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밤, 우린 긴 악몽을 꾸었네. 깜박 잠들었을 뿐이었는데. 도둑이 들어 나도 모르는 순간 나의 가장 소중한 보화를, 가보를 훔치려 했네. 그렇게 믿고 우리를 맡겼었는데.
어릴 적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처음 데모가 무엇인지 눈으로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 경찰서에 돌을 던지며 무언가 구호를 외쳤다. 무서웠고 한 편으로 너무 놀랐다. 이럴 수 있다니?
훗날 어른이 되어 그때를 기억해 보니 4.19였다. 평소 조그마하고 조용한 군인 도시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안다. 그 무리가 무엇을 요구했는지를.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이해하기 어려운 이 땅의 소요들이 있었다. 부패한 정치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나 나오지 말아야 했을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등장해 이 땅의 소중한 보화를 훔치려 했을 때였다. 그때에도 무리들은 맨몸으로 뛰어나와 그 보화를 지키려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맨몸으로 앞장서 몸을 던졌던 이들은 오랫동안 억압받고 빛을 보지 못했다. 숨어 다녔고 용감한 지성인들은 여전히 소리를 외쳤다. “너희의 날은 길지 않으리라”,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은 그렇게 쉽게 훔칠 수 없으리라” 절규했다.
그 암울한 시기를 살아와야 했다. 새벽이슬을 노래했던 세대들은 구금되거나 군대로 끌려가 최전방으로 보내졌다. 그래도 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 노래의 힘이 모여 새벽을 가져왔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또다시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 서울의 봄을 짓밟았다.
봄날은 왔다. 그 새벽은 복구되었다. 목숨 걸고 요구하고 외쳤던 그 보화를 되찾았다. 눈물겨운 추운 겨울을 지나 자연스럽게 봄날은 왔다. 이제 이 봄날을 빼앗을 순 없으리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봄을 누리며 평화로운 문회를 꽃피우고 있지 않은가?
그 예언들이 성취되어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화가 찾아왔다. 그 와중에도 무리들은 가난한 이 땅을 기름진 옥토로 만들어 풍요로운 열매를 수확했다. 지구촌이 경탄했다.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이제 K-컬처를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 땅의 토양에서 자란 문화의 꽃을 함께 향유하고 있다. 이 땅이 지키려 했던 그토록 소중한 가치를.
다시는 나오지 말아야 할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는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 계엄이라는 무기로 이 땅을 훔치려는 그 어떤 의도도 용납하지 말자. 그렇게 되찾고 또다시 되찾은 보화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기에.
혼란의 밤은 지나갔다. 이제 잠깐 시달렸던 악몽에서 깨어나자. 무엇을 훔치려 했는지, 왜 그것을 앗아가려 한 건지, 이 땅의 보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자각하자. 누구도 이 보화를 대신 지켜주지 않음을 뼈저리게 알아야 한다. 미국도 일본도 아니다. 북한은 더욱더 아니다.
이 땅을 지키려 수많은 선열이 피 흘린 보화를 우린 지켜내야 한다. 그 가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결코 포기하지 말자. 이 땅은 도둑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보화는 우리의 것이다. 생명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공동체의 것이다.
이제 악몽에서 일어나 이 땅을 수습하자. 전과 다름없이 우리의 기상을 세계에 다시 보여주자. 평화롭고 문화의 꽃을 피우는 이 땅을 보여주자. 우린 여전히 평화롭고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자. 그들이 신기하여 다시 찾는 이 땅으로 비상하자. 활짝 날개를 펼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