 맨발로 대문 밖으로 뛰어나오던 그 순간, 원통부대 근무 당시, 고향 절친이 진부령으로 전출 온 후 면회를 와서 무작정 달려가 만났을 때 느낀 가슴 벅참은 결코 잊지 못한다.
지난주, 미국 내 삼성·롯데 합동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비자 문제로 구금되었다가 근로자들이 8일 만에 석방되어 전세기로 돌아왔다. 근로자들이 인천공항에서 가족의 품에 안겼을 때의 장면은 온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모든 상봉의 순간에는 이런 탄성과 눈물, 감격과 기쁨이 뒤엉켜 있었다.
상봉이 특히 우리 마음을 울리는 까닭은, 돌아오는 이가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고 안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상봉하지 못한 많은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혹은 상봉한 순간이 축복이 되었을지라도 상봉 이전의 기다림과 상실의 무게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최근 세계 곳곳에서 있었던 상봉은 큰 울림을 주었다. 실례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분쟁이 길어진 가운데, 가자지구의 이브라힘(Ibrahim)과 마흐무드(Mahmoud) 두 형제가 15개월 동안 헤어져 지냈다. 이번 정전 합의로 이동이 허용되면서, 이브라힘은 남부에서 북쪽 자발리아(Jabalia)로 돌아왔고, 마흐무드는 그곳에서 기다렸다. 두 형제는 파괴된 그들의 집터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며 “영혼이 가슴으로 돌아온 것 같다(I felt like the soul returned to the chest)”라고 말할 만큼 깊은 감정을 나누었다.
이처럼 감동적인 장면들은 단지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삶을 설계하고,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상적인 상봉을 보다 안정되게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제안이 있다.
근본적으로, 비자나 체류 자격 문제가 가족 상봉을 막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해외 근로자의 비자 문제에 대해 선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민첩함이 절실하다. 자연재해, 병원 치료, 억류·구금 등의 긴급한 상황에서는 신속히 가족에게 연락하고, 귀국 또는 복귀 과정을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
상봉 전후의 불안, 상실감, 긴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 간 영상 통화, 편지, 심리상담 등이 더욱 활발히 제공되면 좋지 않겠는가.
대규모 경제 정책이나 미래 산업 계획만큼 “가족이 서로 돌아오는 일상”이 유지되는 사회가 중요하다. 지도자들과 입법자들이 정치와 정책의 중심에 이런 일상의 소망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가족의 상봉은 너무나도 평범한 소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오늘도 누군가는 ‘문이 열리기를, 누군가 돌아오기를, 누군가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다’고 기다린다. 우리 모두의 살림살이, 사회의 기반이 그런 기다림 속에서 조금 더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다져지기를 바란다.
-
2025-09-23
-
-
[칼럼] 김정은 후계자 논쟁과 김주애 등장의 함의
-
-
2022년 11월 북한의 화성-17형 미사일 발사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국내외 언론과 정보기관은 일제히 ‘후계자 등장’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이후 김주애는 주요 군사·정치 행사, 특히 최현함 해군 군함 진수식이나 중국 항일전쟁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 등 국제 인사가 대거 참여한 자리에도 동행하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김정은 급변 사태에 대비한 조기 후계자 교육의 일환이라는 관측을 제기한다.
과거 김정일은 가족을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했으며, 연설 역시 직접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반면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 경험의 영향인지 부인 이설주를 공개석상에 대동하거나 대중 연설을 통해 ‘김일성식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등 차별화된 이미지를 연출해 왔다.
2014년 장기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이 동시에 퍼졌던 사례는 지도자의 건강 문제가 체제 불안으로 직결됨을 보여준다. 김정은은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심근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형적으로도 이상 징후가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부인과 딸을 동행하는 장면은 체제 안정과 후계 구도의 이상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안심 효과’를 노린 연출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내부 상황 역시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북한 파견 군인 1만4천 명 중 절반이 부상당하고 2,000명이 사망한 사실은 북한 주민들에게 큰 불만과 동요를 안겨주고 있다. 이에 김정은은 전사자 가족을 위로하고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을 적극 노출하며 ‘인민과 고통을 함께하는 지도자상’을 부각시켰지만, 이러한 정치적 퍼포먼스만으로는 체제 불안 요인을 완전히 상쇄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김주애의 공식 석상 등장은 후계자 수업의 가능성뿐 아니라, 체제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선전 효과의 측면으로 이해된다.
다만 정보기관들은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으며, 자녀는 3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아들이 실제 후계자로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으며, 김주애의 잦은 등장 자체가 오히려 후계자의 존재를 가리는 ‘연막 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딸을 전면에 내세워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동시에 백두혈통 4세대 세습에 대한 대중적 수용성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 유교적인 사상이 강하여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를 갖고 있으며, 여성 지도자가 최고 권력에 오르기에는 제도적·문화적 한계가 크다. 김정은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김주애의 노출은 상징적 성격이 강하며, 실제 권력 승계는 아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해외 조기 유학을 통한 국제 감각 습득, 귀국 후 당 직책 수행, 비공식 활동을 통한 권력 수업이라는 ‘김정은식 경로’가 다시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강대국 외교를 수행하고 북한 체제를 유지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 조건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김정은에게 급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군부의 동요 차단과 권력 공백 최소화다. 아직 어린 딸을 내세우고, 이설주나 김여정이 섭정 형태로 권력을 유지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 따라서 백두혈통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되, 딸 김주애를 전면에 노출하여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중 전략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국제정세의 격화는 북한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제2의 신냉전을 연상케 하며, 북한은 반미·안러경중 구도의 일원으로, 안보는 러시아와 경제는 중국과 각각 밀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결집하고 있다. 김정은은 “강력한 힘의 구축만이 진정한 평화”라고 강조하며 핵전력 증강을 공언하고 있으며, 이미 50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2030년까지 200~300개 수준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북한의 후계 구도 문제는 단순한 권력 승계 문제가 아니라, 국제 안보와 동북아 정세 전반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섣불리 김주애를 ‘차기 후계자’로 단정하는 것은 북한식 연출에 휘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북한의 의도적 이미지 정치와 선전 전략을 간파하면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계자 논쟁을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 아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대한민국의 미래 통일 전략 구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
2025-09-23
-
-
[정재우 칼럼] 주례 없는 결혼식, 무엇을 잃는가?
-
-
오늘날 한국의 결혼식 풍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결혼식 하면 떠오르던 상징적 장면, 곧 주례자의 권위 있는 설교와 축사가 사라지고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는 새로운 추세가 이미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신랑과 신부가 직접 사회를 보고, 지인들이 짧은 축사를 대신하며, 때로는 전문 사회자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간소하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주례가 사라지는 현상을 단순히 시대의 변화로만 받아들여도 될까? 오히려 우리는 그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례 제도는 단순한 한국적 풍습이 아니다. 서구식 결혼식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결혼은 단순한 개인 간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서 맺는 언약이었다. 그렇기에 목사나 사제가 주례자로 서서, 신랑과 신부가 맺는 서약을 공적으로 증언하고 축복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주례는 단지 축사자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합을 공동체적으로 승인하는 ‘권위의 대리자’였다.
