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는 이미 도착했다. 다만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캐나다 작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 1948년 3월 17일~)의 말은 우숙영 작가의 신작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를 읽는 내내 떠올랐다. 이 책은 인공지능을 다룬 단순한 기술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성찰의 기록이다.
작가는 ‘도래할 미래’가 아니라 ‘이미 도착한 미래’를 선언한다. 독자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여전히 AI를 먼 이야기라 여기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스피커, 번역 앱, 추천 알고리즘처럼 이미 일상 곳곳에 스며든 사례를 보라. 우리는 이미 AI와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강점은 기술 낙관론도, 종말론적 공포도 아닌 균형 잡힌 시선이다. 우숙영 작가는 AI를 찬양하지도, 배척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 고유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묻는다. 윤리, 책임, 공감,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마저 소홀히 한다면 스스로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질문은 단순하다. “과연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AI는 더 이상 실험실의 산물이 아니다. 기업은 효율을, 교육 현장은 AI 튜터(Tutor)를, 언론과 문화 산업은 AI 작가를 활용한다. 최근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는 AI 앵커가 뉴스를 진행해 논란을 불러왔다. 신기함과 동시에 불안도 커졌다. 앵커가 전한 메시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계인가, 아니면 기계를 설계한 인간인가?
AI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윤리와 책임이다. 자율주행차 사고의 책임, 의료 AI의 오진 보상 문제는 더 이상 추상적 논의가 아니다. 법과 제도, 사회적 합의가 뒤따르지 않으면 기술의 속도는 오히려 혼란을 부를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노동과 인간 존엄성이다. 단순노동뿐 아니라 전문직까지 AI가 위협하는 현실에서 중요한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사라질 것인가’가 아니라 ‘노동의 의미와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다. 인간의 일이 값싸게 취급된다면 사회의 기반도 흔들린다.
희망적인 메시지도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여전히 존재한다. 공감과 관계, 예술적 상상력, 도덕적 판단은 기계가 모방할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체화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은 더 필요해진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더 ‘인간답게’ 살 것을 요구한다.
교육 현장의 고민도 깊다. 학생들은 이미 AI로 숙제를 하고, 연구자들은 논문 초고를 AI에 맡긴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단순 지식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창의적 협업 능력이 더 절실하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을 길러내는 교육이야말로 미래를 지켜낼 가장 확실한 길이다.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던진다. AI를 인류의 동반자로 받아들일 것인가, 잠재적 위협으로만 볼 것인가.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미 도착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미래는 더 이상 내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 곁에 와 있다.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인간 고유의 가치를 붙들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미래 세대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도착한 미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미래는 기술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 AI 시대, 인간이 여전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