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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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비 내리는 한여름 밤, 배다리생태공원 자작나무숲의 나무마다 애매미와 말매미의 우화가 이어졌다. 땅속에서 수년을 보낸 유충이 지면의 작은 구멍을 뚫고 나와 나무를 의지해 위로 오른다. 나무를 기어오르는 발끝의 날카로운 발톱은 빗방울 속에서도 몸을 단단히 고정시킨다. 등판이 먼저 갈라지고, 머리와 가슴, 다리와 몸통이 완전히 빠져나온 후 오랜 시간의 날개 말리기로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비가 내려도 새로운 유충들이 나무를 오르고 우화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 오는 밤은 천적이 줄고 습도가 높아 날개 변형을 줄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마귀, 거미, 개미, 심지어 그리마 같은 뜻밖의 포식자가 매미를 노린다. 매미 유충은 무작정 나무를 오르지 않고 촉각과 후각, 진동 감각을 총동원해 안전하고 적합한 우화 장소를 고른다. 자작나무뿐 아니라 벚나무, 느티나무, 리기다소나무에서도 우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짧지만 치열한 여정을 지켜보는 일은, 여름 숲이 품은 생명의 복잡한 이야기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1. 한여름 밤의 생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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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자작나무의 잎 밑에서 우화 중인 말매미(2025.8.3 배다리마을숲)

 

해가 지며 시작된 매미의 우화는 단 몇 시간 만에 끝나지만, 그 속에는 수년간의 기다림과 생태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담겨 있다. 비가 오는 날, 자작나무숲의 고요 속에서 매미들은 천적을 피해 날개를 펼쳐 하늘로의 첫 비행을 준비한다. 우리가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작은 생명들의 삶을 이해하고, 지역의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 땅을 뚫고 넓은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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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땅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애매미 유충(2025.8.3 배다리마을숲)

 

매미는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까지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 먹으며 살아간다. 성충이 될 때가 되면 땅 위로 올라올 출구를 파는데, 지면 곳곳에 남은 작은 구멍이 바로 ‘탈출공’이다. 비가 온 뒤에는 이 흔적이 더욱 선명해져 숲을 거니는 이들에게 매미 세대교체의 현장을 알려준다. 10mm 정도인 애매미의 탈출공에 비해 말매미는 그보다 큰 15mm 이상이다.


3. 비를 ‘기회의 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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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 속에서도 덜 위험한 곳으로 이동 중인 애매미 유충(2025.8.3 배다리마을숲)

 

비 오는 날 우화가 멈추지 않는 것은 “천적 감소, 날개 마름에 유리한 습도, 미룰 수 없는 생애 주기” 등의 요인이 겹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화목에 오르는 것부터 우화 도중 떨어지는 일까지, 비는 매미에게 절대 쉽지 않은 장애물이지만 나름의 ‘덜 위험한 선택지’로 여기는 듯하다. 오히려 비를 ‘기회의 창’으로 삼는 조짐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4. 우중에도 우화를 멈추지 않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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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벚나무 잎 뒷면에서 우화 중인 애매미(2025.8.3 배다리마을숲)

 

지난 8월 3일, 주룩주룩 적잖은 비가 내렸음에도 매미의 우화는 멈추지 않았다. 비 오는 밤에는 거미, 개미, 사마귀, 새 등 주요 천적의 활동이 줄어들어 오히려 안전하다. 습한 공기는 날개가 너무 빨리 마르는 것을 막아 변형을 줄여 주기도 한다. 땅속에서 이미 시기를 결정한 매미는 주변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묵은 껍질을 벗는다.


5. 비 오는 날 우화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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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를 피하기는 했지만, 우화 위험성이 높은 애매미(2025.8.3 배다리마을숲)

 

잔가지나 나뭇잎 아래 등 우화 장소의 선택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우화목의 젖은 표면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빗물 낙하나 바람에 의한 물리적 위험은 곧바로 우화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빗물로 인한 활동 제약은 날개 건조와 첫 비행을 지연시켜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6. 매미 우화 나무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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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가 집단으로 번식하는 동천리 왜가리서식지(2020.3.4 진위면 동천리)

 

소나무를 중심으로 참나무, 밤나무, 아까시나무 등 백로류가 둥지를 트는 나무를 ‘영소목’이라 한다. 그렇다면 매미가 우화할 때 올라타는 나무도 학술적으로 특정한 공식 명칭은 아니더라도, 생태 해설이나 시민 모니터링에서 충분히 이름을 지어 쓸 수 있다. 학술·기록용으로는 ‘우화목’ 또는 ‘우화대상목’이 적합하고, 문학적·해설용으로는 ‘매미나무’나 ‘날개터나무’도 잘 어울린다.


7. 배다리 자작나무숲 매미의 탈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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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자작나무숲의 말매미, 애매미, 털매미, 참매미 탈피각(2025.8.15)

 

매미는 메뚜기와 같이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애벌레 단계에서 허물을 벗으며 성충으로 탈피하는 불완전변태 곤충이다. 매미 유충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나무 위로 올라와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데, 이때 남는 껍데기가 바로 ‘탈피각’이다. 배다리 자작나무숲에서 소리로 확인된 5종의 매미 가운데 말매미, 애매미, 털매미, 참매미의 ‘탈피각’을 만날 수 있었다. 


8. ‘날개터나무’ 선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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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이 거친 느티나무의 수피를 타고 오르는 말매미 유충(2024.7.16 배다리마을숲)

 

땅속에서 오랫동안 준비해 온 매미는 우화를 위해 ‘날개터나무’를 신중히 고른다. 배다리 자작나무숲에서는 자작나무뿐 아니라 주변의 벚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중국단풍에서도 우화가 관찰된다. 껍질눈이 있어 오르기 쉽고, 개미와 같은 천적의 접근이 어려운 위치, 적당한 높이와 굵기의 줄기를 선택하는 것이 우화할 매미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9. 매미 앞다리 발톱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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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유충의 생존에 핵심 구조인 다리 발톱(2025.8.1 배다리마을숲)

 

매미는 우화 과정에서 날지 못한 상태로 나무를 오르기 때문에 발톱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이미 땅을 뚫을 때 사용된 앞다리 발톱은 나무껍질이나 잎에 단단히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다. 천적과 비, 바람 등 외부 위험 속에서도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해준다. 즉, 발톱은 매미가 안전하게 탈피하여 성충으로 성장하는 핵심 구조이다.


10. 우화를 노리는 천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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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를 마친 애매미에게 예상치 못했던 천적, 그리마(2025.7.24 배다리마을숲)

 

우화 과정의 매미는 날지도 못하고 방어도 어렵다. 대형 거미와 사마귀, 개미 같은 대표적인 천적은 물론, 평소 잘 알려지지 않은 ‘비전형 포식자’도 나타난다. 필자가 관찰한 한 장면에서는, 다리가 많은 절지동물인 그리마가 갓 껍질을 벗은 애매미를 잡아먹고 있었다. 비 오는 날에도 조심해야 할 천적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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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하나둘 밝혀지는 매미 우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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