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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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한식 도시락을 까먹고 올라탄 유로스타. 대강 두어 시간을 내달려 저녁나절에 내린 파리역사 주변은 고풍스러운 외양과는 달리 쓰레기 천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굴리며 담배를 꼬나문 노숙자들. 일행은 그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리무진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현지 가이드의 일성은 역시나 소매치기를 각별히 조심하라는 것. 국제적 상생도 좋으나 6,500만 상주인구에 더해 난민을 과도하게 받아들여 사회 분위기가 숭숭해진 건 아닌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속히 짐을 싣고 출발한 버스 안에서 듣게 된 프랑스 내부의 속사정. 차분한 어조로 털어놓는 해설자의 입담은 이내 좌중을 사로잡았다. 한마디로 생활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것, 즉 수입의 절반이 세금인 상황에서 살아남기조차 만만치 않다는 게 요지였다. 딴은 선입견이 있어 언뜻 듣기에는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으나 평소 프랑스 정치구조에 관심을 가진 필자로서는 단박에 이해되는 바가 있었다. 하긴 7~8월 열리는 하계올림픽 준비로 어수선한 마당에 방문 일자를 잡았으니 밑바닥 인심을 전하는 품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강행군으로 인해 다들 피곤할 테지만 센강 유람선 투어와 에펠탑 야간일정은 예정된 수순. 다만 우리 부부는 대기하던 승용차에 올라 호텔로 직행할 수 있었다. 이미 파리를 두세 번째 찾은 터여서 다행히도 재충전이 가능했다. 다음 날 오전 찾은 곳은 몽마르트 언덕. 일단 시야가 탁 트여 미로형 파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흔히들 상주인구 200만 남짓한 도시로 알려졌으나 기준선을 광역권으로 넓히면 규모가 1,300만 명으로 늘어나 런던을 앞선단다.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오는 건 50년 이상 묵은 건물은 법적으로 철거할 수 없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 문제는 볼펜을 들고 무슨 조사원인 척 대상을 물색하는 무리 탓에 실시간 눈치를 보며 사진을 찍느라 취하는 포즈가 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푸니쿨라에 올라 예술인들이 생업에 열중인 고지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은 예상보다는 가벼웠다. 맨날 야외로 출퇴근하는 화가의 숫자는 어림잡아 열 명 남짓. 오래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 뒤 가파른 비탈길을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내려와 마주친 벽 낙서의 의미는 죄다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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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마르뜨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보도 가운데 가로수를 심은 샹젤리제 거리를 스치듯 지나쳐 겨우 만나본 개선문. 주위가 온통 공사판이어서 무명용사의 불꽃에 접근하기는커녕 잠깐 머무는 일조차 단속 경관의 눈치를 살폈다. 루브르 역시 영국박물관을 방불한 전쟁터. 코로나 이후 관광 수요가 급증해 일어난 일치고는 되게 언짢은 경우여서 하릴없이 감수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기는 매한가지랄까. 게다가 탐방할 때마다 수박 겉핥기인지라 눈썹 없는 모나리자 여인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인데, 시간을 한정해 외국단체 손님을 홀대하는 갑질도 모자라 부득불 규정을 어길 때는 공들여 따낸 현지 가이드의 자격까지 문제 삼겠다는 게 이들이 공표한 운영 세칙이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을 부릅뜨고 해설자를 따랐건만 머리 없는 승리의 여인 니케상을 노려보다가 그만 일행을 놓쳐버렸으니 이런 낭패가 있으랴. 금세 흩어진 동지를 찾아 그를 따라 유일한 남자 미라를 확인한 뒤 약속 장소로 오기는 왔으되 막상 센강에 놓인 37개 다리 중 영상을 통해 자주 보는 124년 된 교각마저 건너지는 못한 채 서둘러 테제베에 탑승해야 했다.


차창에 비친 불란서 최고의 풍광은 드넓은 농지에 수평선이 보일 만큼의 초지. 명실공히 프랑스란 나라가 농업 대국임을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흠결은 열차의 창문이 지저분하다는 것. 오래전 탔을 적에는 의자나 탁자도 이보다 훨씬 깔끔했었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얼룩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화를 맘껏 즐기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유감스러운 노릇. 앞서 제시한 현지 가이드의 두 가지 전제는 이곳 역사에서 기독교 배경 지식을 빼고는 설명이 어렵다는 점과 부디 평등사상에 대한 오해는 풀어달라는 것. 필자로서는 일단 한국사회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지점과 묘한 일치를 보인다는 게 흥미로웠다. 곧 종교 얘기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대체로 잘못된 동일시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어서다. 결론은 안락한 삶 못지않게 사후세계 역시 중시해야 한다는 당위와 함께 선거 때만 되면 지적인 논리를 무지한 옹고집으로 뒤덮으려는 시도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었다. 덧붙여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이 갖추고 있는 자질로는 추진력, 명석한 두뇌, 문화적 업적을 꼽았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3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스위스: 설산 위의 융프라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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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프랑스: 익숙한 느낌의 파리’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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