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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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민 한광여자중학교 교감

◇ 그리운 옛 시절의 공동체: ‘교육 공동체’라는 이름이 없어도 함께였던 사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와 80년대는 ‘교육 공동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때의 삶은 공동체 그 자체였다. 대가족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삼촌, 고모, 그리고 형제자매가 한데 모여 살았다. 밥상머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법을 배웠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이웃 간의 정은 또 어떠했는가.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옆집 밥 냄새를 맡고 찾아가 김치를 얻어오던 시절이었다. 명절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송편을 빚고, 떡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두 팔 걷어붙이고 달려와 함께 짐을 나눠졌고, 기쁜 일은 온 마을의 잔치가 되었다.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함께 뛰어놀며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을 익혔다. 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존재를 넘어, 학생들의 삶과 인성을 보살피는 진정한 ‘스승’이었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존경하며 올곧게 성장했다. 학교는 곧 작은 마을이었고, 가정과 학교, 이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아이들을 함께 키워냈던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 고립되어가는 현대 사회와 교육 현장: ‘각자도생’의 그림자


그러나 시대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21세기는 기술 혁명의 시대를 넘어 AI가 모든 삶의 영역에 깊숙이 파고드는 초연결 사회가 되었다. 동시에 개인주의 심화와 함께 가족 형태도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보다는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더욱 익숙해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는 ‘익명성’의 그늘 아래, 정이 메마르고 고립감이 심화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교육 현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과거의 ‘스승과 제자’라는 단어는 어느새 ‘교사’와 ‘학생’이라는 다소 건조한 호칭으로 대체되었다. 학교는 교육의 전문가인 ‘교사’, 교육 서비스를 받는 ‘학생’, 그리고 교육 활동의 동반자인 ‘학부모’라는 개별적인 주체들로 분절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서로의 역할은 명확해졌지만, 그 관계 속에서 느껴지던 끈끈한 유대감과 정서적 교감은 희미해지는 듯하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은 커졌으나, 서로를 향한 이해와 신뢰는 오히려 줄어들어 때로는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함께’라는 가치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간절해졌다.


◇ 학교 교육의 새로운 도전: ‘함께’의 가치를 다시 심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는 우리 학생들이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지혜와 역량을 갖춤과 동시에, 무엇보다 정이 넘치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행복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각자도생’이 아닌 ‘함께’라는 가치를 학교에 다시 뿌리내리고 싶었다. 2024년부터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 공동체의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모두가 학교의 주인으로서 교육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학생자치회는 학교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확대했다. 학생 대의원회를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 운영에 직접 반영되도록 했고, 학급회의를 활성화하여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하도록 도왔다. 특히, 학교폭력 예방 활동과 흡연 예방 캠페인을 학생들이 주도하도록 함으로써 책임감 있는 시민 의식을 함양시켰다. 또한, ‘친구 사랑’ 활동을 통해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도록 했으며, 연말 ‘사랑 나눔 바자회’와 ‘축제’를 학생 주도로 기획하고 운영하게 하여 공동체의 즐거움과 나눔의 기쁨을 몸소 체험하는 장을 마련했다.


학부모회와 학부모 폴리스는 학교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각종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학교폭력 예방 순찰, 흡연 예방 캠페인 등 학생들의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한 봉사 활동에 앞장섰다. 학부모 대의원회 의견을 경청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부모 교육을 통해 자녀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도 힘썼다. 학교의 전반적인 활동에 학부모님들이 함께 해주시면서, 학교는 더욱 풍성하고 활기찬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교직원들은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서 묵묵히 헌신했다. 학생회 활동의 조력자이자 학부모님들의 든든한 파트너로서, 기획 단계부터 실행, 결과 공유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왔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학부모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책을 모색했다. 교직원들의 이러한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교육 공동체의 활성화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 ‘함께’ 만들어낸 따뜻한 결실: 사랑과 정을 나누고 배우는 공동체


이러한 ‘함께’하는 교육 공동체 활동은 눈에 보이는 놀라운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학생회와 학부모회가 함께 힘을 모아 진행한 ‘사랑 나눔 바자회’와 ‘축제’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따뜻한 나눔의 장이 되었다. 수익금은 지역 사회의 여성 청소년 쉼터에 기부되어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했고, 추운 겨울 연탄 나눔 봉사를 통해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했다. 또한, 국제 봉사회에 기부함으로써 우리 학생들이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위한 장학금을 직접 마련하고 전달하면서, 학생들이 진정한 ‘친구 사랑’의 의미와 나눔의 기쁨을 몸소 체험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우리 교육 공동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을 넘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사랑과 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배우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의 ‘정이 넘치는 사회’가 사라져가는 듯한 이 시대에, 교육 공동체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함께’의 가치를 다시금 꽃피우고 있다.


◇ 미래를 향한 따뜻한 동행: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교육 공동체


AI 시대, 1인 가구 증가, 비대면 소통의 확산 등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학생들이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따뜻한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잃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학교는 더 이상 학교만의 공간이 아니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손잡고 만들어가는 열린 교육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 학교는 지난 1년여 간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교육 공동체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평택의 교육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사랑과 정’이라는 변치 않는 가치를 지키며,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지역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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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함께, 정이 넘치는 교육 공동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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