현대 미국 결혼식에서도 이 전통은 여전히 존속된다. 법적으로도 일정한 자격을 가진 주례자의 증인이 있어야 혼인이 효력을 갖는다. 목사, 사제, 혹은 법적으로 인정된 주례자가 서명한 증명서가 있어야만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이처럼 주례는 법적·종교적·사회적 의미를 아우르는 제도이다.
필자가 미국 교포 사회에서 들은 경험담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교포 부부가 한국에서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에는 주례가 불필요하다고 여겼지만, 나중에 미국에 이주하여 혼인 증빙 서류를 제출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법적으로 인정된 주례자의 서명이 없었기에, 다시 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편리해 보일 수 있으나, 국제적 맥락에서는 혼인의 공적 증명력에서 빈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필자는 수차례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아왔다. 단순히 형식적인 축사를 넘어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를 위한 사전 교육을 진행했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부부의 언약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 예식에서 맺는 서약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삶으로 지켜야 할 약속임을 강조했다. 예비부부와 함께 실습도 해보며, 결혼 예식의 맥락을 준비했다. 이는 결혼식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거룩한 언약임을 깊이 새겨주기 위함이었다. 주례란 바로 이 과정을 통해 결혼식에 영적 깊이와 사회적 무게를 더하는 자리다.
오늘날 결혼식은 종종 피로연과 뒤섞여 버린다. 실제로는 결혼 예식과 피로연은 엄연히 다르다. 결혼 예식은 신랑과 신부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맺는 언약의 시간이고, 피로연은 이를 축하하며 즐기는 자리다. 그러나 주례 없는 결혼식은 예식과 피로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예식은 점점 짧아지고, 피로연이 중심이 된다. 마치 결혼이라는 신성한 서약보다 잔치가 더 중요한 것처럼 흐르는 것이다.
조카 리사의 결혼식이 좋은 예다. 뮤지컬 가수 리사의 결혼식은 주례자의 인도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예식이 끝난 후 이어진 피로연은 화려하고 성대했지만, 두 자리가 명확히 구분되었기에 예식의 무게와 피로연의 즐거움이 균형을 이루었다. 결혼의 엄숙함과 공동체의 축제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권위를 거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권위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탓에, 권위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러나 모든 권위가 다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권위, 스승의 권위, 사회 제도의 권위는 여전히 필요하다. 결혼식에서 주례의 권위 또한 그러하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강조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닌 공동체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무게를 놓치게 만든다. 주례는 단순히 권위를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과 결합을 사회적으로 승인하고 축복하는 거룩한 자리다. 탈권위 시대일수록, 끝까지 남겨두어야 할 권위가 있다. 바로 주례가 서는 결혼식이다.
-
2025-09-08
-
-
[의정발언] 3억 원, 종이가 아닌 도민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
-
5분 발언을 하고 있는 김상곤 의원
미래과학협력위원회 소속 평택 출신 국민의힘 김상곤 의원입니다. 오늘 본 의원은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종이 문서 대량 인쇄·배포 관행’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의회 회의실에는 이미 전자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의원 전원에게 태블릿과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가 지급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결산서, 본예산서 등 방대한 자료가 여전히 종이로 대량 인쇄·배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실제로는 활용되지 못한 채, 박스채 쌓여 있다가 폐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인쇄·발간 비용은 2024년과 2025년에 3억 원을 초과했습니다. 이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2025년 예산 3억 4천만 원이면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이나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등에 쓰일 수 있는 소중한 예산입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여전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대량 인쇄를 고집하는 것은 명백한 행정 비효율적이며 시대착오적 행태입니다.
존경하는 김동연 도지사님과 임태희 교육감님 더 이상 대량 인쇄 관행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예산 낭비가 아니라 환경 문제로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또한 매년 수천 권에 달하는 자료 인쇄는 산림자원 낭비와 탄소배출 증가로 이어집니다.
경기도는 이미 도민의 탄소 감축 실천을 보상하는 「기후행동 기회소득」 사업을 추진하며 ESG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종이 인쇄를 줄이는 것 자체가 곧 경기도형 친환경 행정의 실천이며, 기후위기 대응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본 의원은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산·결산 자료는 전자문서와 홈페이지 공개를 기본으로 하고, 인쇄물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개별 요청에 따라 최소한으로 발간하여 불필요한 대량 인쇄를 차단해야 합니다. 둘째, 「경기도 종이 사용 줄이기 지원 조례」가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여 대량 인쇄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셋째, 이러한 디지털 행정을 「기후행동 기회소득」 정책과 연계하여, 새로운 ‘친환경 실천 항목’으로 포함 시킴으로써 탄소 감축에 동참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우리가 매년 수억 원을 들여 실제로 활용하지도 않는 종이 문서를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도민들께 어떻게 재정 건전성과 책임 행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종이 없는 행정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경기도가 앞장서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ESG 행정의 출발점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부합하는 친환경·효율적 행정, 그리고 도민의 세금을 아끼는 올바른 의회 문화를 함께 만들어 주실 것을 간곡히 촉구하며, 이상으로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2025.9.5.(금) 제38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
2025-09-08
-
-
[의정발언] 도내 저수지 수질 악화와 평택호 녹조 대응을 위한 광역 차원의 대책 촉구
-
-
5분 발언을 하고 있는 서현옥 의원
미래과학협력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평택 출신 서현옥 의원입니다. 오늘 저는 경기도 내 저수지 수질 악화와 더불어 평택호 녹조 비상 대응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달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경기도 수질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주요 저수지 10곳 가운데 다수가 부영양·과영양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로 인해 녹조 발생의 빈번화, 식수원 오염, 수생태계 파괴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수량 1억 톤 이상의 대규모 저수지인 평택호에서 올여름 지속된 폭염으로 심각한 녹조 현상이 발생하여 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크게 고조되고 있습니다.
평택호는 대형 저수지 중 최초로 ‘중점관리저수지’로 지정되었으나, 여전히 농업용수 기준인 수질 4등급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더 큰 위협은, 녹조와 관련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유해한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최근 환경단체 조사 결과, 경기도 주요 호수·저수지 3곳에서 검출된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안전 기준치 대비 최대 17배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평택호를 비롯한 상당수 수역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수치가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녹조가 번성하며 생성되는 유해물질로, 면역 기능 저하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다른 유해물질과 달리 쉽게 제거되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이미 마이크로시스틴을 1급 발암물질 후보군으로 지정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특정 지역 차원이 아니라, 경기도 전체가 나서야 하는 광역적 환경위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녹조 문제는 단순히 여름철 계절적 현상이 아닙니다. 이제는 시민의 건강과 생존, 그리고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까지 심각성이 확인된 만큼, 평택호의 수질 악화 문제는 단순한 물리적·생태적 현상을 넘어 도민의 건강권과 생존권, 그리고 미래세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입니다.
