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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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좋았다. 초등학생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첫 학기 때 선생님은 군 입대로 가셨다. 그다음 선생님은 불과 한 달 만에 전근을 가셨다. 세 번째로 오신 선생님은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신 여자 선생님이었다.


우리 동네로 이사 오시던 날 동네 아이들과 함께 이삿짐을 날랐다. 우리 학교로 전근 오시는 선생님이신 줄 몰랐다. 학교에서 우리 반 담임으로 소개할 때 나는 너무 놀랐다. 그리고 너무 좋았다. 기뻤다.


선생님은 첫 아기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학교에 나오셨다. 점심시간에 아기를 업은 어떤 누나(가정부)가 와서 아기에게 선생님의 젖을 먹이고 가는 걸 몇 번 보았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이 마냥 좋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선생님 집에 가서 무언가를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선생님 집을 아는 아이가 나밖에 없어서 그랬다. 나는 심부름을 가면서 너무 신났다. 다른 애들이 다 부러워했다. 심부름 다녀온 나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재우야, 잘했어. 고마워”라고 하셨다. 그때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학기도 지나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 전근을 가신다고 발표를 하셨다. 나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날 밤 꿈을 꾸는데 선생님이 전근을 가는 꿈이었다. 선생님을 붙잡고 “가지 마세요”라고 사정을 하며 막 울었다. 잠을 깨어보니 베개가 흥건히 다 젖어 있었다. 


전근 가시는 날 선생님도 눈물을 지으셨다. 우리 반 아이들도 다 울었다. 남자아이들이 훌쩍거리며 울었다. 선생님이 아기 엄마였지만 다정하고 자상하고 항상 쾌활하게 웃으시던 표정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리운 선생님,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분이셨다. 나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사정을 아시고 여행비를 부담해 주셔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선생님이 편지와 용돈을 봉투에 넣어 부모님께 전해드리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선생님의 호의에 감동받으시고 필자가 수학여행을 다녀오게 해주셨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리운 선생님, 감사합니다.


또 중2 때 나는 학교 합창단원이었다. 합창단을 지도하시던 음악 선생님은 항상 나를 이뻐해 주셨다. 3학년 때는 사춘기와 변성기가 온 만큼 합창단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나를 단장으로 임명하고 계속 합창단을 하게 해주셨다.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그때 선생님의 영향이다. 그리운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1 때 국어 과목 선생님은 등단한 시인이셨다. 수업 중에 창밖에 눈이 내리면 수업을 멈추고 시를 한 편씩 써보라고 하셨다. 제목은 ‘봄눈’이었다. 

 

그 후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시를 계속 써보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밤을 새워가면서 습작 시를 썼다. 대학노트에 가득히 쓴 시를 가지고 선생님께 드리면 자상하게 지도해 주셨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문학적 소향을 키워나가지 않았나 싶다. 그리운 선생님, 감사합니다.


필자가 만났던 선생님들은 내 인생 출발선상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때 선생님을 향한 존경과 신뢰와 사랑이 나의 인격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들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인정과 격려가 성숙한 인성을 갖게 해주었다.


지금도 선생님의 사명감과 교사로서 자긍심과 눈물겨운 헌신을 인정해 줄 때 다시 학교 교육이 회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잊힌 이런 마음을 일깨워보자. “존경하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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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그리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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