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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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던 한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필자에게 말 그대로 ‘무비캉스’였다. 부천시청 어울마당과 CGV소풍관을 오가며 3박 4일 동안 13편의 영화를 보면서 함께한 시간은 무더위마저 잊게 할 만큼 벅차고도 감동적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와 감성이 영화라는 언어로 하나 되는 장면들을 보는 일이었다. 가족, 미래, 평화, 비폭력, 여성, AI, 전통, 종교 등 인류 보편의 주제를 담은 작품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삶을 돌아보게 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인공지능(AI) 장르 영화들이 첫선을 보였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도였고, 영화제의 미래지향적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신선한 흐름이었다. 또한 국내외 단편 영화들을 ‘엑스라지’라는 섹션으로 모아 상영한 것도 흥미로웠다.


영화 상영 후 감독과 배우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풍성했다. 대부분의 상영작이 매진되었고, 관객석을 가득 메운 젊은 세대의 열기는 감독들과 출연진에게도 큰 감동이 된 듯했다. 한국 영화의 미래가 밝다는 확신을 주는 순간이었다.


작품 선정 기준이 궁금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영화제의 ‘판타스틱’이라는 이름처럼, 상상력과 창의성, 모험심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많아 매 작품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영화제를 보며 문득, 필자가 살고 있는 평택에도 이와 같은 국제영화제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족, 환경, 평화 같은 주제로 겨울철인 1~2월경 개최한다면 다른 영화제들과도 일정이 겹치지 않고, 시민들의 정서적 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민박을 원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숙박 시설을 시민이 개방할 수 있도록 시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있다면, 민간 국제교류의 장으로도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몇 편 소개하고 싶다.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영화는 〈하늘나라로 가요 - 볼리비아>였다. 가정폭력으로 어머니를 잃은 8살 소녀가 엄마의 시신을 트럭에 싣고 ‘사막 끝에 있는 천국’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자연과 소녀의 순수함, 그리고 사랑의 체험이 감동적으로 펼쳐졌다.


〈디덕스 디덕스 - 미국>은 다중우주를 배경으로 엄마가 딸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이야기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중우주의 살인범을 찾아가 응징하지만, 마지막엔 가출한 소녀를 구해내며 복수를 끝낸다. 모성애가 불러온 복수극과 용서 사이에서 모성애의 깊이를 그린 수작이다.


〈너와 나의 우주 - 우크라이나>는 핵폐기물을 목성으로 운반하는 쓰레기처리 우주선의 남성과 우주 정거장에 홀로 남은 여성 우주인 간의 로맨스 스토리이다. 지구가 폭발한 후 우주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지구인이 된 두 우주인의 외로운 교제를 그린다. 우주선 고장으로 비대면 문자 대화를 통해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모습은 현대인의 단절된 정서에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외에도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 웹툰 작가 자매의 갈등과 성장을 담은 〈커미션 - 한국>, 종교와 용서의 갈등을 수사극 형식으로 풀어낸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씽 - 한국>, 요양원을 거부하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 〈그들의 집 - 스웨덴>, 쾌속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 설치된 폭발물을 제거하는 수사극으로 스릴러 만점에 가까운 수작 <96분 - 대만>, 중국 외딴 시골 동네에서 일어나는 악당과 경찰의 대결을 치열하게 그려낸 <모래 폭풍 속에서 - 중국>.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봐도 현대적 감성이 뒤떨어지지 않는 영화, 배우 이병헌의 대표작인 〈번지점프를 하다 - 김대승 감독> 등, 필자가 본 영화들은 다채로운 주제와 장르가 끊임없이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상상력의 경계이고, 인간 내면의 정수를 끌어 올리는 예술이다. 부천에서 누린 이 짧은 휴가는 단지 영화를 본 시간을 넘어서, 정서적 충전이자 문화적 확장, 그리고 삶에 대한 작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영화가 있어, 그 무더위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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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폭염 속에서 누린 영화와 감동의 무비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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