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텃밭에서 작물을 키워본 적이 있습니까? 베란다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먹거리를 키워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아니 지금 작물을 키우고 있다면 당신은 이상기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소비자입니다.
작물을 키울 때 제일 어려운 것이 풀 관리라고 합니다. 풀(소위 잡초)은 작물보다 개체 수가 몇백 배, 몇천 배나 많고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날이 가물어 저수지 바닥이 보여도 잡초는 시드는 법이 없으며, 약간의 수분만 공급되면 쑥쑥 잘 자랍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작물과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데 여러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햇볕으로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고 뿌리는 흙 속의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적절한 수분이 없다면 말라버릴 것입니다. 작물이 튼실하게 자라고 세균과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땅의 힘(地力)을 키우는 것’입니다.
땅속에는 두더지 같은 동물이 있고 개미 같은 곤충이 살며 수많은 유기물과 미생물이 있습니다. 유기물은 작물 뿌리에 직접 흡수되지 않습니다.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해야 비로소 작물 뿌리에 흡수될 수 있습니다. 미생물이 많은 토양은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입니다.
1차 산업인 농업에 종사하면서 일반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으며,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생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고 농약도 뿌리지 않으며 화학비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일은 더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가성비 낮은 친환경농산물이 일반 농산물보다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토양을 보전하고 수질오염을 방지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친환경 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은 토양에 기대어 사는 여러 생물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영위케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약 10년 전에 유명 가수가 자신이 직접 키운 콩에 ‘유기농’이라는 표현을 했다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조사를 받은 것과 관련해 사과한 적이 있습니다. 갑론을박이 나올 수 있지만 인증이 제도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잣대가 매우 엄격한 것입니다. 친환경농어업법이 1997년 제정되고 인증과 관련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는데, 2024년 1월부터는 비의도적 잔류농약은 잔류허용기준 1/20 이하이면 인증을 취소하지 않고 인증품으로 판매할 수 있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기준이 완화되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유기농 인증은 그동안 100점을 고수해 왔습니다. 1점이라도 부족하면 인증이 취소되고 일반품으로도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모 아니면 도’로 중간 과정은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인 판정법일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유기인증 완화(?)에 민감한 것은 ‘친환경 농산물 섭취=나의 건강지수를 높이는 등식’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친환경 농어업의 정의는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미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합성농약, 화학비료, 항생제 및 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친환경농어업법 제2조)」로 소비자의 건강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유기농법은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것임을 소비자에게 적극 홍보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제철 과일, 제철 채소가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장기술의 발전과 하우스 재배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시장에 나올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저는 11월 중순경 김장을 담습니다. 해가 바뀌어 1월~2월이 되면 봄동이 나옵니다. 약간 질기긴 하지만 김장이 식상해 질 때 겉절이로 먹으면 입맛을 돋웁니다. 그런데 3년 전쯤 김장을 하고 마트에 가니 벌써 봄동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다음 해엔 김장거리를 사려 했는데 동시에 봄동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딸기의 제철이 언제인가요? 토마토는요? 토마토는 여름작물입니다. 뜨거운 햇볕을 받아 빨갛게 익어 가지만 1년 내내 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팜, 인공지능 기술의 접목, 양액 재배 등으로 우리는 손쉽고 편리하게 농산물을 접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식량 자급을 위한 농지보전에 반하는 선택인지는 앞으로 논의할 부분입니다.
친환경농산물의 가장 큰 시장은 학교와 같은 공공급식과 생협일 것입니다. 2024년 통계를 보면 친환경농산물 재배 면적이 줄고 친환경인증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친환경농사를 지으면 먹고 사는데 걱정 없고 생활에 불편이 적어야 젊은이들도 직업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친환경농산물의 파이를 키우려면 구매하는 소비자를 넓히고 다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비자도 친환경농산물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건강을 위해 선택했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책임 있는 소비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장애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장애물을 낮추는 노력, 장애물이 얇아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