경기도는 「물환경보전법」과 「지방자치법」에 따라 수질개선 계획 수립과 오염원 관리에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수질오염총량제 또한 광역적 차원에서 조정이 필요한 사항입니다. 따라서 경기도가 직접적 집행 권한은 제한적일지라도, 광역 차원의 조정자이자 지원자로서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첫째, 녹조 비상사태 선포 및 긴급 대응 체계 가동입니다. 녹조 제거 및 유입 오염원 차단 방안을 강구하여 주민 불안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둘째, 녹조 조기경보 및 감시체계 고도화입니다. 민감 수역에 대해 실시간 마이크로시스틴 농도 측정을 의무화하고, 드론과 위성 기반의 수질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셋째, 유입 오염원 차단과 지역 협력 강화입니다. 배수로·하수처리시설 정비, 비점오염원 관리, 하천 정비 사업을 병행 추진하고, 경기도·평택시·관련 지자체 간의 협력 체계를 통해 공동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경기도가 지금 과감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주민 건강과 생태계 파괴에 그치지 않고, 미래세대까지 감당해야 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유해물질은 더욱 교묘하게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보다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한 심각한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 아래, 평택호를 비롯한 도내 저수지의 수질개선은 경기도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중앙정부·지방정부·관계기관 간의 긴밀한 협력이 이뤄질 때 비로소 실질적인 해결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경기도가 그 협력의 중심이 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을 촉구합니다. 이상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2025.9.8.(월) 제386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
2025-09-08
-
-
[칼럼] 한미 정상회담, “Peace Maker, Pace Maker”
-
-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을 자아냈다. 회담 당일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글을 올리자 일각에서는 회담이 취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서의 군사 쿠데타 관련 특검과 조사 진행 상황, 미군부대 압수수색 논란의 실제 성격을 명확히 설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불식시켰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Peace Maker이고 나는 Pace Maker”라는 발언으로 회담장을 웃음으로 이끌며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돌출 발언과 압박 전술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이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협상 구도를 흔드는 것이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한국 측은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대응을 통해 이러한 함정에 말려들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 즉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전략적 분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며 한·미관계를 미국 중심으로 재정립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문제도 핵심 쟁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규모를 의도적으로 혼동하며 한국 측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는 한편, 현재 GDP의 2.3% 수준인 국방비를 단계적으로 5%까지 상향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또한 미국의 첨단무기 구매 의지를 밝힘으로써 불필요한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를 차단하였다. 아울러 평택 험프리스 기지가 한국 국민의 혈세 17조 원으로 건설된 사실을 환기하며, 이를 마치 미국의 자산인 양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정면 대응하였다.
이번 회담에서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도 병행되었다. 한국은 일본 수준의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 향후 에너지 자립 및 기술적 자율성을 도모하려 하였다. 산업 협력 측면에서도 조선·원자력·LNG 등 5개 분야에서 11건의 계약과 MOU가 체결되었다. 특히 미국 해군의 함정 보유 규모(279척)가 중국(370척)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이는 미국이 자국 조선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에 협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 협력 논의에서는 ‘마가 정책’과 관련된 3,500억 달러 투자 방식에 대한 해석 차이가 드러났다. 한국은 이를 펀드 개념의 재투자로 이해한 반면, 미국은 이익의 90%를 확보하는 구조로 인식하고 있어 향후 조율이 필요하다. 다만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요구가 배제되면서 국내 농민들에게는 일정한 안도감을 줄 수 있었다. 특히 쌀과 쇠고기 시장 개방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었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을 다른 지역으로 전환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안보 공백을 우려하며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양안(중국-대만) 충돌 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일부가 차출된다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숫자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한국은 억지력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축소가 불가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방한 직전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으로 양국 갈등이 일정 부분 해소되자, 미국은 한미일 삼각 공조를 추진하는 데 부담을 덜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향후 미국의 요구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한국은 돌발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주한미군은 순환 배치를 통해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을 실행하고 있으며, 이를 공식화하기 위한 미국의 압박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은 재래식 전력 기준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이 인계철선이 되지 않더라도 북한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는 미국의 평가도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정치적 욕구를 활용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전략적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 비핵화가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미국 및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단계적이고 실질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변화된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한국의 국방력 향상과 대외정책 전환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한국은 미국의 압박과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주도적 외교와 안보 전략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견인하는 ‘Pace Maker’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
2025-09-02
-
-
[정재우 칼럼] 의대 쏠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다
-
-
최근 한 일간지에서 “대학에 미친 중국, 대학을 내친 한국”이라는 칼럼을 읽었다. 제목이 다소 과격해 보였지만, 글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파급력이 이토록 크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한 입시 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였다.
대학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와 연구자를 길러내는 상아탑이다. 대학이 튼튼해야 국가 경쟁력이 유지되고, 학문적 다양성이 확보돼야 사회의 균형 발전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대학은 특정 학과로 인재가 몰리며 균형을 잃고 있다. 그 대표적 현상이 바로 의대 쏠림이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식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대학에 대대적 투자를 이어왔다. 2015년 세계 대학 평가에서 100위권에 네 곳에 불과하던 중국 대학은 2024년에는 무려 14곳으로 늘었다. 200위권까지 합치면 30여 곳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서울대와 성균관대 두 곳뿐이다. 전문가들이 “한국 대학 경쟁력이 추락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대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가는 미래 산업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의대 쏠림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생명 치료라는 직업적 가치, 안정된 지위와 높은 소득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대기업조차 평생직장이 아닌 시대에 의사는 ‘정년 없는 안정된 직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KAIST(카이스트)와 포항공대 같은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에서도 우수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하거나 자퇴한다. 대학원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연구 현장은 활력을 잃는다. 반도체, 인공지능, 우주항공처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첨단산업은 정작 인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자연계열 일반 학과 지원자가 줄고, SKY 대학 무전공 전형에서 등록 포기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다양한 학문 분야가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를 대책으로 거론하지만, 이는 단기적 처방일 뿐이다. 오히려 쏠림을 부추길 수 있다. 본질은 의사의 경제적 가치가 다른 직종보다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의료 수요 조정, 지역별 인력 분산, 면허 제도의 개혁 등 구조적 개편 없이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의대 입시 학원에 내몰리는 아이들, 영어유치원 경쟁에 줄 서는 부모들의 모습은 비정상적이다. 이렇게 자란 학생이 과연 환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높은 소득과 안정이 행복의 전부라는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의대 쏠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전 김동길 교수는 명문대생들에게 배지를 떼라면서 위화감을 조장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오늘날 거리에는 대학 로고가 새겨진 점퍼가 흔하다. 머지않아 ‘의대생’ 점퍼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사회 불균형의 상징이 될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지금 정부와 사회가 할 일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대학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학문적 토대를 다져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가 골고루 성장할 때 국가의 미래도 보장된다.
