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안경을 흘리다』, 『당신에게는 이르지 못했다』 “어렵게 묶은 시집이어서 기억에 가장 남아”

 

인터뷰 권혁재 메인.JPG

▲ 지난 9월 열 번째 시집 ‘자리가 비었다’를 출간한 권혁재 시인

 

평택 출신인 권혁재 시인은 지난 9월 9일 열 번째 시집 ‘자리가 비었다(출판사 서평)’를 출간했다. 권혁재 시인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를 졸업하고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09년 첫 시집 『투명인간』을 비롯해 『누군가의 그늘이 된다는 것은』, 『안경을 흘리다』, 『당신에게는 이르지 못했다』, 『아침이 오기 전에』, 『귀족노동자』 등 다수의 시집을 출간해왔다. 이덕규 시인은 이번 열 번째 시집 추천사에서 “그의 시가 짧고 간결해졌다. 밀물의 힘으로 서서히 큰 배를 들어 올리듯, 그의 간단치 않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시의 지렛대가 보인다”고 평했다. 5일 권혁재 시인을 만나 ▷‘자리가 비었다’ 소개 ▷발표 작품들의 특질 ▷문단 등단 및 애착이 가는 시집 ▷시 창작 원칙과 방법 ▷작품 활동 계획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말>


■ “문화행사에 외부 초청 강사보다는 평택에 살고 있는 예술인들을 잘 활용해야”


- 열 번째 시집 ‘자리가 비었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열 번째 시집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번 시집은 등단 20년 되는 해를 맞아 출간한 시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여겨집니다.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10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니 2년마다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한 셈이 됩니다. 


‘자리가 비었다’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선 기존의 시집들과는 확연히 바뀐 문체에 있습니다. 기존의 문체에서 탈피하여 간결한 문체로 시의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시를 짧게 쓰려고 시조의 형식을 빌려 쓰다 보니 어떤 작품은 온전한 시조의 형태로, 어떤 작품은 시조의 형식을 뛰어넘은 형태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는 내용이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산문화되거나 돌연변이가 된 작금의 시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머지않아 AI가 대량으로 시를 생산해 내어 시인들의 작품이 차츰 자멸해 갈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거기에다 MZ세대의 시작품도 가세를 했습니다. 시가 더 산문화되고 이해할 수 없는 작품으로 더 난무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시가 어렵다고 시를 멀리하는 독자들을 더욱 부채질할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이번 시집은 삶의 진경을 보듬어 사람 냄새나는 짧은 시로 시에 대한 새로운 변형을 펼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 꾸준히 시집을 출간했는데, 그동안 출간했던 시집들과 이제까지 발표된 작품들의 특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시를 미학적으로 쓰거나 거창한 서사도 첨가하지 않습니다. 일찍이 옥타비오 파스가 말한 “민중의 노래이자 고독한 자의 말”을 뱉어내는 것이 시라는 것을 철저히 믿는 시인일 뿐입니다. 어찌하다 보니 등단 20년 만에 10권의 시집을 상재했습니다. 첫 시집부터 열 번째 시집까지 시의 핵심이 되고 주축을 이루는 것은 중심부보다는 주변부의 사람들, 관심을 갖는 대상보다는 무관심으로 스쳐 가는 대상들,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하층민의 인물들을 그 모티프로 시를 형성하여 왔습니다.


첫 시집 『투명인간』이 그랬고 두 번째 시집 『잠의 나이테』 역시 그랬습니다. 세 번째 시집 『아침이 오기 전에』는 쌍용자동차(현 KG 모빌리티) 옥쇄파업을 사실적으로 접근하여 가해자의 노동에 대한 폭거성과 피해자의 정신적 후유증이나 트라우마 등을 다각도로 들춰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네 번째 시집 『귀족노동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디테일한 노동자에 대한 심리까지 그려냈습니다. 일곱 번째 시집인 『안경을 흘리다』는 200만 이주노동자들의 애환과 아픔을 드러냈고, 여덟 번째 시집 『당신에게는 이르지 못했다』는 4.3사건의 만행과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린 양민들의 실태와 피폐해진 삶을 추적하였습니다. 시의 특질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으나 굳이 정리한다면 강자에 억압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통해 부단히도 살아나려는 생명의 끈기와 빚진 사랑에 대한 채무를 갚는 끝없는 행위의 반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 어떤 계기로 문단에 등단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출간한 시집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시집은?


