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의 무대에서 가수 김목인이 올라왔다. 그는 총 2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 중 한 곡은 ‘파시스트 테스트’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서사는 화자가 길을 지나가다 사은품을 받으려 파시스트 테스트를 해봤는데, 어이없게도 10점 만점에 9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화자 본인은 파시스트일리 없다며, 그냥 본인은 스스로를 평범한 시민이라며 가끔 화를 잘 내고, 전쟁영화를 좀 많이 볼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 한다.
파시즘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파시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팩스턴이 정의한 파시즘이란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극우파시스트들에 의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위협당하는 지금의 시대에 광장에서 울려 퍼진 ‘파시스트 테스트’는 우리에게도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파시즘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들렸다.
물론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가한 대중들이 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극우파시스트들과는 생각의 궤가 다르고, 정치적 지향도 180도 다르다. 하지만 180도 다르다고 해서 우리 내면에는 파시즘적 요소가 하나도 없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 누구에게나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파시즘적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대중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구령대가 존재하는 운동장에서 조회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구령대는 가장 파시스트적인 집단인 군대에서 존재하는 구조물이다. 그런데 이런 군대에 있을 법한 구령대를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에 설치를 한 것이다. 물론 일제가 설치한 잔재라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교육 당국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이 구령대를 활용해서 운동장 조회를 진행했다.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행위인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한 운동장 조회는 교장선생님의 권위 앞에서 사회 체제에 순응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사회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면 마치 별난 사람,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며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특히 계속해서 사회구조는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틀린 것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파시즘적 요소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는 작든 크든 파시즘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파시즘적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뜻과 좋은 목적이라 하더라도, 생각과 행동, 과정에서 파시즘적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숙고해야 한다. 이렇게 내면에 존재하는 파시즘적 요소를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서부지방법원을 습격했던 극우파시스트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의 파시즘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