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연봉고루, 한성백제시대 축성했거나 고구려가 쌓은 것으로 추정

봉남리 부산고성, 해발 30~42m 정도의 낮은 구릉을 따라 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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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봉고루(延峯古壘, 소재지: 진위면 봉남리 아곡, 시대: 삼국시대)


무봉산에서 북동쪽으로 2km 지점인 진위천 상류지역 용인시 무봉리에 토축의 테뫼식 무봉리고루와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해발 80~130m의 연봉 능선을 따라 동서로 가운데가 약간 들어가고 양쪽 끝은 두 개의 작은 봉우리 형태의 긴 말안장 모양인데, 양쪽 봉우리에 연봉고루 두 군데가 있다. 평택관방유적(Ⅱ), 봉남리산성 익성구역, 북벽과 서벽일부구간에서 무문토기와 백제토기가 다량 채집됐다. 무문토기를 비롯한 백제토기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한성백제시대 축성했거나,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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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남리 부산고성 

 

◆ 봉남리 부산고성(釜山古城, 소재지: 진위면 봉남리 산17, 시대: 삼국시대)


봉남리 부산고성(釜山古城)은 무봉산에서 뻗어 내려와 평원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은 연봉이 있으며,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부산이 향교를 감싸며 해발 30~42m 정도의 낮은 구릉을 형성하는 것을 따라 축조된 토축의 테뫼식이다. 성의 둘레가 750m 정도로 평면형은 삼태 기형이고 단면은 동고서저 북고남저이다. 


부산의 위치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조에 “부산(釜山) : 현 동쪽 2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가 있고, 『한국땅이름큰사전』에는 “부산 : 경기-평택진위면 봉남리와 가곡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29m, 진위읍내의 진산이 됨”으로 기록돼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 성지조에 “부산고성(釜山古城) : 동쪽으로 1리에 있는데 산의 형세가 솥 걸이와 같고, 좋은 내가 그 앞에 흐르며, 향교가 그 가운데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현재의 진위향교를 둘러싸고 있음이 확인된다.


부산고성은 이러한 점에서 고구려 산성이 대체로 삼면이 높은 산 또는 절벽으로 둘러싸이고 남쪽만 완만하게 경사가 낮아진 곳에 쌓았으며 성벽은 수직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김정호가 『대동지지(大東地志)』 목차에서 “삼국이 분쟁할 때 모두 요충지에 성을 축조했다. 지금 소읍에 혹 2~3개의 옛 성이 있고 산마루와 협애한 곳 및 교외에도 고성 고루가 있는데 모두 삼국시대의 유적이다”라고 한 내용 등으로 보아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 안성천 이북인 진위지역을 점령하면서 진위지역은 부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돼, 부산고성을 축성했다. 


1843년 간행된 『진위읍지(振威邑誌)』 에는 부산고성이 기록에서 없어지는 것으로 보아 봉남리산성이 이용되면서 부산고성은 성곽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66호)에서는 ‘평택지역의 성곽 유적 - 견산리 부성(釜城)’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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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지역의 성곽 유적’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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