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과연 세계적인 감독이다.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신선하고 흥미롭고 영화를 본 후 감동이 밀려오게 했다. 단지 흥행만을 위한 블랙 코미디가 아니었다. 망상이 아니라 다가올 인류 미래를 고민하는 주제가 명확했다.
세상은 괴짜가 있어 즐겁고 흥겨워진다. 갈릴레오가 재판정을 나오면서 던진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천재나 괴짜가 할 수 있는 말이다. 서자 출신 허균은 관직을 포기하고 유랑의 삶을 떠돌면서 세상을 풍자한 ‘홍길동전’을 썼다. 그 시대의 괴짜였지만 지금까지 우리들을 즐겁게 한다. 이런 류의 괴짜 감독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개봉일에 보았다.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Mickey 7’을 원작으로 한 SF 블랙 코미디이다. 개봉 4일 만에 백만 명이 보았다니 더 놀랍다. 작품성과 동시에 흥행에도 성공할 기세가 틀림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미래의 인간들이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 ‘니플하임(Niflheim)’을 개척하기 위해 복제 인간을 활용한다. 주인공 미키 반스는 이러한 복제 인간 중 하나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며 죽을 때마다 새로운 몸으로 재생 프린트된다. 복제되는 그 장면이 기괴하다.
17번째 복제된 미키는 시스템의 오류로 ‘미키 17’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미키 18’이 생성되면서, 미키는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개의 상반된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소극적이고 소심하고 감성적이다. 반면 또 하나는 적극적이고 과격하고 의지적이다. 두 개의 자아가 치열하게 부딪치고 때론 타협한다. 이것이 원래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영화는 설국열차에서 보여준 것처럼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여러 부류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독재자인 선장과 실제 그를 조종하는 아내, 권력 앞에 아부하는 참모와 연구진들, 틈새를 이용해 자기 이득에 몰두하는 인물, 그런 억압된 분위기 가운데서도 로맨스를 만들고 밀애를 즐기는 미키와 연인 나샤가 있다. 그들의 사랑의 힘이 결국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키였다.
감독은 이 영화로 문제를 제기했다. 미래에 대두될 복제 인간의 존재와 인간성, 그리고 생명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감독 특유의 사회적 메시지를 주면서 이를 블랙 코미디 요소가 짙게 풀어 나갔다.
괴짜 감독이 던져주는 주제는 상식적 단계를 넘어서 지구 밖 행성에 생존하는 생명체인 동물에 대한 애정과 그들과 소통하는 인간미를 보여주는 감동이 있다. 이것이 우주를 구원하는 힘으로 보여졌다. 얼마나 훈훈한가?
그가 그동안 세상에 내어놓은 영화는 강한 사회비판 영화였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풀어 나가는 독특한 영화였다. 처음 우리에게 파격적인 영상과 주제로 보여주었던 작품은 <괴물>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환경 문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켰다. 흥행에도 대박을 터뜨렸다.
그 후에는 <설국열차>로 다시 한번 우리를 경탄하게 했다. 출연진 배우를 주로 외국인으로 기용했다. 전 세계를 돌며 생존을 위해 고투하는 열차는 종말적 예언이었다. 제약된 열차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계급사회와 혁명을 다루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감독·각색상을 수여받은 <기생충>은 온 세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영화였다.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이 상존하는 현대사회를 우화적으로 풀었다.
이번 작품 <미키 17>은 출연진 배우가 전원 외국인이다. 마치 세계적인 명장 ‘이안’ 감독처럼 동양인으로서 할리우드가 탐내는 감독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현실이 어수선하다. 이러한 때에 이런 영화를 내놓았다. 무슨 의미를 주려는 걸까?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마치 우화 한편으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문제를 던져주었다. 그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돌리면서.
이 영화는 가장 암울한 사회비판 영화로 평가받았고, 영화 속 독재자 캐릭터가 현실의 정치인을 연상시킨다는 관객들의 반응을 몰고 왔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완벽한 우화’로 평가받았다. 과연 그는 우리 시대의 괴짜 감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