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의 단편소설 ‘나무’의 ‘황혼의 반란’에선 노인을 박대하다 못해 주사를 놓아서 죽이는 미래 사회가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은 주사를 놓은 젊은이를 쏘아보며 이리 말한다. 모두가 기억하면 좋을 말이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게다”
노인을 혐오하는 세대 간 갈등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고 있다. 점차 수명과 건강수명이 증가하고 있어 65세라는 노인 기준은 무색해지고 있다. 또한 건강하고 총명한 노인들이 일부이기는 하나 여전히 사회 기득권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건강한 생활의 향유로 노인들의 경험과 역량은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젊은 세대가 그 역할을 쉽게 대체 하지 못하는 현실로 이어져 고용과 낮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일부를 제외한 젊은 세대들의 박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박탈감과 사회적 역할이 오롯이 노인 문제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회 구조적인 현실 또한 외면할 수는 없다.
여기에 일부 노인들은 그간의 경험 축적으로 이뤄놓은 터전이 무의미하게 빼앗기는 것 같은 상실감을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부이기는 하나 노인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언행으로 젊은 세대를 당혹스럽게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다소간 세대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안타깝게도 노인 비하와 노인 혐오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자도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젊은 세대들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아 때로는 조심스러운 심정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제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지난해 12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수는 1,024만4,55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유엔(UN)은 한 나라의 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고령사회가 초고령사회로 되기까지 일본은 10년, 독일은 36년, 프랑스는 39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단 7년만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45년쯤에는 한국이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렇듯이 국가의 체질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거대한 변화에 대응할 준비는 사회적으로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 현실적인 초고령사회에서 노인들이 우대받고 존중받는 세상은 노인들이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 많은 노인이 훌륭한 사회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일부 노인들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정보 단말기)가 노인을 문전박대한다고 불만을 호소하기도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불평불만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노인들은 젊은 세대를 존중해야 하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조언하되 비평하지는 말아야 한다. 결국 미래를 열 사람은 젊은이들이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게다”라고 젊은이를 쏘아 보지 말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 밝은 미래를 위해 청년과 노인이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조금씩 손해도 보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상징인 최인호 작가(1945~2013)는 소설계의 ‘대문호’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던 저명한 소설가였다. 그가 암으로 사망하기 전 투병 기간 중 쓴 수필에 “곧 닥쳐올 노년기에 내가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이다. 무엇에나 올바른 소리 하나쯤 해야 한다고 나서는 그런 주책없는 늙은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위로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늙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전혀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죽는 날까지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는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침묵’을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노인에게 진리란 그런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