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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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하나님은 천지창조 후 에덴동산에 인간 생명의 씨앗을 심으셨다. 아담과 하와로 시작된 생명은 비록 선악과 사건으로 빗나갔으나 생명은 이어져 나가 오늘의 인류를 형성했다. 

 

생명의 시작은 창조주 손에서 일어난 원초적 역사다. 인간은 죄성으로 인해 처음 가정 아담의 집안에서 살인극이 일어났다. 생명을 해치는 최초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때 창조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고귀한 생명을 주었는데 그 생명을 죽임으로 대적한 최대의 범죄를 바라보아야 했던 참 아버지의 마음은.


 이렇게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그대로 유전이 되어 생명을 해치는 개인적 살인, 집단을 살해하는 학살, 더 큰 범위의 살인 행위인 전쟁으로 발전했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비극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최근 유행하는 신종 언어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유령 영아’라는 단어이다. 처음에는 ‘그림자 아이’로 불리더니 언론사에서 앞다투어 ‘유령 영아’로 통일해버렸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비극적으로 탄생했다.


경찰에서 2천 명이 넘는 ‘유령 영아’의 궤적을 쫓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영아를 베이비 박스에 맡기거나, 영아를 다른 사람 손에 비밀리에 넘기는 비공식적인 입양이 있다. 그런데 이보다 끔찍한 일은 영아 출생 후 양육을 포기하고 살해해 유기하는 일이다. 더 악랄한 일은 영아를 누군가의 손에 팔아넘기는 일이다.


생명의 가치가 이렇게 추락하는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방관자로 침묵할 것인가? 혹은 해결자로 몸부림을 쳐보아야 할 것인가? 인간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성경적 해법을 찾아보자. 누가는 직업이 의사다. 의학자요 과학도 눈으로 지켜본 세례 요한과 예수의 출생 과정 스토리를 우리에게 세밀하게 전해주고 있다.


누가는 생명의 존엄함과 천사의 등장, 사가랴의 불신과 말문 막힘, 마리아의 순종과 믿음, 처녀 잉태한 마리아와 세례 요한 모친 엘리사벳과의 만남과 3개월의 동거 이야기를 애잔하고 리얼하게 전해준다.


반면에 신약의 첫 책 저자 마태는 당대의 폭군 헤롯의 잔혹한 영아 집단 살해 사건을 전해준다. 헤롯의 집단 영아 학살 사건은 잔학함의 극치다. 자기 권좌와 권력을 위협하는 미래의 불안 요소를 애초에 제거하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헤롯과 예수를 대조해 보자. 헤롯은 일명 사탄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 집단 학살, 영아 피해 비극 가정 양산, 창조주 조롱, 탐욕을 위해 살로메의 춤판에서 세례 요한의 목을 선물로 주는 잔학함을 과시했다. 


예수님은 생명 주권자요 그리스도로 오셨다. 생명 사역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길을 여셨다. 죽은 회당장 딸, 백부장의 종을 살리고, 장례 나가는 행렬 멈추고 청년을 살려 과부에게 돌려주었다. 죽은 지 나흘 된 무덤 문 열고 나사로를 불러내셨으며, 당신이 직접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다.


성경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생명의 주권자다. 하나님은 생명의 복을 이어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생명의 씨앗을 심어 평화의 문을 여신다.


지금도 암담한 세계 각처에 전염병, 전쟁, 가난, 난민, 인종차별, 독재국가 괴수들의 행포, 사회의 유령 영아 계속 발생, 생명 거래, 장기거래, 마약 거래, 동성애 등등, 세상은 평화가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복음이 희망이다. 복음이 생명의 씨앗이다. 복음이 생명을 구한다. 복음으로 생명의 씨앗을 심어 내 가정, 교회, 마을 공동체, 전 세계에 평화의 문을 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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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생명의 씨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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