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봉호 교수의 『고통받는 인간』은 연약한 사람이 겪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다룬 내용입니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철학자가 철학에 관한 책을 쉽게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규정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사회 이론적 정당화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유수의 철인이자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그가 생애 후반기에 와서야 사회의 약자들을 돕는 일이 정의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를 계기로 사랑이 삶의 가장 고상한 가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재음미하며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고 애쓴다는 그의 말에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신앙적 측면까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들어 그가 보이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태도를 보면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밖에 성경적 세계관에 들어가서도 이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논리를 통해서도 일정 부분 문제 제기는 있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모든 인간은 일생을 통해 크고 작은 고통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오욕칠정을 느끼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의 무게가 심신을 짓누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 있다면 고통의 근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이 지닌 다양한 모습과 의의를 철학적 안목으로 관찰하고 성찰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는 넓은 의미의 현상학적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시도한 ‘인간들의 구체적인 경험들에 주목하여 만약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가정한 상황을 상상해보는 사유실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곧 철학적 사고의 특징과 고통: 철학자의 연구 대상과 방법론은 있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입니다. 이는 자연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진 고대인들에게는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재앙을 전혀 예견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느 쪽이 그나마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일까요?
▲ 물향기수목원에서 일하는 농부상
고통에 무관심한 철학이 대내외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상은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학마저 이 분야에서 개척 단계에 있다는 것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인문학을 이끄는 철학계에서 사람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함으로써 고통의 중요성을 소홀히 한 처사야말로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이를 핑계의 그물로 이용한 현상학자 후설은 갈릴레오로부터 시작된 과학주의가 바로 그런 오류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칸트 같은 철학자는 얼마큼 자체모순을 감수하면서도 물자체(物自體)의 존재와 그것의 의의를 인정했습니다. 설득력 있는 논리는 경험과 함께 인류를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힘이니까요. 고통과 철학의 자체변혁이 고통의 문제들과 철학자들이 씨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고통은 본질상 인간 형성에 필요한 마음의 질서 영역에 해당하므로 이제 철학의 임무는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수긍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정의를 거부하는 고통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국제고통학회에서 내린 고통(pain)의 정의는 ‘(신체적) 조직의 실제적 혹은 그러한 파손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서술되는 불쾌한 감각적·정서적 경험’이므로 신경물리학이나 의학이 철학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즉 다른 경험과 구별되는 특징은 그 경험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부터 도피하도록 행동을 유발하거나 그것이 가능하게 해주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란 개념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때만큼은 행동주의 심리학의 유혹이 큽니다. 일반적으로 아픔은 육체적인 것이고, 괴로움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동일한 자극이라도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그 반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후자는 의식작용과 정신능력을 가진 인격체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한자어를 보아도 괴로움[苦]과 아픔[痛]의 합성이니까요. 우리말에서도 고통이란 낱말은 양자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픔과 괴로움을 구별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엄격히 구별하는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요소를 뺀 괴로움이 있을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40호)에는 ‘고통받는 인간의 한계 - 고통의 의식을 추적한 촉’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