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에 방영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현상은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전통적 결혼관에 대한 변화의 욕구가 폭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극중 맏며느리 ‘은희’는 전통적인 시가 생활과 가사 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따로 방을 얻어 살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가족을 위한 희생을 미덕으로 여겨 온 한국적 ‘맏며느리상’을 정면으로 부정한 장면이었고, 당시 방송을 시청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사회적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일부 보수적 시청자와 언론은 “가정을 파괴한다”라며 비판한 반면, 20~40대 여성층과 진보적 매체는 “여성의 자아실현을 상징하는 통쾌한 장면”이라며 반겼다. 인터넷 카페와 게시판 등에서는 ‘내가 은희였다면?’이라는 화제가 확산되었고,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여성에게만 전가해 온 가부장적 결혼문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졸혼’이라는 용어는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가 뿔났다>의 맏며느리 독립 선언을 계기로 ‘결혼 관계는 유지하되 각자의 삶을 존중하자’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별거 아닌 별거’ 형태로 결혼을 재구성하는 사례들이 언론에 심심찮게 소개되면서, 결혼을 ‘끝까지 참고 버티는 관계’에서 ‘각자 행복을 추구하는 선택적 공동체’로 재정의하려는 담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졸혼이란 법적으로는 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사실상 부부로서의 역할을 정리하고 각자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형태를 말한다. 졸혼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인한 독립적 삶에 대한 열망이 크게 작용한다. 이는 결혼이 경제·양육 공동체에서 점차 정서적 선택의 영역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가부장적 질서가 약화하면서 결혼제도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졸혼은 과연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아니면 파국으로 가는 길일까.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긍정적 선택이라는 시각과, 관계를 방치함으로써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공존한다. 결국 ‘혼자이면서도 부부’라는 모호한 상태는 전통적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문화비평가들은 졸혼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세대 간 가치관 충돌과 사회적 안전망 문제까지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2023~2025년) 결혼제도의 변화를 다룬 주요 칼럼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결혼, 이제는 선택 아닌 옵션?(경향신문, 2023.11)」은 결혼율 감소와 비혼 확산으로 결혼이 더 이상 ‘필수 코스’가 아닌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전환되었다고 분석했다. 결혼을 성인의 필수 관문으로 보지 않고,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가족 형태의 다변화,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한겨레, 2024.06)」는 동거, 사실혼, 졸혼, 1인 가구, 공동체적 가구 등 가족 형태가 빠르게 다양해졌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전통적 부부와 자녀 중심 모델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실제 생활과 법·제도 간 괴리가 커지며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졸혼은 노년기 자아실현의 출구인가, 가족 해체의 신호인가(중앙일보, 2024.12)」는 졸혼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긍정적 도구로 평가되면서도, 가족 해체를 가속하고 부모 돌봄, 상속, 부양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병존한다고 분석했다. 졸혼은 이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가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할 새로운 숙제로 부상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러한 심각한 변화에 걸맞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정부 부처의 정책이나 법적 개선책은 여전히 미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은 더욱 부족하다.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이 법적 보호와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무너진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국가적 재난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