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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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이언 모리스(Ian Matthew Morris)가 쓴 『전쟁의 역설』(War! What is it good for?)은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폭력으로 일군 1만 년의 역사’(김필규 옮김)라는 부제 또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언뜻 600쪽이 넘는 두께만 보면 초장에 질릴 듯싶지만 일단 차례를 펴는 순간 생각이 싹 달라질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알려주는 전쟁이 만들어낸 더 큰 이야기는 무엇이고, 우리의 미래에 관한 내용물이라는 안내에 그 누구인들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엇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기존의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방식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서장과 총 7장으로 구성된 소제목의 배치에서는 저자 특유의 번득이는 기지(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맨 처음 ’서장‘의 표제는 ’장의사의 친구‘이다. 이러한 어구를 보고 사람에 따라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다소 섬뜩한 기분이 될 수도 있겠으나, 짧지 않은 글의 서문을 재치 있게 풀어가는 문장 구사력만 보아도 저자의 탁월성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참고로 저자는 영국 출신의 미국인으로서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역사학, 고고학, 고전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1장에서는 황무지: 고대 로마시대의 전쟁과 평화’, 제2장에서는 ‘괴물 가두기: 생산적인 방식의 전쟁’, 제3장부터는 연대별로 ‘야만인들의 반격: 비생산적인 전쟁, 1~1415년’, 제4장에서는 ‘500년 전쟁: 유럽이 (거의) 세계를 지배하다, 1415~1914년’, 제5장에서는 ‘강철의 폭풍: 유럽에서의 전쟁, 1914~1980년대’, 제6장에서는 ‘인정사정없는 싸움: 왜 곰베의 침팬지들은 전쟁에 나서는가’, 제7장에서는 ‘지구의 마지막 최선의 희망: 미 제국, 1989~?’라는 논제를 점층적으로 숨 가쁘게 이끌어가고 있다. 서문 페이지에서 소제목 내용을 뒷받침하는 소항목들을 살펴보면 딱딱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소설류 같은 느낌이 든다. 관심이 가도록 제시한 키워드마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뿐더러, 그러함에도 전개 양상이 그리 복잡하게 와 닿지 않아서다. 한마디로 전쟁사 중심의 세계사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저자의 고고학적 혜안이 넘기는 책장을 통해 독자들의 눈동자를 사로잡는다고 하여 결코 과언이 아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줄거리를 담고 있다고 해도 막상 읽히지 않는 책이라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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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기념관에 게양된 한국전쟁을 도운 우방국의 국기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소환하면 초두에 홉스가 적시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종식시킨 동력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아니라 법과 질서를 존중한 최소한의 도덕률이라는 일갈이었다. 케인즈의 지적도 어느 정부이건 전쟁을 획책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범죄집단에 가깝다는 사실관계를 염두에 둔 말이다. 아울러 창조적 소수정예(a-few-good-men) 지배이론이 말 없는 대다수에게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었고, 통치자는 죄다 살인자였다는 필설은 촌철살인 같은 대목이다. 제국의 위세가 늘 위험요인을 동반하는 건 코끼리는 전시실을 그냥 놔두지 않아서란다. 경제적 측면을 위주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즉 『여러 나라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한 고찰』(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은 많은 걸 시사하는 저서다. 놀랍게도 그가 취한 입장은 정치적 중도였다. 극적인 반전은 각국의 무장 수준이 상향 평준화를 거치며 사망자가 뚜렷이 감소했다는 역설이다. 저자는 미래 죽음의 게임은 팍스 테크놀로지의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와 같이 관점에 따라서는 퍽 도발적으로 읽힐 수 있는 전체 주제가 언뜻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우호적 발상처럼 보일지라도, 본격적인 논의는 야만과 문명의 충돌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거니와 심층적으로는 재난과 평화의 병존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결국, 저자의 궁극적 의도와 지향점은 인류가 벌여온 전쟁사를 되짚어 영원한 평화의 해답을 찾기 위한 일련의 시도로 보인다. 그중 인상적인 장면을 들자면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밤 10시 30분부터 화요일 오전 10시 20분 사이에 뉴욕시 안에서 살해당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단 하루 반 정도이긴 해도 깜짝 놀랄 만큼 평화로운 구간이 아니었나 싶다. 막바지까지도 지은이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진실로 전쟁이 아무 소용없는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전쟁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흔히들 전쟁이라는 낱말에 대해 각인되어 있던 부정적 통념을 잠시 접어두고, 부디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철히 전쟁의 양면성에 관하여 숙고해 볼 수 있는 독서의 장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55호)에는 ‘전쟁의 역설적 교훈 - 전쟁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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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전쟁의 역설적 교훈 ‘전쟁의 역설에 대한 리뷰’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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