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아스포라의 처지가 되어 정처 없이 세계 각지를 떠돌다가 1948.5.14. 전격적으로 지중해 동남방에 건국의 깃발을 꽂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이었다. 인구 930만여 명이 모여 사는 곳에 대한 필자의 일천한 지식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사를 천착하는 데 크나큰 걸림돌이다. 아울러 아직도 줄줄이 꿰(뚫)지 못하는 신구약 성경 내용 또한 스스로 답답해하는 속내 가운데 일부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란 국호에 대한 정리만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혹자는 그것이 단지 ‘산지(山地)’의 지명이라고 추론하면서 지리적 용어라는 견해를 펴고 있으나, 필자는 창세기 22장에 의거하여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께 얻어낸 이름’이라고 사려한다. 그 명칭이야말로 창조주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만 내리시는 성스러운 용어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중심으로 영적으로 거듭난 자만이 그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대전제하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역사적 견해에다 참고자료들을 들여다보며 총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글월을 기술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서술에 들어가기 앞서서 명확히 해둘 일은 모든 자료에 우선하는 것이 성경이라는 점이다. 비록 택함을 받은 사람의 손을 거치긴 했으나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성경을 각종 문헌의 조합으로 이뤄진 여타 기록물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어서다. 설사 성경 안에 일부분 상호 모순된 사항이 있다 할지라도 이는 전체 흐름으로 접근한다면 대부분은 풀린다고 본다. 성경 안의 의문점은 근본적으로 성경 안에 그 답이 숨어 있다. 여태껏 해결하지 못한 부분은 인간들이 아직 영적 메시지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개중에는 세상의 원리로는 더이상 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악으로 점철된 인류사를 영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기존의 세계사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사관에 의해 편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상당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졌어도 고대사의 재구성이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거니와 실제 지구촌의 학교 현장에서 실시하는 거의 모든 수업이 철저히 진화론적이며, 심지어는 유물사관까지 동원해 문명사를 가르치는 실정이다.
▲ 광야 가운데 심은 침엽수림의 띠
어쨌거나 지적 자산 하나로 버텨온 유태인의 세월은 실로 험난했다. 그러니 유대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사유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란 무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유대민족을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신 섭리의 장소였다. 그만큼 여기서 이루어진 일들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로 이해하기에는 어렵고도 놀라운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이에 필자는 가능한 한 역사 비평적 입장에서 벗어나 최대한 사실을 위주로 한 집필에 충실할 참이다. 세간에 회자하는 자료비평이나 전승비평 등도 기본적으로는 성경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한다. 원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탐색은 그들의 지난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예표로 보여주고자 하신 전 세계 백성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존의 수많은 역사물도 이미 우상이 되어 있거니와 인간이 재단하는 사회 제도 자체가 흡사 신처럼 행세하고 있어서다. 왜곡된 이스라엘의 통사는 이제 제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대로 진행되는 구원사의 일부분일 뿐이다.
기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유대인들의 삶이란 처참한 몰골이었다. 바빌론인이나 그리스인들과 함께 살면서 로마인들의 운명을 지켜보아야 했고, 한때는 마호메트 문명에 뒤섞여 번잡하기도 했으며, 1,200년간의 중세 암흑기를 용케도 견뎌 근대의 지성으로 화려하게 등극하기도 했다. 세계인구의 0.3~0.5%(추산 방식에 따라)의 비율로 노벨상 10% 이상을 차지하며, 미국 대학 강단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사실만 봐도 유태인 교육의 위대성을 확인하고도 남을 일이다. 고대 그리스가 한때 지성의 대표적 지위를 누렸다고 하나 겨우 500년에 불과한 데 비해 유대민족의 창의성은 무려 4,000여 년을 면면히 이어온 참이다. 반면에 유태인이 끼친 지적 해악 또한 만만찮다. 라이프니츠가 있었는가 하면 스피노자가 있었고, 아인슈타인이 있는가 하면 프로이트가 있었으며, 플랭클린의 뒤에는 칼 마르크스가 있었다. 그들의 장삿속은 가히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하여 온갖 포르노를 만들어 성적 타락에 앞장서는가 하면, 급기야는 유전자 조작 사업에까지 손을 뻗쳐 전 세계를 생명의 공포 속으로 빠뜨린 선봉에 서 있는 것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52호)에는 ‘영적으로 탐색한 이스라엘 - 이스라엘 민족사의 단면’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