의대 쏠림은 단순한 입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분명하다. 학문의 가치를 균형 있게 존중하는 교육 구조를 세우고, 직업의 가치를 소득이 아닌 사회적 기여와 인간적 성숙으로 평가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나라로 살아남는 길이며, 다음 세대에 진정한 희망을 남겨줄 길이다.
-
2025-09-02
-
-
[조선행의 녹색소비] 가공식품 GMO 표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다!
-
-
1996년 미국의 GMO(유전자변형) 옥수수와 대두가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90년대 말 소비자단체, 시민사회단체에서 ‘GMO 식품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후 2001년부터 GMO 표시제가 운영되었다.
관련 법률과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에 따라 옥수수, 대두, 면화, 사탕무, 유채, 알팔파 등 현재 6개 GMO 품목은 식품용과 사료용으로 수입할 수 있다. 옥수수만 보더라도 쓰임이 다양하다. 옥수수 가루, 옥수수 전분, 팝콘, 옥수수 시럽, 맥주 부원료, 옥수수유 등 가루를 내거나 가공식품 첨가물, 당류 원료, 기름 등으로 매우 여러 곳에 쓰인다.
식품표시 기준에 따라 원료명을 포장지에 표기하지만 GMO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필수사항이 아니었다. 특히 식품의 제조·가공 과정에서 GMO DNA나 단백질이 나타나지 않으면 표시 의무를 면제하였다. 이런 이유로 식용유의 원재료로 쓰이는 옥수수, 대두, 유채가 GMO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제도이다.
지난 8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사 제2소위원회에 GMO 표시제를 담은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주요 내용은 ① GMO 원료를 사용할 시 제조·가공 과정에서 GMO DNA나 단백질이 사라진 식품은 표시 의무를 면제하되,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정하는 품목에만 표시를 붙인다. ② ‘Non-GMO(비유전자변형식품)’ 표시가 가능하다. ③ 비의도적 혼입이 0.9% 이하일 경우 예외적으로 Non-GMO 표시를 인정한다 등이다.
여기에 단서 조항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식품 안전을 책임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정하는 품목’에 한하여 GMO 표시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입되는 식품용 옥수수 중에서 유전자변형 옥수수는 29%이다. 이미 Non-GMO 옥수수가 70% 넘게 유통(아시아경제 25.8.21)되고 있으며, 농산물 수입 개방 이후 최근에 Non-GMO 식품의 유통이 점차 증가(대두는 GMO 수입 비율 69%)하고 있다.
이제 GMO 표시제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안전성, 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GMO 완전표시제는 이제 목전에 두고 있다. 식품 안전 부처에서 논의하더라도 ‘GMO 표시강화 실무협의회’ 차원에서 결정될 것이 아니며, 소비자단체, 생산업계, 유통업계 등 이해당사자들의 협의와 조율을 통해 의견이 반영되어 결정되어야 한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했는지 여부가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유전자변형은 GMO, LMO 등으로 불리며 기술의 과학화와 함께 촉망받는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제초제에 살아남는 작물을 키우기에 풀을 매는 노동력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고, 대량생산으로 원가를 낮추는 긍정적인 영향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식물 염색체에 박테리아 염색체를 이식시키는 이종(異種) 간의 교배는 인위적인 것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GMO 완전표시제가 제도로 정착하여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그날이 제대로 오길 기다린다.
-
2025-08-25
-
-
[정재우 칼럼] 극단적 ‘더블 기후재난’… 폭우와 폭염 사이에서
-
-
올여름은 유난히 이상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몰려왔다. 한 차례 폭염이 지나가면 숨 돌릴 틈도 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다시 폭염이 엄습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당황스러웠고, 마치 ‘일찍 찾아온 미래’를 마주한 듯 불안했다.
문명의 발달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한 기기가 속속 등장하고, 스마트폰 이후의 혁신이 열리려는 시점이다. 그러나 폭염과 폭우라는 극단적 재난 앞에서,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기후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기후와 무관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우주정거장과 같은 인공 환경에서라면 가능할지 모르나, 그것은 극소수 우주인을 위한 예외적 공간일 뿐이다.
과거 여름이면 장마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여름휴가를 계획할 때 장마 시기를 잘 예측해야 했다. 잘못 맞히면 휴가가 장맛비에 망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장마를 피하는 것보다, 폭염과 폭우라는 ‘더블 기후재난’을 절묘하게 피해 휴가를 떠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여름이 오기 전, 대형 산불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닥치는 이중고를 겪었다. 입추가 지났지만 30도를 웃도는 폭염은 계속되고, 남부 지방에는 폭우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어떤 형태로든 태풍이 덮칠 가능성도 남아 있다.
2025년 여름 피해 현황 통계를 보면 심각성이 더 분명하다. 8월 4일 기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는 3,200명, 사망자는 19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환자는 1,608명, 사망자는 3명 늘었다. 폭우 피해는 7월 19일 기준 사망자 46명(중부 28명, 남부 18명), 실종자 14명, 이재민 및 대피자 1만 명 이상이었다. 체감 피해 규모는 3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상기후 재난 극복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살펴보자. 유엔 산하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고, 가능하다면 1.5℃ 이하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유엔 총회에서는 기후행동을 포함한 포괄적 환경협약 논의가 시작됐다. 유엔환경계획(UNEP) 주도로 정치적 선언 초안이 마련되었고, 환경정의와 지속가능성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은 무엇인가? 탄소중립 기본계획, 기후위기 대응 국가전략, 국민 기후행동 요령 등을 발표해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방에서도 실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평택시에서는 2024년 6월 시민단체 ‘평택기후행동’이 출범했다. 평택역 광장에서 캠페인과 피켓 행진을 벌이며 시민 참여를 유도했고, 다회용기 사용, 장바구니 지참, 대중교통 이용, 재활용 실천 등 10가지 생활 실천안을 제시했다. 서울 성동구의 경우에도 일상 속 탄소 감축 행동을 위해 ▶난방 시 실내 온도 1℃ 낮추기 → 연간 온실가스 231㎏ 절감 ▶‘BMW 건강법(Bus, Metro, Walk)’ 실천 ▶샤워 시간 1분 단축 → CO₂ 약 7㎏ 감소 ▶일회용품 줄이기, 에코드라이빙, 플러그 뽑기 등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렇듯이 우리가 마주한 극단적 ‘더블 기후재난’은 거창한 계획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회용품 사용, 절수, 대중교통 이용, 불필요한 전기 사용 줄이기 등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 모이면 기후를 살릴 수 있다.
