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 담긴 도서관의 철학 역시 무겁게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송승섭 교수에 의하면, 독서문화란 “문자를 사용하여 표현된 것을 읽고 쓰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문화 활동과 그 문화적 소산”을 말한다. 역사상 손쉽게 책을 구해서 읽을 수 있었던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6~19세기까지 서구의 독서 관행과 도서관문화는 그 지역사의 변천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에 힘입어 18세기 후반부터는 계몽사상이 널리 퍼졌고, 가히 독서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새로운 부류의 독자와 출판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는 많은 사람이 문맹을 벗어나 도서관의 이용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은 사회적 기관으로써 문헌정보학이라는 이론과 현장을 동시에 두고 있다. 이는 개개인의 지적 활동을 돕고 사회적으로는 인류의 지적 재산을 계승하여 문화창달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약 교양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도서관문화가 없었다면 과연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도서관은 문해력을 높여 지적인 자유를 가져온 공론장이었다.
독서의 역사와 도서관은 궤를 같이한다. 책을 만드는 데 사용한 서사 재료는 점토판, 죽간목독,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독서행위 자체는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독서자료의 법적 개념은 “문자를 사용하여 표현된 도서·연속간행물 등 인쇄자료, 시청각 자료, 전자자료 및 장애인을 위한 특수자료 등 독서에 필요한 자료”를 말한다. 조선 전기만 해도 사대부들이 책을 파는 서점의 설치를 극구 반대하여 일반 백성은 물론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학생조차 책 구입에 애를 먹었다는 대목에서 새삼 한글 창제의 위대함을 되새기는 가운데서도, 조선 후기에 와서야 겨우 서점이 만들어졌다니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이는 기실 책 읽기 자체가 통치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한 지배층의 고루한 사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야말로 매매의 대상이 아닐뿐더러 문자 또한 한자를 쓰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이윽고 19세기 들어 형성된 폭넓은 독자층은 지배층에게는 불안의 원천이었으나, 그 기저에는 샤르티에의 지적처럼 양질의 독서가 국가적으로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데이지 꽃무리
사회적 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이 지닌 함의는 다분히 철학적이다. 독서실이 아닌 독서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철학을 내포한 이론적 배경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종래의 도서관학에서 문헌정보학으로 학과명을 변경한 연유가 바로 그것이다. 곧 문헌이란 정보 매체에 기록된 정보의 총칭이며, 도서관학은 정보센터로서의 업무 진작에 관련된 지식의 응용이라고 볼 수 있어, 정보학이란 정보에 관련한 본질과 성질을 규명하고 그 사항의 사회적 적용 가능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서관학과 정보학이 융합되어 새롭게 문헌정보학이 태어난 셈이다. 최근 들어 여기에 컴퓨터를 접목한 업무의 효율성을 가미함으로써 사회인식론에 지식사회학의 개념을 포함시킨 조치는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헌정보학의 이론적 기초는 학문적 과학성에서 찾을 수 있되 그 실천성은 철학적 배경을 가질 때라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관의 소관 부처가 교육부가 아닌 문화 담당 부서인 점은 정책적으로 모호한 측면이 남아있어 국민의 평생학습권 보장이라는 시책에서도 시정할 여지는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적 도서관이 지닌 공공성은 영미로부터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미국은 독립전쟁(1775~1783)을 통해 민주주의 기초를 튼튼히 했고, 그 기운으로 영국은 차티스트운동(1838~1848)을 벌일 수 있었다.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이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결과였다. 공공도서관으로 인해 대중교육과 도덕함양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참이다. 그 효시는 미국에서 1833년에 세운 피터버러 공공도서관이었다. 이는 비록 일부지만 시민이 낸 세금으로 예산을 집행한 최초 사례였다. 이후 1850년 영국 맨체스터 공공도서관이 생기면서 1854년 보스턴에 시립도서관 설립으로 연결되었고, 19세기에 들어와 ‘지식과 정보 접근의 보편화’라는 명제를 달성하면서 역사에 이바지했다. 그 첫째는 첫째 공교육을 통해 무상 기초교육을 실현한 점이고, 둘째는 시민들에게 무료도서관을 제도화한 조치다. 이제는 사서직에 관리자 정신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도 랑가나단의 도서관 5법칙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장서, 사서, 시설은 독자를 위한 유기체로 기억될 주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8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새로운 도서관의 미래’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