문예창작학과에서 시에 대한 공부를 심도 있게 하면서 각자의 창작 작품을 가지고 치열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같이 수학한 시인으로는 안도현, 공광규, 장옥관, 김중일 등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등단을 마치고 한참 잘 나가고 있는 별들의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단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 쌓여 날마다 저를 짓눌려댔습니다. 


휴식 시간에 제 작품을 본 공광규 시인이 작품을 몇 편씩 가르더니 이것은 어느 신문사에 저것은 어느 신문사에 신춘문예 원고를 투고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게 투고를 하고 나서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못 보던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틀을 남겨 둔 12월 22일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개통이 되지 않은 서해대교 교각 앞을 지나던 제 차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당선 소식에 두 손을 번쩍 쳐들었습니다. 그때처럼 아름다웠던 서해의 노을은 아직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열 권의 시집을 출간했지만 마음에 드는 시집은 그다지 없습니다. 애착이 가는 것보다 발로 뛰고 대상을 만나 인터뷰를 하여 자료를 모아 쓴 『안경을 흘리다』와 『당신에게는 이르지 못했다』가 어렵게 묶은 시집이어서 기억에 가장 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 권의 시집은 아르코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인터뷰 권혁재2.jpg

▲ 열 번째 시집 ‘자리가 비었다(출판사 서평)’ 책 표지

 

- 시 창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방법은 무엇인지?


학부 때부터 대학원까지 시에 대한 이론과 창작의 실제를 배웠습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시를 써왔으나 누가 나에게 시가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렇다 할 정의를 내려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시는 이론이 앞서다 보니 시라는 명제에 대한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시는 정의하는 게 아니라 자문(自問)에 자답(自答)하는 것이고 “민중의 노래이자 고독한 자의 말”이어야 합니다. 시 창작에 있어 원칙과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원칙과 방법을 시 창작에 적용할 때 시는 보다 더 시적으로 의미를 가진 위치에 있습니다. 시가 부모와 사랑, 개인의 아픈 서정을 노래하는 것을 진부하다고 거부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시인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에서 이러한 것을 배제시키고 내용적으로 또는 주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요? 결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시란, 가슴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 줄 때 시가 발아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다 드러낸 후에야 비로소 자기 내면을 확산시키는 것이 시이기 때문입니다.


- 평택 출신의 시인으로 비판적 성찰 및 사유가 담긴 작품을 통해 평택지역 문학 발전과 활성화를 이끌어 왔는데,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과 지역에서의 활동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시집을 낼 때마다 평택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한 편씩 선별하여 꼭 시집에 집어넣었습니다. 평택을 대하는 서정이 내재한 리얼리즘의 한 궤도로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사실 시인 혼자서 평택에서 지역 문학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범위는 사실상 전무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지역 활동 계획은 상당히 정치적인 면이 강해 조심스러운 부분이어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문화사업 관계자가 이 글을 본다면 외부 초청 강사보다는 평택에 살고 있는 예술인들을 잘 활용하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 시를 창작하는 후배와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시를 창작하고 있는 후배 시인이나 동료 시인들에게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시를 돌연변이로 만들지 마십시다. 시를 시 자체로 존재하게 하고 시 자체로 의미하게 해야 합니다. 과한 미학이나 수사로 지나치게 꾸미지도 말고 본래의 시 모습으로 발가벗겨 놓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린아이같이 배고프면 울게 하고, 기쁘면 웃게 하고, 사랑받으면 춤추게 해야 합니다. 시는 인간세계의 말이어서 “상처 난 기억에 대한 정직한 고백”을 하는 것이며, 사유의 집합체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는 사람의 냄새가 나야 하고 “고독한 자의 말”이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시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한 말씀 드립니다. 시를 읽어가는 단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운 용어의 사용 즉, 이미지, 상징, 비유, 함축, 전경화 등의 말들이 시를 읽는데 이해 부족이나 중압감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를 더 어렵게 부채질하기도 합니다. 분명 시는 언어를 축적하는 산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몇 가지 시의 장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시를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쓰거나 공유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또 시 자체에 무슨 고상한 게 있을 거라는 노래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시를 읽는다면 “고독한 자의 말”을 들을 수 있으며, 진득하게 삶의 진경을 찾아내려는 시인의 진실한 자세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인터뷰] 열 번째 시집 출간, 권혁재 시인에게 듣는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