시민 개개인의 일상이 변해야 지구의 내일이 바뀐다. 그 변화가 바로,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가장 큰 유산이 될 것이다.
-
2025-08-25
-
-
[기고] 평택시민 건강과 체육발전 위해, 체육회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
-
평택시체육회의 올해 예산은 약 46억 원이다. 인구 64만 명을 넘어선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평택시 지원금은 46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렇듯이 시민 1인당 체육 예산은 7,300원에 불과하다. 이는 부천시(11,200원), 안산시(9,400원) 등 도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인구가 늘고 생활체육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예산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같은 시기 평택시문화재단의 예산은 95억 원에서 127억 원으로 약 33%나 증가했지만, 체육회 예산은 고작 10% 증가에 그쳤다. 문화와 체육 모두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예산 배분에서 체육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체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복지다. 청소년에게는 건전한 성장을 위한 뿌리가 되고, 어르신들에게는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또 직장인과 산업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활력을 주고, 나아가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평택시가 진정한 대도시로 성장하고 시민 삶의 질과 행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체육을 단순한 여가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바라봐야 하고 시책을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학교 체육의 기반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예산 부족으로 안타깝게도 학교 운동부가 해체되거나 청소년 선수들의 꿈이 꺾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평택시체육회는 이러한 위기를 막기 위해 지역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고 학교 운동부와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왔다. 하지만 민간의 선의와 자발적 후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런 이유에서 체계적인 제도적 지원과 안정적인 재정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체육회 또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생활체육 시설 위탁 운영, 스포츠 교육 프로그램, 체육 기금 마련 시민바자회 등 자체 수익사업을 통해 자립적 재정 기반을 마련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수익 창출이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와 시민 참여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행정의 뒷받침과 시민의 관심, 기업의 후원이 함께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체육은 곧 건강이고, 건강은 곧 행복이다. 평택시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도시, 체육을 통해 하나 되는 도시를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평택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지역 기업들의 동참, 그리고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더해진다면 평택 체육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와 비례해 평택시민의 삶의 질과 행복의 질도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
2025-08-25
-
-
[칼럼] 전시작전권 환원과 한미동맹의 미래
-
-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lobal Posture Review)를 지시했고, 2021년 말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 시작된 전략적 변화가 본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미국의 안보 전략 속에서 한반도의 위상 역시 새롭게 조정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미국의 전통적 영향권을 흔들고 있다. 더 나아가 남중국해에서는 인공섬을 군사기지화하고, ‘9단선’을 근거로 자의적인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제법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속하며 중국의 일방적 행동을 견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도련선 전략(A2/AD)’을 통해 미국의 접근을 차단하려 하고, 대만을 겨냥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더 이상 단순한 분단 지역이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으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경우, 주한미군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을 활용할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즉, 한반도와 대만에서 동시다발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이 이미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과 10대 경제력을 바탕으로 북한을 억제할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 이는 곧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한반도에서 중국 견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 미사일 사거리와 중량 제한을 해제하며 ‘현무-5’ 같은 장거리·대형 탄도미사일 전력을 확보했다. 사거리 5,000km 이상, 지하 100m 관통 능력을 갖춘 이 무기체계는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견제하고 있어서 이들 국가는 견제와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 L-SAM 미사일 등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으면서 한국이 주요 방산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또한 핵무기 개발에 있어서 본격적으로 개발하면 1년 이내 완료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만을 받는 ‘약소국’이 아니라,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작전 지역을 태평양 전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도·태평양 전역을 아우르는 전략적 전력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미 의회가 주한미군 병력(2만8,500명) 유지 결정을 내렸지만, 미국의 국익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평택 험프리스(K-6) 기지의 병력은 순환 배치가 확대되고 있어, 장기적·상시적 주둔을 보장하기 어렵다.
만약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은 자주국방 강화와 함께 자체 핵무기 보유 논의까지 본격화할 수 있다. 이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원의 필요성과도 직결된다. 한국군은 이미 독자적 작전 수행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작권 환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중요한 것은 전작권 환원이 한미동맹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국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능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은 핵우산과 전략자산 제공을 통해 억지력을 보완하는 협력 체제가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 그 예를 들면 미국 전투함 수리를 위한 한미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체결로 인하여 미국이 부족한 조선업을 협업하여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은 전작권 환원을 통해 자주국방의 토대를 확립하는 동시에, 한미동맹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특히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를 강화하여 공백 없는 억제력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국과 북한이 도발을 통해 국제 질서를 흔들 때, 굳건한 동맹과 자주적 방위 능력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낼 수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제국의 격언처럼, 한국의 안보는 튼튼한 억제력 위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 전작권 환원은 단순한 권한 이전이 아니라, 한국이 자주국방의 주체로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2025-08-19
-
-
[정재우 칼럼] 광복의 정신, 그리고 우리의 내일
-
-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만일 우리가 아직도 광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어떠했을까. 일본이 남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휴전으로 전쟁이 종결됐다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역사의 흐름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일본 군국주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히틀러의 몰락과 일본 군부의 붕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이 있었기에 우리는 마침내 자유와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광복은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선조들의 희생과 끈질긴 노력의 결실이었다. 동학 농민군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봉기했고, 일본군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국내 각지의 의병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재결집했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운동과 일본군과의 무장 투쟁을 이어갔으며, 광복군을 창설해 미군 특수부대(OSS)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다.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이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3·1운동 정신이 광복으로 이어진 역사적 맥락 속에 있었다.
광복 이후 80년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해방 직후, 좌우로 갈라진 이념과 질서의 혼란 속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남북의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었고, 전쟁의 상처는 깊은 분단으로 굳어졌다. 분단국가는 정치적 대립과 권력 다툼, 그리고 군사 쿠데타를 겪었다. 자유당 시절의 독재와 부패, 군부가 나서 나라를 구한다며 장악한 권력은 민주주의를 한동안 후퇴시켰다.
