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배다리의 여름을 감는 줄기들… 덩굴식물의 세계
곤충에게 꽃과 꿀 제공하고 새들에게 은신처와 먹이 마련… 생태계 다양성 더하는 역할
한여름의 배다리에는 풀과 나무, 맹꽁이와 금개구리뿐 아니라 남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여럿 있다. 바로 줄기를 이용해 남에게 기대어 오르는 덩굴식물들이다. 덩굴식물은 햇볕을 더 받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줄기의 무게를 덜기 위해, 그리고 더 넓은 공간으로 확산하기 위해 특별한 전략을 택했다. 감아 올라가거나, 손을 뻗듯 덩굴손을 내밀거나, 혹은 공기뿌리나 흡착근으로 이웃을 붙잡기도 한다.
한여름 무성한 숲속, 덩굴식물은 나무줄기와 가지 사이를 엮어 하나의 그물망 같은 풍경을 만든다. 겉보기에 단순히 다른 식물에 얹혀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곤충에게 꽃과 꿀을 제공하고, 새들에게 은신처와 먹이를 마련하며, 생태계에 다양성을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다리의 여름은 이들의 줄기와 잎, 그리고 얽히고설킨 생명력으로 더욱 풍성해진다. 이번 글에서는 배다리에 자리 잡은 다양한 덩굴식물과 그들의 생존 전략, 그리고 생태계 속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덩굴식물이란
흡착근을 이용해 주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2014.5.8. 덕동산마을숲)
덩굴식물은 스스로 곧게 서지 못하고 ‘다른 식물이나 물체에 의지해 살아가는 식물’을 말한다. 이들은 햇볕을 더 받고 더 넓은 공간으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주변을 타고 오르며, 그 과정에서 독특한 줄기 구조를 발달시켰다. 위로 오르면서 줄기의 무게를 덜기 위해 덩굴손이나 감는줄기를 발달시키거나, 흡착근 혹은 공기뿌리를 통해 기어오름식물(climbing plant)이 된 것이다.
2. 숲 생태계 덩굴식물의 위치
동물의 먹이가 되고, 숲 다양성을 높이는 노박덩굴(2013.10.18. 덕동산마을숲)
숲 생태계에서 덩굴식물은 풀과 나무 사이의 공간을 메우며 입체적인 서식지를 만든다. 수많은 경쟁 속에서 생장점을 확보하고 빛에 근접하기 위해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감싸 오르는 과정에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생태계의 균형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물의 은신처(Cover)나 먹이가 되고, 숲의 다양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게 된다.
3. 배다리의 목본성 덩굴식물
자신의 줄기를 감고 오르는 목본성 덩굴식물, 다래(2019.4.18. 배다리마을숲)
식물의 성장 형태에 따른 덩굴식물의 종류는 목본성과 초본성 덩굴식물로 나눌 수 있다. 목본성 덩굴식물은 칡, 다래, 노박덩굴, 등나무같이 줄기가 목질화되는 식물을 말한다. 숲 규모가 크지 않은 배다리마을숲에는 매우 굵은 다래가 마을숲 맹꽁이 번식지와 맨발 걷기 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개머루, 노박덩굴, 청미래덩굴, 댕댕이덩굴, 담쟁이덩굴 등이 관찰되고 있다.
4. 배다리의 초본성 덩굴식물
주변 식물을 감고 오르는 초본성 덩굴식물, 선메꽃(2013.7.30. 비전동)
배다리 전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목본성 덩굴식물이 제한적이라면, 배다리 산채로와 배다리도서관 주변에서는 10여 종 이상의 초본성 덩굴식물을 만날 수 있다. 돌콩, 박주가리, 환삼덩굴 등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종은 메꽃과로, 선메꽃, 애기메꽃, 미국나팔꽃, 애기나팔꽃, 둥근잎유홍초 등이 있으며, 기생식물인 미국실새삼도 풀밭에서 주변 식물을 감고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5. 덩굴식물의 감아 올라가는 방향
위에서 보았을 때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감는 칡(2009.7.29. 덕동산마을숲)
덩굴이 감는 방향에는 규칙이 있다. 돌콩, 메꽃, 박주가리 등의 줄기는 주변 식물의 줄기나 물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데, 이들이 주변을 감는 방향에 따라 오른쪽 감기와 왼쪽 감기로 나뉜다. 덩굴줄기를 위에서 보았을 때 시계 방향으로 감으면 오른쪽 감기, 그 반대이면 왼쪽 감기이다. 대다수의 덩굴식물은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감지만, 아예 구분이 없는 식물도 있다.
6. 감는줄기의 덩굴식물
감는줄기를 이용해 주변을 타고 오르는 박주가리(2019.6.30. 배다리마을)
감는줄기는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감아 올라가는 줄기를 의미하며, 성장은 더딘 편이다. 배다리에서 메꽃, 참마, 새팥, 새박, 박주가리, 환삼덩굴, 댕댕이덩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주변 식물에 의지해 성장할 뿐, 다른 식물에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미국실새삼 같은 기생식물과는 근본이 다르다.
7. 덩굴손을 이용하는 덩굴식물
배다리 전역에서 자리를 잡은 새박의 열매와 덩굴손(2014.10.9. 배다리산책로)
덩굴손은 덩굴식물이 주변의 물체를 감아 몸체를 지지하고 고정하는 데 사용되는 기관으로, 줄기나 잎 등이 변형되어 만들어진다. 콩과, 박과, 포도과 식물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포도, 오이, 호박, 수박 등 다양한 식물에서 잎, 줄기, 턱잎 등이 변형되어 덩굴손이 될 수 있다. 배다리에서는 넓게 퍼져 자리를 잡은 새박이 덩굴손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덩굴식물이다.
8. 흡착근을 이용하는 덩굴식물
흡착근을 이용해 숲속 주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2014.5.8. 덕동산마을숲)
흡착근은 청개구리 발가락의 빨판과 같이 생긴 식물의 뿌리로, 주로 담쟁이덩굴이나 능소화 같은 덩굴식물이 벽, 나무, 바위 등에 달라붙어 위로 자라도록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 뿌리 끝의 흡착근은 표면을 꽉 붙잡아 식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9. 부착형 식물인 능소화, 담쟁이덩굴의 차이점
건축물의 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의 공기뿌리(2007.11.30. 비전동)
능소화와 담쟁이덩굴은 둘 다 줄기의 마디에서 나오는 ‘공기뿌리(기근, 氣根)’를 내어 주변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지만, 올라가는 방식과 생태적 특징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짧고 거친 뿌리를 지닌 능소화는 나무줄기의 거친 표면을 잘 이용하는 반면, 원반 형태의 부착판을 지닌 담쟁이덩굴은 매끈한 벽이나 유리에도 붙을 수 있다.
10. 가시로 타고 오르는 며느리배꼽
실개천 주변 키 작은 나무를 완전히 덮은 며느리배꼽(2023.12.2. 배다리실개천)
며느리배꼽은 감는줄기나 덩굴손, 부착형 뿌리를 이용하는 덩굴식물이 아니라 줄기와 잎자루에 난 날카로운 가시를 활용해 주변 식물을 타고 오르는 독특한 전략의 식물이다. 날카로운 가시를 발달시켜 주변 식물을 걸치며 올라가 햇빛을 넉넉하게 차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시는 주변 초식동물의 접근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