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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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꽃의 도시 피렌체로 가는 길은 멀었다. 그러나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시공을 종횡무진 넘나든 이가 있었으니, 전반적인 박식함을 넘어 가히 전문적으로 해박한 경지에 오른 ‘정주애’ 현지 가이드였다. 그녀의 해학적 뜻풀이를 옮기면 이름부터 ‘술 주 · 사랑 애’라니 더 보탤 말이 없으렷다. 한마디로 유럽사를 관통하는 인문학적 소양에 관해서는 기독교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필자가 끼어들 만하다. 다만 조직신학 전공자이자 신앙인의 시각에서 짚어보면 신구약 성경 분야만큼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제번하고 서양사의 맥을 짚는 지점에서 공시적 통찰은 몰라도 통시적 고찰에 관해서는 배우는 바가 있었다. 예컨대, 초장에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다루면서 BC 753년 건국한 뒤 (AD 395년 동서로 분열했다가) AD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데 이어 1453년 동로마가 무너지면서 흔히들 말하는 중세로 접어들었다는 설명이 무척 일목요연하게 들리더란 말이다. 하지만 소괄호 부분이 빠진 데다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 관해 논하려거든 반드시 1054년 동서교회분열의 원인을 파헤쳐야 매듭이 풀린다.


단, 본 기행의 경우 개략적 기록물을 지향하는 마당에 복잡한 교회사를 들춰내려는 의도는 아니로되, 유럽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가 기독교(개념적으로는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를 포함함)를 표방하는 예배당이므로 사실관계를 보완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자는 취지다. 다들 피렌체에만 들어서면 선뜻 떠올리는 르네상스란 화두가 통념적으로 그리 고상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곳 출신이라는 핑계로 짐짓 재미 삼아 카사노바가 후리는 화술이나 세기적 음란성을 언급하기보다는, 응당 인본주의적 종교미술에 등장하는 도상학이며 정제된 메디치 가문의 자취를 입에 올리는 편이 정석일 것 같아 관련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연약한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공과가 있을 테니 경위야 어떻든 어두운 측면을 불문에 부친다면 상업자본을 매개로 300년 이상 정치 권력을 이어간 사례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지만 어디 그런 소문조차 듣기 어려울뿐더러, 목적에 부합한 수단이라야 정당성을 갖는 것이 인류사의 교훈일진대 지금 와서 벌떼처럼 따지고 들면 무슨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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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마을로 알려진 토스카나의 풍치

 

오랜 세월 세찬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말없이 강물 곁을 지키고 있는 둑방이 보였다. 이는 어쩌면 옆에서 보기에는 꽤나 거북할지라도 영양가 있는 흙탕물처럼 피렌체를 일으킨 메디치 일가의 족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나쳐가는 창밖을 응시하던 중 시나브로 두 눈을 사로잡은 풍광이 나타났다. 바라보면 볼수록 목가적 풍치가 살아 숨 쉬는 대자연. 봄기운이 완연한 산기슭에 은은한 연녹색과 그윽한 갈색 톤이 어우러져 필자의 마음을 감싸듯 어루만졌다. 궁금증이 도져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니 치유 마을로 알려진 토스카나의 전경. 이탈리아반도에 이만치 아름다운 고장이 있다는 게 샘 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오면서 보니 그리 높지 않은 고원에 성처럼 모여 사는 동네도 있었다. 기후 위기가 전 지구를 강타하기 전에는 일교차 없는 지중해성 기온이 온화하게 느껴져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마저 필요치 않았다는 전언이 결코 허사는 아닌 게다. 그 한복판에 내려 잠시나마 호사를 누리도록 이끈 이는 다비드상. 중턱에 조성한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사방을 굽어보니 다채로운 색상 조화가 온몸에 푸근히 다가왔다.


비좁은 골목을 비집고 배불리 마친 현지식 점심. 이후 일정에 맞춰 단테 기념비를 만날 때까지는 비교적 진행이 순탄했다. 그런데 피렌체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에 멈춰 산타크로체성당 앞에서 추억을 쌓으려는 참에 화창하던 일기가 돌변하면서 궂은비가 이내 옷깃을 적시기 시작했다. 역시나 관광 중에 날씨 운이 따르지 않으면 구경은 뒷전. 스냅사진 찍기는 물론이려니와 실시간 쏟아놓는 해설마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애초부터 갈릴레오를 비롯한 사람들 무덤에는 무덤덤했고, 조토의 종탑은커녕 프레스코화니 네오고딕이니 하는 설명이 뇌리에서만 맴돌 뿐 앞서 필자가 거들었던 천국과 지옥에다 연옥을 추가한 신곡에 관해서도 고인 게 없어, 우산을 받치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아내와 난간에서 잠시 쉬어가려는데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그래 이젠 메디치가의 행위를 두고 장마 끝에 반가운 햇빛이었다고 인정하면 어떨까? 막대한 부를 동원해 문화예술진흥과 고등학문증진에 기여했다면, 현실적으로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감춘 차선책인 동시에 빈부의 양극화를 좁히려는 마중물이라고 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6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이태리: 폼페이 건너 카프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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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이태리: 피렌체 앞 토스카나’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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