그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고, 초토화된 나라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미뤄졌지만, 국민의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투쟁은 수많은 피와 눈물을 요구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는, 세계 역사에서도 드문 성취를 거뒀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이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걸어온 국민들의 힘과 희생 위에 세워졌다. 이제 광복 80주년을 넘어 미래를 그려야 한다. 우리가 장려해야 할 첫 번째 가치는 ‘문화 강국’의 꿈이다. 김구 선생은 이미 “문화의 힘”을 강조하며, 군사·경제의 강대국보다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 K-컬처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이 흐름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한글의 과학성과 아름다움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그리고 주권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광복의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영원한 자산이자 정체성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도 있다. 그것은 국론 분열이다. 극단적인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전반을 병들게 하고 있다. 정치인의 책임이 크지만, 이는 사회 전반에 깊게 깔린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의견과 노선이 존재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증오와 단절, 상대를 향한 적대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토론과 타협, 그리고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의 정신과, 국민 과반에 해당하는 중도층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처럼 승자는 패자를 존중하고, 패자는 패배를 발판 삼아 다음을 준비하는 성숙한 경쟁이 필요하다. 이런 문화가 정치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다.
필자의 조부는 진주를 대표하던 청년 지식인이자 유지였다. 그는 서울에서 구한 3·1 독립선언문을 숨겨 돌아와, 진주의 동지들과 함께 은밀히 태극기를 만들고, 선언문을 등사기로 다량 인쇄해 진주 전역에 배포했다.
1919년 3월 18일, 서울 다음으로 지방 최대 규모였던 진주의 독립만세 함성은 영남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곧 주모자들이 체포됐다. 조부는 진주 3·1 만세운동의 주모자로 3년여 옥고를 치렀으며, 안타깝게도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77년 그는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광복 80주년의 오늘, 나는 하늘에서 조부를 비롯한 수많은 선조들이 “자랑스러운 나라다.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미소 짓기를 바란다. 광복의 정신은 과거의 기념비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비추는 등불이다. 우리가 이 정신을 이어받아 더 정의롭고 성숙한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선조들의 희생에 드리는 진정한 보답이다.
-
2025-08-19
-
-
[칼럼] 아이들을 위한 ‘공적 마인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
-
우리는 흔히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현실에서 진정한 울림을 가지려면, 우리 어른들의 자세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향한 공공의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공적 마인드(Public Mind)’는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회복하고 강화해야 할 가치입니다.
공적 마인드란, 나 하나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에 두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는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를 함께 돌보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요즘처럼 개인 중심, 성과 중심의 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공공성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렵고, 더 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간절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공적 마인드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문제는 전형적인 ‘공공의 사안’입니다. 결식, 학대, 교육 격차, 정서적 방임과 같은 문제는 가정이나 학교만의 몫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바라보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방학 중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청소년들이 아무런 보호 없이 방치되어 있는 현실은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공적 마인드가 살아 있는 사회는 이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눈빛, 말 없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제도와 정책은 물론 이웃의 행동까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공공기관과 민간단체가 협력하고, 이웃과 지역사회가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 아이를 위한 배려가 결국 모두를 위한 안전망이 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일상에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무관심이 만연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 한 명이 거리에서 방황해도,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혹시 괜한 오해를 받을까, 책임을 져야 할까 두려워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면한 아이들이 자라며 겪는 고통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더 큰 짐으로 돌아옵니다.
공적 마인드는 거창하거나 거대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보는 한 눈길, 등굣길에 위험 요소를 제보하는 작은 행동, 주변 청소년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관심, 이런 작은 실천이 바로 공공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입니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선행’이나 ‘시혜’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당연한 책임으로서의 봉사로 바뀌어야 합니다. 수혜자 중심의 관점, 즉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곁에 있다’는 연대의 자세가 진정한 공적 마인드입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나 경제의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더 성숙해지고, 나 아닌 타인을 위한 책임 의식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바로 그것이 진짜 성장입니다.
아이들의 삶과 미래를 위한 공적 마인드.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는 없습니다. 우리의 아이, 우리의 청소년이 더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한 걸음 더 공공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
2025-08-19
-
-
[정재우 칼럼] 존속살인의 그림자
-
-
최근 뉴스 중 전쟁과 대지진, 화산 폭발, 이상기후 현상, 관세 폭탄 소식으로 전 세계가 불안과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은 존속살인을 비롯한 각종 살인에 대한 뉴스였다.
종교계에서 자주 표현하는 ‘종말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가까이 와 있는 끔찍한 일들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을 방치해둔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자멸하는 세계가 되고 말 것이다.
존속살인의 그림자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먼저 존속살인의 정의와 법적인 처벌 조항을 살펴보자. 존속살인(尊屬殺人)은 자신과 직접적인 가족관계에 있는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을 살해하는 범죄를 말한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형법 제250조 제2항에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반 살인보다 더 엄중히 다루며, 우리 사회의 가족 존중과 효(孝)의 가치를 반영한 특별법적 처벌 조항이다.
2025년도에 발생한 존속살인 관련 사건들을 보면, 지난 3월 서울 강북구에서 30대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를 둔기로 살해한 후 자수한 사건이 있었다. 가정 내 갈등과 정신 질환 이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5월 전북 전주시에서는 40대 여성이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다 지쳐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오랫동안 간병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시설이나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사회적 고립 문제가 있었다.
또 7월에는 대구시에서 고등학생이 부모의 체벌과 감금 상태에 분노해 부모를 살해했다. 이는 학대받은 청소년의 심리 상태와 가정폭력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가려진 폭력”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존속살인은 단순한 패륜이 아니라 극단적인 가족 해체의 현상이다. 가정이 더 이상 무조건적인 사랑의 공간이 아님을 시사해 주고 있다.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면, 가족의 정신 건강 문제, 돌봄 부담, 가족 내 권력 불균형이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효문화 교육”이 사라져 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전통적인 가족 윤리와 효 사상의 약화,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가정과 부모에 대한 가치관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이다. 공교육과 미디어가 부모를 조롱하거나 무력하게 그린다는 비판도 있다.
이제 가족 복지 차원에서 존속살인에 대한 예방책을 찾아보자. 마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가정 돌봄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간병 가족에게 정기적인 휴식(Respite Care)을 제공하고, 장기요양보험 외에도 추가 간병 돌봄 바우처를 지급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가족 상담 및 중재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갈등이 심화된 가정에 조기 개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시청이나 복지센터 내에 “가족 회복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해야 한다. 위기 가정 데이터를 연동·모니터링하여 경찰, 학교, 보건소, 복지관 간 위기 가정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기초인 가정을 단단히 구축하기 위해, 교회 및 종교 단체에서 예방적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가정 예배 및 가족 캠프를 실시하여 가족 간의 소통과 친밀감을 높이는 가족 프로그램에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로의 존재와 역할을 재확인하고, 감사와 존중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이 급선무이다.
갈등이 있는 가정에 비밀이 보장된 상담 채널을 제공하는 일도 필요하다. 특히 “효”와 “용서”에 대한 성경적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위기 가정 보호 시스템을 마련해 독거노인, 장애 부모를 돌보는 가정에 돌봄 봉사자를 파견하거나, 위기 가족을 돕기 위한 기도 모임과 중보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 내에 위기 가정 돕기 시스템이 존재함을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
-
2025-08-05
-
-
[칼럼] 주한미군 평택시대, 이제는 ‘상시적 국가책임’이 필요하다!
