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9(수)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평택에서 출발해 문산역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평택역에서 새마을호에 일단 편승할 수 있었다. 종착역인 용산역에서 하차해 지하철 경의중앙선을 탔다. 출발지 역이라 자리를 잡고 종점인 문산역에 당도했다. 약속된 시간은 오전 11시였기에 택시를 잡아탔다.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파주시 문산읍 운천2리 동네 초입 길 오른편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곳이었다. 


마치 미니어처 같은 스몰 처치(교회)가 왼편에 서 있고 가운데 자리에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오른편에는 현대적 감각을 가진 심플한 회관이 신축되어 있었다. 스몰 처치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는데 소그룹을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기도실처럼 내부를 장식해 저절로 무릎을 꿇게 하는 분위기였다. 특이한 점은 이 작은 교회당에 간판은 없고 그 자리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길 위에서 묻다”


이곳은 ‘임진각 순례자의 교회, 문준경 영성관’이라고 교회 전면에 별도의 간판이 있었다. 이 교회 설립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가슴에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순례자의 교회는 분단의 아픔을 끌어안고 남과 북의 화해와 용서를 소망하는 자들의 기도 자리라고 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설립되었다. 


설립 비전 중에는 이런 소망을 품고 있다. “남쪽 최북단에 있는 통일을 위한 기도 처소가 된다. 임진각 일원에서 조용히 주님을 만나는 묵상과 대면의 자리가 된다. 특히 문준경의 순교 영성으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호흡을 일깨우는 성지가 된다.” 


문준경 영성관은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한 목민 목회의 어머니이자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순교자 문준경의 정신과 영성을 기리는 뜻으로 세워졌다. 문준경은 한국전쟁 당시 교회를 지키고 성도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음의 길을 걸어간 순교자이다. 동족 간의 분쟁과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화해와 용서를 소원하며 목숨을 던진 그녀의 희생이 평화통일의 성취로 이뤄지길 기리며 영성관으로 세워진 것이다. 


지금도 우리에겐 이런 정신과 희생의 실천이 필요하지 않는가. 북녘은 아직 진정한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 미명 아래 굶주림과 억압 속에 고통의 나날을 이어가는 동족이 있다. 그토록 우리의 소원을 갈망하며 노래하던 통일세대는 차츰 사라져가고, 갈수록 두 개의 국가로 굳혀져 가는 시대적 현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하고 암담하다. 


세계 도처에는 아직도 내란으로 동족 간에 피를 부르는 나라들이 있다. 자국의 국방력을 앞세워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있다. 또 국제적인 연결망을 가진 테러리스트 집단이 엄존하고 있다. 세계 평화는 요원한 소망이요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면에서 바라본 임진각 주변의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는 무슨 의미인가? 아마도 세계 평화 구축을 위한 평화지대를 조성하라는 예언적 공간은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임진각을 둘러보았다. 곤돌라를 타고 오고 가면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동족 간의 대치가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무거운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자리한 납북자기념관도 돌아보았다. 놀라운 사실은 북측이 남한의 지도자와 지성인 100만 명 납북 계획을 패전의 말기에 의도적으로 실행했다는 것이다. 비인간적 방법인 죽음의 행진으로 납북해 인위적인 이산가족을 만든 북측의 잔학성을 실감했다. 


“길 위에서 묻다” 돌아오면서 다시 그 문구의 의미가 가슴에 와닿았다. 왜 이런 문구를 슬로건처럼 외부에 걸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순례자의 길을 가는 존재다. 누군가는 먼저 그 길을 가며 새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에서 자기를 던져 후세와 다음 세대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그 길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길 위에서 무엇을 묻고 무엇을 찾았는가? 무엇을 심고 무엇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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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길 위에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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