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좌탑 또는 우탑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가정의 달은 다시 가족애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족애는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 근원이다. 가족애는 사회를 지탱하는 초석이다. 이 소중한 가족애는 날마다 성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가족애에 대한 특이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리를 향해 가르침을 주던 예수는 우리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에 대한 교훈을 주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그때에 누군가가 다가와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이 전갈을 받은 예수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무리에게)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1-35)”


예수는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들을 두고 제자들이나 무리를 보며 이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하신 것인가? 이는 가족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혈육의 개념으로만 가족을 이해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보라는 뜻이다


일차적으로 예수의 관심은 둘러앉은 제자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찾아온 자들이다. 이들을 가족애로 보았다. 그러나 모여온 무리는 소문을 듣고 온 군중들이다. 그들을 향해 예수는 가족애로 다가갔다. 마치 길 잃은 양을 바라보듯 목자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들도 나의 어머니요 내 동생이요 누이다.” 우리는 이런 가족의 개념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면 좋겠다. 그들도 가족애가 절실히 필요한 가족으로 품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달라질 것이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 시인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세상에는 이렇게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크고 작은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든 사람에게 가족애가 필요하다. 지진으로 엄청난 고난을 당한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을 위해 세계시민들은 가족애를 발휘했다. 그 이전에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지구촌 가족들은 가족애로 사랑의 손길을 전했다. 강릉 산불 재난 발생 시에 온 국민들은 이재민들을 가족애로 품었다.


가족애 확장으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세상을 예수는 꿈꾸었다. 5월을 맞아 우리의 가족애를 확장시켜보자. 먼저 부모공경과 자녀 사랑으로 가정을 세우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가족으로 품는 가족애로 확장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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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가족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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