-
-
주한미군의 평택시대가 본격화된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국방부와 미 국방부 간의 전략적 합의에 따라 전국에 분산돼 있던 미군 기지가 평택과 대구로 통합되었고, 그 핵심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K-6)다. 약 444만 평 규모의 부지에 17조 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 험프리스 기지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해외 미군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세계 최대 미군기지를 품은 평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원 종료’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주한미군의 이전에 맞춰 한시적으로 제정된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평택지원특별법)’이 2025년 말 종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이 법은 기지 이전으로 인한 기반시설 부담과 주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비 지원을 가능케 한 장치였으나, 정작 이전이 완료된 지금부터가 평택에 진정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상시법이 아닌 관계로 평택지원특별법의 기한을 연장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 세계 최대 기지에 걸맞은 도시 인프라는 아직 미비하다
현재 험프리스 기지와 평택 시내를 잇는 주요 도로는 상시적인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문화·관광·레저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주한미군 가족들은 주말이면 서울이나 부산 등 타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고, 도심과 기지를 연결하는 도로는 병목현상으로 출퇴근 시간마다 시민은 물론 군 장병 모두의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불편함 속에 정작 기지가 위치한 팽성읍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발전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실망과 회의 속에 ‘희생만 강요당한 지역’이라는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 일본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어떻게 접근했는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사례는 매우 시사적이다. 일본 정부는 5만2,000여 명의 주일미군이 집중된 오키나와에 대해 1972년부터 ‘오키나와 진흥개발 특별조치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일본 중앙정부는 오키나와에 매년 약 2조6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문화·관광 인프라, 도로, 교육·의료 등 다방면에 투입하고 있다. 주민과의 갈등을 줄이고, 미군과의 공존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다.
특히 일본은 이를 단순한 국방정책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국가가 책임지는 지역 균형발전의 하나로 오키나와를 규정했고, 10년 단위로 진흥계획을 수립하며 상시적인 국가 지원을 제도화했다.
◇ 평택도 상시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가 자리한 평택은 왜 한시적 법률에 기대야만 하는가? 왜 이제부터가 진정한 지원의 시작이어야 할 시점에 평택지원특별법은 종료되는가?
평택은 지금도 절대농지 규제, 고도 제한, 렌탈하우스 가격 문제 등 국가 안보를 위한 제약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주민들은 묵묵히 양보했으며, 이를 통해 평택은 명실상부한 국가안보 중심도시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예산 지원이 끊기고, 중앙정부의 관심도 희미해질 위기에 처해 있다면 이는 분명한 정책적 역설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결단해야 한다. 평택지원특별법을 상시적 법률로 전환하거나, 필요시에는 대통령 시행령으로 대체 입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명분 아래, 지역만 희생하고 중앙은 뒷짐 지는 구조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 평택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우리는 ‘안보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 그리고 지속가능한 한미 상생 발전의 틀을 요구하는 것이다. 평택이 더 이상 희생만 강요당하는 도시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실질적 거점이자 국가 균형발전의 모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정부의 결단이 절실하다.
-
2025-07-29
-
-
[정재우 칼럼] AI 돌풍과 로봇시대, 기회인가 위협인가?
-
-
최근 한 신문에서 접한 소식은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 소식은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와 로봇 늑대들이 초원 지대에서 합동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중국 군대가 처음으로 공개한 합동 훈련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로봇 늑대와 같은 지상 로봇 투입이 미래 전장의 역학을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이 실제로 중국 인민해방군 제76집단군의 2개 중대가 로봇 늑대와 공중 드론을 활용한 인간-드론 합동 공격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증명되었다.
공개된 영상에는 돌격소총과 저격소총, 휴대용 로켓 발사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정찰용 장비와 돌격소총 등을 탑재한 로봇 늑대들과 함께 초원의 비탈을 누비며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풀밭에 숨어 있던 드론 조종사들은 소형 드론을 띄워 정찰 및 자살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 이 소식을 접하며 우려하던 미래가 성급하게 현재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했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전쟁이 발발해 드론과 미사일로 적대국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며, 세계가 경악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로봇 늑대와 병사들의 합동 훈련은 공포에 가까운 위협을 주고 있다.
갈수록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인 AI를 활용한 산업 발전이다. 한국의 HD현대로보틱스 R&D 안성환 부문장은 이렇게 말한다. “제조업 생산의 자동화 전환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협동 로봇은 인간과 로봇이 효율적으로 공존하는 작업 환경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2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로봇 박람회 ‘오토메타카 2025’에 참석해, 사람과 충돌이 예상되면 자동으로 정지하는 하이브리드 협동 로봇 ‘HDC 시리즈’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기존 로봇이 일단 충돌이 발생한 뒤 정지하도록 설계되었다면, HDC 시리즈는 충돌 전 레이더 센서로 사람의 존재를 감지해 미리 감속하고 정지하는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로봇 연구와 발전이 놀랍지 않은가?
그동안 사람을 대체한 산업용 로봇과는 달리 협동 로봇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도록 설계되었다. 안전을 위하고 경량화로 제작해 저속 운행하도록 주로 설계되었다. 실례로 AI 용접 솔루션은 7년의 훈련을 거쳐 투입할 수 있는 숙련공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숙련공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로 사람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혹서기에 불꽃 튀기는 데크 안에서 작업자가 용접을 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AI 기술 진화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인류가 바라는 로봇 시대의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AI 돌풍과 이를 활용한 로봇 시대에 진입하면서 이것이 인류에게 유익한 도구가 될 것인지, 전쟁의 도구로 전락할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를 위한 국제 공조 협약을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규약을 만들어야 한다.
윤리적이고 공익적이며 위험성을 배제한 일정한 제약을 탑재한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마치 우주에 쏘아 올린 각국의 인공위성들의 잔해가 우주 공간에 쓰레기가 되어 그것이 언젠가는 지구를 위협하는 혜성 같은 존재가 될 것을 예방하기 위한 우주 개발 국제 협약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 협약처럼, 이제 AI를 접목한 로봇 시대 국제 협약을 서두를 때이다.
지난번에 극장에서 미래 세계 SF 영화 한 편을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혼자 관람했다. 전편 영화가 성공해서 후속작으로 만든 영화였다. ‘메간 2.0’이라는 영화였다. 주인공 소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 로봇에 대한 정보를 빼내어 복제한 로봇이 스스로 진화해 살인 로봇이 되어 인간을 해치는 영화였다. 얼마나 섬뜩하고 놀랐는지 모른다.
물론 SF 영화려니 하기엔 미래에 대한 상상이 조금씩 현실화되어 가고 있기에 우려가 된다. 이제 세계는 우리 손으로 인공지능을 만들고, 우리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는 로봇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필자의 집 안 청소를 잘해주는 로봇청소기가 어느 날 가족을 해치는 도구가 된다면? 괜한 노파심이기를 빌어본다.
-
2025-07-29
-
-
[의정발언] 2025년도 제1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 심사를 마치며
-
-
더불어민주당 경제노동위원회 평택 출신 김재균 의원입니다. 오늘 본 의원은 경기도청 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2024년 회계연도 결산과 2025년 제1회 추경예산안 심의를 진행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히고, 경기도 예산 운용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첫째, 관례처럼 이어져 오는 회계 시스템을 점검해야 합니다. 경기도 시·군뿐만 아니라, 경기도도 보조금 반납 시기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반납금을 5월, 심지어 9월까지 받는다는 것은 지방회계 질서를 혼란하게 하고, 예산 운용의 비효율성을 높이는 단면적 예입니다.
또한, 연내 사업의 집행 가능성을 더욱 철저히 따진 후 예산을 편성해야 합니다. 사업의 추진이 계획, 행정절차로 인해 지연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업의 실제 이행이 하반기부터 이루어져 결국 예산이 이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예산 편성 단계부터 명확한 집행시기 계획서를 제출하게 하고 타당성을 면밀히 점검하십시오. 예산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집행부의 책임감을 강화하여 예산이 적시에,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의 전문성을 살리는 한편, 위탁사업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현재 우리 경기도의 공공기관 중에는 위탁사업의 비중이 기관의 목적사업보다 더 많은 곳도 있습니다. 이는 해당 기관의 설립 목적을 희석시켜 기관의 전문성을 약화시킵니다. 각 분야 전문성을 가진 경기도 공공기관이 본연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도와 공공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위탁사업은 단순히 예산을 넘겨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집행부는 위탁사업에 대한 명확한 관리감독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최소한 분기별 1회 이상 정기적인 회의를 개최하고 회의록을 작성하여 업무 진척 상황을 점검하십시오. 단순히 결과보고서의 확인만 이루어진다면, 사실상 관리감독의 부재이자 행정편의주의가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최근 3개년 경기도의 기금 규모는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2024년 결산 때에는 기금에서 일반회계로 자금을 전출하여 내부거래로 사업을 추진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지라도, 기금의 안정성과 회계질서상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5개의 특별회계 계정이 정기예금 예치를 통한 이자수익을 발생시키고 있지 않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특별회계들이 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귀한 도민의 세금이 잠자는 돈이 되어 기회비용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2024 회계연도 일반회계 평균잔액의 85%가 정기예금으로 운용되어 416억 원의 이자수익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도민의 소중한 세금을 철저히 관리하여 도민을 위한 재원으로 다시 환원시킨 성과입니다. 또한, 2024회계연도 세입 추산 정확도가 무려 99.4%에 달했습니다. 이는 매우 훌륭한 성과입니다. 예산 편성과 집행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직사회 전체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합당한 포상으로 사기 진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지방정부의 살림은 일상적인 가정의 살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살림이 어려워지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경상 경비부터 철저히 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재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인기나 표심을 얻기 위해 빚을 내서 경기도정을 꾸려나간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고통이 됩니다. 이상으로 5분 자유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 7. 23.(수) 제385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
2025-07-29
-
-
[정재우 칼럼] 감정 노동자를 아는가?
-
-
은행 업무를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한 적이 있다. 이때 꼭 나오는 멘트가 있다. 전화를 받는 콜센터 상담직원에게 정중한 언어를 사용해 달라는 권유이다. 그 이후에야 직원과의 통화가 시작된다. 직원은 대개 첫마디로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친절하게 묻는다. 이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바로 감정 노동자다.
항공기를 이용해 국내외로 여행할 때에도 늘 목격하는 장면이다. 승무원들이 단정한 복장과 예의 바른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소한 요구에도 귀를 기울이며 친절을 다한다. 승객으로서는 편안하고 기분까지 좋아진다. 그러나 간혹 마주치는 장면은 승객의 무례함이다. 양말을 벗은 채 기내를 돌아다니고, 이를 정중히 만류하면 반말과 욕설이 터져 나온다. 이때 승무원은 어떤 감정일까? 감정 노동자로서 얼마나 황당할까?
감정 노동자(emotional laborer)란 “자신의 진짜 감정과 상관없이, 직무상 요구되는 감정을 표현하고 통제해야 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미국 사회학자 아를리 호크실드(Arlie Hochschild)가 1983년 『The Managed Heart』라는 저서에서 처음 제시했다.
감정 노동의 특징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노동의 일환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즉, 고객 만족을 위해 친절, 미소, 공감 등을 ‘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일이다. 내면의 감정과 외면의 표현이 불일치할 경우, 심리적 소진(burnout)이나 우울, 분노 등이 생길 수도 있다.
필자의 아내는 재활치료를 위해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처음 발병해 긴급히 앰뷸런스로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밤새 각종 검사를 받았고, 다음 날 전문의의 판명은 특별한 치료약이 없는 희귀병이라는 것이었다. 재활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때 가족 간병인으로서 대학병원 병실에서 가장 밀착된 상태로 아내 곁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지역 병원으로 내려와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의사, 간호사, 간병사, 그 외 병원 종사자들이야말로 감정 노동자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환자를 통해 그들이 겪는 감정 노동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었다.
반면, 간병사들의 불친절한 언행으로 인해 환자의 감정이 우울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특히 간병사의 80~90%를 차지하는 중국 동포(조선족)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언어가 무례하고 불친절한 경우를 매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다 보니, 최근에는 간호사가 간병까지 담당하는 병실을 운영하는 대형 병원도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동포 간병사들도 병원에서 종일 환자를 돌보며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끼리 병실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고령의 환자에게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호통을 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럴 때마다 당사자인 환자는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환자들까지 간접적으로 상처를 받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감정 노동자들이 점점 더 다양한 직종에서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서비스가 고품격을 갖추게 된다면 사회 전반이 더욱 편안해지고, 문화의 수준 또한 높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 품질 유지와 향상을 통해 소비자가 다시 찾게 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국가 이미지나 기업의 평판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 노동은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기능도 한다. 기업을 찾은 고객의 분노나 불만, 스트레스를 감정적으로 중재하며 사회의 긴장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감정 노동자의 서비스 질이 높아지면, 취약계층의 돌봄과 보호에서 더욱 큰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간호사, 돌봄 노동자, 간병사, 상담사 등은 감정을 담아 인간적인 케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약자 보호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공감, 친절, 위로는 감정 노동자의 ‘감정 서비스’를 통해 사회 전체에 따뜻한 분위기를 퍼뜨리는 힘이 된다. 우리 사회가 그런 선진적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
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